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앞장과 같이 다양한 대조를 제시합니다. 참된 부와 거짓된 부, 정직과 부정직, 교만과 겸손, 지혜와 어리석음, 의인과 악인의 삶을 대조하면서 그 각각의 결말에 초점을 맞춥니다. 특히 경건한 자와 악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각기 다른 보상을 설명합니다.
1. A false balance is an abomination to Yahweh, but accurate weights are his delight.
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0-15장은 솔로몬의 잠언으로 '의인과 악인'에 대한 글이 연속됩니다. "잠언은 구약성서의 지혜문학에 속하는 책으로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금언집(金言集)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고대 이스라엘인 사이에서 전해오던 교훈과 격언을 편집한 잠언집이다(자료: 두산백과)" 속담집이라 공부하고 정리하는 패턴을 구절 별로 바꾸어 봅니다. 공부한 내용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https://www.bibleref.com/에서 참고, 번역 및 편집해서 올립니다.
"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지만, 정확한 저울추는 기뻐하신다."
부정한 상거래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직업에서 정직한 자를 기뻐하시고 속이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구약 아모스는 비뚤어진 사업 관행을 추구하기 위해 안식일이 끝나기를 고대하는 비뚤어진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아 8:5)
솔로몬 시대에는 장사 수단으로 저울이 사용되었고 돌을 저울에 넣어 사고 팔 물건의 무게를 재었습니다. 부정직한 장사꾼은 물건을 팔 때 가벼운 돌을 사용하고 물건을 살 때는 무거운 돌을 사용하여 가격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당한 경제적 이득을 위해 우리는 주유소에서 주유기를 조작하고 정육점에서 저울을 조작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문제에 제한하지 않고 영적인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나의 이득을 위하여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위도 같은 범주에 해당합니다.
우리 인간 세상의 저울을 속이고 '해 냈다!' 승리를 외칠 수는 있지만, 양심의 저울과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저울을 우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다 내려다 보시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정확하고 투명한 저울과 저울추로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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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hen pride comes, then comes shame, but with humility comes wisdom.
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2. 교만이 오면 수치가 오지만, 겸손에는 지혜가 있다."
교만과 겸손을 대조합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자존심(pride)'는 히브리어로 zā'don으로 '교만(arrogance)'의 뜻이라고 합니다. 자신에 대한 과신은 방종한 생활과 이기주의로 귀결되고, 그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 믿지만 그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결국 수치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성경은 헤롯왕의 죽음을 기록하며 인간의 자존심이 얼마나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지 말합니다. 그는 왕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 연설하니, 백성이 그를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부르짖습니다. 헤롯은 그런 칭찬을 받아들였고 그의 자존심은 곧 수치(shame)로 변합니다. 성경은 헤롯의 종말을 기록합니다."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막 12:23).
하나님과 함께 겸손하게 걷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오지만, 자존심과 교만으로 치장된 삶은 수치로 끝나게 됨을 이 잠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잠언의 구절은 두 상극어들을 대조합니다. '교만과 겸손', '수치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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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 integrity of the upright shall guide them, but the perverseness of the treacherous shall destroy them.
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3. 정직한 사람의 성실은 자신을 인도하지만, 사기꾼의 비뚤어짐은 자신을 멸망하게 한다."
정직한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는 추상명사를 생각해 봅니다. '명예, 정직, 믿음, 신용...' 'integrity'는 우리말로 '온전한 상태의 성실함, 진정성' 또는 '무죄(blameless)'입니다. 즉 도덕적인 완전함과 흠 없음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모든 종류의 죄에서 완벽할 수 없습니다. 이는 타인들에게 비평의 여지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도 대비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정직한 사람, 성실, 구원' vs '비뚤어진 사람, 사기, 기만, 멸망'
정직한 사람(의인)은 그 심지에 성실이 있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지만, 비뚤어진 사람의 패역, 사기, 기만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받아들이고 그의 인도함에 따르면 그 도덕적인 온전함은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고, '음침한 골짜기'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시 23: 1-4)
영어로 'crooked'란 단어가 있습니다. '비뚤어진, 구부러진, 부정직한'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특히 돈과 관련하여 자신의 사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왜곡하여 말하는 사람, 즉 사기꾼을 의미합니다.
