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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빌레몬서(Philemon) 개요 -동영상 및 한글/영어 자막(BibleProject)

by 미류맘 202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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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오묘한 시의 서식으로 작성된 요엘서를 끝내고, 바울 서신 중 가장 짧은한 장으로 구성된  빌레몬서 묵상을 준비합니다. 짧은 요엘서의 성격과는 달리 심오하고 어려운 신학적 내용은 없지만 '하나님 아래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옥중신서로 바울이 같은 동료 사역자 빌레몬에서 보내는 이 편지는 바울과 빌레몬, 그리고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를 바울이 몸소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칭찬(1-7절)과 당부(8-21절), 그리고 축복(22-25절)으로 구성된 한 장의 빌레몬서를 소개하는 바이블 프로젝트의 동영상과 한글 및 영문 자막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아래)

동영상 소스: https://www.youtube.com/watch?v=aW9Q3Jt6Yvk

Paul's letter to Philemon. It was written during one of Paul's many imprisonments. It is actually his shortest letter in the New Testament but don't let its size trick you. It is actually one of the most explosive things that Paul ever wrote.
Here is the backstory that we can piece together from details within the letter.

바울의 편지 - 빌레몬서
빌레몬서는 바울의 수감기간에 쓰여진 편지들 중 하나로 신약의 편지들 중 그의 가장 짧은 편지입니다. 하지만 짧다고 속지 마세요. 빌레몬서는 바울이 쓴 편지들 중 가장 격정적인 내용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 속에서 세부적으로 종합해볼 수 있는 배경스토리가 있습니다

Philemon was a well-to-do Roman citizen from Colossae who, likely, met Paul during his mission in Ephesus. And he became a follower of Jesus. Then later, when Paul's coworker Epaphras started a Jesus community in Colossae, Philemon became a leader of a church that met in his house. Now, Philemon, like all household patriarchs in the Roman world, owned slaves, one of whom was named Onesimus.

빌레몬은 골로새 출신의 부유한 로마시민이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선교하던 바울을 만난 것으로 추정 됩니다. 그리고 빌레몬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 후에 바울의 동역자 에바브라는 골로새에서 예수 공동체를 개척하고 빌레몬은 교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교회는 그의 집에서 만나 교제했습니다. 빌레몬은 로마 세계에서 집안의 가부장으로 오네시무스란 이름의 노예를 소유했습니다.

At some point, these two had a serious conflict. Onesimus wronged Philemon in some way. Maybe it was theft or maybe he cheated him. We do not exactly know. But afterwards, Onesimus ran away. Eventually Onesimus came to Paul in prison, likely to appeal for help. In the process, he became a follower of Jesus and then a beloved assistant of Paul. 

그런데 어느 지점에선가 그 둘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오네시무스는 빌레몬에게 잘못을 저지릅니다. 아마도 도둑질이었거나 어쩌면 그는 빌레몬을 속였을 수도 있죠. 우리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그 이후 오네시무스는 달아납니다. 결국 오네시무스는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가서 도움을 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런 다음 바울의 총애받는 조력자가 됩니다.

So Paul finds himself in a very difficult and delicate situation as he writes this letter. He is going to ask Philemon not just to forgive Onesimus and receive him back but to embrace him as a brother in the Messiah and no longer as a slave. Here is how he does it.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무스를 단지 용서해주고,
그를 돌아오게 하도록 할뿐만 아니라, 더이상 노예로써가 아닌 예수님 안에서 형제로 그를 품으라고 요청합니다. 바울이 어떻게 했는지 보시죠.

Paul opens with a prayer first praising Philemon and thanking God for the love and faithfulness he has shown to Jesus and to his people. He then paves the way for his request with this line, "I pray that the partnership that springs from your faith, may effectively lead you to recognize all the good things that work in us leading us into the messiah." 
A key word here is "partnership" or, in Greek, "koinonia." It means "sharing" or "mutual participation". It is when two or more people receive something together and share in it, becoming partners. 

