하나님은 사람의 등에 업혀가는 쓸모없는 가짜 우상들을 섬기는 바벨론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시작과 끝을 아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었으니, 보살피고 그리고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1. Bel bows down. Nebo stoops. Their idols are carried by animals, and on the livestock. The things that you carried around are heavy loads, a burden for the weary.
2. They stoop and they bow down together. They could not deliver the burden, but they have gone into captivity.
1.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 갔느니라
"1.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다.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것들이 피곤한 짐승에게 무거운 짐이고 부담이 되었다. 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모두 엎드러졌다. 그들은 그 짐을 구원하지 못하고 그들도 포로로 잡혀 간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이사야는 죽은 신들과 살아있는 신에 대해 재미있는 스토리로 이야기합니다. 바벨론 국가의 우상들은 포로로 잡혀서 짐승의 등에 실려갑니다. 하나의 아이러닉한 장면입니다.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다" (1a절). 이교도의 신 벨과 느보는 우상 숭배 국가가 섬긴 두 개의 거짓 신의 이름입니다. 이교도의 신 벨과 느보의 이름은 벨사살(Belshazza)와 느부갓네살로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성경학자는 말합니다: "45장에서 이사야는 '모두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고 모든 혀가 맹세를 할 것이다'(45:23) 선언했고, 여기서 그는 창피당하고 있는 위대한 바빌론의 신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로간)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다.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것들이 피곤한 짐승에게 무거운 짐이고 부담이 되었다" (1b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상상한다. 짐승과 마차에 실려있는 것은 그들의 우상들이다 – 심지어 그들의 우상들도 포로가 되어 이동 트럭에 실렸다! 결론은 그들이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짐을 구원해주지 못하고 그들 자신이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당시 바벨론이 섬기던 각종 우상들의 (제 눈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다. 포로로 끌려가는 자신의 숭배자를 구원해야 하는 나무목상 벨과 느보는 구원은 커녕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여 사람에 의해 운반되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러니입니다.
자명한 사실은 그러한 전혀 쓸모없는 우상을 믿었던 바벨론은 실로 어리석었다는 것입니다. 그 단순한 나무 조각들은 바빌로니아 백성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이사야는 바빌로니아인들 스스로가 포로가 되어 잡혀가고 있는 모습을 그들이 숭배하던 '엎드러지고 구부러진' 우상들, 벨과 느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위의 이미지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종교에서 바벨론의 주요 신이자 바빌로니아의 국가 신이었던 마르둑(Marduk)의 형상입니다. 아마도 원시적인 혼돈의 괴물 '티아마트(Tiamat)'를 정복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이 신상은 단순히 벨(Bel), 또는 주님(Lord)이라고 불렸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 만나는 우상들의 이야기가 정말로 '헛된 것'이지만 매료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집트 10대 재앙 공부할 때에도 나왔던 온갖 잡신들 공부에 열을 올렸었는데...
아무튼, 이 장의 첫 두 구절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그들의 신을 등에 업고 짐승과 가축의 등에 올리느라 몸부림치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 신들 중 벨과 느보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벨(Bel)은 바빌로니아의 태양신이었고 그의 이름은 바빌로니아의 통치자 벨사살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느보(Nebo)는 바빌로니아의 글과 학문의 신이었고, 그의 이름은 훨씬 더 유명한 느부갓네살 2세 (네부카드네자르 황제, Nebuchadnezzar)의 이름을 기원으로 합니다.
느부갓네살 2세는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켰고, BC 586년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솔로몬 성전을 파괴한 후 유다 백성을 잡아갔습니다. 유다 시드기야 왕을 눈을 멀게 하고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성전의 물건도 바빌론으로 가져갔습니다. 시드기야 왕과 많은 유다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바벨론 포로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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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isten to me, house of Jacob, and all the remnant of the house of Israel, that have been carried from their birth, that have been carried from the womb.
4. Even to old age I am he, and even to gray hairs I will carry you. I have made, and I will bear. Yes, I will carry, and will deliver.
