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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이사야(Isaiah)42:1-25(하나님의 계획: 심판과 회복)

by 미류맘 202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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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인 '주의 종'을 통해 이방에 정의를 베풀고, 이를 통해 새 노래로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들의 불순종을 심판으로 쏟아 부으셨으나 회복 또한 하나님의 계획에 있습니다. 

 

1.  “Behold, my servant, whom I uphold; my chosen, in whom my soul delights—I have put my Spirit on him. He will bring justice to the nations.

주의 종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을 보아라. 내가 택한 자, 그 안에서 내 영이 기뻐한다.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으니, 그가 민족들에게 정의를 베풀 것이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내가 붙드는 나의 종(ebed)을 보아라. 내가 택한 자" (1a절).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과 먼 땅의 사람들을 부르시며 '나의 종'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ebed'라는 단어는 노예(slave: 출 21:20-21) 또는 봉신왕(vassal king: 삼하 10:19), 종(individual subject: 창 21:25) 또는 종속국(tributary nation: 대상 18:2, 6, 13)을 가리킬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이 용어는 종속과 노예로 특징지어지는 개인 또는 집단을 가리킨다."(Lindsey)

맥락으로 보아 예수에 대한 명확한 언급임을 보이기 때문에 New King James Version은 Servant를 올바르게 대문자로 쓴다. 추가적으로, 마태는 이사야 42:1-5로 인용하면서 그것은 예수 안에서 실현된 예언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마 12:16-21). 그러므로, 주님은 모든 백성에게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라고 명하신다.

예수는 스스로를 종이라고 말씀하셨다 (마 20:25-28절, 마 23:11, 마 9:35, 마 10:43-45). 베드로는 그의 사도행전 3장 설교에서 우리 구세주에게 '그의 종 예수' (행 3:13, 3:26)라는 칭호를 준다. 4장에서 하나님의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의 거룩한 종 예수에 대해 말한다 (행 4:27, 4:30). 그러나 예수는 단순한 종이 아니다. 예수님은 '종(The Servant)'이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 종(My Servant)'으로 보아야 한다.

주의 종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많은 것들 중에서, 우리는 그를 종(The Servant)으로 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 20:26-28):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종이 되게 하셨다 말씀하실 때, 그것은 종이 되는 것이 선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섬기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종의 본질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이것은 예수님에게는 분명 사실이었지만, 주께서 그의 모든 종들을 다루시는 방식에서도 사실이다. 그는 그의 종들을 붙들 것을 약속한다. 누군가의 종이라면, 그 종은 주인에게 완전히 봉사하고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주인도 종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 주님은 우리를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부르실 수 있다.

"내가 택한 자, 그 안에서 내 영이 기뻐한다" (1b절). 예수는 궁극적인 택하는 자이고, 택함을 받는 것은 정말로 예수 안에서 선택되는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4). 하나님이 누군가를 택할 때, 그의 영혼은 그로 인해 기뻐한다. 만약 우리가 세상의 창조 이전에 예수 안에서 선택된다면, 하나님은 "내 영혼이 당신으로 인해 기뻐합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으니" (1c절).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시고 성령의 힘으로 사역을 하셨다."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6).

"그가 민족들에게 정의를 베풀 것이다" (1d절). 사역의 종인 메시아는 유대인들에게만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한 이방인들에게 정의와 의로움을 배달하는 사역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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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e will not shout, nor raise his voice, nor cause it to be heard in the street.
3.  He won’t break a bruised reed. He won’t quench a dimly burning wick. He will faithfully bring justice.
4.  He will not fail nor be discouraged, until he has set justice in the earth, and the islands will wait for his law.”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2. 그는 외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 들리지 않게 한다. 3.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진실로 정의를 행할 것이다. 4. 그는 세상에서 정의를 세울 때까지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먼 나라도 그의 율법을 기다릴 것이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sermonwriter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그는 외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 들리지 않게 한다” (2절). 2-3절은 종의 태도와 목적을 전통적인 권력자의 태도와 목적과 대조한다. 첫 번째 대조는 종이 자기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기 위해 과시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주인이 오기 전에 나발을 불지 않을 것이고, 그의 일에는 과장이나 허세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이 하나님이 힘을 주고 하나님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조용히 일을 해 나갈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3a절). 이것은 종과 더 전통적인 권력자들 사이의 두 번째 대조이다. 전형적으로 후자는 권력을 탐내고 아낌없이 사용하여 권력을 유지하며, 종종 가난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 박탈된 사람들 등 취약한 사람들을 짓밟는다.

