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사랑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책망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는 은총을 주시고 악인은 책망하십니다.
1. Whoever loves correction loves knowledge, but he who hates reproof is stupid.
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1. 훈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지만, 책망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실수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시행착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실수로부터 배웁니다. 영어로 'trial and error'란 말이 있지요. 우리말로는 시행착오(試行錯誤)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통한 교정과 비판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훈계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솔로몬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잘못된 행동에 대한 교정을 받고 잘못된 행동을 바꿉니다. 모든 사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어떤 성과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배우면서 학습 과정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교정하고 그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바로잡고 기대한 것을 계속합니다.
NLT와 CSB버전은 뒷부분을 '교정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KJV버전은 뒷부분을 '책망을 싫어하는 사람은 짐승과도 같다.'로 번역합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언행을 교정해주면 기분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언짢아하고 어떤 사람은 고마워합니다. 우리는 총명하고, 잘 교육받았다는 이유로 타인의 교정을 거부하지는 않는지? 그런 사람을 솔로몬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부릅니다.
이 구절의 앞뒤의 절을 보면 앞의 동사는 '사랑하다(love)', 뒤의 동사는 '미워하다(hate)' 입니다. 다시 문장을 만들어 보면 '훈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책망(질책, 비판))을 미워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누구나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계도 책망도 지식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나를 향한 책망이 건설적인 것이라면 싫어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 책망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건설적으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더욱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교훈(훈계)을 무시하는 사람은 그것을 미워하기로 결정했고, 그들은 짐승처럼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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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 good man shall obtain favor from Yahweh, but he will condemn a man of wicked devices.
2.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2. 선한 사람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지만 악을 꾀하는 사람은 책망하신다."
성경에서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그에게는 주로부터 '기업의 상(an inheritance from the Lord)'이 주어집니다.
솔로몬은 말합니다. "나(지혜)를 찾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다." (잠 8:35) 시편의 시인은 노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1)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눅 6:35)
그러나 악을 꾀하는 사람은 책망하신다고 지적합니다. 영문 'device'는 계획이나 음모인데 'wicked device'은 악한 음모를 말합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Anyone who does wrong will be repaid for his wrong)" (골 3:25)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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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 man shall not be established by wickedness, but the root of the righteous shall not be moved.
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NLT: "Wickedness never brings stability, but the godly have deep roots."(악은 안정은 결고 가져오지 않지만, 경건한 자는 깊은 뿌리가 있다.) 다른 버전의 영어번역은 비슷합니다.
"3. 사람은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 (1:7)이라고 말하면서 솔로몬은 잠언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악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시작하나, '악행(죄악)'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신도들은 박해를 받거나, 악인들이 일시적인 번영을 누리는 것을 볼 때 낙담할 수 있습니다(시 73:2-3). 그러나 상식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의인에게는 축복이 악인에게는 심판이 온다는 것을 알고 위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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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 worthy woman is the crown of her husband, but a disgraceful wife is as rottenness in his bones.
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ESV: "An excellent wife is the crown of her husband, but she who brings shame is like rottenness in his bones."
NLT: "A worthy wife is a crown for her husband, but a disgraceful woman is like cancer in his bones."
약간 의미가 다른 두 영어번역입니다. ESV: 훌륭한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나, 수치심을 가져오는 아내는 남편 뼈의 썩음 같다. NLT: 덕이 있는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나, 수치스러운 아내는 남편 뼈에 있는 암과 같다.
"4. 덕이 있는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나, 수치스러운 아내는 남편 뼈 속의 암과도 같다."
저는 이해가 쉬운 NLT버전으로 선택합니다. 솔로몬은 선한 사람에 대해 쓰고 이 구절에서는 훌륭한 아내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덕이 있는 훌륭한 아내는 남편에게 명예와 존엄을 가져다주는 면류관과도 같다고 비유합니다.
솔로몬은 31장에서 '현숙한 아내(A woman of noble character)'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녀의 값은 '진주보다 더 귀하고' (31:10),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고 (31:12), '입을 열어 지혜를 베푼다' (31:26)라고 칭찬합니다. 그런 아내의 롤모델은 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아스는 결혼한 룻을 '현숙한 여인'임을 온 성읍 백성이 다 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덕이 있는 아내가 있는 반면 수치스러운 아내도 있습니다. 아름답지만 신중함이 부족한 여인을 솔로몬은 마치 '돼지 코의 금고리 같다' (11:22)라고 말했습니다. 뼈가 썩으면 통증이 심해지듯, 마치 뼈 속의 암처럼, 품성이 나쁜 아내는 남편의 큰 불안이 됩니다. 솔로몬은 아내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으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문제는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두 배우자 모두 각자의 행동에 의해 명예롭거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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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e thoughts of the righteous are just, but the advice of the wicked is deceitful.
