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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7:37-52(살아있는 물의 강)

by 미류맘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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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마지막 날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나에게 와서 마시라!' 초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무리의 반응은 찬반으로 극명히 갈리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냅니다. 

 

37. Now on the last and greatest day of the feast, Jesus stood and cried out, “If anyone is thirsty,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38. He who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from within him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39. But he said this about the Spirit, which those believing in him were to receive. For the Holy Spirit was not yet given, because Jesus wasn’t yet glorified.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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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명절의 가장 큰 날일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치셨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나에게 와서 마시라! 

초막절 마지막 날이 왔습니다. 출애굽 당시 40년 광야 생활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초막절은 장막절(Feast of Booths)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날 행사에서 예수님이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를 위해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이 명절의 일환으로 제사장들은 실로암 샘에서 제단까지 물을 나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물을 제공해 주신 것(출 17:1-7)을 기억한다. 잔치의 마지막 날은 '위대한 날'로, 사제들은 제단 둘레를 일곱 바퀴 돌면서 시편을 암송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시 118:25) 이 배경은 예수님이 왜 이 특정한 시기에 이런 특정한 말을 했는지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영적 굶주림과 영적 갈증을 치유하는 '생명의 빵'이라는 예수님의 주장(요 6:35)과 연결되어 있다. 바위에서 물이 나온 것은 제사장들의 의식처럼 상징일 뿐이다. 그 사건들은 예수님의 궁극적인 사역의 징조로 의도되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또한 사마리아 여인과 야곱의 우물(요 4:10–13)에서 나눈 대화와 유사하다.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안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는 예수께서 그를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 때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장막절의 마지막 날이자 가장 중요한 날에, 예수는 극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극적인 시간을 선택했다. 이날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물을 제공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성전으로 물을 운반했다(출 17:1-7). 예수님은 구원과 성령의 은유인 '살아있는 물'의 근원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이 순간을 사용하신다. 이것은 예수가 이전에 그의 가르침에서 공개적으로(요 6:35), 그리고 사적으로(요 4:10–13) 사용하였던 주제이다. 이후 신약성경 작가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묘사할 때 이 비유를 계속 끌어낼 것이다(계 2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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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Many of the multitude therefore, when they heard these words, said, “This is truly the prophet.”
41. Others said, “This is the Christ.” But some said, “What, does the Christ come out of Galilee?
42. Hasn’t the Scripture said that the Christ comes of the offspring of David,  and from Bethlehem, the village where David was?”
43. So there arose a division in the multitude because of him.
44. Some of them would have arrested him, but no one laid hands on him.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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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은 진정으로 선지자라" 말하였다. 41. 어떤 사람들은 "이분이 그리스도다."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말하였다. 

예수님의 설교가 사람들 사이에 분열과 다툼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무리 중 일부는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모세가 예언한 예언자(요 7:40)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세주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나올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서 '갈릴리 시골에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나오느냐?' 반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그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42. 성경에도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 중에서 나오고,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고 기록되지 않았느냐?" 43. 그래서 예수로 인해 무리 중에 편이 갈리게 되었다. 44. 그들 중에는 그를 체포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예수께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의 그룹과 마찬가지고 마지막 그룹도 성경을 언급합니다. 구약성경이 메시아가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미 5:2)에서 다윗의 후손 중에서 나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나사렛 예수로 알고 있고,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예수를 가운데 두고 다양한 해석, 논쟁의 거미줄은 풀릴 기미가 없고 계속해서 얽혀만 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논란' 그 이상입니다. 내용도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구절들이 있어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번역 및 편집해서 올립니다(아래): 

예수를 둘러싸고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도 다양하여 사람들 사이의 '분열'을 만들어낸다. 이 분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며, 사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이 이런 종류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 성경와 증거(요 7:31; 7:40-41)를 따를 의지를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을 거부한다(요 7:42). 또 일부는 성경을 받아들였지만 증거를 오해하거나 거부한다(요 5:39-40; 7:48). 물론 가장 강력한 요소는 각 사람의 의도에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진리를 보지 못할 것이다(요 7:17).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의 다양한 이유로 이러한 일련의 반응들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위에 성경학자에 의해 설명된 분열 상황에서 아무도 나서서 예수를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예수를 잡으려 시도한다면 그의 추종자와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의 폭동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이 보낸 경비병들은 입장이 달라 보입니다. 그들은 다른 이유로 (백성의 폭동에 대한 우려가 아닌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감동되어) 예수를 체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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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The officers therefore came to the chief priests and Pharisees, and they said to them, “Why didn’t you bring him?”
46. The officers answered, “No man ever spoke like this man!”
47. The Pharisees therefore answered them, “You aren’t also led astray, are you?
48. Have any of the rulers believed in him, or of the Pharisees?
49. But this multitude that doesn’t know the law is accursed.”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믿지 않다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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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성전 경비병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돌아오니 그들이 물었다 "왜 그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수군거림(요 7:12-13)에서 논쟁(요 7:32)으로, 그리고 전면적인 분열(요 7:43)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경비병들을 예수께 보냈습니다. 그들은 필요할 경우 예수를 강제로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들 또한 '예수께 손을 대지' 못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46. 경비병들이 대답했다.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47.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대답했다. "너희도 속은 것이냐? 48.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 중에 그를 믿는 사람이 있느냐? 