바울은 첫째로 빌레몬을 칭찬하는 기도로 편지를 시작하며, 그가 예수와 그의 성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보여준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그의 부탁을 위해 이 문구로 길을 닦아놓습니다. "그대의 믿음의 사귐이 더욱 깊어져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일을 그대가 깨달아 그리스도께 이르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이 문장에서 키워드는 '교제' 또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는 '나눔' 또는 '공동 참여'를 뜻합니다. 이는 두명 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무언가를 받고 나누어 같이 파트너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요.

Paul says that faithfulness to Jesus means recognizing that all of his followers are equal partners who share together in the gift of God's love and grace. For Paul, this experience of koinonia among Jesus' followers is not just an idea that you think about. It is something that you do in your relationships, which moves Paul onto his request.

바울은 예수님께 이르는 믿음이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 동등하며 함께 나누고,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걸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예수님의 성도들 사이에서 코이노니아적 경험은 단지 당신이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의 관계들 속에서 행동하는 것이며 이러한 관계는 바울이 간청하도록 만듭니다.

He finally brings up Onesimus. He says that he's become Paul's "child" in prison, meaning that Paul led Onesimus to dedicate his life and allegiance to Jesus. So Paul and Onesimus are now family members in the Messiah. He has been serving Paul faithfully in prison. Even though Paul wants to keep him around, he knows this unresolved conflict with Philemon has to be reconciled if they say that they are followers of Jesus, which moves Paul onto his bold request: that Philemon receive Onesimus back, no longer as a slave but as more than a slave, as a beloved brother in the Lord. 

그는 결국 오네시무스 문제를 꺼냅니다. 그는 오네시무스가 감옥에서 그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울은 오네시무스가 그의 삶을 주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도록 이끌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오네시무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오네시무스는 바울을 감옥에서 신실하게 섬기고 있었고, 바울도 그를 곁에서 머무르게 하고 싶었음에도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려면, 그는 빌레몬과의 이 풀리지 않은 갈등이 풀려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문제는 바울이 담대한 간청을 하도록 합니다. 즉 빌레몬은 오네시무스를 되돌려받고 더 이상 노예로서가 아니라, 노예 그 이상인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로 여길 것을 말합니다.

This is a really tall order. Under Roman law, Philemon had every legal right to have Onesimus punished or put in prison. Paul is not only asking him to forgive Onesimus, but to welcome back his former slave into Colossae as a social equal, as a family member. This is way more than kindness. This is unheard of. It is freeing a slave and then treating them like a family member. It upsets the status quo of the Roman social order. Why should Philemon do such a thing? 

자 이건 꽤 무리한 요구입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빌레몬은 오네시무스를 벌주거나 감옥에 가둘 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단지 오네시무스를 용서할뿐만 아니라, 이전에 자신의 노예였던 그를 골로새에서 자신과 동등한 가족으로 환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친절 이상의 방식이며, 듣도보도 못한 것입니다. 노예를 자유롭게 해주고 그를 가족처럼 대하라는 건 당시의 로마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일입니다. 왜 빌레몬이 이런 일을 해야 할까요?

Here, Paul pulls a brilliant move. He recalls that keyword from the opening prayer. He says, if you are truly a partner with me... It's that Greek word "koinonia" again, then welcome Onesimus as if he were me. If he has wronged you or owes you anything, charge it to me and I will repay it. 

여기서 바울은 신의 한 수를 둡니다. 그는 편지 서문에 기도문으로 썼던 키워드를 다시 씁니다. 그는 "만약 빌레몬 당신이 나와 함께하는 동역자라면.." 여기서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란 말이 다시 나오는데요. "오네시무스를 나처럼 맞아주시오". "그리고 만약 그가 잘못했거나 당신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나에게 청구하시오 내가 다 갚겠소".

