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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시편(Psalms)73:1-16(악인의 형통, 의인의 질투)

by 미류맘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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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위기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고난도 재앙도 없고, 교만과 자부심이 끝도 없는 그들을 보고, 그는 '하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나 할까?'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아삽의 시 73편을 시작하면서 성경학자의 배경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아삽이 시편 73편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인격을 조명한다. 이것은 그가 다음 몇 구절에서 진심 어린 묘사에 대한 맥락을 제공하기 때문에 중요한 관점이다. 여기에는 악인들의 세상적 성공(시 73:2–3)에 대한 깊은 신앙 도전도 포함됩니다. 이 시편은 아삽이 이러한 도전과 어떻게 싸웠는지(시 73:16-17)을 묘사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하고 자신감 있는 믿음(시 73:28)으로 돌아온 모습(시 73:17)을 묘사하고 있다. 아삽은 이 글을 쓰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많은 은혜로운 행위를 되새겼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할 때 그들을 축복할 것을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레위기 26; 신명기 28~3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원하셨고,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부족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셨고, 그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도우셨고, 사사기 시대의 억압에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A Psalm by Asaph.

1. Surely God is good to Israel, to those who are pure in heart.
2. But as for me, my feet were almost gone. My steps had nearly slipped.
3. For I was envious of the arrogant, when I saw the prosperity of the wicked.

아삽의 시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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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 선하십니다.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습니다. 이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교만한 자를 질투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종종 영적인 삶을 우리가 걷는 길로 묘사합니다. 그 길 위에서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는 것이 죄와 재앙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이 갑자기 어려워진 길을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삽도 믿음을 길을 가다가 거의 넘어질 뻔합니다. 그 이유는 악하고 교만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형통함을 보고 질투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삽이 이 시를 쓸 때의 상황은 모릅니다. 그는 레위인이었기 때문에 재산도 땅도 소유하지 않았고 그들의 유산은 주님이었습니다(민 18:20; 신 10:9). 사도 바울은 경고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So,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firm, be careful that you don't fall!, 고전 10:12). 바울은 우리가 굳건히 서 있다고 생각할 때가 위기의 순간이라고 경고합니다.  

아삽의 글과 바울의 경고를 읽으면서 시인의 상황을 우리의 일처럼 이해합니다. 우리가 지금 견고히 서 있다고 생각하시만, 언제 비틀거리면서 넘어질 지 알지 못합니다. 교만은 물론 질투와 탐욕으로 분류되는 시기심은 성경에서 규탄되는 감정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남의 떡이 늘 커보이는 법입니다. 특히 악한 사람이 잘되면 우리는 시기심을 느끼면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소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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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For there are no struggles in their death, but their strength is firm.
5. They are free from burdens of men, neither are they plagued like other men.
6. Therefore pride is like a chain around their neck. Violence covers them like a garment.
7. Their eyes bulge with fat. Their minds pass the limits of conceit.
8. They scoff and speak with malice. In arrogance, they threaten oppression.
9. They have set their mouth in the heavens. Their tongue walks through the earth.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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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합니다. 5. 그들에게는 사람들의 고난이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재앙도 받지 않습니다.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 목 주위의 목걸이이고, 폭력이 옷처럼 그들을 덮습니다. 

아삽의 눈에 성공한 악인들에게 고난과 재앙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로 들립니다. 심지어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습니다. 그들은 교만을 목걸이로 두르고, 폭력을 옷으로 자랑하며 입고 다닙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고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을 아삽은 그들이 부럽습니다. 그러한 고통을 알았던 욥은 말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만 하여도 불안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욥 21:6-7) 악인이 살아있는 것을 보는 것도 억울한데, 오래 살 뿐아니라 세력도 강한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은 시련을 당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 사실입니다. 

악인이 잘 사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 안으로 허락하시는 것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겸손한 신자의 태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불평에 대답하기 위해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나사로라는 한 부자와 거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눅 16:19).

살아서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은 이후, 거지는 천국으로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하데스의 불길에 던져집니다. 이 세상에서 낙원의 평화를 경험했던 부자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고, 거지는 죽어서 낙원의 평화를 경험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 서로 넘나들 수 없었고, 부자가 간구를 하자 아브라함은 '살아서 부자는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죽어서 그는 위로를 받고 부자는 괴로움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고대시대의 부자의 횡포에 대한 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아삽의 시대에는 부자들이 폭력으로 그들의 지위를 획득하곤 했다. 그들은 하인을 학대하고, 가난한 사람을 이용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을 수도 있다. 사도 야고보가 가난한 신자들을 억압하는 부자들을 규탄했다: "너희는 가난한 자를 모욕했다. 너희를 착취하고 법정으로 끌고 간 자들이 부자가 아니냐? 그들은 너희가 속한 그 고귀한 이름을 비방한 자들이 아니냐?" (야 2:6-7)

7. 지방으로 그들의 눈이 튀어나오고, 그들의 마음은 자만심으로 끝이 없습니다. 

