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시험에 빠질 때 온전히 기뻐하라 주문합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 것을 알고 기뻐하라 합니다. 그리고 풍성히 주심을 믿고 나에게 부족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 합니다.
어려웠지만 많이 유익했던 잠언묵상을 끝내고 야고보서를 시작합니다. 우선 야고보 책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니 공동서시(共同書信 , General Epistles)이란 용어가 나옵니다. 아래는 해당 정보입니다.
신약성경 중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등 7서신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유세비우스(Eusebius, A.D. 263-339년경) 때부터 사용되었다. 7서신의 특징이 이단을 대적하고 박해 중에서 능히 믿음을 굳건히 하라는 모든 교회의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어, 교회 전체를 위한 서신, 곧 ‘공동서신’이라 칭하게 되었다. (자료: 라이프성경사전)
또 하나 조병성사(-聖事 , sacrament anointing of the sick)란 용어: 로마 가톨릭에서 몸이 아픈 환자에게 사제가 성유를 바르고 회복을 기원하는 성사. 병자성사(病者聖事). 야고보서 5장 14-15절 말씀을 근거로 한다. (자료: 가스펠서브)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구절로 유명합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종교에만 아부하고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만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 책이신앙이 아니라 선행에 의한 구원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멀리했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종교를 떠나서도) 신앙과 선행이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은 저도 동의합니다.
야고보서는 예수의 이복동생 야고보가 기록한 교회에 전하는 편지로 환난이나 박해가 심했던 네로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이후). 신약성경에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지만, 이 책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을 지낸 후 순교된 것으로 전해지는 예수의 이복형제 야고보라고 전해집니다. 성경에 언급된 야고보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요한의 형제이자 새베대의 아들인 야고보는, 순교한 최초의 사도로 레사 야고보 (마 4:21)
-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알패오의 아들 (막 6:3)
- 사도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 (눅 6:16) 그리고,
- 예수의 이복형제 야고보 (마 13:55)
그러나 이 편지의 저자는 '예수의 부활을 보인' (고전 15:7) 바로 예수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그가 예수를 따를 때, 그는 매우 헌신적으로 따랐습니다. 교회의 초기 역사에 따르면 제임스는 기도하는 사람이어서 그의 무릎에는 크고 두꺼운 굳은살이 있어서 마치 낙타의 무릎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가 예루살렘 신전의 높은 곳에서 밀려서 순교했으며, 쓰러져도 그는 죽지 않았고, 심지어 공격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에도 땅 위에서 맞아 죽었다고 전합니다.
그는 자신을 '예수의 형제'로 선언하지 않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bondservant)'이었음을 알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는 야고보의 형제 이상, 예수는 그의 주님이었습니다. "'bond servant'는 고대 그리스어로 'doulos'로 번역되는데 주인에게 소속된 영원한 주종관계의 '노예'라는 의미이며,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한 의식이 있는 그리스인들 중에 이 용어는 모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Hiebert)
1. James, a servant of God and of the Lord Jesus Christ, to the twelve tribes which are in the Dispersion: Greetings.
인사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야고보는 당시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12지파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서신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12지파에게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12지파는 때로 유대인 전체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마 19:28). 야고보서를 멀리 했다는 마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나는 야고보의 편지를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인간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중점을 둔다 - I think highly of the epistle of James, and regard it as valuable… It does not expound human doctrines, but lays much emphasis on God’s law" (Barclay에서 인용).
요한복음 7장 5절은 예수의 형제들도 예수의 사역기간 동안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예수의 사역 후반부나 부활 후에야 야고보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것 같다고 전해집니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은 바울은 그리스도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후 야고보에게 나타났다고 기록합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이에 그는 남아서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의 형제'로 선언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신분으로 밝히면서 안부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사용한 '종(servant: 그리스어 duolos)'은 노예를 뜻합니다. 그는 흩어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the Dispersion'으로 부르면서 그들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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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unt it all joy, my brothers, when you fall into various temptations,
3. knowing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produces endurance.
4. Let endurance have its perfect work, that you may be perfect and complete, lacking in nothing.
믿음과 지혜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2.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3.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여러분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완벽하고 온전하도록 하십시오."
야고보는 성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시련 중에 온전히 기뻐하라'라고 시련의 인내심을 주문합니다. 그는 시련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시험은 기쁨의 기회가 되며, 그 기쁨을 통하여 인내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인내(endurance)는 그리스 원어로 'hupomone'로 이는 기다림이 아닌 인내의 뜻입니다. 의사 대기실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닌, 마라톤을 완주하는 능동적인 인내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절)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믿음은 시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련을 통해 믿음이 시험된다. 시련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그러면, 시련을 통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로마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개역개정 롬 10:17)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다시 번역하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초자연적으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믿을 때 우리 안에 형성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거나 파괴하기 위해 시련을 보낸다고 아무도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서 1:13-18에서는 다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시련은 믿음을 낳지 않지만, 시련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면 인내심을 낳는다. 그러나 시련의 시기에 반드시 인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불신과 불평 속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시련은 쓴맛과 낙담감을 낳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야고보가 우리에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간청한 이유이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것은 시련의 시간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고난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신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초래하는 것이다. 사람은 고난을 받을 때 믿지 않게 되기 쉽다: 그것은 죄악이다. 사람은 고난 중에 신에게 불평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죄악이다. 그는 곤경에서 벗어나는 어떤 나쁜 방법에 손을 내밀기 쉽다: 그것은 죄악이다. (인용 및 번역)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시련을 즐기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련을 기쁨으로 느껴야 할까요? 과연 시련이 온전한 기쁨일까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여러분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완벽하고 온전하도록 하십시오"(4절). 인내하는 일(오래참음)은 천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꽃이 만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인내심은 부족한 것이 없고 완벽하고 온전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외국의 한 성경학자의 말입니다. "인내는 고통보다 1인치 짧으면 안 된다" (Trapp) 예를 들어 우리가 위험하게 물이 넘실대는 강을 반쯤 건넜는데 반대쪽 다리 끝이 겨우 보입니다. 거기만 넘으면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매우 위험한 급류가 흐릅니다. 그 위기를 악마는 빨리 건너라고 유혹합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인내(악마의 욕망을 거절하는)라는 설명 같습니다.
