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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누가복음(Luke)24:36-53(예수의 부활과 승천)

by 미류맘 2021.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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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열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 예수를 유령으로 생각한 제자들에게 자신을 만져보라 하시고 음식도 그들 앞에서 드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소명을 임명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십니다.

 

36.  As they said these things, Jesus himself stood among them, and said to them, “Peace be to you.”
37.  But they were terrified and filled with fear, and supposed that they had seen a spirit.
38.  He said to them, “Why are you troubled? Why do doubts arise in your hearts?
39.  See my hands and my feet, that it is truly me. Touch me and see, for a spirit doesn’t have flesh and bones, as you see that I have.”
40.  When he had said this, he showed them his hands and his feet.
41.  While they still didn’t believe for joy, and wondered, he said to them, “Do you have anything here to eat?”
42.  They gave him a piece of a broiled fish and some honeycomb.
43.  He took them, and ate in front of them.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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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3절 "36. 그들이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라.' 37. 그러나 그들이 놀라고 공포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이 유령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 당황하느냐? 왜 너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지고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나 너희가 보듯이 나에게는 있다.' 40.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는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41. 그들이 너무 기뻐 믿지 못하고 놀랍게 생각할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42. 그들이 예수께 구운 생선과 약간의 꿀을 드렸다. 43. 예수께서 받아서 그들 앞에서 드셨다."

예수님이 열한 제자와 동료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예루살렘입니다. 두 명의 제자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일을 전하러 11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열한 제자와 그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날은 부활절 오후였고, 그들이 모인 장소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고 모인 방(요 20:19)'입니다. 누가는 그 장소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성경학자들은 같은 장소로 확신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세 번째 부활인데, 첫 번째는 여자들이 무덤을 찾지만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일, 베드로에게도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록이 없습니다. 두 번째 부활은 누가가 자세히 기록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들이(엠마오의 두 제자, 열한 제자와 동료들) 엠마오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십니다 (Jesus himself stood among them, and said to them...). 4복음서 모두 예수가 어떻게 그 닫힌 방에 들어가셨는지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누가는 기록합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37절)" 어떻게 들어가셨는지 설명도 없이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마치 유령처럼) 서 계십니다. 엠마오 제자들의 증언으로도 그들은 부활한 예수를 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놀라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왜 두려워하며 마음의 의심이 있느냐?' 물으시면서 그들에게 부활한 증거인 손과 발을 보여주고 만져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청하시고 그들 앞에서 드십니다. 예수님이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라면 이 둘 다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가지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그 증인으로 그의 제자들을  '이 모든 일의 증인(You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세우십니다. 성경학자의 복잡한 설명입니다(자료소스: sermonwriter.com/ 저의 번역 및 편집).

예수의 육체적 신체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우리가 두 가지의 그리스 신념, 즉 이원론과 불멸론(dualism and imortality)을 고려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원론은 세계를 물리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로 나누며, 물리적 세계는 나쁘지만 정신적 세계는 좋다고 말한다.
• 이원론적인 이해에서 자라는 불멸론은 죽을 때, 선한 정신이나 영혼은 나쁜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육체로부터 독립적으로 계속 살아간다고 말한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활('미래' 지향적—신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죽음으로부터 사람을 살린다)과 불멸('현재' 지향적—삶은 시간이 흐르지 않고 죽음 후에도 계속된다)의 차이에 대해 매우 애매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례식에서 기독교인들이 "(시신을 보며) 그건 그가 아니야. 그는 다른 곳에 있어." 죽은 사람에게 육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무엇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자신을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아니라 육체의 형태, 즉 시각과 촉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신체, 즉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신체로 자신을 표현한다. 성경은 우리 역시 육체적인 형태로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신체는 우리가 남긴 쓸모없는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정체성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그 학자는 덧붙입니다. "부활이 신약의 중심이 되는 가르침이지만 불멸을 암시하는 신약성경들도 있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은 '지금(now)'과 '미래(future)'의 차원을 한 문장으로 통합하신다고 다음 성경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지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미래)
Whoever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has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요 17:3"

같은 학자는 '부활'이라는 같은 문제로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시신을 보면서 '이건 그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신자를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폭발, 화재 등 재난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부활할 수 있는가? 화장의 문제는? 여러 명에게 기증된 장기는?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면 풀기가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고1 우리 딸(어릴 때 자기 말로 엄마 때문에 교회 끌려갔다가 커서는 스스로 현실주의자가 되어 교회 안 다니는)도 매일 성경공부를 하는 엄마에게 묻곤 합니다. "엄마, 하나님 모르고 (예로 부처님 믿고 착하게 살다가) 죽으면 지옥 가? 하나님을 알 기회가 없었던 사람도 지억 가?" 전 '그러지 않을 거야.'하고 답하곤 하는데 저 스스로에게도 정확한 답을 할 수 없더라고요. 

24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육체는 부활 전의 육체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토론하고 있던 잠긴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서) 제자들 중에 서 계실까? 엠마오 제자들에게 불쑥 나타난 예수님을 그들은 한동안 그 존재를 알 수 없었고, 열한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불쑥 나타난 예수님을 그들은 유령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습니다(부활에 대한 말씀을 전에 하셨는데 말이죠). 부활 전과 후 모두 예수님께 육체가 있음을 누가는 강조하지만 누가의 기록으로 보아도 분명히 그 차이점이 있어 보입니다. 