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나, 악인의 조언은 거짓이다."
경건한 사람들은 '정직한' 하나님과 일치하는 생각과 태도로 기울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정직한 것을 원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속임수를 쓰지 않습니다.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진실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 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들'를 생각하라고 지시합니다. (true, noble, right, pure, lovely, admirable)" (빌 4:8)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 있을까요? 훌륭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에 우리의 생각이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생각은 인격을 형성하고, 인성은 행동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은 노아의 홍수 이전에 인간의 죄악에 대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그 인간의 죄악은 되물림되어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악인들의 생각은 솔로몬 시대에서 이어졌고, 오늘날에서 악한 사람들은 뒤틀리고 부정직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조언을 합니다. 그들은 악은 선이고 선은 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상황에 던져진 우리들은 끊임없이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하고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우리는 세상의 선과 악, 천상의 선과 악 사이에게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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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e words of the wicked are about lying in wait for blood, but the speech of the upright rescues them.
6.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6. 악인의 말은 피를 기다리면서 거짓말하는 것이나, 정직한 자의 말은 사람을 구원한다."
악인들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들은 잘못하면 속을 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기록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직전의 이야기를 한 성경학자는 이 구절의 예로 듭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기회를 엿보다가 의로운 것처럼 위장하는 정탐꾼들을 보내서 예수를 체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것에 대해 진실한 척했지만, 실은 예수님을 총독에게 넘기려고 하였습니다. 정탐꾼들은 예수의 의로우심을 칭찬하고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정당한지 질문합니다. 그들의 속셈을 알아채시고 예수님은 현명한 대답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대답에 놀랐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위선자라고 불렀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무고한 예수의 피를 기다리면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진실하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을 육체와 마음의 질병, 가난, 고통, 불안에서 구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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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e wicked are overthrown, and are no more, but the house of the righteous shall stand.
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7. 악인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지만, 의인의 집은 굳게 서 있을 것이다."
솔로몬은 계속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악인들은 일시적인 세상적 자원과 돈을 대한 의존은 어리석을 뿐입니다. 악인은 한번 넘어지면 갑작스런 종말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은 전능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려는 사악한 사람의 시도는 그 자신의 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시 9:15-16)
다니엘서에는 다니엘을 멸시하고 그를 멸망시키려고 했던 다리우스 왕의 고위 관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들은 다리우스를 설득하여 삼십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을 어긴 죄는 굶주린 사자에 의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이 법을 어겼고, 그는 그 후 사자의 소굴에 던져졌지요. 그러나 주님이 다니엘을 보호하셨고, 다리우스는 다니엘을 굴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 대신 왕은 다니엘의 고발자들을 사자들에게 던질 것을 명령했습니다. "사자들이 그들을 제압하고 그들의 뼈를 모두 산산조각 냈다."(다니엘 6:24) 그러나 "의로운 다니엘은 형통하였다." (다니엘 6:28).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결국 악인은 지옥(불못: Lake of fire, 계 20:11-15)으로 보내질 것이나, 의인은 천국(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계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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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 man shall be commended according to his wisdom, but he who has a warped mind shall be despised.
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겠지만,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멸시를 받을 것이다."
앞부분의 '지혜(wisdom)'은 영어번역이 다양합니다. 'prudence(신중함), good sense(분별력), insight(통찰력), admiration(칭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식입니다. 마찬가지도 대조법을 사용합니다. 올바른 판단력(또는 지혜, 신중함, 분별력,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존경을 받고 칭찬을 받지만, 마음이 굽거나 비뚤어진 사람은 멸시를 받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을 받고, 어리석은 사람은 멸시를 받는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타인을 비판하는 경향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즉 상대방의 객관적인 잣대가 아닌 공동의 주관적인 잣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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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Better is he who is lightly esteemed, and has a servant, than he who honors himself, and lacks bread.
9.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
NIV: "Better to be a nobody and yet have a servant than pretend to be somebody and have no food."
