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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잠언(Proverbs)11:16-31(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by 미류맘 202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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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대조가 계속됩니다. 특히 나눔의 관대함에 대하여 말하며 주면 더 채워주심을 솔로몬은 강조합니다. 또한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며, 영혼을 사로잡는 자는 지혜롭다 말합니다.

 

16.  A gracious woman obtains honor, but violent men obtain riches.
16.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16. 자애로운 여자는 명예를 얻지만, 무자비한 남자는 재물만 얻는다."

NIV: "A kindhearted woman gains honor, but ruthless men gain only wealth."
KJV: "A gracious woman retaineth honour: and strong men retain riches."
NASB: "A gracious woman attains honor, And ruthless men attain riches."
NLT: "A gracious woman gains respect, but ruthless men gain only wealth."
CSB: "A gracious woman gains honor, but violent people gain only riches."

영어 번역마다 표현들이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NLT의 번역을 선택합니다. 앞의 '덕이 있는 여자(gracious woman)'는 '마음이 친절한 여자(kindhearted woman: NIV)'로 뒤의 '무자비한 남자(violent men)'는 '(강한 남자) Ruthless men, strong men: KJV'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솔로몬은 대조법을 사용하는데, 그는 우선 은혜를 베풀고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무감각한 여자는 돈만 벌 수 있지만 자애로운 여자는 존경과 재물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은 불친절한 나발과 그의 친절한 아내 아비가일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삼상 25:3) 외국의 한 성경학자는 이 구절을 사무엘상의 한 이야기와 연결시킵니다. 

다윗과 그의 소년들은 광야에 있었고 먹을 것이 필요했다. 그는 소년 열 명을 보내어, 그 목동들의 주인 나발에게 음식을 달라고 청하였다. 나발은 부자였고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다윗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이 사실을 알고, 급히 다윗에게 많은 양식을 가져다 주었다. 곧 나발은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그 친절한 여성은 명예를 얻었지만, 폭력적인 남성은 그가 죽음에서 남긴 재산만을 얻었다.

결국 이 사건과 이 구절을 연결시키면, 앞의 '자애로운 여자' 아비가일은 '명예(honor, respect)'를 얻었고, 뒤의 '행악한 남자' 나발은 재물만 얻고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임까지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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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The merciful man does good to his own soul, but he who is cruel troubles his own flesh.
17.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17. 자비로운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이롭게 하지만, 잔인한 사람은 자신의 몸에 재앙을 가져온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입니다. 친절(자비)은 친절한(자비로운)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잔인함은 잔인한 사람에게 잔인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자신의 자원을 타인과 공유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보답으로 하나님은 그를 축복합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1)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42)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눅 6:35)

자비로운 사람이 베푼 자비를 받은 상대방의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은 그의 심중을 아시고 보답(보상)으로 응답하십니다. 반대로 잔인한 사람은 자비를 베풀 줄 모르는 매정하고 불친절한 사람입니다. 그의 주변에서 소위 그를 좋아하는 팔로워들이 없습니다. 그들이 자비로운 사람들처럼 자신의 자원을 이용해도 그의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진정한 친구가 없는 외로운 삶이 그를 기다립니다. 그의 잔인함은 타인들 뿐 아니라 그 자신도 해칩니다. 그의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축하할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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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Wicked people earn deceitful wages, but one who sows righteousness reaps a sure reward.
18.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18. 악인은 허무한(속이는) 삯을 벌지만, 의로움을 뿌리는 자는 확실한 보상을 받는다."

악인과 의인 사이의 대조가 계속됩니다. 악인은 자신의 삯(수입)을 신뢰하지만, 사실 그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의로운 일을 하고 확실한 보상을 받습니다. 해외의 한 성경해설가에 의하면 히브리어로 '속이는(deceptive)'와 '보상(reward)'는 sā'qer와 sedā'qāh로 그 리듬감 있는 패턴은 히브리어 원본 독자들에게 높이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단어의 유사성과 각기 다른 결과의 아이러니한 대조가 읽히는 것이 흥미로운 설명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요 6:27) 세상의 물질적인 것을 삶의 주된 목표로 삼지 말고, 영원하고 경건한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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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He who is truly righteous gets life. He who pursues evil gets death.
19.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19.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은 생명을 얻지만, 악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망에 이른다."

