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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야고보서(James)5:7-12(인내하고 맹세하지 마라)

by 미류맘 202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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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고통을 받고 있는 신도들을 향해 당부합니다. 우선,  예언자들의 예를 들면서 다가올 심판을 준비할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거짓 맹세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야고보는 앞에서 "오늘이나 내일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에서 일 년 동안 지내면서 이익을 보자"라고 말하는 허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허탄한 생각임을 경고했습니다 (4:13-17).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생명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자랑은 악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16). 야고보는 또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17절). 그 행함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부자들을 향해 경고합니다: "여러분에게 임하고 있는 고난으로 인해 울고 통곡하십시오" (5:1). 그들은 자신의 재물은 썩었고, 옷들은 좀먹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5:2). 그들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고 "불과 같이 그들의 살을 먹을 것"(5:3)입니다. 만군의 주님은 그들이 속인 일꾼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5:4).  

야고보가 5:7-10에 말하는 사람들은 그가 앞에서 경고했던 사람들로부터 확실히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허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부자들에 대한 이러한 경고들은 오늘 본문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7.  Be patient therefore, brothers, until the coming of the Lord. Behold, the farmer waits for the precious fruit of the earth, being patient over it, until it receives the early and late rain.
8.  You also be patient. Establish your hearts, for the coming of the Lord is at hand.

인내와 기도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7.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날까지 인내하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소중한 열매를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인내하고,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sermonwriter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날까지 인내하십시오" (7a절). 야고보는 반복을 통해 인내심을 강조합니다. '인내하라' 언급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8절과 10절에서 다시 반복합니다. 그들은 돈에 대해 허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부자들의 손에서 시달렸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까지“ (7a절). 그러면 야고보가 여기에서 말하는 '그날의 도래(parousia: 그리스어)'은 (1) 그리스도의 재림 또는 (2)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해 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기 때문에 그날까지 인내하려는 것일까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통적인 학자들의 견해는 전자라는 것인데, 예수님이 아직 재림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당시 야고보가 편지를 써던 대상의 사람들은 재림과 함께 올 입증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래는 학자의 설명입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 5:8, 이미지 소스: https://wiirocku.tumblr.com/)

아래는 한글성경에서 '임박, 도래, 도착, 오심'으로 번역되는 'parousia'라는 그리스 단어가 예수의 재림 또는 심판의 임박을 말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오는 주체의 정당성(선하고 악한)과 관계 없이 단순히 '도착'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번역하면서 의미를 보았는데 한번쯤은 집고 넘어감이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parousia가 "도래" 혹은 "도착" 혹은 "존재"를 의미하는 평범한 그리스 단어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신약성서에서 고린도서(고후 10:10)와 빌립보서(빌 1:26; 2:12)에 자신의 존재를 언급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한다. 그는 또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디도, 그리고 무법자의 도래를 언급하기 위해 이것을 사용한다. 주로 바울이 자신의 사역 소개, 권면, 인사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so that through my being with you)..." (빌 1:26)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빌 2:12)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I was glad when ... arrived) ... (고전 16:17)
"디도가 옴으로(by the coming of Titus) ... (고후 7:6)
"악한 자의 나타남은(The coming of the lawless one) ..." (데후 2:9)

그 단어는 종종 예수의 재림이라는 말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적인 'parousia'의 사용을 놓치기 쉽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독자들이 예수의 재림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가정하여 Parousia(대문자)에 대해 종종 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재림뿐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이 기독교 형제들에게 하나님이 부자들을 심판하고 부자들에게 희생당한 신실한 사람들의 정당성을 입증하실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보십시오... 오래 참으며 땅의 소중한 열매를 기다립니다" (7c절). 이것은 야고보가 인내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세 가지 예시 중 첫 번째이다. 농부가 되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농부는 땅을 준비하고 씨앗을 뿌리고 씨앗이 싹트기를 기다려야 하며 과일이 익을 때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과수원을 심을 때처럼, 농부들은 첫 수확을 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농부가 조급해져서 너무 빨리 재배를 한다면, 수고한 대가로 어떠한 열매도 보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기까지“ (7d절). 그리스 원문에는 "비"라는 단어가 없지만, "조기와 후기"는 분명히 팔레스타인의 가을 (10월11월)과 봄 (3월4월)에 내린 초기와 후기를 가리킨다. 농부들은 이른 가을의 비를 이용하기 위해 작물을 심을 것이다. 늦봄의 비는 작물의 상당한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여러분도 인내하고“ (8a절). 농부가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기독교인들도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8b절). sterizo(establish)는 단어는 확고히 세우거나 고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종의 확고함(rock-steadiness)을 암시한다. 야고보는 기독교인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마음을 굳게 다지라고 말하고 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8b절). 'parousia(임박, 도래, 도착)' 단어 사용의 예는 위의 예시와 같습니다.

