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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야고보서(James)2:1-13(긍휼은 심판을 이긴다)

by 미류맘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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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외모로 보고 차별을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가난하나 믿음에서는 부한 자가 될 것을 권유합니다. 또한 모든 율법을 지킬 것 - 특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 을 강조하고, 마지막으로 결국 긍휼이 심판을 이김을 강조합니다.

 

1장에서 야고보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1:3), 그리고 유혹을 견뎌내는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1:12)이라고 말하면서 유혹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1:13),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온전한 은사는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1:17)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리고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게 하고, 노하기도 더디게 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더불어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마라' 말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믿음에 대하여 경고했습니다. 또한 '혀에 재갈을 물리라' 말에 대한 주제를 소개했습니다. 위의 두 주제는 2-3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오늘 영어 QT공부도 아래 사이트에서 인용, 번역, 편집으로 올립니다. 

1.  My brothers, don’t hold the faith of our Lord Jesus Christ of glory with partiality.
2.  For if a man with a gold ring, in fine clothing, comes into your synagogue, and a poor man in filthy clothing also comes in;
3.  and you pay special attention to him who wears the fine clothing, and say, “Sit here in a good place”; and you tell the poor man, “Stand there,” or “Sit by my footstool”;
4.  haven’t you shown partiality among yourselves, and become judges with evil thoughts?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니 사람을 차별하지 마십시오. 2. 만일 금반지를 끼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이 회당으로 들어오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할 경우, 3. 여러분이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눈여겨 보고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저기에 서 있던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 하고 말하면, 4. 여러분 사이에서 서로 차별하여, 악한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아 래(인용 및 편집: sermonwriter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차별하지 말 것을 조언합니다. 1a절을 직역하면 '형제 여러분,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차별하여 갖지 마십시오'. CSB버전의 번역이 좋은 것 같습니다. "My brothers and sisters, do not show favoritism as you hold on to the faith in our glorious Lord Jesus Christ."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니 사람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이지 마십시오"

야고보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말할 때, 문맥상으로는 '예수가 가졌던 믿음' 또는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인데, 저는 후자가 더 맞을 것 같습니다. 2-3절의 내용은 매우 직설적인데 이해가 쉽습니다.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라면 이런 행동을 하기가 쉽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에게 편파적인 생각을 갖기 쉬울까요? 존경심에서, 두려움에서, 아니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부나 권력에 복종하지 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전자의 복종은 '비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화가 생각납니다. 프랑스 회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사람들이 사죽을 못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창피한 시대에 대한 기억인데... 프랑스인 상사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한국사람은 부리기가 너무 쉽다. 앉으라 하면 기기 때문에...' 사람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부와 권력이 먼저일까요?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에 차별하지 말라고 야고보는 조언합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1:17) 하나님은 각자의 행위대로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토라와 시편, 그리고 예언자들 또한 차별을 드러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성경에서 권력이라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 잇속 챙기기 위해 그들의 힘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편애(partiality)'로 번역된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diakrino'로 'dia'와 'krino'라는 두 단어를 합친 것으로 판단을 내리고, 계급별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계급에 따라 그들에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 (개역개정)의 'dia krino'와 'kritai'의 유사점에 주목하라고 외국의 성경해설가는 말합니다. 전자는 판단의 동사이고 후자는 판단의 명사입니다. 

레위기는 기록합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 19:15)

야고보가 말하는 "악한 생각"은 무엇일까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자들에게 편애를 보이는 사람은 부자들의 돈을 탐내는 것과, 돈을 좀 얻기 위해 시도하는 것에 대해 유죄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질투심으로 부자를 미워하고 이유 없이 그들을 비난한 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법정에서 재판할 때 또는 사람을 평가할 때, 레위기의 말씀처럼 '불의'로 행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판단해야 합니다. 질투가 사심을 낳고, 사심이 죄악을 낳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질투심 때문에 부자나 세력가들에게 우리는 비굴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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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Listen, my beloved brothers. Didn’t God choose those who are poor in this world to be rich in faith, and heirs of the Kingdom which he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6.  But you have dishonored the poor man. Don’t the rich oppress you, and personally drag you before the courts?
7.  Don’t they blaspheme the honorable name by which you are called?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5.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제 말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선택하셔서 믿음을 부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였습니다. 여러분을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 부자들 아닙니까? 7. 그들은 여러분이 불리는 그 존귀한 이름을 바로 그들이 모독하지 않습니까?"

