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불현듯 엠마오 길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눈이 가리어져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은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빵을 떼실 때 알아보나 바로 예수님은 사라지십니다.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기쁜 소식을 다른 제자들과 공유합니다.
13. Behold, two of them were going that very day to a village named Emmaus, which was sixty stadia from Jerusalem.
14. They talked with each other about all of these things which had happened.
15. While they talked and questioned together, Jesus himself came near, and went with them.
16. But their eyes were kept from recognizing him.
엠마오 길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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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6절 "13. 같은 날 그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약 11km에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했다. 15. 그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 다가와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복음서는 1세기 말에 쓰였다고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육체를 목격한 적이 없는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을 목격한 마가,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던 두 제자, 예수님을 목격한 적이 없는 1세기의 기독교인들, 그리고 우리 사이의 어떤 수수께끼 같은 연결고리가 있을까요?
이 이야기에는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증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0절),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34절), "떡을 떼심" (35절)와 같은 구체적인 언어를 누가는 사용합니다.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예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당황하고 베드로가 무덤을 달려가는 이전 이야기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장면은 변해서 엠마오(지도를 보니, 예루살렘에서 서북방향으로 약 11km 거리)라는 마을로 가고 있는 예수의 두 제자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바로 그날(부활절 오후, 예수가 죽은 지 불과 몇 시간 후), 슬픔에 잠겨 토론하면서 길을 걷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토론의 주제에는 '스컬(Skull,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당하신 예수, 예수님의 빈 무덤, 천사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예언과 부활을 상기시킨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여인들의 증언, 이스라엘 왕으로 오실 예수에 대한 초기의 그들의 희망과 비전 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시고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their eyes were kept from recognizing him). 그러면 수동태로 된 이 동사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그러시지 않으셨을까요? 앞에서도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눅 18:34)',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눅 9:45)' 누가는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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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He said to them, “What are you talking about as you walk, and are sad?”
18. One of them, named Cleopas, answered him, “Are you the only stranger in Jerusalem who doesn’t know the things which have happened there in these days?”
19. He said to them, “What things?” They said to him, “The things concerning Jesus, the Nazarene, who was a prophet mighty in deed and word before God and all the people;
20. and how the chief priests and our rulers delivered him up to be condemned to death, and crucified him.
21. But we were hoping that it was he who would redeem Israel. Yes, and besides all this, it is now the third day since these things happened.
22. Also, certain women of our company amazed us, having arrived early at the tomb;
23. and when they didn’t find his body, they came saying that they had also seen a vision of angels, who said that he was alive.
24. Some of us went to the tomb, and found it just like the women had said, but they didn’t see him.”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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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절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왜 슬픈지요?' 18. 그들 중 하나인 글로바라가 예수께 대답했다.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최근에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당신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자들이 말했다. '나사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능력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20.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를 넘겨주어 사형 선고를 받게 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1. 우리는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 소망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일들이 일어난 지 지금 삼 일째입니다. 22. 우리 중에 몇몇 여자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무덤에 갔지만 23.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천사의 환상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24. 그래서 우리 중의 몇몇이 무덤에 갔지만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 제자와 예수님의 대화는 보일 듯 안보일 듯 숨겨져 있습니다(마치 위에 올린 그림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가리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왜 슬픈지?' 묻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보이는지, 못 알아보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최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는 유일한 이방인인지?' 묻습니다. 그 유명한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그 지역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입니다. 실은 그 사건의 당사자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글로바라'라는 제자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서만 언급된다고 하는데,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가 아닌 나머지 예수를 따르던 제자 중 하나로 추측됩니다.
예수님은 모르는 척하면서 '무슨 일이냐?'(19절) 되묻습니다. 글로바라라는 제자는 자세히 그 일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능력이 있는 예언자'였고,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예수를 넘겨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했고', '천사의 환상을 보았다는 여자들의 증언이 있고' 등등...
그들의 증언에서 누가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대제사장들과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묻습니다. 로마 당국이나 군중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들은 또 말합니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 소망했다고.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 처럼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It's finished(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It's over(끝났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희망, 소망이 절망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그들이 바랐던 원수(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과 해방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기뻐하지 않고 절망합니다.
그들의 슬픔의 원인인 예수님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들은 그들이 슬퍼하는 이유를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예수님께 설명하면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유대 지도자들을 증오합니다. 다음이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하고 도망간 열한 제자들과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못 알아봅니다. 정말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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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He said to them, “Foolish men, and slow of heart to believe in all that the prophets have spoken!
26. Didn’t the Christ have to suffer these things and to enter into his glory?”
27. Beginning from Moses and from all the prophets, he explained to them in all the Scriptures the things concerning himself.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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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7절 "25.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리석고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무디구나! 26. 그리스도가 그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자기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의 '어리석음과 믿는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장애물이 '머리'와 '마음' 중 무엇일까요? 믿음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밭에 씨가 뿌려지고 싹이 나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지요. 예수님도 제자들의 믿는 마음이 무딘 것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예언자들로부터 성경에 기록된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십니다.