'왜 예수를 체포해서 데려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백성 동요나 폭동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이 체포하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을 분노하게 합니다. 예수와의 갈등에서 바리새인들은 세 가지 잘못에 빠졌습니다. 그것들은 자신의 전통에 대한 의존, 지식이 더 큰 영적 진리로 이어진다는 믿음, 그리고 오만의 잘못입니다. 예수가 행한 기적들, 성경의 기록과 같은 해석에서 그들은 진리가 아닌 자신의 자만으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경비병들의 납득되지 않는 설명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너희도 속았냐?' 묻습니다. 고등 교육을 받고 존경을 받는 지도자나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았느냐? 그들의 가장 큰 실수는 넘치는 자만심입니다. 아래는 성경학자의 설명인데 매우 핵심적인 설명입니다(아래): 

영적 오만의 궁극적인 형태는 여러분이 속해 있는 종파, 교파, 집단, 또는 당파가 너무 순수해서 그들이 어떤 것에 대해서도 틀릴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파 사람들이 격노한 이유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보낸 경비병들이 예수의 인상적인 말씀에 대하여 언급합니다(요 7:46). 다른 사람들이 증거(요 7:31)나 성경(요 7:40-42)을 논하는 동안,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조롱할 단 하나의 단순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파 사상에 따르면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만이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의 지식은 다른 모든 자의 지식보다 뛰어났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기 전에 하나님께 복종하려는 의지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이미 가르치셨습니다(요 7:17).

위의 설명을 보면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의 모습에서 오만한 현대 교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파 또는 집단은 무조건 맞기 때문에 너희의 관점과 주장이 틀리고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근거 없는 오만이 편견을 낳고, 편견이 논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바리새파에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자만이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적어도 그들 자신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우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이 믿지 않으면, 믿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같은 분노는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보낸 경비병들(요 7:32)이 돌아와서 예수님의 인상적인 말씀(요 7:46)에 대한 언급을 할 때 촉발되었습니다. 거만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가능한 유일한 설명은 예수를 배척하지 않는 사람은 속았기 때문에 바보라는 것입니다(요 7:47). 불행히도 현대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교단, 종파, 교회, 집단을 무죄로 받아들이고 단순히 '우리 중 하나'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배척할 때 같은 기본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을 읽으니 (소위 율법에 해박한)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고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저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조리는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현대 교회에서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발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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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Nicodemus (he who came to him by night, being one of them) said to them,
51. “Does our law judge a man, unless it first hears from him personally and knows what he does?”
52. They answered him, “Are you also from Galilee? Search, and see that no prophet has arisen out of Galilee.”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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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들 중 한 사람으로 밤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했다. 

바리새인들을 언급하면 우리는 우선 '비판적이고', '위선적이고', '교만하고', '굳어있는'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이러한 것들은 분명 많은 바리새인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시대에 바리새인들은 또한 매우 도덕적이고,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지성과 확신의 결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불행히도 그로 인해 그는 예수님에 관한 한 그의 동료들로부터 모욕과 조롱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와 예수를 체포하지 못한 부하들로 인해 분노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주요 근거는 순수한 자부심입니다. 자부심이 곧 그들의 법입니다: '그는 우리와 동의하지 않으니 그가 틀렸음이 틀림없다.'

51. "우리 율법이 사람의 말을 개인적으로 듣고 그가 한 일을 알아보지 않고 한 사람을 심판하는 일이 있소?" 

그러나 모든 바리새인들이 노골적인 위선자들이거나 비합리적인 이기주의자들은 아니었다. 사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존경받았던 이유는 그들이 전반적으로 총명하고 도덕적이며 교육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했다(요 5:18).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보낸 부하들이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요 7:46)을 언급할 때 그들은 분노하며 응답한다. 이 단계에서 니고데모가 제안한 모든 것은 그의 동료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예수는 마땅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슬프게도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맹목적으로 격분하여 이 제안을 즉시 거부합니다. 다음 구절에서 그들은 니고데모의 요구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갈릴리 예수처럼 그가 후진적이고 하층민임을 암시하며 그를 모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수하는 도전을 할 것이다.

 52.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당신도 갈릴리에서 왔소? 찾아 보시오,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갈릴리에서 온 니고데모'에 대한 언급은 모욕을 의미한다. 높은 교육 수준 외에도 바리새인들은 대부분 예루살렘 출신이었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주변 시골 출신의 사람들을 (비교적) 후진적이고 하층민으로 보았다. 니고데모에게 '당신도 갈릴리에서 왔소?'라는 질문은 그의 가족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혐오스러울 정도로 거만하게 굴고 있다.

또한, 성경은 사실 갈릴리에서 온 예언자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요나는 그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미 성경이 자기를 메시아(요 5:39-47)로 부른다고 언급하셨지만, 믿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증거로도 결코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요 7:17).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 7:38, 이미지 소스: https://www.bible.com/)

 

구절 중에 예수님의 말씀이 많고, 궁금했던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태도를 공부하기 위해 성경학자들의 설명을 인용.번역 및 편집해서 올립니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나에게 와서 마시라! (요 7:37)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7/
https://www.bibleref.com/John/7/John-chapter-7.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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