이 구절에서,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등불"은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을 위한 은유이다. 이것들은 상한(쉽게 부러지는) 갈대들과 꺼져 가는(공기가 부족해서) 등불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에 비유하는 강력한 은유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등불에는 친숙하지 않지만, 취약한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 노숙자들, 박해나 인종 청소의 피해자들, 그리고 권력 있는 개인, 기업 또는 정치 기구 등에 대면하여 속수무책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현실과는 매우 친숙하다. 전통적인 권력자와 달리, 종은 상한 갈대를 부러뜨리기 위해 만지거나, 불타는 심지를 꺼트리기 위해 만지지 않는다. 그는 사회의 불우한 구성원들에게 매우 민감함을 보일 것이다. 예수님은 만질 수 없는 사람들을 만지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이런 종류의 감수성을 모델로 삼았다. 교회는 전성기에 그의 본보기를 모방했다.

“(그는) 진실로 정의를 행할 것이다” (3b절). 우리는 다시 한번 여호와의 정의에 대한 우려를 듣게 되는데, 여호와의 뜻에 따를 때 생겨나는 일종의 올바른 관계, 즉 가난한 자, 약한 자, 취약한 자를 위한 정의를 이끌어낼 때 생겨나는 올바른 관계이다.

그는 세상에서 정의를 세울 때까지” (4a절). 이 구절에서 세 번째로, 우리는 '정의'라는 단어를 읽는다. 여호와는 우리가 정의의 중요성을 놓칠 수 없도록 계속해서 반복한다. 정의는 종의 임무이고,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종, 즉 예수의 모든 제자의 사명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4b절). 종은 상한 갈대를 꺾거나,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나, 그 자신이 부러지거나 꺼지지도 않는다. 그의 세심함과 부드러움은 나약함이 아니라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 종은 인내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의 일은 쉽지는 않겠지만, 그는 장애물로 인해 그가 해야 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종은 단순히 정의를 추구하거나 실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세울 것(establish)이다, 즉 그것이 일어나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종은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 (말 3:3)이고,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 3:2-3).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이 뜨겁게 타오르고, 우리들 대부분은 그것을 피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은 불순물을 태워 우리를 주 앞에서 의롭게 만든다. 우리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을 고통을 주면서도 생명을 동시에 주는 외과용 메스에 비유할 수 있다.

먼 나라도 그의 율법을 기다릴 것이다” (4c절). '섬'(해안 지대: NRSV버전)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이방인, 특히 이스라엘이나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우상이 무력하다는 것을 보고 (41:21-29),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환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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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us says God Yahweh, he who created the heavens and stretched them out, he who spread out the earth and that which comes out of it, he who gives breath to its people and spirit to those who walk in it.
6.  “I, Yahweh, have called you in righteousness, and will hold your hand, and will keep you, and make you a covenant for the people, as a light for the nations;
7.  to open the blind eyes, to bring the prisoners out of the dungeon, and those who sit in darkness out of the prison.
8.  “I am Yahweh. That is my name. I will not give my glory to another, nor my praise to engraved images.
9.  Behold, the former things have happened, and I declare new things. I tell you about them before they come up.”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5.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그 분은 하늘을 창조하시고 펼치시고, 땅과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펼치시고, 땅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고,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 분의 말씀이다. 6. 나 여호와가 의로움으로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너를 지켜, 백성의 언약과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다. 7.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서 죄수들을 이끌고, 어둠 속에 앉은 자들을 감옥에서 이끌어 낼 것이다. 8. '나는 여호와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내 찬송을 새긴 우상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9. 보라, 이전 것들이 이루어졌고, 이제 나는 새로운 일들을 선포한다. 그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sermonwriter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여호와 하나님(ha-el)께서 말씀하신다" (5a절). "El" 그 자체는 신의 총칭이며, 어떤 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ha-el)"은 "하나님"을 의미하며 히브리 성경에서 유일한 참된 신을 가리킨다. 'I AM WHO I AM'를 뜻하는 히브리 동사 'to be'에서 유래한 'YHWH'나 '여호와'를 더하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름을 묻자,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YHW 또는 "I AM WHO I AM" (출 3:14)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경의를 표하여, 유대인들은 종종 YHWH를 말하기를 거부하고 대신 "아도나이(Adonai)"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의 주님"을 의미한다.

그 분은 하늘을 창조하시고 펼치시고, 땅과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펼치시고, 땅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고,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5b절). 이것들은 창세기 1장에서 언급되고 창조 순서와 관련이 있는 사건들이다. 여호와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이 창조의 능력 -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가 하는 일도 헛것" (41:24), "이 모든 우상들은 다 헛되며, 아무것도 아니다. 부어 만든 형상은 바람이요 혼돈" (41:29) - 은 우상과 직접적인 대조를 이룬다. 

