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옥중서신으로 동료 빌레몬에게 보내는 이 빌레몬서는 짧지만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서 잠시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그에게 돌려주면서 더 이상 종이 아닌 주님 안에서 한 형제로 영원히 받아줄 것을 간곡히 간청합니다.
1. Paul, a prisoner of Christ Jesus, and Timothy our brother, to Philemon, our beloved fellow worker,
인사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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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우리의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인 빌레몬과
빌레몬서는 바울의 옥중서신로 바울이 그의 동역자 빌레몬에게 그의 종을 위해 간청하는 서신입니다. 앞에 정리한 개요에서 적힌 글처럼 빌레몬서가 짧다고 속으면 안되는 "주목할 만하고, 각 낱말마다 무게가 있고 각 음절마다 내용이 있는"(존 트랩) 바울의 서신입니다.
이 짧은 편지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인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지도자로 부르지 않고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감옥에 갇힌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포로'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편지의 수신자인 빌레몬을 '동역자'로 호칭합니다. 외국은 한 성경학자는 감옥에서 그에게 채워있던 족쇄는 '예수님이 그에게 매어 주신 사슬이었다' 말합니다.
바울은 교회나 개인에게 13통의 편지를 썼는데 9통의 편지에서는 자신을 '사도'로 칭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에서 바울은 자신을 '예수의 포로'로 수신자인 빌레몬을 바울은 '우리의 사랑하는 동역자'로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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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o the beloved Apphia, to Archippus, our fellow soldier, and to the assembly in your house:
3.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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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하는 자매 압비아와 우리의 동료 군사인 아킵보와 그대 집의 모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외국의 한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였고, 아킵보는 그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가족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빌레몬에게 보낸 것이었고, 이 편지에서 바울은 예수를 만나 바울에게서 피난처를 찾은 도망친 노예에 대해 빌레몬에게 호소한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빌레몬의 아내가 집안 노예들의 감독관이었기 때문에, 그 편지에서 바울은 부인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부인도 노예에 대한 일상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 못지않게 결정의 당사자였다.
이 편지를 '빌레몬 집의 모임'으로 보내는데 당시 초기 기독교인들은 교회 건물을 지을 재산이 없었다. 유대인들에게는 회당이 있었지만 기독교인들은 신자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한 마을의 기독교인들은 다른 '가정 교회들'로 모였고, 그런 교회에는 예배를 감독하는 마을 "주교(bishop)"가 있었다. 성경dms '저의 집에 있는 교회'(로 16:5),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골 4:15)로 가정교회를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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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 thank my God always, making mention of you in my prayers,
5. hearing of your love, and of the faith which you have toward the Lord Jesus, and toward all the saints;
6. that the fellowship of your faith may become effective, in the knowledge of every good thing which is in us in Christ Jesus.
7. For we have much joy and comfort in your love, because the hearts of the saints have been refreshed through you, brother.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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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에 대하여 말하며 늘 감사드립니다. 5. 주 예수와 모든 성도들에 대한 그대의 사랑과 믿음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6. 그대의 믿음의 교제가 깊어져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당신이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께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그대를 통해 새롭게 되었으니, 우리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습니다.
6절을 여러 한글본과 영문본 읽어도 이해가 잘 안되어 외국 성경학자의 재번역을 어거지로 직역을 했는데 이렇게 됩니다.
"빌레몬이 자신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빌레몬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모든 선한 일)을 자신이 이해한 것처럼 믿음의 나눔이 효력을 발휘할 것을 원하면서 바울은 빌레몬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래도 모르겠습니다.
영어번역 성경도 버전이 얼마나 많은지, https://biblehub.com/philemon/1-6.htm 여기를 보면 한 구절만 보아도 머리가 정신없어집니다. 번역하다가 다른 버전 읽으면 더 혼동이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래 외국의 성경해설 사이트의 설명을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모든 효과적인 전도를 위한 기초입니다. 즉, 하나님에 의해 감동되고 변화된 삶의 넘쳐나는 것입니다. 빌레몬의 생애에 하나님은 모든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빌레몬과 그가 믿음을 공유한 사람들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런 선한 일을 이해한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예수께로 올 것입이다. 일부 신앙 나눔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모든 선한 일을 알지 못하거나 소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기본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전도하는 사람의 믿음이 깊을 때가 아니라,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선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인정할 때(아, 이 사람이 이렇게 변했는데... 이 사람이 스스로가 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사람을 변하게 해서 선한 일이 이 사람에게 일어났구나!), 그 때 비로서 제3자인 비신앙인도 예수께 올 수 있다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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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erefore though I have all boldness in Christ to command you that which is appropriate,
9. yet for love’s sake I rather beg, being such a one as Paul, the aged, but also a prisoner of Jesus Christ.