그 예로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였던 유다 가룟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와 키스함으로써 예수를 사랑하는 척 했지만(마 26:48–49),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의 진짜 목적은 군인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으며, 군인들은 예수를 체포하고 그를 재판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인도했습니다. 그는 뒤 돌아보고 고통받았지만 이는 경건한 회개도 아니었고, 유다는 자신이 받은 돈을 자신을 고용한 종교지도자들의 발 앞에 내던졌습니다. 결국 그는 도망쳐 목을 매었습니다(마 27:3–5). 기만과 속임의 최후는 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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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iches don’t profit in the day of wrath, but righteousness delivers from death.
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4. 재물은 진노의 날에 무익하니, 의로움은 죽음에서도 구원한다."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길은 그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시고 그 날 재물은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님 대신 돈(재물)에 의존하는 사람은 영원히 재산을 잃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비싼 옷을 입고 매일 호화로운 음식을 먹었던 부자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나사로라는 거지의 우화를 통해 부자가 일생을 통해 번 돈이 그가 죽었을 때 무용지물임을 설명합니다.(눅 16:19-31)
비슷한 우화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돈으로 위안을 얻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곳간에 재물을 쌓고 하늘나라에는 보화를 쌓지 않은 부자의 영혼은 결국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눅 12:13-21)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었어(요 3:36)'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죽음에 대한 승리를 기뻐하고, 그들이 죽을 때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빌 1:23)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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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e righteousness of the blameless will direct his way, but the wicked shall fall by his own wickedness.
5.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5. 흠 없는 자의 의로움은 자신의 길을 곧게 하지만, 악인은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넘어질 것이다."
경건함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죄악에 빠진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대조합니다. 성경은 종종 곧고 분명한 길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경건한 삶(즉, 흠이 없는 삶: blameless)을 말합니다. 죄악에서 태어난 우리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겸손하게, 조심해서,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건한 삶이 아닐까요? 그들이 얻는 길은 곧고 의로움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결국에는 (주님이 보시기에는 잘못된) 사망의 길"입니다(잠 14:12) 그들은 악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진리와 경건함을 부인하여 죄악에 빠지고 결국 파멸에 이릅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 57-20-21)
악인은 '쉴 수 없는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습니다. 세상의 삶에서도 영원의 삶에서도 불안과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넘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바다를 들여다 봅니다. 광란하는 바다와 같이 물결이 출렁이는지, 호수와 같이 그 수면이 잔잔한지?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극도의 정서불안으로 하루 종일 감정의 기복이 왔다갔다 하는 저의 고1 딸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면서 저의 마음은 오히려 호수와 같이 잔잔해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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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e righteousness of the upright shall deliver them, but the unfaithful will be trapped by evil desires.
6.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6. 정직한 사람의 의로움은 그를 구원하지만,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악한 욕망의 덫에 걸리게 된다."
앞의 구절과 유사한데, 정의로운 사람은 고난과 죽음에서 자신을 구원합니다. 어떠한 고난도 그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비뚤어진 길을 가지 않고 비뚤어진 행동과 기만적인 죄악에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악의 최종 도착지는 멸망과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약속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의인은 주님을 믿고 어려울 때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으나,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죄인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고난과 죽음이 닥치면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의 사악한 욕망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거미줄을 치게 되고 도망칠 방도가 없습니다. 야고보서는 기록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 1:14-15)
욕심이 죄악을 낳고, 죄가 사망을 낳습니다. 모든 죄악의 씨는 욕심에서 시작합니다. 욕심은 무엇일까요? 사심, 자만심, 교만, 자신감... 결국 자신을 믿는 교만이 사망으로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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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When a wicked man dies, hope perishes, and expectation of power comes to nothing.
7.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7. 악인이 죽을 때에 그 소망도 사라지고, 그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소망도 덧없어 진다."
악인이 죽으면 그가 생전에 추구하던 부와 명예도 그와 같이 사망의 불길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희망도 구원도 없는 영원의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막 8:36-37) 여기에서 '목숨'은 영어로 '영혼(soul)'으로 번역됩니다. 지상의 재물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지만 영혼(soul)은 무덤을 넘어, 하늘과 지옥에서 영원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돈으로 영생을 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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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 righteous person is delivered out of trouble, and the wicked takes his place.
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
"8. 의인은 고난에서 구원되나, 악인은 그 고난의 길을 걷는다."
ESV 영어버전: "The righteous is delivered from trouble, and the wicked walks into it instead." 솔로몬은 계속 의인과 악인의 고난에 대처하는 방식을 전형적인 잠언의 형태로 대조합니다. 의인은 고난에서 구원되나, 오히려 악인은 고난의 길을 걷습니다. 특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을 따르는 것은 경건한 사람이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지혜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파멸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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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With his mouth the godless man destroys his neighbor, but the righteous will be delivered through knowledge.