나 여호와” (6절). 5절은 말하는 사람이 여호와라 명시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다시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사 42:8-9)

의로움으로” (6b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의(justice)와 의로움(righteousness)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둘 다 올바른 행동을 수반하지만, 이 올바른 행동은 궁극적으로 의로우신 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는 언약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의로움이 성장하게 된다.

너를 불렀다”(6c절). 여기서 사용된 "불렀다"(called)는 서비스 요청과 관련이 있다. 일찍이 하나님은 모세(출 3:4-10)와 이스라엘(출 19장)을 부르셨고 사무엘(삼상 3:1-14)을 부르셨다. 여기서 하나님은 '종 야곱-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부르심에 대해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너를 지켜” (6d절). 여호와는 종 이스라엘을 지시 없이 사역하도록 보낸 것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그 일에 참여했고,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으며, 매우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도록 율법을 주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 동안 식량과 물을 제공했고 여호와가 많은 적들을 물리쳤다.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망명에 처했을 때에도 이스라엘은 가혹한 징벌만큼이나 고통을 면할 수 없었다.

"백성의 언약과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다" (6e절). 이스라엘의 언약 지위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에서 시작되었다. 그 언약을 세우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2-3).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특권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호와는 그것을 특권이 아닌 사역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또는 우리)은 민족들, 즉 이방인들에게 빛이 될 것이다.

여호와는 종을 "백성의 언약과 민족들의 빛"으로 만들 것을 약속한다. 그러므로 종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는 도구가 된다. 여기 있는 함축된 표현들은 메시아적이다.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서 죄수들을 이끌고" 이것은 육체적인 소경과 감금이라기보다는 영적인 것이다. 맹인들은 "깎아 만든 우상을 믿는 자" (17절)와 "구덩이 속에 갇힌 사람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 (22절)과 동일시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이 멀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보도록 창조하셨다. 그는 우리를 어둠 속에서 살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빛 속에서 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는 우리를 감금된 상태에서 살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자유 속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이는 올바르게 놓인 믿음과 의로운 삶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자유이다.

"나는 여호와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8a절). 다시 한번, 하나님은 그의 이름인 위대한 "I AM"을 언급하며, 지금 말하고 있는 것에 권위를 부여한다.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v. 8b).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놀라운 존재의 영광 -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18-20)이다. 너무나 웅장한 영광이어서 모세는 산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노출된 후 그의 빛나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베일을 써야 했습니다 (출  35:29-35). 아무도 신의 영광을 볼 수 없고, 아무도 그것을 공유할 수 없다.


내 찬송을 새긴 우상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v. 8c). 이 우상에 대한 언급은 우리를 이전의 장으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그 장에서는 여호와가 우상들에게 그들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41:21-29). 여호와는 "이 모든 우상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아무것도 아니다. 부어 만든 형상은 바람이요 아무 쓸모도 없다" (41:29)라고 말씀하시면서 결론을 내리셨다.

보라, 이전 것들이 이루어졌고” (9a절). 과거에, 여호와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했고, 그것들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여호와의 말은 강력하고 믿을 만하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일들을 선포한다” (9b절). 여호와는 앞 장에서 우상들에게 도전할 때 말씀하셨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말하고 선포하라. 이전의 일도 어떤 것이었는지 말하라. 그러면 우리가 그것들을 살펴서 그 결과를 알아보겠다. 아니면,  앞으로 올 일들을 우리에게 말하라" (41:22). 이제 여호와는 우상들이 할 수 없는 것 - 즉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에게 일러 주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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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Sing to Yahweh a new song, and his praise from the end of the earth, you who go down to the sea, and all that is therein, the islands and their inhabitants.
11.  Let the wilderness and its cities raise their voices, with the villages that Kedar inhabits. Let the inhabitants of Sela sing. Let them shout from the top of the mountains!
12.  Let them give glory to Yahweh, and declare his praise in the islands.
13.  Yahweh will go out like a mighty man. He will stir up zeal like a man of war. He will raise a war cry. Yes, he will shout aloud. He will triumph over his enemies.