10. I beg you for my child, whom I have become the father of in my chains, Onesimus,
11. who once was useless to you, but now is useful to you and to me.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구하다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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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내가 그대에서 마땅한 것을 명령할 수도 있지만, 9. 사랑의 이름으로 오히려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나 바울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며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갇힌 몸이기도 합니다. 10. 내가 갇힌 중에 아버지가 된 나의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구하건데, 11. 그가 전에는 쓸모 없었으나, 지금은 그대와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부탁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간청(또는 명령; plea, order)할까? 생각하다가 '명령'이 아닌 '사랑'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할 수도 있었지만 사랑의 이름으로 간청(호소)하기로 결정합니다. 권위적인 명령이 아닌 지혜롭게 사랑의 이름으로 호소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나이든 사람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포로된 몸으로(노인과 죄수) 동정을 호소합니다. 자신이 지도자(leader)가 아닌 늙은이이고 감옥에 갇힌 몸(the aged, prisoner)임을 밝힙니다.
오네시모는 그의 주인 빌립보에게서 도망간 노예였습니다. 탈출 후, 그는 로마로 도망가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바울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비록 로마인들에게 가택연금되어 있지만, 바울은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이끌었습니다. 외국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대신하여 이 호소를 했을 때, 그는 로마 문화의 전통을 따랐다. 탈출한 노예의 보호를 허용하는 고대 그리스 법이 있었다. 바울은 노예가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설득하는 동안 노예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보호해주었고, 이제 이 문제를 빌레몬과 해결하고 있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내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개종자들을 '내 자식들'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바울은 그를 '전에는 쓸모 없었으나, 지금은 그대와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네시모가 '유익한, 이익'이란 뜻입니다. 그는 가택연금 기간 중에 있던 바울의 조수 역할을 해서 그에게 이익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쳤기 때문에 빌레몬에게는 쓸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바울과 빌레몬 모두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빌레몬이 바울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오네시모가 바울을 도왔다면 빌레몬도 도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위의 6절로 풀이가 될 것 같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유익한 설명이 있습니다(Barclay).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쓸모없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12. I am sending him back. Therefore receive him, that is, my own heart,
13. whom I desired to keep with me, that on your behalf he might serve me in my chains for the Good News.
14. But I was willing to do nothing without your consent, that your goodness would not be as of necessity, but of free will.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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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를 그대에게 돌려 보냅니다. 나의 분신인 그를 받아주기 바랍니다. 13. 그를 나와 함께 있게 하여 그대를 대신하여 내가 갇혀 있는 동안 복음을 위하여 나에게 시중들게 하고 싶었으나, 14. 그대의 승낙이 없이 나는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대의 선함이 억지가 되지 않고 자의로 되게 하기를 원함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 보내니, 나의 '분신(my own heart)'인 그를 받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도망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노예 소유주는 노예에 대한 완전하고 전적인 통제권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죄는 아마도 십자가형에 처했을지도 모습니다.
로마제국의 엄청난 수의 노예들을 고려했을 때, 그들은 탈출하거나 반항하는 노예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6천만 명에 달하는 노예가 있는 제국에서는 노예 반란에 대한 두려움이 끊임없이 있었다. 그러므로 탈출에 대한 법은 엄격했다. 붙잡혔을 때 도망친 노예는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F"라는 글자가 새겨진 붉게 달아오른 인두로 이마에 낙인찍힐 수 있다. (자료: https://enduringword.com/)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자신과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의 승락 없이는 바울은 아무 것도 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돌려보내겠습니다. 바울은 계속 요구하지 않고 빌레몬의 선함이 억지가 되지 않고 자의로 되게 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입니다.
바울의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노예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는지 기록에는 없지만, 분명히 주인에게 죄를 지고 도망쳐서 노예를 보호해 준다고 들은 로마로 도망쳤다? 그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는데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이렇게는 하지 않았을까요?
"빌레몬, 이 친구가 자네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로마로 도망왔네. (주님의 뜻인지) 내가 그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네에게 돌려보내는데 이 친구가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한 것을 알지. 그러나 그는 나에게 여기서 잘 했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네. 그래서 다시 돌려주었으면 하네. 힘들 건 알지만 좀 받아줄 수 없겠는가?"