하나님은 의로운 삶은 사는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보답하시지만, 악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보답하십니다. 영어번역에서 동사 'get'는 앞 뒤 절이 같지만 그 결과의 목적어는 '생명과 사망'입니다. 즉 의인은 '생명'으로 악인은 '사망'으로 보답하십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말입니다. 선, 친절, 자비,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타인의 존경을 받고 악과 이기심, 교만의 자연적인 결과를 피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의인이 비극과 상실감을 겪고, 악인이 때때로 번영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그런 배경일까요? 사도바울은 옥중에서도 기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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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Those who are perverse in heart are an abomination to Yahweh, but those whose ways are blameless are his delight.
20.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20.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흠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은 그의 기쁨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마 15:19). 이러한 악한 생각을 솔로몬은 '비뚤어진, 구부러진, 왜곡된' 마음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하나님의 의로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더구나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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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Most certainly, the evil man will not be unpunished, but the offspring of the righteous will be delivered.
21.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21. 악인은 분명히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솔로몬은 앞에서 말했습니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으로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로 이른다." (잠 10:16) 

잠언의 공통 주제의 하나는 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죄에 대한 보상(결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의인과 그 자손은 구원으로, 그리고 악인은 심판으로 보상을 받습니다. 악인의 죄는 잔인함, 탐욕, 타락이며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상의 삶에서 경건함은 건강, 형통, 번영의 절대적인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시편에서 아삽은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시 73:1-6) 

시인은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전형적으로) 인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살면서 인자도 넘어질 뻔 하고, 교만하고 오만한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질투를 느끼고, 그들에게 고통도 고난도 재앙도 없고 오히려 강건함을 보았다고 토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결과는 전형적으로 더 지상적인 안전과 영생으로 이릅니다. 시편의 시인은 노래합니다. "그(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시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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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Like a gold ring in a pig’s snout, is a beautiful woman who lacks discretion.
22.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22. 아름다운 여인이 신중함이 부족한 것은 마치 돼지 코의 금고리와 같다."

이스라엘 여성들은 오늘날까지도 전세계의 많은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식을 목적으로 코고리를 자주 착용하였습니다. 돼지는 부정한 동물로 여겨졌는데 여기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신중함이 부족한 것은 마치 '돼지 코의 금고리' 같다고 묘사합니다.  돼지가 왜 부정한 동물일까? 레위기는 기록합니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레 11:7)

예수님이 무덤에 살선 광인의 악령을 돼지 떼에게 옮겨 넣으신 거라사 지방의 이야기 때문인지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돼지고기를 쉽게 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금고리처럼 아름다워야 하는데, 신중함이 부족한 아름다운 여인은 혐오스럽고 더러운 '돼지 코의 금고리'와도 같다고 솔로몬은 묘사합니다. 

신중한 여인은 분별력 있고 자제력이 있는 여인이고, 신중함이 부족한 여인은 거칠고, 공격적이고, 저속한 여인입니다. 진정한 덕을 갖춘 여인은 '보석보다 더 귀중하다'라고 기록합니다 (잠 31:10) 사로 베드로는 강조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외국의 한 성경학자는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적인 분별력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끔찍한 예로 이세벨 여왕의 죽음을 이 구절의 예로 듭니다. 그녀는 전통적으로 매우 아름답다고 여겨지지만 도덕적 품성이 분명히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경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타락한 여인으로 지탄받고 있는데, 남편 아합을 맹신적인 바알 숭배자로 만들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 숭배를 권장했고,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엘리야 선지자를 죽일 계략을 꾸몄습니다. 결국 그녀는 창문에서 내던져지고, 말에 짓밟히고, 개들에게 잡아먹히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왕하 9:30-37)

이세벨 여왕의 죽음을 다시 읽어보니 이 구절에 적합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은 금고리와도 같지만, 신중함이 없는 포악한 아름다운 여인은 부정의 상징인 '돼지 코의 금고리'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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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The desire of the righteous is only good. The expectation of the wicked is wrath.
23.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23. 의인의 소원은 성취되지만, 악인의 희망은 진노를 가져올 뿐이다."