(보잘 것 없지만 종이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 있는 척하면서 음식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
"9. 존경을 받지 못해도 종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높은 체하면서 먹을 음식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
뜻이 알듯 말듯해서 외국의 성경학자의 설명을 보았습니다. 그의 설명을 번역, 편집합니다. (자료: https://www.bibleref.com/)
"솔로몬은 겸손의 미덕을 찬양한다. 여기서의 그의 대조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심오하다. 그런 태도가 여러분을 궁핍하게 만들 때 오만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겸손이 성공의 한 부분일 때 겸손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성공하는 것"이 더 나은가요, 아니면 "성공적으로 보이는 것"이 더 나은가요? 평판이 실제 자신의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 허풍쟁이가 되는 것보다 모호하지만 성공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공허한 부자는 겸손한 사람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그의 인생은 그의 자랑만큼이나 공허하다."
맥락을 읽으면 앞의 절은 '겸손하면서 성공하는 사람'의 경우이고, 뒤의 절은 '거만하면서 성공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재미있는 구절이고 해석입니다. '공허한 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인가? 앞을 영어로 말하면 스스로 부르기를 'somebody' 뒤를 'nobody'로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소위 '체면'이 중요한가 '자존감'이 중요한가? 우리는 '체면을 잃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영어로는 'lose face'이지요. 소위 '얼굴 들 낯이 없다'인데 우리 말에 '체면이 밥 먹여주냐?'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양반사회를 걸쳐서 그런지... 실제 우리나라 사람은 체면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겸손함을 보인 예입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사울이 다윗의 사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자, 다윗이 대답하였습니다.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삼상 18:23) 예수님은 겸손함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 (빌 2:8)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9)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거지에게 줄 돈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 3:6) 사도 바울은 자신을 최고의 죄인("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으로 규정함으로써 겸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딤전 1:15).
위의 예처럼 예수님, 다윗, 베드로는 겸손을 스스로 실천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걸은 증인들입니다. 비록 타인의 존경을 받지 못해도 겸손하고 종(또는 추종자들)을 부릴 수 있는 역사의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해석을 하고 나니 NIV번역이 마음에 듭니다. 예수님는 스스로를 'somebody'가 아닌 'nobody'로 부르시지 않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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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A righteous man respects the life of his animal, but the tender mercies of the wicked are cruel.
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NIV: "The righteous care for the needs of their animals, but the kindest acts of the wicked are cruel."
(의인은 자신의 동물의 필요를 돌보지만, 악인은 가장 착한 행동마저도 잔인하다.)
ESV: "Whoever is righteous has regard for the life of his beast, but the mercy of the wicked is cruel."
(의인이라면 자신의 짐승의 생명을 존중하지만, 악인의 자비는 잔인하다.)
NASB: "A righteous person has regard for the life of his animal, But even the compassion of the wicked is cruel."
(의인은 자신의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지만, 악인은 동정심마저도 잔인하다).
"10. 의인은 자기 짐승의 생명도 중하게 여기지만, 악인의 긍휼은 잔인하다."
https://www.bibleref.com/에 있는 설명을 번역, 정리합니다.
"이 절은 동물 권리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설정한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면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 1:28). 하나님은 우리가 그 자원을 남용하지 말고 존중하고 돌보기를 또한 기대한다. 사실, 솔로몬은 인간의 의로움과 인간의 동물에 대한 태도를 연결시킨다. 요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채식주의자여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우상화된 동물적 가치관을 주는 것도 아니다. 창조물에 대한 경건한 시각이 자연적으로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그는 전달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잠 1:7)은 동물을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을 제대로 먹이고, 그들이 아플 때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솔로몬의 시작으로 보면 의인은 선한 목자 예수님을 닮았다. 선한 목자(Good Shepherd)는 그의 양떼의 기본적인 필요를 보살피고 그들을 보호한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농부들에게 "소가 곡식을 밟을 때 입마게를 씌우지 말라" (신 25:4) 명령하였다. 잔인한 농부는 소가 곡식을 밟을 때 소가 곡식을 먹는 것을 막기 위해 소에게 입에 입마게를 씌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약간의 시간과 적은 양의 수확을 절약할 수 있지만, 동물에게는 불친절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인의 동물에 대한 이러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악인의 동물에 대한 접근을 솔로몬은 '악인의 긍휼은 잔인하다. 악인은 동정심마저도 잔인하다.' 묘사합니다. 오늘날 동물에 대한 잔인성은 많이 발견됩니다. 개 싸움, 굶주린 동물, 동물 구타, 애완동물 관리 소홀, 동물 유기 등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도들은 동물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생물 창조의 이유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명령처럼 어떻게 하면 그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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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He who tills his land shall have plenty of bread, but he who chases fantasies is void of understanding.