복잡한 설명인데, 성경이 그리스어를 영어로,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중에 오묘한 뜻 전달이 어려운 부분들이 있고, 그 과정에서 행간의 의미를 놓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 시간이 걸려도 작업을 해 보았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오늘의 본문은 '허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부자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신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야고보는 '주님이 오실 날의 임박'에 대한 팩트를 설명합니다. 그날이 주님의 재림의 날인지 또는 그 어떤 이유로 인한 억울한 상황을 당하는 그들 입장의 정당성을 증명할 날인지 상관없이, 야고보는 그들에게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소위 '해뜨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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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Don’t grumble, brothers, against one another, so that you won’t be judged. Behold, the judge stands at the door.
10.  Take, brothers, for an example of suffering and of perseverance, the prophets who spoke in the name of the Lord.
11.  Behold, we call them blessed who endured. You have heard of the perseverance of Job, and have seen the Lord in the outcome, and how the Lord is full of compassion and mercy.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9. 형제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서로에게 불평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이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1. 보십시오. 우리는 인내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님이 주신 결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비와 궁휼로 넘치시는지 보았습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l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형제 여러분, 서로에게 불평하지 마십시오“ (9a절). 야고보는 형제들을 향해 인내하면서 기다리되 서로 '불평(원망: grumble)하지 마라' 합니다. 이 장면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민수기 많은 구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불평했던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서로 불평하는 기독교인들을 말합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 15:24)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출 16:2) 등등

모든 일이 잘 풀리는데 누구를 탓할 이유가 없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원인을 찾고,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것은 역효과를 낳는다. 역경 속에서 우리는 상호 파괴적이기 보다는 상호 지지적이 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Greek: krino) (9b절). 야고보는 불평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이것은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일치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2)

'krino'라는 단어는 평가하거나 심판(선고를 내린다)한다는 의미인데, 성경에서 신도들에게 심판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신도들에게는 '판단, 분별(recognize, see, assess)'를 요구한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 - recognize),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욘1 4:1). '심판(비난, 선고)'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야고보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올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올지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고, 그것이 그의 의도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가 심판을 받는 분위기에 처할 경우, 주변 사람들로부터 반감을 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받을 대상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심판을 모두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판하실 분이 문 앞에 서 계십니다“ (9c절). 야고보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리면서 '심판관이 바로 문 앞에 서 계신다' 말합니다. 그 심판관은 하나님이실지 다른 사람들일지 모른다고 성경학자는 말합니다. 그 심판관의 존재가 누구이든 우리는 심판의 대상이고 심판받기 이전에 온전해져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과거의 본보기를 예로 들면서 인내하라고 계속 당부합니다. 심판관은 부자들의 손에서 부당함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압제자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0절). 야고보가 인내심을 보여준 첫 번째 예는 농부였다 (7b절). 이제 그는 두 번째 예로서 예언자들을 제시한다. 예언자들이 듣기 싫은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 즉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예언자들을 박해했다."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2) 성경학자는 그런 예의 예언자로 요나, 예레미야, 엘리야 등을 듭니다.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l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야고보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 중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몇몇의 예를 들 수 있다. 예레미야는 인내로 학대를 견뎌낸 한 예이다. 그는 매맞고 목에 고랑을 차고(렘 20:2), 궁중의 시위대 뜰에 갇히고(렘 32:2), 지하감옥 형에 처한다. 그러나 그는 목회를 고집했다. 그가 유대인이 던진 돌이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위대한 선지자였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3대 선왕 중 하나인 요시야왕의 평화로운 시기에 사역을 시작했다. 그 후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느부갓네살 왕들이 유다를 지배하는 혼란의 시대에 선지자 사역을 하였다. 그는 가짜 선지자들과도 자주 충돌하면서 나라의 혼란이 끊임없는 지도자들의 범죄 때문임을 지적하고, 그는 철저한 회개만이 갈 길임을 강조한 위대한 선지자였다. 

