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교회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 위하여 바울은 자신의 약점인 '어리석음'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통제 불가능한 그의 삶의 온갖 역경, 고통, 죽음과도 같았던 삶의 자랑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의 유일한 강점은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16. I say again, let no one think me foolish. But if so, yet receive me as foolish, that I also may boast a little.
17. That which I speak, I don’t speak according to the Lord, but as in foolishness, in this confidence of boasting.
바울의 참된 자랑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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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절 "16.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를 어리석은 자로 받아주어서 나도 조금 자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님을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자랑에 자신하여 어리석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문화에서는 대중들은 연사가 재미있고 드라마틱한 쇼맨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자신의 달란트를 발휘하듯 자신의 업적, 학식, 능숙한 논증에 대해 그들이 자랑하고 다른 경쟁자들을 반박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것이 그들 자신 지위에 대한 능력과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에 전혀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자랑하고 앞 장에서도 언급한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그는 직설적으로 '자랑스러운 바보'가 말하는 것을 정말 어리석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다음 절에서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출생, 기독교 회심 이전의 삶, 그의 고통,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것들, 자신의 약함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 등이 그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과 하나님은 위대한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의 세상적인 자랑을 조롱합니다. 그가 바보의 자랑을 말하는 것은 주님을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 안의 바로스러움이 말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자랑을 하는 주체가 그리스도의 대변자가 아니라, 자신 안에 내재된 바보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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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Seeing that many boast after the flesh, I will also boast.
19. For you bear with the foolish gladly, being wise.
20. For you bear with a man, if he brings you into bondage, if he devours you, if he takes you captive, if he exalts himself, if he strikes you on the face.
21. I speak by way of disparagement, as though we had been weak. Yet in whatever way anyone is bold (I speak in foolishness), I am bold also.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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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절 "18.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습니다. 19. 여러분은 지혜로와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봐주십니다. 20.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삼아도, 잡아먹어도, 포로로 잡아도, 스스로 자랑해도, 빰을 때려도 여러분은 그 사람을 봐주기 때문입니다. 21. 부끄럽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했음을 인정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일로 자랑을 한다면 (내가 바보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나 역시 대담하게 자랑하겠습니다." (NIV: To my shame I admit that we were too weak for that! Whatever anyone else dares to boast about--I am speaking as a fool--I also dare to boast about.")
바울은 자랑의 게임(바울이 말하는 '사탄의 종들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그의 상대들과 합류합니다. 그들은 청중(고린도 성도들)을 이기려는 희망으로 자랑을 하지만, 바울은 이 접근이 얼마나 공허한지 보여줍니다. 거짓 교사들은 '육신에 따라' 자랑을 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빈정거리면서 그의 상대들이 했듯이 '육신에 따라' 자랑을 하겠으니, 좀 봐 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속았듯이 좀 속아달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보같은 설명으로 보이지만 그의 접근은 매우 전략적입니다. 자신의 업적이 아닌 바보스러움(약점)을 업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청중들의 지혜를 비꼬며 그들의 너그러움을 요구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들'이지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다("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고전 4:10)라고 비꼽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의 사도 행세를 하며 신도들을 노예 취급하고, 잡아먹고, 이용하고, 깔보고, 빰을 때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다루는 상대의 다른 미덕보다 힘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 말로 그들은 자의던 타의던 '을'이 되어 '갑'의 횡포를 (너그럽게) 봐주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그들은 이유 없는 횡포를 당하면서도 바울의 그리스도와 같은 겸손, 섬김, 고통을 경멸했을지 모릅니다. 청중을 겸허하게 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을 높였는데, 그런 행동이 고린도인들에게는 자신감 있고 인상적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갑'이 된 거짓 교사들은 '을'이 된 성도들을 마치 음식을 먹어치우듯, 자원을 소진하듯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갑질을 하고, 그들이 그어 놓은 선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때리고, 이용당하고, 성도들은 이유도 모른체 그런 일방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세상적인 자부심, 힘, 그들의 세상 지식을 존경합니다.
21절에서 바울은 자신과 동료들이 너무 약해서 그런 식으로 고린도인들을 다루지 못했다고 빈정거리듯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점이 부끄럽다고 조롱조로 말합니다. 그는 그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일했고, 다른 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고통받고 희생하고, 그들과 함께 겸손과 봉사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산 것입니다. 그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고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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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Are they Hebrews? So am I. Are they Israelites? So am I. Are they the offspring of Abraham? So am I.
23. Are they servants of Christ? (I speak as one beside himself) I am more so; in labors more abundantly, in prisons more abundantly, in stripes above measure, in deaths often.
24. Five times from the Jews I received forty stripes minus one.
25. Three times I was beaten with rods. Once I was stoned. Three times I suffered shipwreck. I have been a night and a day in the deep.
