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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야고보서(James)2:14-26(행함이 없는 믿음)

by 미류맘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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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말만 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귀신도 가지고 있는 영혼이 없는 믿음이며 구원으로 이를 수 없는 허망한 믿음입니다.

 

14.  What good is it, my brothers, if a man says he has faith, but has no works? Can faith save him?
15.  And if a brother or sister is naked and in lack of daily food,
16.  and one of you tells them, “Go in peace, be warmed and filled”; and yet you didn’t give them the things the body needs, what good is it?
17.  Even so faith, if it has no works, is dead in itself.
18.  Yes, a man will say, “You have faith, and I have works.” Show me your faith without works, and I by my works will show you my faith.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4. 내 형제 여러분, 만일 누군가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여러분 중 누군가가 그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 드십시오' 말하고, 그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17.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18.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믿음이 있고, 내는 행함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당신의 믿음을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당신에게 보여주겠습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sermonwriter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에 대해 말한다. 그는 우리가 말로는 표현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표현할 수 없는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하여 우려한다. "만일 누군가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4절). 이 문제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마틴 루터는 행함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신학과 대립하는 것 같은 야고보서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바울은 우리가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롬 3:27-28)

그러나 야고보는 진정한 믿음은 행함으로 그 결과가 나오고, 선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약 2:14-18). 바울은 우리의 선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또한 '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을 인정한다. 그는 말합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전 6:9-10)

그는 또한 우리에게 육체에 따라 살지 말고 영에 따라 살라고 권하며,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이라고 말하고, 반면 영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고 말한다(갈 5:16-26).

반면 야고보는 묻습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여러분 중 누군가가 그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 드십시오' 말하고, 그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친절한 말이나 칭찬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만 춥고, 헐벗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별 가치가 없다. 말만으로는 의식주가 부족한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17절). 그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생명이 없고 쓸모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야고보는 말한다. '당신은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습니다' (18a절). '행함이 없는 당신의 믿음을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당신에게 보여주겠습니다' (18b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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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You believe that God is one. You do well. The demons also believe, and shudder.
20.  But do you want to know, vain man, that faith apart from works is dead?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19. 여러분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으니, 잘하는 일입니다.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20. 어리석은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알고 싶습니까?"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l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야고보는 살아있는 믿음과 행함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18절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믿음이 있고, 내는 행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함의 은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18절 의미가 애매한데, 한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행함의 은사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좋은 것이나, 그것은 나의 은사가 아니다." 야고보는 이런 종류의 생각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행함을 통해 증명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의 행함은 볼 수 있다. 행함 없이는 믿음을 볼 수 없지만, 행함으로 믿음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행함은 은사가 아니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들의 행함은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행함으로써 믿음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으니, 잘하는 일입니다.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19절) 신에 대한 "죽은" 믿음을 가진 악마들에 의해 행함 없는 믿음의 오류가 드러난다. 악마는 신이 존재함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신을 믿는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믿음은 악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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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Wasn’t Abraham our father justified by works, in that he offered up Isaac his son on the altar?
22.  You see that faith worked with his works, and by works faith was perfected;
23.  and the Scripture was fulfilled which says, “Abraham believed God, and it was accounted to him as righteousness”; and he was called the friend of God.
24.  You see then that by works, a man is justified, and not only by faith.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22. 여러분이 보기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23.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움으로 여기셨다' 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습니다. 24. 그러므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l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21절).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기 훨씬 전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바치는 그의 복종은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결론 내립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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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In the same way, wasn’t Rahab the prostitute also justified by works, in that she received the messengers, and sent them out another way?
26.  For as the body apart from the spirit is dead, even so faith apart from works is dead.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5. 또 이와 같이 창녀 라합도 정탐꾼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보내서 그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습니까? 26.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 또한 죽은 것입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l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야고보는 아브라함(유대인의 아버지)과 마찬가지로 창녀 라합(이방인)도 살아있는 믿음의 본보기로 예를 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한 이방 신도들에 대한 유대인 기독교인 측에서 발달했을지도 모르는 '차별'을 미묘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묻는다: "창녀 라합도 그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정탐꿈들을 숨기고 이스라엘의 신으로부터 구원을 구함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녀의 살아있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행하는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과 라합의 출신과 지위와 사회적 영향력은 많아 달라도 그들이 보여준 행동하는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의 본보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말합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 또한 죽은 것입니다" (26절) 생명없는 몸을 가질 수 있듯이, 생명없는 믿음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받을 수 없는 죽은 믿음이다. 야고보는 생명없는 껍데기만 있는 믿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종류의 신앙이 아님을. 부언하면,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다.