9.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9. 경건하지 않은 자의 입은 자신의 이웃을 멸망시키지만, 의인은 지식으로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과 그의 지혜를 멸시하는 자'(1:7)는 그 이웃을 멸망시킵니다. 여기에서 '경건하지 않은(godless)'는 히브리어로 hā'nēp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에 대하여 모독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은 이웃 또한 미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합니다. 마태복음에서 한 율법학자가 예수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큰지를 묻자,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마 22:36-39)
경건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이웃을 모욕함으로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어겨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의인의 지식은 이웃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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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When it goes well with the righteous, the city rejoices. When the wicked perish, there is shouting.
10.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10. 의인이 잘되면 마을이 기뻐하고, 악인이 멸망하면 마을이 즐거워 소리친다."
의인이 잘되면 보통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고, 악인은 그들이 넘어졌을 때 세상이 기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일부 부유한 사람들이 마을에 미치는 영향이 현대에 비해 매우 컸다고 합니다. 재물이 경건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그들의 재력은 마을을 발전시키고 백성을 기쁘게 했습니다. 반면 마을의 주민들은 악인의 멸망과 죽음을 공공연히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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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By the blessing of the upright, the city is exalted, but it is overthrown by the mouth of the wicked.
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11.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마을이 흥하게 되지만, 악한 자의 입으로 마을이 무너진다."
앞 절의 연속된 생각입니다. 마을은 의인들의 품성과 행동으로 좋은 평판을 얻고 있고 그들은 마을을 위해 기도합니다. 예레미아는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지시합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렘 29:7) 그러나 악인들은 그들의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오는 비뚤어진 언행으로 마을의 멸망을 가져옵니다.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이 보시기에 즐거운 삶을 우리는 영위하고 있는지, 그 삶을 통해서 우리 이웃, 마을이 발전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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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One who despises his neighbor is void of wisdom, but a man of understanding holds his peace.
12. 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12. 지혜가 없는 사람은 그 이웃을 멸시하지만, 명철한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
우리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곤 합니다. 남을 말을 하다 보면 화평과는 거리가 먼 욕을 하기도 하고 바난 하기도 하게 됩니다. 이웃을 비웃는다면 그 비웃음의 대상이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이웃을 멸시하는 대신 침묵을 지킬 것입니다. 솔로몬은 앞에서 말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조절하는 자는 지혜롭다."(잠 10:19) 우리는 입이라는 무기에서 말이라는 총알이 나오기 전에 다시 우리가 할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될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조언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7-18) 그는 또 말합니다."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9-10 ) 악을 선으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침묵이 답일 수도 있습니다.
이웃 간의 울타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울타리는 왜 생겼을까요? 나를, 우리를 이웃을 포함한 타인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울타리는 넘지 말라고 있기도 하고 넘으라고 있기도 합니다. 이웃같은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듭니다. 어느 정도의 분리는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중요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이웃과 적용될 뿐 아니라 가족 간에도 적용되지 않을까요? 왜 집에 방들이 있을까? 같은 원칙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문을 닫기 위해서, 또는 열기 위해서 방문이 존재합니다. 어느 정도의 분리와 왕래는 그 대상이 가족, 이웃, 나라이든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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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One who brings gossip betrays a confidence, but one who is of a trustworthy spirit is one who keeps a secret.
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13. 험담하는 사람은 남의 비밀을 누설하지만 마음이 진실한 사람은 비밀을 지킨다."
'험담(gassip)'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흠을 들추어 헐뜯음'입니다. 자신있게 비밀을 털어놓았지만 그 비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여 깨트리는 사람은 험담꾼입니다. 남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흥미롭고 스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걱정한다는 핑계로 남의 비밀을 누설한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처럼 침묵이 지혜일 때가 많습니다. 남의 비밀을 지키지 않는 험담꾼과는 달리, '비밀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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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Where there is no wise guidance, the nation falls,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ors there is victory.
14.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14. 지혜로운 지도자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여도, 조언자들이 많으면 안전이 있다."
ESV버전: "Where there is no guidance, a people falls, but in an abundance of counselors there is safety."
NLT버전: "Without wise leadership, a nation falls; there is safety in having many advisers."
번역마다 상이한데 주어가 '나라 또는 백성'이고, 후자의 결과는 '안전, 평화, 승리'입니다. 나라나 백성을 위하여 좋은 지도자는 누군가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조언의 절차가 더 좋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반복되는 '에코챔버'로 눈을 돌리면 편향과 실수에 더욱 취약해집니다.