26. I have been in travels often, perils of rivers, perils of robbers, perils from my countrymen, perils from the Gentiles, perils in the city, perils in the wilderness, perils in the sea, perils among false brothers;
27. in labor and travail, in watchings often, in hunger and thirst, in fastings often, and in cold and nakedness.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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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7절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 자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더 많이 수고했고, 더 많이 옥에도 있었고, 수없이 매도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24. 유대인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25. 세 번 채찍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난파로 고통당했습니다. 하룻밤과 낮을 깊은 바다에서 지냈습니다.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27.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자주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자주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앞에서 바울은 거짓 사도들을 조롱하면서 자신의 '자신있고', '바보 같은'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의 바보스러운 자랑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 위함입니다. 그는 자신이 통제 불가능한 그의 출생과 이전의 삶을 진술합니다. 그는 거짓 사도들이 히브리, 이스라엘 사람, 아브라함의 자손이냐고 묻습니다. 이는 그들이나 자신이나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인 유대인임을 말하면서 신앙의 정체성을 암시합니다. 고린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된 거짓 사도들에게 설득당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바울이 고린도 신도들에게 그들과 자신의 태생을 묻는 이유는 태생으로 보아 자신은 그들과 비교해서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의 태생은 원래 로마 시민이었지만, 부모는 히브리어를 말했고, 후에 바리새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적수들은 태생으로 보면 그와 경쟁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거짓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고 반문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신 나간 사람의 말 같지만) 자신은 분명히 '더 좋은' 일꾼이라고 자신을 묘사합니다. 그에 대한 증거로 자신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업적과 자신의 세상적인 성공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겪은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고통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노력이 지대했다는 것은 현대에는 자랑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고된 일을 많은 한 사람은 성공이 아닌 인생으로 실패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고 그의 자랑을 해석하면 오랜 감옥 생활, 매 맞고, 죽을 뻔한 경험들은 고린도인들의 귀에는 이상한 자랑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에서의 실패, 고난, 상실 등은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진정한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는 전략적으로 고린도교회를 향해 자신의 나약함을 통하여 하나님 능력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39번 매로, 3번 채찍으로, 한 번의 돌로 맞은 학대받은 이야기를 자랑합니다. 39번(마흔에서 하나 뺀)의 매는 유대교 회당에서 신성모독의 이유로 엄벌에 처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의 복음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방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매를 맞을 것을 경고했었습니다.
그의 고난의 인생은 끝이 없습니다. 자신이 말한대로 그는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순수 히브리인, 출생부터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모세 율법에 열심이었던 바리새인이었고 유대교를 신봉하였던 바울의 회심 후 인생은 위험, 고난, 핍박, 강탈, 공격, 위협, 강도,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끝없는 위험과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그런 삶이 바울의 자랑이었고 이를 듣는 고린도인들에게는 그저 일련의 실패와 재앙의 삶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거짓 형제의 위험과 사역을 하면서 격은 육체적인 고난이 추가됩니다. 힘들고 고된 일, 잠 못 이루는 밤, 허기짐과 목마름, 추위와 헐벗음 등. 그 모든 그의 고난은 그리스도에 대한 섬김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런 개인적인 고난을 '자랑'으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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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Besides those things that are outside, there is that which presses on me daily, anxiety for all the assemblies.
29. Who is weak, and I am not weak? Who is caused to stumble, and I don’t burn with indignation?
30. If I must boast, I will boast of the things that concern my weakness.
31.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he who is blessed forever more, knows that I don’t lie.
32. In Damascus the governor under King Aretas guarded the city of the Damascenes desiring to arrest me.
33. Through a window I was let down in a basket by the wall, and escaped his hands.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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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3절 "28. 다른 것들은 제쳐 두더라도, 매일 나를 짓누르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가 그것입니다. 29. 누가 약하면, 나는 약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분노로 타지 않겠습니까? 30. 만일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함을 자랑하겠습니다. 31.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님을 아십니다. 32. 다마스커스에서 아레다 왕의 총독이 나를 체포하려고 다마스커스 성을 지켰습니다. 33. 나는 광주리 안에서 성벽의 창문을 통해 내려가서 그의 손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고통을 나열하고, '자신을 짓누르는 교회에 대한 염려'인 내적인 걱정으로 돌아옵니다. 바울은 왕성한 선교활동을 통해 전 세계에 많은 교회를 세웠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게 된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박해를 경험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거짓 교사들로 인해 그들의 신앙에 위기가 왔습니다. 그의 내적 고통은 고통스러워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과도 같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약해지면 자신도 약해지고, 그들이 실족해서 죄에 빠지면 분노로 불타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업적과 성공을 자랑하지 않고, 만일 자랑을 해야 한다면 자신의 '약함(weakness)'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거짓 선생들처럼 바울이 강하고, 능력 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나약함만을 설명합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27-29).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2-33절은 바울이 회심 이후 기독교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그의 개인적인 약함을 보여주는 다른 예입니다. 배경을 몰라서 해외사이트에서 번역.편집해서 올립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의 사명은 순간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고 옥에 가두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왔었다. 그러나 회심 이후, 그는 다마스커스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설교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바울이 죽기를 원했다. 아레타스 왕은 그들을 동조하고 경비병들을 배치하여 내려가는 바울을 잡아서 죽이도록 하였다. 당시 사울이었던 바울은 그 음모를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지내던 예수의 제자 몇 명이 성읍을 탈출할 수 있도록 창문을 통해 바구니에 담아 그를 내렸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바울의 성공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근거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부, 위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마스커스에서 몰래 도망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자랑했지만, 스스로 고백하는 약점 투성이인 바울의 강점은 오직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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