NLT: "The godly can look forward to a reward, while the wicked can expect only judgment." (경건한 자는 보상을 기대할 수 있고, 악인은 심판만을 기다릴 수 있다.) 
NIV: "The desire of the righteous ends only in good, but the hope of the wicked only in wrath."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으로 끝나고, 악인의 희망은 오직 분노로 끝난다.)

영어번역에 따라 의미가 많이 달라집니다. 저는 여러 버전을 섞어 보았습니다. 이 구절은 인간 도덕성의 의도와 결과에 대한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성경해설가는 설명합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진리를 추구하고(잠 1:7), 악인의 악한 행실은 '자신을 올무에 걸고, 자기 죄의 줄이 그를 단단히 붙잡게 된다.' (5:22) 악인은 자신이 놓은 죄의 덫에 결국 그는 스스로 걸리게 되고, 가르침의 부족으로 사망에 이르고, 자신의 큰 어리석음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결과와 영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상식적으로 부도덕한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 더 흔하지만 세상적인 결과와 매칭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결과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악인이 죽을 때에 그 소망도 사라집니다." (11:7) 

이 구절의 첫 부분은 세상적입니다. 의인의 노력은 세상에서 선을 만든다. 이것은 의인에 대한 전형적인 평판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킨 것으로 인해 칭찬과 감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탐욕과 악의와 비참함을 낳는 악인들에게는 그 반대가 적용됩니다. 

두 번째 부분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마태는 말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받을 것이요, 찾아낼 것이요,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요한도 말합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자신의 죄를 껴안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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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There is one who scatters, and increases yet more. There is one who withholds more than is appropriate, but gains poverty.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NIV: "One person gives freely, yet gains even more; another withholds unduly, but comes to poverty."
NLT: "Give freely and become more wealthy; be stingy and lose everything."
CSB: "One person gives freely, yet gains more; another withholds what is right, only to become poor."

"24. 어떤 사람은 값없이 주지만 더 많이 얻고, 어떤 사람은 옳은 것을 보류하고 가난해질 뿐이다."

이 구절도 영어번역에 따라 의미가 많이 달라집니다. 저는 CSB를 선택합니다. 누가는 말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

외국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이스라엘의 농업사회에서 풍작은 번영의 필수요소였다. 농부가 수확한 농산물이 많을수록, 그는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께서 농부들에게 곡식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라고 지시하셨다."

레위기는 기록합니다.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9-10) 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6-7) 

언제부터인지 저의 텅 빈 곡간을 보고 '왜 나는 나눔은 커녕 내 곡간도 비어있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종 바꾸기를 몇 년 째인지 모르겠습니다. 모종을 바꾸고, 씨를 뿌리는데, 잎도 안 나고 시들고, 또 씨를 뿌리고, 또 시들고... 그러다가 지치기를 몇 년째입니다. 늘 원하는 것이 바울의 권면처럼 많이 심고 많이 거두고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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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The liberal soul shall be made fat. He who waters shall be watered also himself.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NIV: "A generous person will prosper; whoever refreshes others will be refreshed."
ESV: "Whoever brings blessing will be enriched, and one who waters will himself be watered."

"25. 관대한 사람은 풍족해 질 것이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해질 것이다." 

NIV 번역을 선택합니다. 솔로몬은 관대함의 미덕을 찬양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바울이 가르친 원칙을 반영합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 바울도 말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6-7)"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 24-25)

우리가 물질적 자원과 보살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길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함으로 영적으로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용주는 직원에게 관대하고 아낌없이 베풀면, 사업이 번창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은 고용주의 관대함에 감사하고 그들의 생산성을 높아지게 되어 Win-Win 상황이 가능합니다. 

신도들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복을 받습니다. 바울은 기록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고후 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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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People curse someone who withholds grain, but blessing will be on the head of him who sells it.
26.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26. 곡식을 내놓지 않는 사람은 백성의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사람은 그의 머리에 축복이 임할 것이다."