26절, 그리스도가 그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거꾸로 해석하면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메시아의 고난을 정하셨다'입니다. 해외의 한 성경학자는 고린도전서의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인용하면서 설명합니다.
"이 점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엠마오 제자들은 예언자들이 박해를 받고 (6:23-26)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예수를 예언자와 동일시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기(고전 1:25)' 때문에 하나님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선택했다. 우리는 젊은 다윗과 기드온의 작은 군대와 작은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도 십자가를 택하신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사실 예수님을 예언자로 이해한 엠마오 제자들은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공부할 수록 성경은 읽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야 하는 책으로 이해됩니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알아지는 미스터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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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They came near to the village, where they were going, and he acted like he would go further.
29. They urged him, saying, “Stay with us, for it is almost evening, and the day is almost over.”
He went in to stay with them.
30. When he had sat down at the table with them, he took the bread and gave thanks. Breaking it, he gave to them.
31. Their eyes were opened, and they recognized him, and he vanished out of their sight.
32. They said to one another, “Weren’t our hearts burning within us, while he spoke to us along the way, and while he opened the Scriptures to us?”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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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2절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는 더 멀리 가는 척하셨다. 29. 제자들은 예수를 만류하며 말했다. '거의 저녁이고 날이 거의 저물었으니 우리와 함께 묵으십시오.' 그래서 예수는 그들과 함께 머무시려고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는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 순간 예수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이 서로 말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 우리의 마음이 타는 것 같지 않았는가?'"
엠마오 제자들이 자신의 집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더 멀리 가는 가는 척하시고 제자들은 예수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당시의 유대 관습은 제자들이 예수를 집으로 초대하고, 예수는 그들이 주장하지 않는 한 거절하는 것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초대에 응하셨고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십니다. 최후의 만찬, 오천 명을 먹이실 때와 같은 행동, 그리고 같은 단어(동사: take, gave, break, give)를 누가는 반복합니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he took the bread and gave thanks. Breaking it, he gave to them)'.
그때,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봅니다. 하나님은 이전에는 그들의 눈을 가리셨습니다. 그들의 눈을 가린 것도 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시야에서 사라지십니다. 이것은 무슨 반증일까요? 한 성경학자는 이 이야기가 '부자와 거지(눅 16:19-31)' 우화의 반증이라고 말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얼마 전에 공부했습니다. 아래 링크합니다.
'부자와 거지'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호화로운 삶을 즐겼던 한 부자, 그리고 그의 문 앞에 고름투성이로 버려진 나사로라는 거지 이야기. 부자는 거지를 알아보지도 않고 빵을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둘 다 죽어 하늘나라로 갔는데 그들의 상황은 뒤바뀌었고, 거지는 천사들에 의해 들려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의 불 속으로 떨어집니다. 고통 중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외칩니다. '부디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찍어서 보내달라'라고.
아브라함의 대답은 'No!'입니다. '부자는 살아서 좋은 것을 거지는 나쁜 것을 받았고, 죽어서 부자는 고통을 거지는 위로를 받고 있다. 그 둘의 그룹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 그 어떤 이도 왕래할 수 없다.' 살아서 부자는 거지 나사로의 문지방을 건너서 도움의 손길 한번 주지 않았고, 이는 죽어서 그들 사이에(악과 선, 지옥과 천국) 아무도 넘지 못할 구렁텅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지 나사로를 돕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는 축복을 박탈당했다는 것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엠마오 제자들은 예수님께 환대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두 이야기가 대위법인지 대조법인지 아니면 역설법인지? 잘 모르겠으나 상황이 역전된다는 의미 같습니다. 부자는 거지를 돕지 않아서 축복을 박탈당했고, 엠마오 제자들은 예수께 환대를 보여서 보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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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They rose up that very hour, returned to Jerusalem, and found the eleven gathered together, and those who were with them,
34. saying, “The Lord is risen indeed, and has appeared to Simon!”
35. They related the things that happened along the way, and how he was recognized by them in the breaking of the bread.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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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5절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 열한 제자와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34 '주님이 정말로 다시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말했다. 35. 그래서 두 제자들도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고, 빵을 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본 것을 이야기하였다."
엠마오 제자들은 그 즉시 일어나서 6마일(11km)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열한 제자(유다는 자살한 이후)와 동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열한 제자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에는 약 120명의 여자와 다른 사람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행 1:14-15). 엠마오 제자들도 예수께서 빵을 떼실 때 예수님을 알아본 증언을 열한 제자들과 공유합니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공부하면서 저도 반은 이해하고 반은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네요~ 제가 올린 그림처럼 엠마오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꿈 속 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가슴 떨리고 행복한 꿈 말이지요. 예수님과 우리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일듯 안 보일듯... 엠마오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알쏭달쏭한 만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열두 제자와 (유다를 뺀) 열한 제자, 그리고 엠마오 두 제자들, 여인 증인들, 많은 추종자들... 그리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 현대를 사는 우리와 그들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요?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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