그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레 4:22)고 말했다. 9장은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하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흔히 '흐느끼는 선지자'라고 불린다. (출처: 바이블키워드)

하나님은 그들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시고 사랑하셨지만 그들은 고통에서 면제되지 않았고, 사람들에 의해 모욕당하고, 비방당하고, 박해를 받았다. 성경은 기록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2)

"보십시오. 우리는 인내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님이 주신 결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비와 궁휼로 넘치시는지 보았습니다"(11절). 야고보는 여러 선지자의 예에서 욥의 예를 드는데, 요나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을 거부한 인내의 세 번째 예가 됩니다. 욥기는 공부한 적이 없어서 검색과 번역.편집으로 내용을 대신합니다. 

"왜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구약성서 욥기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부자이면서도 고결한 품성을 가진 욥은 신의 시험을 받는다. 신이 사탄을 시켜 욥에게 온갖 종류의 고통을 준 것이다. 욥은 자식들과 재산을 잃고 피부에 종기까지 얻는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욥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출처: 바이블 키워드)

다음의 예는 욥입니다. 야고보는 그에 대해, 그리고 왜 그가 고통받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본보기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첫째, 먼저 우리는 욥의 불굴의 인내심을 봅니다. 욥기 1장 20-22절은 우리에게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기를 거부한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엄청난 인내를 보여준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0-22)

둘째, 욥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을 말씀하시는 주님이 의도하신 목적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주님께서 의도하신 가장 큰 목적은 욥을 천사 같은 존재들에게 교훈으로 삼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용하겠다고 약속하신 것과 같다(엡 3:10-11).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엡 3:10-11)

우리가 하나님에게 좋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고통스러운 일들조차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칼로 나를 공격한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저항할 것이고, 그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칼을 들고 제게 온다면, 저는 그와 칼을 모두 환영할 것이다. 칼을 들이댄 사람보다 그 의사가 더 넓게 절개하게 해주세요. 왜냐하면 저는 그의 목적이 좋고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Spurgeon)

셋째, 주님께서 매우 인정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시다는 것을 우리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욥의 이야기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욥에게 잔인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인정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하나님은 아주 정당한 이유만으로 고통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 하나님은 사탄이 욥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하셨기 때문에
  • 하나님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욥의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그를 붙잡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욥에게 매우 인정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셨다. 왜냐하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사탄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놀라운 것을 성취했다. 욥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훌륭하고 축복받은 사람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욥기의 시작에서 욥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끝에서는 더 좋을 사람이 되었다. 그는 전보다 품성이 좋아지고 겸손해졌으며 축복도 받았다 - 우리가 모든 욥의 삶을 살펴볼 때, 우리는 자비로운 주께서 욥의 삶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유리하게 이끌어내신 것을 보게 된다. 한 손으로 시험을, 다른 손으로 도움이 되신 하나님 (Spurgeon).

결국 욥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탄은 유혹자가 아니라 시험자라는 설명입니다.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탄을 사용하셨는데 유혹을 하기 위함이 아닌 시험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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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But above all things, my brothers, don’t swear— not by heaven, or by the earth, or by any other oath; but let your “yes” be “yes”, and your “no”, “no”; so that you don’t fall into hypocrisy.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12. 내 형제 여러분, 그러나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이나 땅이나 혹은 그 밖에 다른 이름으로 맹세하지 마십시오. 그저 '그렇다'는 것에 '그렇다', '아니다'는 것이 '아니다'라고만 하십시오. 그래야 위선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l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내 형제 여러분, 그러나 맹세하지 마십시오 (12a절). 야고보가 이 책을 썼을 때 많은 유대인들은 "구속력 있는 맹세"와 "구속력이 없는 맹세"를 구별했다. 신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은 맹세는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서약을 사용하는 것은 거짓말을 할 때 "등 뒤로 손가락을 교차하는(행운을 비는)" 방법이었다. 야고보가 비난한 것은 이런 종류의 맹세들이다.

"하늘이나 땅이나 혹은 그 밖에 다른 이름으로 맹세하지 마십시오" (12a절). 야고보는 산상수훈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반복하였습니다 (마 5:34-37).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맹세하지 말라. 하늘이나 땅이나 네 머리로도 하지마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 5: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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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야고보서가 생각보다 깊이가 많이 깊고 어렵습니다. 행간에 숨은 뜻들도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오래 참고 맹세하지 말라 합니다. 땅의 소중한 열매를 기대하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와 같이 오래 참고 마음을 굳건히 하고 기다리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름으로든 맹세하지 말라 합니다. 머리로도 하지 말라 합니다. 입으로만 '네', '아니요' 할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대답하기를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언행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james-57-10/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ames-5/  
http://goodtvbible.good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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