앞의 구절과 비슷한 관대한 미덕에 대한 주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은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얻고, 결국 그 봉사로 인해 그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내고 나누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그 결과는 앞의 24-25절과 같이 자신에게 오는 이익과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심없이 주면 넘치도록 받을 것'이라는 성서의 원칙에 기반합니다.

곡식이 있으나 그것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기근이나 재난의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곡간을 열지 않고, 오히려 이 기회에 더 많은 이익을 보기 위해 물건 사재기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결과는 그에게 오는 추가적인 이익이겠지만 영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과 백성의 저주입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창고문을 열고 곡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파는 사람은 백성의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집트가 심각한 기근에 들어갔을 때 요셉의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기근에 시달리한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는 이집트의 모든 창고를 열고 백성에게 곡식을 팔아 기근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명성과 평판은 백성 사이에게 크게 높아졌고 하나님의 축복 또한 받았습니다. (창 41:56-57)

이러한 물질적 빵에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는 것과 같이 영적인 '생명의 빵'에고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우리는 생명의 빵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나누는 특권과 책임이 동시에 있습니다. 그것을 보류한다면 (NASB: One who withholds grain) 우리는 그들에게서 정신적 기아에서 벋어 날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나누고 공유한다면 그들을 영적으로 먹여 살릴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축복을 기도할 것이고 (NIV: They pray God's blessing on the one who is willing to sell), 하나님은 '잘했다' 칭찬하시고 '준 것 이상으로 넘치도록 채워줄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물질적인 창고와 영적인 창고는 차고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의 원칙이 아닐까요? 모든 원칙이 이 세상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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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He who diligently seeks good seeks favor, but he who searches after evil, it shall come to him.
27.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27. 선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은 은총을 얻지만, 악을 애써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할 것이다."

여러 영어버전을 비교해서 보면 동사의 사용이 약간씩 다른데(seek, find, seach for, come) 의미의 변화는 없어 보입니다. 기본적인 원칙은 '선을 찾는 사람은 선을 발견하고, 마찬가지로 악을 애써 찾는 사람은 악을 발견한다'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과 같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요, 찾아낼 것이요, 열릴 것이니라.' (마 7:7-8) 

우리는 '받고, 찾아내고, 열리는(수동태)' 후자만 구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능동태)' 행동은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믿음은 어리석은 죄를 잉태한 믿음이 아닐까요? 나무만 올려다 보고 사과가 떨어지기를 원하는 베짱이 같은 심보를 가진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환란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예로 위의 기근의 경우, 백성의 기근이 매우 심해져서 한 부자가 자신의 창고를 열었는데 아주 비싼 가격으로 곡식을 판다면 그는 창고를 열었지만 반감을 사게 되어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창고를 열고 합리적인 가격에 백성에게 필요한 곡식을 판다면 그는 좋은 평가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기록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수 1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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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He who trusts in his riches will fall, but the righteous shall flourish as the green leaf.
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28. 자기 재물을 믿는 사람은 넘어지지만, 의인은 푸른 나뭇잎처럼 번성할 것이다."

외국의 한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얼마나 일시적인 것인지 잊어버리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한다. 금융 및 물적 소유권은 한순간에 빼앗길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면 영원한 보상이 생기는데, 이는 결코 잃을 수 없다. 돈으로는 신에게 은혜를 살 수 없고 영원한 생명도 살 수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7-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딤전 6:17)

우리는 성경에서 나아만 장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를 이용하여 나병을 고치려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런데 예언자 엘리사는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사자를 보내어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몸이 깨끗해진다'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왕하 5:1-14). 엘리사가 예물을 받기를 거부한 것은 물질적인 재물은 하나님의 지식에 비해서 가치가 없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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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He who troubles his own house shall inherit the wind. The foolish shall be servant to the wise of heart.
29.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29. 자기 집에 문제를 일으키는 자는 바람을 상속받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될 것이다."

죄의 자연적 결과와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입니다. 진리와 지혜한 하나님을 추구함에서 나오고,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실패를 자초합니다. 솔로몬은 이기심과 죄악이 파멸로 이르는 방법을 특히 이웃과의 관계에서 주목했습니다. 앞에서는 관대함에 대해, 이 구절에서는 대조적으로 이기심에 대해 다룹니다.