우리에게 결국 필요한 것은 믿음이고, 믿음을 시험하는 시련(고난)이 몰려오고, 우리는 그 시련에 내성이 필요한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믿음이 부족해집니다. 그래서 고난(시련)을 달게(기쁘게) 받아야 한다. 우리는 본래 약하고 악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악한 유혹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우선순위를 매기려고 정리를 해 보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다이어그램이 왔다 갔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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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But if any of you lacks wisdom, let him ask of God, who gives to all liberally and without reproach; and it will be given to him.
6. But let him ask in faith, without any doubting, for he who doubts is like a wave of the sea, driven by the wind and tossed.
7. For let that man not think that he will receive anything from the Lord.
8. He is a double-minded man, unstable in all his ways.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5.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면, 모두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책망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6.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의 물결과도 같습니다. 7. 그런 사람은 주님께 무엇이든지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8. 그는 두 마음을 품어 자신의 모든 일에 불안정한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필요한 지혜를 구하는 법을 교훈합니다. 시련은 언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시련을 받을 때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지식은 일차(기본) 정보이지만 지혜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안다. 누군가는 지식은 사물을 분해하는 능력이라고 말했지만, 지혜는 사물을 종합하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지혜는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모두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책망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5절)' 의심하지 말라 합니다. 그러나 넉넉한 지혜를 주실 것을 믿고 구하라 주문합니다. 그런 두 마음을 가진 불안정한 사람을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의 물결과도 같다' 말합니다. 바다의 물결은 어떨까요? 바다의 물결은 불신과 불필요한 의심으로 방해를 받는 사람을 묘사하는 적절한 표현입니다. 한 학자의 설명입니다.
- 바다의 물결은 쉴 틈이 없고, 의심도 그렇다.
- 바다의 물결은 불안정하며, 의심도 그렇다.
- 바다의 물결은 바람에 의해 일며, 의심도 마찬가지이다.
- 바다의 물결은 큰 파괴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의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8절)'입니다. 믿음과 불신 사이의 중간에 있는 것은 이중적인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한 학자는 말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두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 땅을 위해 하나, 하늘을 위해 하나: 그는 두 세계를 모두 지키고 싶어 한다. 그는 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하늘을 놓아주는 것을 싫어한다" (Clarke).
마가복음에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께 소리질렀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막 9:24) 그 아버지는 두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기를 원했고 자신의 믿음을 선언했습니다. 비록 믿음은 약했지만, 두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약했지만 믿고 싶었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한 아버지의 절규에서 우리는 상황의 절박함을 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면서 '과연 주실까? 안 주시면 어쩌지?' 의심하지 말란 말입니다. 왜 필요한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저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실 것을 믿습니다' 믿고 구하면 주신다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마음 속에 출렁거리는 의심의 바다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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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But let the brother in humble circumstances glory in his high position;
10. and the rich, in that he is made humble, because like the flower in the grass, he will pass away.
11. For the sun arises with the scorching wind, and withers the grass, and the flower in it falls, and the beauty of its appearance perishes. So also will the rich man fade away in his pursuits.
낮은 형제, 부한 자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9. 낮은 형제는 자신의 높음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10. 부자는 자기가 낮은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뜨거운 바람과 함께 해가 떠오르고, 풀이 마르고, 꽃이 그 안에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집니다. 부자도 자신을 일을 쫓다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야고보는 시련을 받은 사람들에게 격려합니다. 낮은 자(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에 의해 높임을 받을 때 기뻐하고, 높은 자(부유하고 교만한 자)들은 시련으로 수치를 당할 때 기뻐하라 합니다. 수식은 같은데 후자가 훨씬 더 어려워 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시련은 부자에게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한 순간일 뿐이고 이내 사라지고 만다고 조언합니다. 그 모습이 흡사 풀의 꽃과 같아, 시간이 지나면서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자들은 이 땅에서 그들이 기뻐하는 돈으로 인해 스스로 높다 생각하나 결국 시간이 가면서 부자들도 자신의 일을 쫓다가 사라지고 그들이 사랑하던 부유함도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돈(재물)은 우리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시험(유혹) 일 수 있습니다.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돈을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높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돈을 자랑하면 주님은 결국 우리를 낮추실 것입니다.
어려운 잠언을 끝내고 야고보서를 시작하는데 지혜의 구함이 연속되어서 그런지 야고보서도 쉬운 듯 많이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로서가 아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야고보의 신앙고백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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