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3. '야곱의 집이여, 내 말을 들어라. 이스라엘 집의 모든 남은 자여,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안겼고, 너희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나에게 업혔다. 너희가 늙을 때까지 내가 그럴 것이고, 너희가 백발이 될 때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다. 내가 지었으니 내가 돌볼 것이다. 내가 업을 것이고, 내가 구원할 것이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안겼고, 너희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나에게 업혔다" (3b절). 말이 없고 죽은 우상들로 대표되는 거짓된 신들은 사람에 의해 운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안고 업으신다. 그는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들을 데리고 다녔고, 앞으로도 계속 데리고 다닐 것을 약속하신다 (너희가 백발이 될 때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다!).
4절 구절에 대한 글과 이미지들이 많이 보입니다. 우리 자녀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 딸을 대상으로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낳았고, 안고 업어서 키웠고, 계속 (업고는 못하고^^) 키울 것이고, (네가 백발이 될 때까지는 못하고~) 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가 낳았으니 내가 돌볼 것이다. 내가 (무거워서 업지는 못하지만!) 업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해 보는데... 다음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구원할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 외의 것에 속합니다. 즉,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자녀를 낳고, 안고, 업고, 키우고, 돌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구원은 부모 된 우리가 하나님에게 우리 자녀를 이끌고 가야 하나님이 (판단하셔서) 허락해 주실 수 있습니다.
내가 지었으니 내가 돌볼 것이다. 내가 업을 것이고, 내가 구원할 것이다" (3c절). 이것은 예수님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아버지의 보살핌이다. 누가복음은 기록한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눅 12:6-7).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을 믿을 수 있다.
1-4절은 참 하나님,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이끄실 것'이라는 것이 주요 메시지입니다. 구절을 읽으면서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누가 누구를 업어야 하나요?" (우측 이미지 소스: https://www.bibleexploring.com/). 아래는 가치 있는 질문이 아닐까요?
"신을 업어야 하나요,
아니면 당신의 신이 당신을 업어야 하나요?"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집을 남은 자들에게 선포하십니다. "너희가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안겼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나에게 업혔다. 너희가 늙을 때까지 내가 그럴 것이고... "
하나님은 과거에 어떤 일을 하셨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그리고 미래의 일을 알고 계십니다. 나으셨고, 키우셨고, 돌보셨고, 앞으로도 안고, 업고, 돌보고, 그리고 구원할 것이다.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었으니 내가 돌볼 것이다. 내가 업을 것이고, 내가 구원할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이 숭배하던 신상들, 그리고 이스라엘이 따라서 숭배하던 우상들은 그들을 업을 수도,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 자신도 구원할 수 없어 사람의 등에 매달려 짐승의 등에 실리고 포로처럼 그들 자신도 끌려가고 있습니다. 신은 자신의 백성을 '이끌고 데리고 가야지(lead, carry)', '매달리고, 업히고, 실려서(be loaded, be led, be carried)' 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신이 자신의 백성을 이끄는 궁극적인 목표 '구원'에 대하여서도, 우상들은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구원하지도 못하는 금은 덩어리 또는 나무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숭배자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이 이상 은혜로운 약속이 있을까요?
내가 지었으니 내가 돌볼 것이다. 내가 업을 것이고, 내가 구원할 것이다.
5. “To whom will you liken me, and consider my equal, and compare me, that we may be equal?
6. Some pour out gold from the bag, and weigh silver in the balance. They hire a goldsmith, and he makes it a god. They fall down—yes, they worship.
7. They bear it on their shoulder. They carry it, and set it in its place, and it stands there. It cannot move from its place. Yes, one may cry to it, yet it can not answer. It cannot save him out of his trouble.
5.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5. 너희가 나를 누구와 비교하며,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고 할 것이냐? 6. 사람들을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내며, 은을 저울에 무게를 단다. 그들은 도금장이를 고용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게 한다. 그리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한다. 7. 그들은 그것을 어깨에 메고, 그것을 운반하여 그 자리에 내려놓으면, 그것은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것에게 외쳐도 대답하지 못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구하지도 못한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사람들을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내며, 은을 저울에 무게를 단다" (6a절). 우리 우상들 제작과 관리에 많은 돈과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우상에게 부르짖지만 그것은 대답할 수도 없고 그의 불행에서 구원할 수도 없다. 이사야는 다시 우상숭배의 아이러니한 어리석음을 폭로한다.