새 노래로 찬송하라

10.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10.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송하여라. 땅 끝에서부터 그를 찬송하여라. 너 바다로 내려가는 사람들아,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주민들아! 1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아, 게달 사람들이 사는 마을들아, 소리를 높여라! 셀라의 주민들아 노래하라. 산 꼭대기에서 크게 외쳐라. 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라. 섬들 안에서 그의 찬송을 전파하라. 13. 여호와께서 용사처럼 전진하신다. 전사처럼 용맹을 떨치신다. 전쟁의 함성을 높이신다. 주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며, 그 대적을 물리치신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송하여라" (10a절).  찬양의 노래이기 때문에 시편과도 같이 들린다. '종'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은 너무나 영광스러워서 새 노래로 주님을 찬송해야 한다. 

"섬들과, 거기에 사는 주민들아!" (10c절). 누가 이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할까? 종의 일에 감동을 받은 모든 사람들 - 해안 지대도 종의 축복을 받았으니 (42:4), 그들도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용사처럼 전진하신다" (13a절). 새 노래의 날은 주님께서 모든 거짓 신들을 이기는 날이다. 그는 적들을 물리칠 것이다.

"전사처럼 용맹을 떨치신다..." (13b절). 그는 함성을 높이신다. 주께서 큰 소리로 외치신다. 해산하는 여인처럼 소리 지르신다... 주님은 이 심판의 일을 정력적으로 하신다. 주께서 땅을 바로 세우실 때, 열정으로 행하신다.

예수님이 처음으로 오실 때는 부드럽고 낮았다: "그는 외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 들리지 않게 한다" (사 42:2). 두 번째 오시는 것은 시끄럽고 과시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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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I have been silent a long time. I have been quiet and restrained myself. Now I will cry out like a travailing woman. I will both gasp and pant.
15.  I will destroy mountains and hills, and dry up all their herbs. I will make the rivers islands, and will dry up the pools.
16.  I will bring the blind by a way that they don’t know. I will lead them in paths that they don’t know. I will make darkness light before them, and crooked places straight. I will do these things, and I will not forsake them.
17.  “Those who trust in engraved images, who tell molten images, ‘You are our gods’ will be turned back. They will be utterly disappointed.

구원의 약속

14.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15.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그 모든 초목들을 마르게 하며 강들이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17.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14.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고 잠잠하고 참았으나, 이제 해산하는 여인과도 같이 부르짖을 것이다. 숨이 차고 헐떡일 것이다. 15.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고, 그 초목들을 모두 시들게 하겠다, 강들이 섬이 되게 하고, 호수를 마르게 할 것이다. 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고, 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하겠다. 그들 앞에서 암흑을 빛으로 바꾸고, 굽은 곳들을 곧게 할 것이다. 내가 이런 일들을 행하여 그들을 저버리지 않겠다.' 17.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고 부어 만든 우상에게 '당신들은 우리의 신들입니다' 하고 말하는 자들은 물러날 것이다. 그들은 크게 수치를 당할 것이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고" (14a절).  어떠한 장애물도 주님의 일을 방해할 수 없다. 산과 언덕도 그를 방해할 수 없다. 강과 호수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다. 맹인들도 그의 계획에 방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는 숭배자들이 크게 수치를 당하고 물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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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Hear, you deaf, and look, you blind, that you may see.
19.  Who is blind, but my servant? Or who is as deaf as my messenger whom I send? Who is as blind as he who is at peace, and as blind as Yahweh’s servant?
20.  You see many things, but don’t observe. His ears are open, but he doesn’t listen.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다

18.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19.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18. 너희 못 듣는 사람들아, 들어라! 너희 보지 못하는 사람들아, 잘 보아라! 19.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내가 보낸 심부름꾼보다 더 듣지 못하는 자가 누구냐? 내가 택한 사람보다 더 눈먼 사람이 없고, 여호와의 종보다 더 눈먼 사람이 없다. 20. 네가 많은 것을 보나 관찰하지 않는다. 그의 귀가 열려 있으나, 그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너희 못 듣는 사람들아, 들어라! 너희 보지 못하는 사람들아, 잘 보아라!" (18절). 주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귀머거리와 맹인은 누구일까? 그들은 하나님 백성 중에 있는 영적 귀머거리와 맹인들이다. 주님은 이방 사람들 중에서 맹인들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42:16). 이제, 주님은 맹인에게 '나의 종'이라 부르고, 귀머거리를 '나의 심부름꾼'이라고 부른다. 분명히, 맹인은 좋은 종이 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귀머거리도 좋은 심부름꾼이 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네가 많은 것을 보나 관찰하지 않는다" (20a절). 이것은 앞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마치 볼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관찰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인정할 수 없는 한, 영적으로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의 귀가 열려 있으나, 그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20b절). 치료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상태를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알고,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알 때, 그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할 지 알게 되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 

