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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개요 & 동영상 링크

by 미류맘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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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하박국의 짧은 책을 끝내고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서신인 고리도전서로 넘어갑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의 개요를 이해하기 위한 동영상을 링크하고 한글 자막을 올립니다. 동영상과 자막은 Bible Project의 소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iHf8klCCc4

고린도인을 위한 바울의 첫번째 편지는 바울이 매우 잘 알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게 쓰여졌습니다. 고린도는 고대 세계의 주요 항구도시였으며, 그리스와 로마신을 섬기는 수많은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중요한 경제적 중심지였기에 바울은 선교사로서 전략적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1년 반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예수님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었고 교회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 내용은 사도행전 18장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다른 도시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는 고린도의 교회가 제대로 가고 있지 않다는 보고를 받게 됩니다. 그는 이 문제들 때문에 홍역을 치뤘고 그래서 바울이 이 편지를 쓰게 된 겁니다. 

고린도전서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다섯가지 파트로 나뉘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섯 부분은 바울이 다룬 다섯가지의 큰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진 짧은 에세이의 모음집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하나로 묶는 핵심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각 섹션마다 쓴 것이 있습니다. 그는 그 문제를 서술하지만, 계속해서 그는 복음 스토리의 어떤 파트로 그 문제에 반응하는데 이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믿는 것을 말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는 지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복음의 렌즈를 통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는 편지입니다. 자 이제 바울이 교회의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봅시다. 

챕터들 안에는 네 가지 문제를 관통하는 한 가지 사실은 이 교회 안에 분열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떠난 후 이 도시에 들어온 다른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라는 자와 베드로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교사를 선택해서 그 리더를 중심으로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선 다른 리더나 교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비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지금 장난쳐요?" 바울이 말합니다. 교회는 오디션 경연장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리더와 교사들은 그저 예수의 종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한 리더를 다른 리더들보다 더 선호한다 하더라도 편을 가를 필요가 없으며, 서로 다른 리더들에 대해 절대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중심은 예수이고 복음은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을 행하였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5-7장에서 바울은 성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들을 다룹니다. 교회 안에 여러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의 계모와 관계를 한 남자가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리스 신들을 지역 신전에서 경배하였으며 그곳에 일하는 창기들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모든 행위들이 모두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으니까 그치? 괜찮을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괜찮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복음 안에서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보여줍니다.

그는 "첫번째로, 예수님께서 당신들의 음행으로 인해 생긴 모든 죄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십니오. 당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성적 온전함이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들 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또한 그들에게 예수님의 육신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몸도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것이라고 상기시킵니다. 즉, 당신의 몸이 현재와 미래에 예수님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면, 당신이 몸으로 하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명확하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성적 온전함에 관해서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8장부터 10장은 음식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음식이란 단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거나 싫어해?"와 같은 선호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사람들을 분열시킨 이슈는 그리스, 로마 신들을 위해 바친 희생 제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유대인들과 유대인들이 아닌 그리스도인들로 입장이 나뉘었습니다. 다시 한번, 바울은 복음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핵심을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충성은 다른 신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다른 신들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칩시다. 그럼 그걸 본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이렇게 결론 내릴지도 모릅니다. "저거 봐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다른 신들도 섬기는구나" 바울은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그고기를 먹지 말라고 합니다. 당신의 충성심은 예수님만을 위한 것이고, 이 사람들을 자신보다도 더 사랑해야 하며 잘못된 길로 이끌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저 동물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상 성전은 나무와 돌들의 조각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만약 주위에 오해할만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면, 그리고 배가 고프다면, 드십시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양심을 따르는 자유로운 새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는 괜찮고, 어떤 상황에서는 먹으면 안되는 것일까요? 핵심은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이고,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1장부터 14장에서는 바울은 주감 예배 모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강렬한 영적 체험들을 한사람들이 생기면서 그 모임 중에 그들이 알 수 없는 언어들로 크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이나 가르침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이나 가르침을 공유하느라 예배를 방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예배는 매우 혼란스러워졌고 복음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매우 방해가 되었습니다. 이 챕터에서 바울은 이 집회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행동해야 적절한지를 그들이 생각하도록 돕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성령이 모든 사람을 통해 일해야 하는 곳이며, 통일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를 인간의 몸으로 비유합니다. 몸은 하나지만 각각의 다른 기관들과 지체들은 각각의 고유하고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은 각기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매우 많은 일들을 하시지만 그 모든 일들은 결국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챕처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의 최고 가치는 복음 - 즉 하나님의 사랑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사랑이 이 챕터의 핵심 단어인 것입니다. 사랑은 집회에 모인 모두가 그들의 역할을 담당하여 섬기며 서로의 행복을 축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핵심을 고린도인들의 문제에 적용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집회의 목적이 강렬한 영적 체험을 하는 것 또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털어 놓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도 기도의 강렬한 영적 체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거나 놀라게 한다면, 그만둬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자신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집회는 질서 있게 모두가 배우며 찬양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다룬 마지막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몇몇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터무니 없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부활은 복음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수백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로마인들에게 공개 처형 당하신 이후 육체의 몸을 입고 다시 부활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죽음은 의미없는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죄와 이기심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이 어떻게 죽음과 악으로부터의 예수님의 승리인지 상세하게 보여주며 어떻게 그것이 생명의 근원이자 현재의 우리의 힘이고 어떻게 그것이 세상을 위한 미래의 소망의 약속인지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 부활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성적 온전함을 갖춰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자 궁극적으로 죽음을 이기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결론짓습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즉, 복음은 단지 도덕적인 조언이나 개인의 영성을 위한 레리피가 아니라 예수님이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공표임을 믿습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의 전체 내용이며 삶의 모든 부분을 복음의 랜즈를 통해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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