한 성경학자의 재미있는 부연설명입니다. "우리는 사과나무를 생각할 수 있다. 나무의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뿌리와 줄기의 나무껍질 아래에 있다. 제철에 전시되는 과일인 사과에는 생명이 없다. 하지만 나무가 살아있다면, 사과가 제철에 생산될 것이다. 사과나무의 수확물인 사과에는 오히려 생명이 없습니다. 그 생명은 뿌리와 줄기의 나무껍질 아래에 있습니다. 마치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나무 자체가 살아있다면 사과가 제철에 생산됩니다. 믿음이 살아있다면 행함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보면 믿음은 생명나무이고, 나무에 생명이 있으려면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싸우는 것과 비슷하게 들리는데 잘 들여다보면 모순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 즉,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빈 지식만으로 의롭게 되지 않는다. 즉, 그의 의로움은 그 과실(열매)로 알려지고 증명된다" (Calvin).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약 2:17)

오늘의 구절 이미지 검색 중 재미있는 슬라이드를 찾았은데, 실제 인용은 다른 것으로 했습니다. 솔직히 두 사람의 뜻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바울의 주장을 지지하는 마틴 루터도 야고보의 생각을 불편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래 진술된 야고보와 사도바울의 주장 중 성경에 무서운 모순되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주장은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주장인데 반해 야고보는 '선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한 성경학자는 롬 3:28과 약 2:24을 문제의 구절을 인용합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theologyonthegroun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롬 3:28)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다" (약 2:24)

하나님께서 '자기도(하나님도) 의로우시며 예수 믿는 자의 의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롬 3:26)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드러난 가장 중요한 부분은 24절인데, 의롭다 함은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행해진 것이라는 것이고, 문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우리는 의롭지 못하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바울은 의롭고 거룩한 신의 분노를 받고 있는 의롭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해결책은 그리스도의 속죄에 기초한 믿음을 통해 은혜가 베푸는 정의의 선물로 가능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의 목적은 예수라고 분명히 묘사되고 의로움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입장은 다릅니다. 문맥의 첫 구절: "내 형제 여러분, 만일 누군가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약 2:14)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로마서 3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에 의해 의롭지 못한 죄인들이 얼마나 의롭다고 선언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의 맥락은 믿음을 가지라는 주장입니다. 야고보는 이 섹션에서 "신앙만으로"라는 개념을 공격하고 있지만, 진정한 믿음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허하게 주장되는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그는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고 물론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주제는 명확합니다: '당신은 믿음이 있고, 내는 행함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당신의 믿음을 저에게 보여주십시오.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당신에게 보여주겠습니다." (18절)

여기까지 "의롭게 된"이라는 단어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야고보서에서 그 단어는 21절까지 나오지 않는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 이삭을 제단에 바침으로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21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아시고 아들을 포기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창세기 22장의 이야기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말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움으로 여기셨다' 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습니다" (23절) 

바울에게 '의로움'은 하나님만이 의롭고 우리는 '의로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만이 의로움의 주체이고(능동형), 우리 인간은 주체이신 하나님에 의해 은혜로 의로움으로 여기신 수동형입니다. 그 예를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찾습니다.

요약하자면, 야고보는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믿음은 반드시 사람을 변화시키고 따라서 그들의 행함에서 분명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믿음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변화, 즉 선행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믿음을 향한 행함이 중요하냐 아니냐의 논란을 옆으로 두고 오늘 구절은 야고보의 주장으로 정합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입니다." (2:17)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james-21-17/
https://theologyontheground.com/justification-romans-328-vs-james-224/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ame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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