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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11:28-37(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계획)

by 미류맘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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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자 사람들이 따라나갑니다. 마리아와 조문객들이 슬프게 통곡하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나사로의 무덤에 오십니다.

 

28. When she had said this, she went away, and called Mary, her sister, secretly, saying, “The Teacher is here, and is calling you.” 
29. When she heard this, she arose quickly, and went to him.
30. Now Jesus had not yet come into the village, but was in the place where Martha met him.
31. Then the Jews who were with her in the house, and were consoling her, when they saw Mary, that she rose up quickly and went out, followed her, saying, “She is going to the tomb to weep there.”
32. Therefore when Mary came to where Jesus was, and saw him, she fell down at his feet, saying to him, “Lord, if you would have been here, my brother wouldn’t have died.”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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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마르다는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이 여기 오셔서 너를 찾으셔." 

앞에서 마르다는 베다니에 도착한 예수를 방금 만났고, 예수와의 대화에서 그녀는 예수님의 신성한 권능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자신을 '부활과 생명'(요 11:25-26)이라고 부르시자, 마르다는 예수님을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로의 두 명의 자매 중 마르다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믿음을 고백했고, 그 배경은 모르지만 지금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동생 마리아에게 '선생님이 너를 찾으셔'라고 (사적으로) 조용히 알립니다. (마르다가 고의로 그랬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지금은 마리아가 '선생님'에게 말할 차례입니다.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두 자매 간에 선의의 경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갔다. 30. 아직 예수께서 마을로 들어오지 않으셨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계셨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녀를 위로하던 유대인들이 마리아가 성급히 일어나서 나가는 것을 보고 그녀를 따라 나갔다. 그리고 "마리아가 곡하러 무덤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32. 마리아가 예수가 계신 곳으로 가서 그를 보고, 그의 발 아래 엎드려 말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저의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언니의 말을 듣고 황급히 일어나서 예수께 갑니다. 이 태도는 예수를 맞으러 조용히 나간 마르다와는 대조적입니다. 자매들을 위로하러 온 유대인들이 마리아를 뒤따라 갑니다.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작은 마을 베다니에서 있었던 이 일련의 사건들의 청중 중에 유대인들이 섞여 있습니다. 성경은 설명하지 않지만 그들 중에 예수의 비판자들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에서 마르다가 동생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간 이유가 유대인들을 조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어쨌든 마르다가 극적으로 퇴장하고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만나자 그녀는 언니 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합니다. 마르다가 예수와 말할 때는 청중이 없었고, 이 자리에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마리아를 따라온 많은 청중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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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When Jesus therefore saw her weeping, and the Jews weeping who came with her, he groaned in the spirit, and was troubled,
34. and said, “Where have you laid him?” They told him, “Lord, come and see.” 
35. Jesus wept.
36. The Jews therefore said, “See how much affection he had for him!”
37. Some of them said, “Couldn’t this man, who opened the eyes of him who was blind, have also kept this man from dying?”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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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예수께서 마리아와 그녀와 같이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들어 힘들어 하셨다. 3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 그들이 대답했다. "주님, 와서 보십시오." 

현장에는 예수님, 마리아, 그리고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이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살렘에서 온 예수의 원수들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조용히 예수님과 단둘이 대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마리아는 관심을 끌었고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마리아와 위문객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의 심정을 영어로 'deeply moved in His spirit(그의 영혼에 깊이 감동하셔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감정은 'greatly troubled(또는 agitated)'로 번역하는데 '매우 동요하셨다'로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자로서의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상실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 물으십니다.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래서 유대인들이 말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는가!" 37. 그들 중에는 "앞 못 보는 사람의 눈도 뜨게 한 이 사람이 이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25절은 '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이 짧은 구절이 많은 것을 전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느끼십니다. 우리의 기쁨 뿐아니라, 고통과 아픔을 아시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위문객들의 '통곡'과는 대조적으로 조용한 눈물을 의미하는 그리스 용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조문객을 의미하는 '유대인들'에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친구이자 이웃을 가능성이 높으나 예루살렘에서 온 예수의 비평가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치유한 기적을 아는 그들은 불평합니다. '맹인의 눈도 뜨게 했는데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는가?' 마르다와 마리아가 한 말과 비슷한 주장을 하지만, 어투나 맥락이 다릅니다. 그들은 나사로가 이미 죽은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요 11:35)

관중들은 예수님께서 이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뒤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예수님은 그 일이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직접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상황이 초래한 고통을 확실히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더 큰 좋은 일이 있을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계획은 목적이 있습니다.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John/11/John-chapter-11.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검정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옅은 청색 텍스트)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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