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무덤으로 오셔서 돌을 옮기라 명령하시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시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고 일부는 이 일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알립니다.
38. Jesus therefore, again groaning in himself, came to the tomb. Now it was a cave, and a stone lay against it.
39. Jesus said, “Take away the stone.” Martha, the sister of him who was dead, said to him, “Lord, by this time there is a stench, for he has been dead four days.”
40. Jesus said to her, “Didn’t I tell you that if you believed, you would see God’s glory?”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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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그래서 예수님께서 비통한 심정으로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굴이었고 돌로 막혀 있었다. 39. 예수께서 “돌을 옮기라."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다가 예수님께 말했다. "주님, 오빠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33절과 같은 단어(groaning, angry, deeply moved)를 사용합니다. 성경학자는 한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붇는 마가복음 14장을 인용합니다. 그때 몇 사람이 '왜 비싼 향유를 낭비하느냐?' 분개한 것(indigrantly)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들이 느낀 같은 '분노'의 고통을 겪고 계신다고 설명합니다.
앞의 35절에서 '예수께서 울으셨다'는 기록은 그리스도가 모든 종류의 인간의 감정을 가진 온전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에 대해 실제로 동정하심을 보여줍니다. 이 점을 학자는 설명합니다(아래):
예수님게서 이곳에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려고 계획하신 것(요 11:11-15)을 우리가 기억할 때 이 사실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묻힌 무덤과 같이 큰 바위가 있는 돌 동굴은 예수님 시대에 무덤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고대 세계의 장례식은 종종 죽은 직후 행해졌다. 현대 기술에 비해 시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나사로가 이미 나흘(요 11:17) 동안 무덤에 있었다. 다음 구절에서 언제나 실천적인 마르다가 무덤을 여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무덤의 돌을 옮기라는 요구는 최근에 세상을 따난 친구의 무덤을 찾아와서 생존자들에게 '그 친구를 파헤쳐 관을 열라'고 명령해야 그 반응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예수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다의 걱정은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이었다.
부패한 지 나흘된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을 볼 자신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와서 무덤의 돌을 옮기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은 것은 예수님 계획을 일부였습니다. 그 기적을 행하기 위해 그는 의도적으로 베다니로 돌아가는 것은 이틀 지연시켰습니다. 예수를 보러 떠날 때 마리아를 따라갔던 많은 군중들도 그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40.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다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을 설정하기 위해 상황을 준비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6절), 죽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때 현장에 도착하고(17절), 그리고 목격자들 준비한 것(19절, 31절)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기적의 목적과 부합하는데,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는 '표적들'을 보이기 위해 예수님이 준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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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So they took away the stone from the place where the dead man was lying. Jesus lifted up his eyes, and said, “Father, I thank you that you listened to me.
42. I know that you always listen to me, but because of the multitude that stands around I said this, that they may believe that you sent me.”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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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래서 사람들이 죽은 사람이 누워있던 장소에서 돌을 옮겨 놓았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2. 아버지께서 항상 제 말을 들으시는 것을 제가 압니다. 그러나 둘러선 무리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음을 믿게 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한 것입니다."
현장은 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망이 확실한 나사로, 다른 이유로 모인 무리들, 그리고 기적을 행하실 예수님. 소위 이벤트와 배우와 관객이 다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41절 '그들(they)'에는 조문객들, 구경꾼들과 스파이들도 포함되 있을 것입니다. 무거운 돌은 모인 사람들의 힘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청중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예수의 '표적'을 보이고, 그 표적이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임' (요 20:30-31)을 증명하기 위한 위대한 사건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기도로 이 기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행하실 그의 능력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인정을 요청하십니다. 지금 모인 무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신을 이 땅으로 보내셨음을 믿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바로 벌어질 이 장관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개의 '표적' 중 일곱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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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When he had said this, he cried with a loud voice, “Lazarus, come out!”
44. He who was dead came out, bound hand and foot with wrappings, and his face was wrapped around with a cloth. Jesus said to them, “Free him, and let him go.”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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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44. 죽은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그의 손과 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그 얼굴은 천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다니게 하여라! 말씀하셨다.
성경학자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것을 받아들이거나 무시할 수 있다. 이 기적을 과장하여 공개함으로써, 예수님은 증인들에게 '내 편을 들라!'고 강요하고 있다. 밝혀지겠지만, 그의 가장 혐오스러운 비평가들 중 일부는 더 많은 분노와 더 많은 폭력으로 반응할 것이다."
예수의 기적들 중 일부는 사전 준비 없이 이루어졌고, 일부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또는 밝혀지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이 기적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이 표적의 목적은 예수님의 신성함을 무리들에게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죽은 나사로에게 극적이고 권위 있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 11:43)
많은 증인들 앞에서 예수께서 무덤을 열어 부패한 시체를 부르시니, 죽은 나사로가 베옷으로 손과 발과 얼굴이 감긴 모습으로 무덤에서 걸어 나옵니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물론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그 장관의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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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Therefore many of the Jews, who came to Mary and saw what Jesus did, believed in him.
46. But some of them went away to the Pharisees, and told them the things which Jesus had done.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다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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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믿었다. 46.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그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소위 '무리들'의 그루핑입니다. 대다수는 증거를 눈으로 보고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모인 유대인들 중 의심을 가진 일부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그 일을 '고자질'합니다(46절). 그리고 보고를 받은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극단적인 증거'에 '극단적인 폭력'으로 대응할 준비를 합니다(요 11:53; 12:9-11).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40)
40절 예수님이 반복하시는 말씀을 읽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끝임없이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극단적인 증거'에 '극단적인 폭력'으로 맞서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그 증거를 눈으로 보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합니다.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John/11/John-chapter-11.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검정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옅은 청색 텍스트)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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