"그를 그대에게 돌려 보냅니다. 나의 분신인 그를 받아주기 바랍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중하게 빌레몬의 승락을 구합니다. 그것도 종에 대한 선한 고려를 요구하면서 그 마음이 '억지'가 아닌 '자의'로 만들어서 말이지요. 바울의 선의를 받을 것을 빌레몬에게 요구하지 않고(하나님의 이름으로 명령이 아닌) 선한 자의로(사랑으로) 바울이 오네시모를 돌려 보내는 것을 이전 주인인 빌레몬의 선한 승락을 정중하게 구합니다.
바울의 빌립보서가 성경 중 가장 짧은 책 중의 하나인데 '짧다고 속지 말라!'는 이유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단어 하나하나에도 숨은 행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편지에서 바울은 권위(authority, power)를 넘은 진정한 우정(동료애, friendship, fellowship, partnership), 나눔(sharing)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어번역본마다 단어 선택이 다른데, 우리는 바울이 사용하는 단어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우정이 코이노니(koinōnia)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과 개입을 말합니다(6절). 6절을 번역하고 뜻 파악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동료 빌레몬에게 구한 그의 부탁이 주님 안에서의 요청이 되었다면 그것은 '명령'이었고 '억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 안에서 '승락'을 구했고 선한 '자의'가 되기를 간곡히 간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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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For perhaps he was therefore separated from you for a while, that you would have him forever,
16. no longer as a slave, but more than a slave, a beloved brother, especially to me, but how much rather to you, both in the flesh and in the Lord.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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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마 그가 잠시동안 그대를 떠나게 된 것은 그를 그대가 영원히 데리고 있게 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 주십시오. 내게는 특별히 그렇지만 육신과 주 안에서 그대에게는 더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가 잠시동안 그대를 떠나게 된 것: 바울은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가 주인에게서 도망친 기간을 '아마도 잠시동안 그를 떠난 기간'으로 말합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바울에게서 말하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그는 종의 도주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보았고 그의 동료 빌레몬도 그 목적을 보기를 구합니다. 아래은 인용.번역한 글입니다.
"아마도"라는 구절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울이 빌레몬에게 "빌레몬아, 하나님이 일하실 때 그분의 숨겨진 손을 내게 보여주셨으니,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받아들여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대신에, 아마도 바울의 마음이 이와 같다는 뜻일 것이다. "빌레몬아, 내가 보기에 하나님은 여기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 같다. 내가 보는 것을 너에게 말해줄께, 그러면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우리 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말하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그를 그대가 영원히 데리고 있게 하려는 것: 바울은 오네시모가 도망간 사건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위해 일하심을 봅니다. 주인 빌레몬은 종은 잃었지만 믿음의 사람 빌레몬은 형제 하나를, 그것도 영원한 형제 하나를 얻습니다.
이는 바울이 오네시모의 탈출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본 목적의 한 측면이었습니다. 빌레몬은 노예를 잃었지만, 기독교인 빌레몬은 형제 하나를 얻었고, 그는 영원히 그 형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한 형제인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다시 소개합니다. 종과 주인의 '주종관계'가 아닌 주님 안에서 평등한 '동등관계'에 있는 새로운 사람 오네시모를 다시 소개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종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내 형제를 종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도가 합법화 되었던 당시에 주종관계의 몰락은 혁명적인 시도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노예제도가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까지 지속되었으니 당시 바울의 사회적.문화적 혁명적 변화의 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아래는 '지위와 권위를 넘어서서 빌레몬서가 지도력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란 제목으로 토론을 하는데 매우 유용합니다(useful).
빌레몬에게 보내는 매우 짧은 바울의 편지에서 현대에 사는 우리는 권위(power, authority), 지도력(leadership)과 동료애(partnership, fellowship, friendship)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봅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종과 형제 사이를 방황하는 오네시모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네시모의 천성이 악한지 선한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가가 그들 사이의 숙제입니다.
그 세 명의 관계에서 바울은 중재자 하나님의 역할을 말합니다. 정의(justice)의 하나님은 둘 사이의 나눔(sharing)과 자비(mercy)를 말씀하십니다. A와 B의 관계에서 C를 대상으로 A가 B에게 무엇인가 부탁할 때, A가 권위를 내세우면 그것은 명령(order)이 되고, 사랑의 이름으로 구하면 간청(plea)이 됩니다.
우리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너를 낳았으니 우리는 주종관계이다. 너는 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대신에 '하나님의 은혜로 네가 나한테 왔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며 나아가는 영원한 파트너이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명령하지 말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격려하고(encourager), 도와주고(helper), 그리고 상생하는(partner)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저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어리석은 부모입니다.
짧은 바울의 편지가 관계에 대한 많은 추상명사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유용하지 않을 것(useless)을 유용하게(useful)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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