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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10:22-42(나와 아버지는 하나)

by 미류맘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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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수전절에 참석하신 예수에게 유대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히라고 재차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양들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하나님과 하나됨'을 주장하십니다. 

 

22. It was the Feast of the Dedication at Jerusalem.
23. It was winter, and Jesus was walking in the temple, in Solomon’s porch.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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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때는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왔다. 23. 겨울이었고 예수께서 솔로몬 행각에 있는 성전에서 걷고 계셨다.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이 성전을 더럽히자 BC 164년경 성전을 정화하여 하나님께 봉헌한 날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자료: 라이프성경사전). 빛의 축제(the Festival of Lights), 또는 하누카(Hanukkah)라고도 불리는 이 축제는 유대교에서 가장 유명한 축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예수의 양과 목자에 대한 비유을 통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군중의 분열된 반응으로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23절의 '솔로몬 행각'의 배치가 중요한데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솔로몬의 행각은 기둥들이 서 있는 지붕이 있는 야외 복도이고, 한쪽에서 사원이 있었다. 산책로는 주변 땅에서 높이 솟아 있고, 부분적으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수가 유대인들에 의해 접근되는 방식을 고려할 때, 그 배열은 이야기에 중요하다. 이 배치로 인해 현관을 따라 걷는 사람의 한쪽에는 성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단단한 벽이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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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The Jews therefore came around him and said to him, “How long will you hold us in suspense? If you are the Christ, tell us plainly.” 
25. Jesus answered them“I told you, and you don’t believe. The works that I do in my Father’s name, these testify about me.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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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유대인들이 예수 주위로 모여들어 물었다. "언제까지 우리를 애태우실 것입니까?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십시오." 

여기에서 유대인들이 '예수 주위로 모였다(came around)' 표현되어 있는데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 '포위하다, 또는 둘러싸다'를 의미한다. 이 상황은 마치 학교 불량배들이 복도에서 피해자를 에워싸고 벽으로 밀어내는 것과 같다. 뒤에서 그들이 예수를 공격하기 위해 돌을 들어 던지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요 10:31). 그러나 이곳은 적합한 돌들이 없는 성전 안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살인을 목적으로 미리 돌을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둘러싸고 그들은 '우리를 언제까지 애태울 것인가?' 질문하는데, 이는 조롱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tēn psychēn hēmōn aireis?'는 영어로 'keep us in suspense'라고 번역되었는데,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영혼을 붙잡다(억누른다)'로 해석됩니다. 예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돌을 한 손에 들고 예수는 궁지에 몰린 채, 예수가 했던 주장을 (마지막으로 증거를 남길 수 있게) 반복하라고 협박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의 적나라한 폭력은 점점 노골적이고 위협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 만남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종교 지도자들과 토론하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합니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말했는데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이들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성경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만,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합니다. 지식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믿지 않으려는 그들의 악한 의지가 주된 문제입니다.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예수의 기적을 보고 예수의 권능을 인정했지만, 이들은 예수의 기적을 사탄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을 거부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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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But you don’t believe, because you are not of my sheep, as I told you.
27. My sheep hear my voice, and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28. I give eternal life to them. They will never perish, and no one will snatch them out of my hand.
29. My Father, who has given them to me, is greater than all. No one is able to snatch them out of my Father’s hand.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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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내가 말한대로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 27. 내 양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나도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앞에서 한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그들은 그의 양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요 10:1-6).' 예수님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이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예수님의 '양떼'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사탄임을 밝히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에게 영생을 주어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을 것을 약속합니다. 앞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받는 자(saved)'와 '구원받지 못하는 자(unsaved)'로 분리하시면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수단, 즉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비난하는 그들은 스스로 사탄에 속함을 증명했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그룹에 속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앞의 '양들은 자신의 목자의 목소리에만 반응한다'는 은유를 확장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위험에서 구원을 찾는 유일한 수단인 양 우리의 '문'과 같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양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시는 '선한 목자'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양들은 영적으로 두 가지 그룹으로 분리됩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무리와 우리 '밖에' 있는 무리입니다. 이 두 그룹은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분리됩니다. 

안전이 보장되는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습니다. 또한 그들은 멸망하지 않고 외부의 도둑이나 강도에 의해 빼앗기는 일이 없습니다.