또 한가지는 가족과의 관계를 다룬다는 것인데, 자신의 집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앞의 주제였던 이기심, 탐욕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행동이 한 가족에게 어떠한 위험이나 결과를 가져다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바람을 상속받는다'는 아무 것도 물려받을 것이 없다는 말로 해석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멸망하여 지혜로운 자의 종으로 하락할 것입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 20:5) 흔히 아이들은 부모의 나쁜 행동을 모방하고 그들이 마주친 같은 곤경에 처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자랐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한 성경학자는 헤롯의 가족에서 '삼사 대까지 이르는 죄의 대물림'의 예를 찾습니다. 그의 설명입니다. "어린 예수를 죽이기 위하고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서 히브리 어린이들을 죽였다. 헤롯 안티파스는 침례자 요한도 죽였다.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야고보를 참수형 하고 베드로를 감금했다. 헤롯 아그리파 2세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싶어했고, 그의 말을 들은 후에 그를 가이스에게 보냈다. 이 집안은 대대로 많은 문제로 가득 차 있었고, 최종 결과는 죽음과 파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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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He who is wise wins souls.
30.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NIV: "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and the one who is wise saves lives."
ESV: "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and whoever captures souls is wise."
KJV: "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and he that winneth souls is wise."
NASB: "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And one who is wise gains souls."
NLT: "The seeds of good deeds become a tree of life; a wise person wins friends."
CSB: "The fruit of the righteous is a tree of life, but a cunning person takes lives."

영어번역의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앞 부분은 비슷한데 뒷 부분이 상이합니다. 'NIV: 지혜로운 자는 생명을 구한다. ESV: 영혼을 사로잡는 자는 지혜롭다. KJV: 영혼이 있는 자는 현명하다. NASB: 지혜로운 자는 영혼을 얻는다. NLT: 선행의 씨는 생명나무가 되고, 지혜로운 사람은 친구를 얻는다. CSB: 간교한 사람은 생명을 앚아간다." 저는 ESV버전으로 선택합니다. 

"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며, 영혼을 사로잡는 자는 지혜롭다."

의인인 하나님의 경건한 지혜를 추구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른 결과 그는 삶과 치유로 타인의 삶을 어루만집니다. 예수님은 그 원칙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는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선하심과 치유로 예수는 수많은 삶을 감동시켰습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며, 영혼을 사로잡는 자는 지혜롭습니다. (잠 11:30)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마가도 말합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막 10:37)

솔로몬은 '영혼을 사로잡는(ESV: captures souls)' 사람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런 미션을 수행한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생명나무가 아닐까요? 예수님은 어중이 떠중이였던 제자들을 사로잡으셨고, 수많은 사람들을 긍휼로 사랑으로 구원으로 사로잡으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고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아 예수께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사명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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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Behold, the righteous shall be repaid in the earth; how much more the wicked and the sinner!
31.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31. 보라, 의인들도 이 땅에서 한 대로 보상을 받는데, 하물며 악인과 죄인들이야 어떠할까?"

솔로몬은 여기에서도 일반적인 교훈을 전달합니다.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이 한 대로 그 값을 치릅니다. 보상이 은혜든 심판이든 그 값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악인은 이 세상에서 형통하기도 합니다. 아삽은 말합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하나님 심판의 대상은 의인도 악인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의인은 선을 행하면 은혜로 보상받고 악을 행하면 심판받습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악인의 죄에 대한 값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죄는 엄중한 심판으로 보상받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모두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는 '무고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 (마 27:4) 고백하였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목을 매어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범죄하였고 죄의 결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용서를 빌지 않는 자는 죄에 대한 영원한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도 죄를 지으면 훈계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시며, 아버지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책망하듯 하신다." (잠 3:12)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로마서는 기록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잠언 QT는 어렵기도 하고 뜻을 파악하기 위해 외국의 성경학자들의 글을 참조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됩니다. 매일매일 반성하면서 사는 저를 돌아보면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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