In this request we see the heart of Paul's gospel message being acted out. First of all, it is about reconciliation.
It is just like he told the Corinthians, "In the Messiah, God was reconciling the world to himself, not counting people's sins against them." In this situation, Paul is putting himself in the place of Jesus. He will absorb the consequences of Onesimus' wrongdoing. He will pay the costs so that he can be reconciled to Philemon.

이 간청을 통해 우리는 바울의 복음적 메시지가 행동으로 실행된 걸 봅니다. 첫째로 이것은 화목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에서 그가 말한 것인데요 (고린도후서 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바울은 예수님의 위치에 그를 놓습니다. 그는 오네시무스의 범법 행위의 결과를 흡수할 것입니다. 그는 대가를 치루고 빌레몬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But Paul's message was about more than just a legal transaction. It is also about koinonia. Onesimus and Philemon and Paul are all equals before God. They all share the same need for forgiveness. The ground is level before the cross, which means that Philemon and Onesimus can no longer relate to each other as master and slave. They are family members. They are brothers in the Messiah.

하지만 바울의 메시지는 법적 거래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이는 코이노니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네시무스와 빌레몬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 안에서 동등합니다. 그들은 모두 죄사함에 대한 필요를 똑같이 나눕니다. 그래서 그 근본은 십자가 앞에 있습니다. 이는 빌레몬과 오네시무스는 더 이상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한 가족인거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As Paul told Philemon and the whole church of Colossae, in God's new family people are not Greek or Jewish or circumcised or uncircumcised or foreigners or uncivilized or slave or free. But the Messiah is all and is in all people.

또는 바울이 빌레몬과 골로새의 교회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주님 안의 새 가족은 헬라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고 할례받은 자, 할례받지 않은 자, 외국인도 아니고, 야만인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고 자유인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모든 것 그 자체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골3:11).

Paul closes the letter stating his confidence that Philemon will do even more than Paul has requested. He asks him to prepare a guest room because he wants to visit as soon as he gets out of prison. Then, with some final greetings, Paul ends the letter.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의 간청보다 더 행할 것이라며 자신의 확신을 표현하며 편지에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에게 게스트룸을 준비할 것을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리로 방문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바울은 편지를 마칩니다.

Paul's letter to Philemon is powerful for many reasons. It is the only letter where Paul does not explicitly mention Jesus' death or resurrection. This is not an oversight. He does not need to explain the cross with words because he is demonstrating it through his actions. Paul is embodying here the meaning of the cross. He has made himself the place through which Onesimus and Philemon are reconciled to God and then to each other.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는 여러가지 이유로 영향력 있습니다. 이 편지는 바울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유일한 편지입니다. 그건 실수가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에 대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의미를 여기에서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통해 오네시무스와 빌레몬이 하나님 안에서 서로 화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This letter also shows us that the implications of the good news about Jesus are extremely personal and never private. The fact that Philemon and Onesimus are now brothers in the Messiah makes their master-slave relationship totally irrelevant. The family of Jesus' people is the place where all are equal recipients of God's grace. It is a new kind of society or a "new humanity" as he called it in the letter to the Colossians  where people's value, social status is not defined by race or gender or social or economic class. 

이 편지는 또한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영향은 아주 개인적인 부분까지 미치며 또한 절대 은밀하지 않다는 걸 보여줍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무스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사실은 그들의 주종 관계를 전적으로 무관한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 공동체의 가족에 속해 있다면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동등하게 받는 수혜자들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사회 또는 새 사람이라고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부르던 것이죠.

In the Messiah there are simply new humans who are equal partners, who share together in God's healing mercy through Jesus. That is what Paul's letter to Philemon is all about.

예수 가족 안에서 사람들의 가치나 사회적 신분은 인종이나 성별, 또는 사회적이나 경제적 신분으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빌레몬서에서 말하는 내용입니다. 

동영상 소스: https://www.youtube.com/watch?v=aW9Q3Jt6Yvk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그저 새 사람이며,
예수를 통해 주의 치유하는 자비를 함께 나누는 동역자입니다."

- 바이블 프로젝트(Bible Proje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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