29. 양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크시다.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게 빼앗을 수 없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설명할 때, 목동의 비유(요 10:1–14)를 사용하여 자신의 권능이 하나님 아버지(요 10:17–18)에 의해 주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과 자신의 권능을 동일시하신 것처럼, 자신의 손과 하나님의 손을 동일시하십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신 양들은 곧 아버지의 손에 있는 양들과 동격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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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I and the Father are one.”
31. Therefore Jews took up stones again to stone him.
32. Jesus answered them, 
“I have shown you many good works from my Father. For which of those works do you stone me?”
33. The Jews answered him, “We don’t stone you for a good work, but for blasphemy: because you, being a man, make yourself God.”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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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31. 그래서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그를 치려고 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진술의 요점은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급은 과거에 예수의 비판자들을 격분시켰습니다 (John 5:18; 8:56–59). 학자에 의하면 이 말씀은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번역할 때 의미가 사라지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I and the Father are one(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에서'하나(one)'에 대한 그리스어는 '중성자'를 사용하여 그들이 '통합(unity)'임을 암시한다고 합니다. 즉 '예수와 하나님이 같은 분'이라기 보다는 '예수와 하나님이 하나로 묶여있다'로 주장하는데, 이는 삼위일체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입니다. 

 진술을 하자, 유대인들의 격분은 최고조를 달합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를 공격할 모든 준비(성전 안에 없는 예수에게 던질 돌을 준비하는 것을 포함하여)가 되어 있었
습니다. 그들은 바로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합니다. 앞에서 예수님이 보이신 표적들로 예수를 인정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계속 예수를 거부합니다. 예수에 대한 그들의 죄목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신성모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30절).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많은 선한 일들을 너희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 일들 중 어떤 것으로 인해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했다 "우리는 선한 일로 인해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 아니고 신성모독으로 그러는 것이오. 사람이면서 스스로 하나님이라 부르기 때문이오."

그들이 돌로 예수를 치려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행한 많은 선한 일들, 즉 기적들을 행한 것을 상기시키시면서 물으십니다: '그 중 어떤 기적적인 행동으로 너희는 나를 돌로 치려 하는가? 그런 행적들이 사악한가? 아니면 신성모독인가?' 그리고 그렇게 행한 선한 일들이 '내 아버지의 선행'을 보여준 것이라 하시면서 앞에서 언급한 예수와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발언으로 계속하십니다. 

폭도들로 변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요점을 놓쳤을까요? 아니면 무시했을까요? 그들은 의식적으로 놓치고 무시합니다. 그들은 예수가 행한 선한 일들은 건너뜁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그저 '하나님과의 동등함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한 인간'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그의 죄목은 신성모독입니다. 예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의 논쟁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종종 현대의 정치인들이 토론하는 방식을 매우 닮아 있습니다. 논쟁 끝에는 늘 예수님의 완승으로 끝나는데, 예수님은 그 상황을 뒤집어서 결국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죄악을 역증명하는 토론의 끝판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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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Jesus answered them, “Isn’t it written in your law, ‘I said, you are gods?’
35. If he called them gods, to whom the word of God came (and the Scripture can’t be broken),
36. do you say of him whom the Father sanctified and sent into the world, ‘You blaspheme,’ because I said, ‘I am the Son of God?’
37. If I don’t do the works of my Father, don’t believe me.
38. But if I do them, though you don’t believe me, believe the works; that you may know and believe that the Father is in me, and I in the Father.”
39. They sought again to seize him, and he went out of their hand.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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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를 신이라고 말했다'라고 율법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35.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불렀다 (성경은 파기될 수 없다). 

앞에서 예수님은 적대적인 종교지도자들의 무리에 의해 돌에 맞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예수가 그와 하나님이 하나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성모독을 범했다는 것입니다(요 10:30-31; 10:33). 그러나 예수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의 기적을 언급하는 것이었고, 간접적으로 그의 말씀은 부주의한 편견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요 10:32).

여기서부터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토론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서기관들은 종종 끝없는 전문성과 난해한 설명들을 사용하여 성경에 대해 토론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정통하다고 주장하는 성경을 인용하여 그들이 규정하는 기준으로도 그들이 위선자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예수는 시편 82장 1절에서 8절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을 신성모독자로 여겨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들 자신에 대한 그러한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신성 모독이 아닙니다(요 10:32-36). 요점은 인간이 신성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신성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시적인 형태로 성경에서 '신들"이라고 언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실제 기적을 행한 예수를 신성모독 죄로 돌팔매질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향해 질문하십니다.