Echo chamger란 용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인터넷 공간을 서핑하면서 정보를 검색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소통하면서 자신을 에코챔버(인공적으로 메아리를 만들어내는 방으로 에코 챔버에서 말을 하면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옴)에 가두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도(guidance)'의 유래는 배의 조정에 적용되는 단어라고 합니다. 적절한 지도가 없는 배는 바위에 부딪히거나 다른 배와 충돌하거나 좌초할 가능성이 큽니다. 구약에서 왕들 옆에는 늘 많은 조언가들이 있었지요. 지혜로운 조언자는 위기 상황에서 좋은 조언을, 지혜롭지 않은 조언가는 오히려 왕과 나라에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좋은 조언이 늘 기쁜 조언은 아니지만 친구와 같은 진정한 조언자는 친구보다 좋습니다. 불편한 조언을 듣기좋은 조언으로 바꾼 예도 생각이 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잠언의 저자 솔로몬의 아들 젊은 왕 르호보암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치정에 아버지 솔로몬을 섬겼던 경험 많은 원로들과 의논하였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에게 좋은 조언을 주었고, 그들의 조언을 요청한 르호보암은 슬기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조언이 불편하자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조언을 거절하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걸었던 젊은 사람들과 의논합니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현상을 'advice shopping'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한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그는 그와 같이 성장한 젊은이들과 의논합니다.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젊은 친구들은 르호보암이 생각한 것을 조언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동조한 사람들에게 눈을 돌림으로써 르호보암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조언을 받는 척했을 뿐입니다. 조언을 구할 때는 우리가 당면한 상황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것이 최상임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때로 아웃사이더는 우리와 같은 경험을 나누는 사람들보다 더 명확하게 사물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조언과 정반대의 조언을 택하고, 결국 그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이스라엘 12부족이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분열됩니다. 아래는 이전에 올린 그의 이야기입니다.
또 한 예로 역대하를 보면 유다 최악의 왕 요아스가 등장합니다. 그의 아들 아마샤가 에돔을 정복하고 유다로 돌아와 우상들을 가져와서 숭배하고 분향합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은 아마샤에게 진노하셔서 선지자를 보내서 그를 경고하지만, 에돔 정복 후 교만해진 그는 오히려 선지자를 협박하고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왕을 멸망하실 것을 예언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아마샤는 우상을 끌어안았고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전쟁을 허락하십니다. 그 전쟁으로 인하여 아마샤는 자신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큰 상처를 입힙니다. 아래는 이전에 올린 아마샤의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기록합니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Wounds from a friend can be trusted, but an enemy multiplies kisses.)" (잠 27:6) 한 나라의 좋은 지도자라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친구의 쓴 조언도 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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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He who is collateral for a stranger will suffer for it, but he who refuses pledges of collateral is secure.
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15. 남을 위해 보증을 서는 사람은 손해를 보지만, 보증 서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안전하다."
솔로몬은 남을 대신해서 대출을 받거나 빚이나 채무를 떠맡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6장에서도 같은 문제를 언급했는데 다시 언급하여 그러한 거래의 심각성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빚보증을 잘못하면 돈도 일고 친구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친구의 지불능력을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친구의 통제력을 잃게 하고 결국 자신의 삶 또한 파멸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도 필요한 것은 지혜롭게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이 한 구절을 공부하는데 하루를 걸려도 부족할 것 같이 그 내용이 진주와도 같습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저는 지혜를 구하는데, 저자 솔로몬은 지혜를 따라가다 보니 그의 아들 젊은 왕 르호보암의 이야기까지 내려갔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 시국에 지도자로서 정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 에코 챔버에 갇혀 있어 저와 코드가 다른 타인과 교류하고 있지 않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소통은 매우 중요한 코드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지혜롭게, 현명하게 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마음병을 앓고 있는 저희 고1딸 미류도 에코챔버에 갇혀있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새벽에 또 잠을 자지 못해 새벽 1시 넘어서 엄마방으로 넘어온 엄마에게 고통을 하소연하며 다시 오네요. 답답한 마음으로 다시 돌려보냈는데 날이 밝으면 급한 것을 가지고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정신이 왔다 갔다 하며 하루분 QT를 끝냅니다. 소통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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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Proverbs)10:1-17(대조적인 삶, 대조적인 운명) (0) | 2021.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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