야고보는 '세상에서는 가난하나 믿음에서는 부한 자'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선택하셔서 믿음을 부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만 복을 주실까요? 부유한 자는 복을 주시지 않으실까요? 여기에 딜레머가 있습니다. 부자이면서 하나님의 겸손한 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서 우선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부자가 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게 되고 곧 오만해집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하고 주님을 믿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였다고 독자들을 향해 야고보는 질책합니다. '여러분을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 부자들 아니냐?' 라고 야고보는 되묻습니다 (6b절). 그들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우리를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곤 하는데 말이지요.

"그들은 여러분이 불리는 그 존귀한 이름을 바로 그들이 모독하지 않습니까?" (7절) 개인적으로 7절 번역이 애매한데, NIV번역을 참고합니다. "Are they not the ones who are blaspheming the noble name of him to whom you belong?" (여러분이 속한 그분의 고귀한 이름을 모독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 아닙니까?)

한 외국의 성경평론가는 '중상모략'이 더 좋은 번역이라고 지적합니다. '중상모략(slander)'과 '신성 모독(blaspheme)'의 차이인데 대부분의 영문번역이 후자로 되어 있는데 전자도 있습니다. 보통 신성모독을 말하면 신에 대한 욕설인데 그것이 사람들을 향한 욕설에도 적용된다는 설명입니다. '중상모략(中傷謀略)'의 사전적 의미는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하다'입니다. '신성모독(神聖冒瀆)'의 사전적 의미는 '신성한 천주성(카톨릭)을 모독하는 일'로 설명되어 있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경멸하고 더럽히는 불경죄, 하나님보다 높임을 받으려는 행위 등입니다. 전자는 보다 보편적이고 후자는 특정적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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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However, if you fulfill the royal law, according to the Scripture,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you do well.
9.  But if you show partiality, you commit sin, being convicted by the law as transgressors.
10.  For whoever keeps the whole law, and yet stumbles in one point, he has become guilty of all.
11.  For he who said, “Do not commit adultery,” also said, “Do not commit murder.” Now if you do not commit adultery, but murder, you have become a transgressor of the law.
12.  So speak, and so do, as men who are to be judged by a law of freedom.
13.  For judgment is without mercy to him who has shown no mercy. Mercy triumphs over judgment.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8. 여러분이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율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며,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가 됩니다. 10. 누구든지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에서 넘어지면 모든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11. '간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신 분이 '살인하지 마라' 말씀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간음하지 않았고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12. 여러분은 자유의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하기도 해야 합니다. 13. 심판은 긍휼을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깁니다."  

'성경의 최고의 율법(royal law, the king's law)'을 지키라고 교훈합니다. 여기에서 '왕=하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이 두 가지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부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이웃을 잘 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9절 사람을 차별하면, 가장 중요한 율법의 하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를 어긴 죄로 인해 그는 범법자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인'을 가장 큰 죄로 인식합니다. 그러면 '선의의 거짓말'은 어떨까요? 영어로는 'white lies'라고 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악의 없는(선의의)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이란 말이 모순됩니다. 하얀 거짓말, 악의 없는 거짓말이 존재할까요? 거짓말을 사람을 넘어지게 합니다. 죄악입니다.

여기에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두 가지 범주 즉, 죄악(범법자에 의한)과 순결함(신성한 사람들에 의한)을 제시합니다. 차별을 보이는 것은 우리를 순결함에서 죄로, 그리고 신성함에서 타락으로 이동시킵니다. 9절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에게 넘어지면 모든 율법을 범한 결과가 됩니다. 소위 '도로아미타불(말짱 도루묵, vain effort)'이 된다는 것인데... 사전적 의미는 '애쓴 일이 소용없게 되어,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11절 '간음하지 마라'의 율법을 지켰더라도 '살인하지 마라'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결백할까요? 결백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죄를 범했을까요?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바울은 우리 죄의 치료법은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는 것"(롬 3:24)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죄에서 벋어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은총을 언급하지 않고, 범법 행위를 피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유의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하기도 해야 합니다'(12절). 야고보는 다음에 언급할 행동과, 말하기와 행함(14-18절)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유대교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셨지만, 우리를 심판으로부터 해방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 마 25:31-46은 심판의 날 장면을 묘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받기 위한 조건은 우리가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고, 병자와 감옥에 있는 자들을 돌보았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행하지 못한 죄인은 '영벌'에, 행한 의인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5:46)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심판은 긍휼을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깁니다" (13절) 예수님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마 6:12) 영문으로 'debt(빚)'과 'debtors(채무자)'를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의 채무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해 주십시고'입니다. 개역개정에서 '빚=죄, 채무자=우리에게 죄 지은 자'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 2:13)

또 기록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하나님은 용서를 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또한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합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꾸짖으셨습니다. "너희가 ...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마 23:23) '정의와 긍휼과 믿음(justice, mercy, and faith)'이 없는 행동없는 그들의 위선을 비난하셨습니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james-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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