이 문제는 철학, 신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죽어서 부활한다고 말합니다. 죽었던 사랑하던 사람이 예수님처럼 어느 날 우리들 가운데 '서서(stood) 말을 한다면(speak)' 어떨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당황하고 두렵고, 놀라고, 혼란스럽고, 믿을 수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쁠 것입니다.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오늘에 대한 개념이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방식도 다르겠지요. 기독교인은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인지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부활, 불멸, 영생? 부활과 인간의 육체, 영과 육... 믿음이 약한 것인지, 모든 것이 솔직히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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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He said to them, “This is what I told you, while I was still with you, that all things which are written in the law of Moses, the prophets, and the psalms, concerning me must be fulfilled.”
45.  Then he opened their minds, that they might understand the Scriptures.
46.  He said to them, “Thus it is written, and thus it was necessary for the Christ to suffer and to rise from the dead the third day,
47.  and that repentance and remission of sins should be preached in his name to all the nations, beginning at Jerusalem.
48.  You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49.  Behold, I send out the promise of my Father on you. But wait in the city of Jerusalem until you are clothed with power from on high.”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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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9절 "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있을 때에 모세의 율법과 시편에서 나에 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45.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여셨다. 46.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되어 있는 바,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삼 일째 되는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과, 47. 그의 이름으로 죄에 대한 회개와 용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48. 너희는 이런 일들의 증인이다. 49. 보아라.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황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육체를 보고 만지도록 하시고 음식을 드시면서 실제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시고(44절), 제자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여셨습니다(45절). 어떤 성경 구절로 그들의 마음을 여셨을까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수수께끼 같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46절). 그리고 죄에 대한 회개와 용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도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47절).   

그리고 예수님은 (성경 기록에 기반하여) 열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에 관련된 일들에 대한 증인으로 그들을 세우시고(48절), 명령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49절). 누가는 사도행전 1장에서는 기다림에 대하여, 2장에서는 능력을 입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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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He led them out as far as Bethany, and he lifted up his hands, and blessed them.
51.  While he blessed them, he withdrew from them, and was carried up into heaven.
52.  They worshiped him, and returned to Jerusalem with great joy,
53.  and were continually in the temple, praising and blessing God. Amen.

하늘로 올려지시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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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3절 "50. 예수께서 그들을 베다니까지 데리고 가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셨다. 51. 그들을 축복하시는 중에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를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53. 그리고 늘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 여리고로 가는 길목 3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로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주신 곳(요 12:1-8)이기도 합니다. 49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권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셨고 '이 성'은 예루살렘을 뜻합니다. 

앞에서도 예수님은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눅 9:1-2)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죄의 용서를 선포'에 대한 증인들로 제자들을 임명하십니다. 직접적으로 지시는 하지 않으시지만 위로부터 능력(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선물)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 명령하십니다. 

그 이후 예수의 공생애 동안 예수를 직접 보고, 말씀을 듣고, 체험한 제자(사도)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전도와 말씀 전파를 하다가 순교(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는 자살)하게 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길 가다 만나 따라오라고 한 오합지졸이었고, 예수님의 십자가형 당시에는 두려움에 떨어 숨어 있었습니다. 스스로 믿음을 확신하고 고백한 베드로도 예수님의 예언대로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하나님에 의해) 올려지십니다(was carried into heaven). 이는 구약에서 야곱이 죽기 전에 아들들을 축복하는 모델(창 49장)과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는 모델(신 33장)에 따라 떠남을 준비하면서 제자들에게 축복을 내리신다는 학자의 설명입니다. 구약에서 에녹도 하나님과 걷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셨고(창 5:24), 엘리야도 제자 엘리사가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갔다고(열하 2장) 기록되어 있습니다. 승천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배웠듯이, 예수님의 지상의 사명은 그의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 이 승천에 대해서는 마가복음과 마가복음만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제자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요한복음은 '내 양을 먹이라'라는 긴 이별 부분이 있지만 승천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같은 누가가 저자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도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승천으로 끝나지만, 사도행전에서는 부활 후 40일 동안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4복음서는 저자의 관점에 따라 기록하는 내용과 같은 저자일지라도 다른 것이 아닐까요?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제자들은 얼마 전에 유령을 본 것처럼 두려움에 떤 제자들이 더 이상 아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역과 명령을 받은 그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경배받을 대상은 하나님 한 분인데 제자들은 눈이 열려 예수의 존재를 깨닫고 예배자, 전파자로서의 사명을 시작합니다.

마가복음을 이렇게 어렵게 대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 학자들의 설명을 참조하면서 공부했는데 부활, 불멸, 영생, 승천에 대한 개념들이 머리를 혼란하게 합니다. 모든 학자들의 설명을 옆으로 두고 우리는 마가의 기록을 우리의 논리적 머리가 아닌 감성적 가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마가의 기록 마가복음 24장을 끝냅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 24:47)

위의 사진은 어제 산책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저희 아파트에 만발한 벚꽃입니다. 엠마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우리가 걷고 있는 그 어디에선가 '서' 계실 수 있습니다. 어제 산에서 내려오면서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아는지 화사한 봄꽃으로 단장한 주변의 경치가 저를 조롱하는 것 같더군요. 더러는 어두운 얼굴로 더러는 즐거운 표정으로 사람들은 지나가고 있는데, 꽃길 가운데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선가 방황하는 그런 저를 보고 계시지 않을까?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대신 매일성경 진도를 나가고 있는데 성경읽기가 아닌 성경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대할 수록 성경은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 하나하나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책으로 보입니다. 오늘도 글을 적으면서 이해를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 혼동스러운 저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육'일까 '영'일까, 아니면 둘을 다 가지고 계시는 존재일까? 누가복음을 마감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는 '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육'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말씀을 주신 예수님은 증인들을 통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음식을 드셨던 '육'을 가진 인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사함과 회개의 통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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