우상제작자들과 숭배자들의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우상 제작과정을 설명합니다. 금과 은을 쏟아내서 그 무게를 달고, 우상을 제작하기 위해 도금장이를 고용하고,우상을 제작하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만든 그것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신상을 어깨에 둘러매고, 운반하고, 정해진 자리에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습니다. 숭배자들이 그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고 구원을 구해서 대답도 못하고,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그들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구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누구와 비교하고,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고 우리에게 반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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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emember this, and show yourselves men. Bring it to mind again, you transgressors.
9. Remember the former things of old: for I am God, and there is no other. I am God, and there is none like me.
10. I declare the end from the beginning, and from ancient times things that are not yet done. I say: My counsel will stand, and I will do all that I please.
8.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8. 너희 반역한 죄인들아! 이것을 기억하고 너희가 장부임을 보이라. 이 일을 마음에 두어라. 9. 너희는 옛날의 일들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다. 나 외에 다른 이는 없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와 같은 이는 없다.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고, 오래 전부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을 알렸다. '나의 조언이 성취될 것이고, 내가 기뻐하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고 말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이것을 기억하고 너희가 장부임을 보이라" (8b절). 우리는 하나님이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들을 기억할 때 인간의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단순히 잊어버림으로, 우리는 기독교인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패배를 당했는가?
"너희는 옛날의 일들을 기억하라... 나와 같은 이는 없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고" (9a, 10a절).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일의 시작을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일의 끝과 모든 상황의 과정을 아신다.
"... '나의 조언이 성취될 것이고, 내가 기뻐하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고 말했다" (10b절). 하나님은 사건의 수동적 관찰자 이상이시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을 모두 아신다. 그의 조언은 성취될 것이고, 그가 하시는 일과 계획은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가두행진(퍼레이드, parade) 전체를 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가두행진을 감독하고 계신다.
본질적인 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에 대한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 즉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시고, 만물을 통제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점을 기억하면, 우리는 스스로가 장부임을 보여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가 누구인지, 그가 하는 일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엄청난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은 한 가지 기억하라 요청하십니다: "내가 시작과 끝을 안다." 위의 성경학자의 퍼레이드 글을 읽으니 하나님은 수동적인 관찰자, 즉 '관중'이 아닙니다. 퍼레이드를 그저 즐기려고 구경하는 관중이 아니라,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감독하는 능동적 주체인 '감독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처음을 아시고, 끝을 아시고,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신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 일은 '그 분을 바라보는 것(look upto)'입니다. 가장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수동적인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see)'이 아닌 능동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l-o-o-k)'이기 때문입니다
'보는(see)' 것과 '바라보는(look)' 것은 관점이 다릅니다.
11. I call a ravenous bird from the east, the man of my counsel from a far country. Yes, I have spoken. I will also bring it to pass. I have planned. I will also do it.
12. Listen to me, you stubborn-hearted, who are far from righteousness!
13. I bring my righteousness near. It is not far off, and my salvation will not wait. I will grant salvation to Zion, my glory to Israel.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12.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
13.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새를 부르고 먼 나라에서 나의 조언자를 불렀다. 나는 말을 하였고 그것을 이룰 것이다. 나는 계획하였고 그것을 행할 것이다. 12. 마음이 완악하여 의로움에서 멀리 떠난 너희는 내 말을 들으라! 13. 내가 나의 의로움을 가까이 할 것이고,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온을 구원할 것이고 이스라엘에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새를 부르고 먼 나라에서 나의 조언자를 불렀다" (11a절). 이것은 고레스에 대한 또 다른 언급이다. 하나님 백성은 당신 백성을 위한 구원자를 늘 가지고 계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그가 이방 왕들 중 하나가 되더라고...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13b절).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시기가 항상 정확하고 현명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할 때,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은 결코 지체하지 않으시며 결코 늦지 않으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구원자가 있으시고, 언제 그의 구원을 이행할 지 항상 정확히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앞에서 헛것인 우상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후에 '동쪽에서 온 사나운 새와 먼 나라에서 조언자' 말씀을 하십니다. 이방인 왕 고레스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십니다. 백성이고 종된 우리는 하나님이 옛날에 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하실 일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이스라엘 구원자로 택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 계획은 오래 전에 세우셨습니다.
오늘 좋은 이미지들이 많이 있어서 여러 개 올립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우상은 우리 마음 속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형상 있는 우상은 우리가 판단하고 거부할 수 있는데... 내 마음 속 우상은 형상이 없습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isaiah-46/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늘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입니다.
인용되고 번역.편집한 부분은 별도로 표기하였습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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