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먼 곳으로 떠날 것이고 유대인들은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을 말씀하시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분노한 그들은 예수의 정체를 묻지만,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에야 '내가 바로 그'인 진실을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21. Jesus said therefore again to them, “I am going away, and you will seek me, and you will die in your sins. Where I go, you can’t come.”
22. The Jews therefore said, “Will he kill himself, that he says, ‘Where I am going, you can’t come’?”
내가 가는 곳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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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멀리 갈 것이다. 너희는 나를 찾겠지만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할 것이다." 22. 그러자 유대인들이 말했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그가 말하는데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앞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오지도 못하는 곳으로 갈 것' (요 7:34)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들은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그리스인들을 가르칠 것인가?' (요 7:34), 아니면 '자살이라도 하려 그러는가?' (요 8:22)웅성댔습니다. 여기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엉뚱한 생각인 것 같은데 당시 철학자들과 영적인 선생들이 자살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리새인들에게 그것은 좋은 소식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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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3. He said to them, “You are from beneath. I am from above. You are of this world. I am not of this world.
24. I said therefore to you that you will die in your sins; for unless you believe that I am he, you will die in your 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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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를 지키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과 위신에게 관심이 있는 위선을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이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영성을 공격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소속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아래에 있는 땅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하늘에 속해 있다.'
그 소속이 물리적이던 영적이던 이 두 그룹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죄에 취악하여 죄 가운데서 죽을 운명입니다. 오로지 위에서 오신 예수를 믿어야 죄의 죽음에서 벋어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24.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내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너희가 내가 그인 것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앞에서 자신이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주장할 때도 예수님이 구원을 위한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보내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로 죽을 것'(요 8;21)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예수님은 'I am'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요한복음에서 사용되는 7가지는 아니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그인 것(I am he)'을, 즉 하나님과 동등한 인격임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25. They said therefore to him, “Who are you?” Jesus said to them, “Just what I have been saying to you from the beginning.
26. I have many things to speak and to judge concerning you. However he who sent me is true; and the things which I heard from him, these I say to the world.”
27. They didn’t understand that he spoke to them about the Father.
2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26.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27.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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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들이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느냐?
25절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은 진정성 있는 질문인지 반문하는 질문인지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 네가 뭔데?'하는 표현인지, 아니면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정중한 표현인지... 매우 구체적인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어느 쪽이든, 예수의 대답은 그의 지상 사역의 '시작' 이래로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에서 하나님과 동등한 능력(요 5:36), 하나님과 동등한 판단력(요 8:16),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요 7:16-18)를 가진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분(요 8:18)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분(요 6:27)이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님은 영적 진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분이며 길(요 8:12)이고, 주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요 8:47), 그 결과로 죄 속에서 죽을 것(요 8:24)이라고 공언하신다. 앞서 그리스도는 그의 기적들(요 5:36)과 구약성경의 증거(요 5:39~40), 그리고 그의 지위를 뒷받침하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지적했다. 그런데도 고집과 불복종(요 8:43)으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추가적인 증거나 주장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명심해야 할 유용한 원칙이다: 어느 순간,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받은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더 많은 것을 (공짜로) 받아도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마 7:6).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이 지적하시겠지만 할 말이 훨씬 더 많지만 그들의 굳은 마음은 그런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 것이다.
위의 설명에서 마태복음의 구절은 인용한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유대 문화에서 개와 돼지는 부도덕하고 부정한 것을 상징했습니다. 위의 구절에서 예수를 배척하는 사람들을 개와 돼지에 비유합니다. 거룩하고 귀중한 것을 그들에게 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님은 가치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고, 심지어 주는 것에 화를 낼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것을 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특히 돼지는 게걸스러운 식성으로 음식을 고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플 때 공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선을 행하려는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자원과 시간의 낭비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이단과 신성모독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고발했습니다. 그의 말씀은 진실이고 놀랄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거절과 증오였습니다. 들을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과 마음이 굳은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차이를 인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원의 낭비일 뿐입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우리 속담이 이 구절에 맞는 것이 아닐까요?
26. 나는 너희에 대하여 말할 것이 많고 판단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고, 내가 그에게서 들을 것들을 나는 세상에 말한다." 27.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깨닫지 못했다.
여기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말과 판단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들은 것을 말하고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들은 것을 바리새인들에게 전했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문제는 이해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듣고자 하는 마음(의지)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자아에 사로잡혀, 고의적이고 집요하게 진실을 보기를 거부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말씀하시나 그들은 지상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대화 중 '하나님(God)'에서 '아버지(Father)'로 용어를 바꿀 때, 그들은 혼란스럽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고 싶지 않았고, 알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예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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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Jesus therefore said to them, “When you have lifted up the Son of Man, then you will know that I am he, and I do nothing of myself, but as my Father taught me, I say these things.
29. He who sent me is with me. The Father hasn’t left me alone, for I always do the things that are pleasing to him.”
30. As he spoke these things, many believed in him.
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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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인자를 높이 든 후에야 내가 그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의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도 알 것이다.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이 하나의 진술은 많은 중요한 생각들을 단지 몇 단어로 요약한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예언이 성취될 것을 주장하고, 자신을 메시아와 하나님과 동일시하며, 그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한다. 예수님 시대 십자가 처형은 너무나 비열하고 잔인하며 수치스러워서 사람들이 직접 말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신, 그들은 "높이 들려진다(lifted up)'와 같은 다양한 은유를 사용하곤 했다. 이것은 특히 메시아(예수 자신)가 자신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어떻게 "높이 들려져야" 하는지에 대해 자주 말하는 예수님이 흔한 언급하는 표현이다.
또한 '인자(Son of Man)'라는 용어는 유대인들이 들으면 바로 이해하였다고 합니다. 다니엘서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메시아의 모습을 '인자 같은 이(one like a son of man)'로 묘사합니다.
예수의 비평가들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29.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언제나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혼자 두지 않으신다 한다."
바리새인들의 이 토론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주요 주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요 8:16), 능력(요 5:19), 지식(요 7:16)을 동등하고 가지고 계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늘 함께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자인 예수님은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30. 이 말씀을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었다.
이 말씀에 예수를 따르던 '추종자(followers)'들이 예수를 믿는 '신자(believers)'가 되어 예수를 믿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바리새인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요. 이는 한편으로 (대부분)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을 향한 불타는 분노에 기름을 붓게 합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이 짧은 구절은 예수의 지상의 비평가들(이 경우 바리새인들)에게 문제를 제시한다. 동시에, 그것은 예수나 그의 다른 추종자들에게 특별히 좋은 소식을 전하지는 않는다.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지속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평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사람들이 공언하는 믿음은 구원 신앙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합의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다(요 6:22-25) 그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자(요 6:66) 외면한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백성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한 바리새인들의 태도에 계속 대응하실 때 대부분 그에게 등을 돌린다.
그 말씀, 즉 '예수님의 하나님과 하나라고 주장하는 메시지'가 일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예수님의 삶이 그 메시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위선자'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명성을 따라 다니는 추종자(followers),
아니면 믿음을 가진 신자(believers), 아니면
그 중간의 존재일까요?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8/
https://www.bibleref.com/John/8/John-chapter-8.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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