여기에서 진실에 대한 그의 주장이 그 무엇보다도 훨씬 강력합니다. 즉, 그의 언행들, 그가 보여준 기적들이 그가 하나님에 의해 보내졌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셔 세상에 보낸 사람에 대해, 너희는 내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당신은 신성모독이다'라고 말하느냐? 37. 내가 만일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를 믿지 마라.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성모독으로 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고 오류가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을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은 지적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그가 진실하다는 증거로 보아야 합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했고 올바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요 3:1-2; 10:19-21).

우리는 '흔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우문을 던지곤 합니다. 이 예가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위에서 예수님의 반론은 이런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신성한 능력을 받았을 때, 성경은 그들을 '신들'로 언급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격에 예수님은 결격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예수님은 자신이 보여주신 기적들을 그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문서의 기록으로도 실제 물증으로도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한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닭과 달걀을 이야기할 때 '닭'은 성경의 기록같고, '달걀'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표적들 같습니다. 성경 말씀을 근원으로 실제 선한 표적들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이 예수님의 말씀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여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로 일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허락하지 않은 일을 하였다면, 이 사람들은 그를 거짓 선생이자 신성모독자로 거부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됨을 주장하는 말씀은 그의 언행과 기적들이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38. 그러나 만일 내가 하나님을 일을 한다면, 너희가 나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일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을 남겨두었는데,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한 것은 신성모독이다는 결론,아니면 성경의 기록과 예수가 보여준 기적들을 근거로 예수가 무죄라는 결론을 내리느냐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의 말씀과 기적을 믿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일을 (믿고 싶지 않더라도) 믿어야 한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가 유죄라는 증거를 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싫더라도 믿어야 하고 인정되지 않아도 인정해야 합니다. 증거가 뚜렸한 사실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예수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셨다.

이러한 사건은 예수님이 궁지에 몰리면 탈출구가 없는 장소에서 발생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에게 던지려고 돌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의 하나됨을 주장하면서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예수가 단순히 '그들의 손에서 벗어났다'라고 요한은 기록합니다. 학자는 설명합니다(아래):

이러한 시도가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요 5:13; 7:30; 8:20; 8:59). 그러나 탈출의 초자연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이 기적이든, 아니면 다른 방해가 있었든 간에 요한은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 정보는 이 복음을 쓰는 그의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가 '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났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아직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정하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이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그 위기에서 벗어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기 전에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비판하는 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마지막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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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He went away again beyond the Jordan into the place where John was baptizing at first, and there he stayed.
41. Many came to him. They said, “John indeed did no sign, but everything that John said about this man is true.”
42. Many believed in him there.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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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예수께서 다시 요단 강 건너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셔서 거기에 머무르셨다. 

장면이 바뀌고, 여기서 예수는 예루살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으로 돌아오십니다. 예수님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어떻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위기를 벋어나셨고, 세례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주던 지역으로 가셔서 머무르십니다. 예수님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심으로 신성한 사명을 완수할 것이며, 그곳에서 유대인들과 로마 정부의 협력을 통해 붙잡혀 처형될 것입니다.

41.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했다.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않았으나, 요한이 이 사람에 대해 말한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42.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었다.

세례 요한은 예수가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페레아(Perea)란 곳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요 1:19–29).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 약속하신 분을 선포하는 전령임을 매우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았을 때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존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성경학자는 그런 영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그 지역 사람들이 훨씬 더 예수를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요한은 표적을 행하지 않았고 구원자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진실임을 알았고, 또 예수의 기적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증명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파들은 예수의 기적적인 징조를 무시합니다. 이것은 바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기적을 행해도 믿지 않았고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자신들의 전통을 어긴 범법자로 몰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증거의 부족이 아니라 순전히 고집과 교만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위기를 피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곧 유대로 돌아오셔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재입성하여 십자가에서 체포되어 처형될 것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요 10:30-31)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10/
https://www.bibleref.com/John/10/John-chapter-10.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검정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옅은 청색 텍스트)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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