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1.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먹을 양식이 많겠지만, 헛된 것을 좇는 사람은 지각이 없는 자이다."
솔로몬은 이 구절에서 생산적인 일의 가치와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을 대조합니다. 이스라엘의 농업사회에서 현명한 농부들은 적시에 땅을 일구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습니다. 밭갈이와 씨를 뿌리는 것은 수확에 필수적이었고, 수확된 음식을 식탁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숨겨진 보물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환상을 추구하며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어떤 사람이 직업을 찾거나, 가정과 식구를 돌보는 것,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요.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다른 것들에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중요한 일들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곤 합니다.
솔로몬은 6장에서 게으름뱅이라고 부르면서 개미에게 가서 그 부지런한 지혜를 보고 배우라 말합니다. 개미는 부지런함을 대변하는 작은 곤충이지요. 우두머리도 감독도 통치자도 없지만 개미는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은 개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개미는 먹이를 준비하고 모을 때를 알기 때문입니다. 헛된 것을 좇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는 개미처럼 먹이를 언제 준비하고 언제 모을지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수확은 물적 수확과 영적 수확 모두를 말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영혼의 승리는 수확과 큰 기쁨을 낳습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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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he wicked desires the plunder of evil men, but the root of the righteous flourishes.
12.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12. 악인은 악인의 약탈물을 탐하지만, 의인의 뿌리는 열매를 맺는다."
악인들은 그들이 가진 것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다른 악인들이 얻을 수 있는 것(불의의 이익, 즉 다른 악인의 약탈물)에 대해 질투합니다. 반면 경건한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 식물이나 나무를 지탱하는 건강한 뿌리와도 같습니다. 진실로 의로운 사람은 주께서 주시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마 6:19)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세상의 보물을 얻고 땅에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그에게 인생이란 오직 세상적인 물질에 있고 영원한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삶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 살고, 세상적인 물질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가 계시는 위의 것'을 찾습니다. (골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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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An evil man is trapped by sinfulness of lips, but the righteous shall come out of trouble.
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3. 악인은 그 입술의 죄로 인해 덫에 걸리지만, 의인은 재난에서 벗어난다."
악인은 자신의 말의 함정(입술의 죄)에 말려듭니다. 일반적인 영어 표현으로 '거짓말의 거미줄(web of lies)'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친 거짓말의 거미줄에 그들은 스스로가 걸려들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남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저주하지만, 그의 악한 말은 부메랑이 되어 그를 덮치게 됩니다. 시편 7장 16절은 악한 자의 잘못은 자기 머리 위에 돌아오고, 자기 머리 위에 폭력이 내려간다고 선언한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시 7:16)
악인의 타락한 말은 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심판의 날 그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 12:36-37)
그러나 의인은 자기 마음의 의로운 본성을 드러내는 말을 하기 때문에, 그는 비난받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거짓말에 걸리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은 중요하며, 따라서 그들은 사려깊고 신앙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한 사람 안에 풍성히 거하면, 감사하는 말이 그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골 3:16-17)
악인의 말이 그 본성을 드러내듯, 의인의 말도 자기 마음의 의로운 본성을 드러냅니다. '말은 마음을 드러낸다'란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담긴 본성이 말로 표현되기 때문에, 마음이 타락하면 타락한 말이 마음이 의로우면 의로운 말이 말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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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 man shall be satisfied with good by the fruit of his mouth. The work of a man’s hands shall be rewarded to him.
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좋은 것으로 배부르고, 자기 손이 행하는 대로 보상을 받는다."
한 외국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의 좋은 말이 "만족"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직하고 경건한 말들이 그의 손이 하는 일과 같이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도서 11:1은 말한다."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친절하고 격려하는 말로 다른 사람을 축복함으로써, 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함과 친절이 보답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7-38).
위의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명령형으로 능동태와 수동태 동사가 번갈아가며 사용되고 있습니다. "Do not judge, and you will not be judged. Give, and it will be given to you(비판하지 않으면 비판받지 않을 것이고, 주면 받을 것이고...) 지혜로운 말은 메아리가 되어 듣는 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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