예수가 장님으로 태어난 사람을 치료했을 때, 그는 영적인 실명
과 그 치료법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경우를 이용했다. 예수님의 진단으로는, 자신이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들의 실명을 치유할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거기서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도 앞을 보지 못한단 말이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죄가 없겠지만, 지금 너희가 '우리는 본다'라고 말하니 너희 죄가 아직 있다" (요 9: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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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It pleased Yahweh, for his righteousness’ sake, to magnify the law, and make it honorable.
22.  But this is a robbed and plundered people. All of them are snared in holes, and they are hidden in prisons. They have become captives, and no one delivers; and a plunder, and no one says, ‘Restore them!’
23.  Who is there among you who will give ear to this? Who will listen and hear for the time to come?
24.  Who gave Jacob as plunder, and Israel to the robbers? Didn’t Yahweh, he against whom we have sinned? For they would not walk in his ways, and they disobeyed his law.
25.  Therefore he poured the fierceness of his anger on him, and the strength of battle; and it set him on fire all around, but he didn’t know; and it burned him, but he didn’t take it to heart.”

21.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22.  이 백성이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되돌려 주라 말할 자가 없도다
23.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
24.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

"21.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움으로 인해  율법을 높이셨고, 또 백성이 율법을 존중하기를 바라셨다. 22. 그러나 이 백성이 빼앗기고 약탈을 당해, 모두가 덫에 걸렸고 감옥에 갇혔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 구할 자가 없었다. 약탈을 당했으나 '그들을 돌려주어라!' 하고 말하는 자가 없다. 23.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24. 야곱이 노략을 당하게 둔 이가 누가였으며, 이스라엘을 약탈자에게 넘긴 이가 누구였느냐? 바로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다. 백성이 주님의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고, 그의 법에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 25. 그래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셨다. 사방에서 불이 이스라엘을 덮었으나 그는 알지 못했고, 불이 그를 태웠으나 그는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 아 래(인용 및 편집: enduringword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움으로 인해  율법을 높이셨고, 또 백성이 율법을 존중하기를 바라셨다" (21절). 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의로움을 가져오셔서 율법을 높이셨고, 또 이스라엘이 그 율법을 따르기를 바라셨다.

새로운 언약 아래서, 우리는 율법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오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율법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바울은 말했다: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롬 7:12).법의 약점은 율법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율법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목적, 즉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을 드러내고,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예수 안에서 구원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그러나 이 백성이 빼앗기고 약탈을 당해, 모두가 덫에 걸렸고 감옥에 갇혔다" (22a절).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바라보시고,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그들에게 가한 고통과 황폐함을 본다. 그들은 도둑맞고 약탈당했고, 먹잇감이 되었고, 아무도 구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아무도 "돌려주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야곱이 노략을 당하게 둔 이가 누가였으며, 이스라엘을 약탈자에게 넘긴 이가 누구였느냐" (24a절). 이사야의 대답은 거의 충격적이다. 우리가 죄를 지은 대상은 바로 주님이 아니었나?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 그리고 노략과 약탈로 그들을 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 소경과 영적 귀머거리가 되어 이를 깨닫지 못했다.  

"백성이 주님의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고, 그의 법에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 (24b절). 이스라엘의 고통스럽고 낮은 지위는 그들을 주님께 돌려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주님은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 쏟아 부으셨다. 그러나 백성은 알지 못했고,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사방에서 불이 이스라엘을 덮었으나" (25b절). 주님의 이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불같이 느껴졌지만, 이스라엘은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인이 받을 불 시험의 고난'을 언급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벧전 4:19).

불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고 마음의 온화함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에 저항할수록 불은 더 타오를 것이다! 베드로가 말한 대로 우리는 응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벧전 4:19). 하나님의 시련의 불길이 우리의 삶의 범죄와 불순함을 태워 불살라버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를 더 불결하고 더 완고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유다 또는 우리의 심판도 하나님의 계획에 계셨고, 회복과 구원도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백성을 벌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세우실 수 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보혈의 힘으로 회복과 구원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신 이유는 그들을 저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와서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매일성경 공부 내용이 어려워서 해외 성경학자의 해설을 위주로 번역.편집 후 공부해서 올립니다. 직역 위주의 번역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하루하루 할 수록 어려운 성경공부입니다. 공부가 아닌 연구가 되고 있습니다. '종'이 우리가 주님의 종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하나님의 종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요?

종된 우리는 주인이 누군지 알아야 하고 종된 신분으로 해야 될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주인이 아닌 종을 허락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선택할 것이 별로 없는 나약하고 결정할 수 없는 종의 신분임을 고백합니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isaiah-421-9-commentar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isaiah-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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