이 시편에서 아삽은 악하지만 여전히 형통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다(시 73: 1-3). 여기서 그는 과장된 표현에 의존해 자신의 감정의 힘을 담아낸다.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의인들(시 73:4-5)과 달리 이 악한 사람들은 눈이 튀어나올 때까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고대 세계에서, 비만은 부와 지위의 표시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방을 키울 여분의 음식과 여유가 없었다.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이 악인들은 악한 생각으로 터지는 심장을 가지고 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그 마음을 악행의 근원으로 꼽았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면서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 선한 사람은 그 안에 쌓인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안에 쌓인 악한 것을 낸다" (마 12:34-35).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하나님은 "세상에 인간의 악함이 가득 차고 마음 속의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함"(창 6:5)을 보셨다.

8. 그들은 조롱하고 악한 말을 하고, 거만하게 위협합니다. 9. 그들의 입을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을 휩쓸고 다닙니다.

아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특히 세상에서 성공한) 자들은 이기적이고 거만할 뿐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위협까지 한다고 호소합니다. 성경학자는 오만하다가 하나님에 의해 겸손해진 왕들을 언급합니다: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 후에 왕이 된 다리우스, 그리고 복음을 반대하려다 결국 패배한 예수를 죽이려 한 헤롯 왕이 그 예입니다. 위협과 과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에 의해 무너진 사례들입니다.

시편 2장은 마지막 날에 세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오만하고 악한 말로 믿는 사람들을 대적하며 이렇게 말한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를 묶은 쇠사슬을 끊어 버리자! 우리를 맨 밧줄을 던져 버리자!"(시 2:3) 세상적인 성공에 취한 그들은 (입은 하늘에 두고, 혀는 땅을 휩쓸고 다니면서; 9절) 세상과 믿는 자들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들은 원수를 "철 지팡이로 다스릴 것이고, 질그릇 같이 짓부술 것이다"(시 2:9) 말씀하십니다. 거짓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한다" (요 8:44).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세상을 활보하는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나, 그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혀 악마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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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erefore their people return to them, and they drink up waters of abundance.
11. They say, “How does God know? Is there knowledge in the Most High?”
12. Behold, these are the wicked. Being always at ease, they increase in riches.
13. Surely I have cleansed my heart in vain, and washed my hands in innocence,
14. For all day long I have been plagued, and punished every morning.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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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래서 그들의 백성도 그들에게로 돌아와 가득한 물을 들이키면서  

여기서 아삽은 '그의 백성'이 그들의 죄를 거부하기 보다는 부유한 악인들에게 항복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영어로 폭우(물폭탄)를 의미하는 'raining cats and dogs'란 표현이 있습니다. '폭풍우에 휩쓸린 영국의 길거리에서 죽는 동물들에 그 어원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아니라 (죽은) 고양이와 개들이 쏟아진다고 상상하면 될 것입니다. 영어성경 공부하다가 옆길로 샛는데, 이 영어 번역에 대한 성경학자의 (복잡한) 설명입니다(아래): 

이 구절의 히브리어 자체가 관용구일지도 모른다. 문자 그대로 영어로 번역하면 '그리고 가득찬 물이 그들에 의해 배수된다'이다... 문맥상, 이 문구는 "사람들이 이 악인들이 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같다.

'raining cats and dogs': Very unpleasant weather. George Cruikshank, 1820. Ailsa Mellon Bruce Fund, National Gallery of Art

성경 교사들도 '그의 백성'의 정체성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어떤 이들은 아삽이 하느님의 백성을 - 즉, 이스라엘 민족이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의미가 확장되는 - 지칭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아삽이 악인들을 의미하고 생각한다. 첫 번째 해석이 문맥에 적합하다. 아삽은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포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삽 시대에 죄로 인해 오히려 이익을 받은 것을 보는 사람들이 죄와 악에 맞서기보다,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의로운 사람은 고통을 격고 있는데, 왜 악인들이 행복하고 건강해 보이는지에 대한 의문(4-5절)을 우리는 갖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기로 선택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주장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따르는 것을 선택하는 중도파가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좌절과 도전적인 환경, 사회의 압박 등으로 인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가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그래서 교회를 그만두거나 '기독교인'에서 벋어난 세속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한다. 그들은 재물이 없어도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주님 없이 재물을 갖는 것보다 낫다는 것(잠 15:16)을 깨닫지 못한다. 

11. "하나님이 어떻게 알겠는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에게 지식이 있는가?" 12. 보라, 이들은 악인이라도, 항상 편하고 재물이 늘어납니다. 13. 내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죄를 짓지 않고 내 손을 씻은 것이 헛된 일이었습니다. 14. 내가 종일 고통을 당하였고, 아침마다 벌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는 하시는가? 신경이라도 쓰시는가?" 이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11절)이라 부르면서 그분의 지식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외칩니다: "악인은 형통하고 재물이 늘어나는데, 나는 죄를 짓지 않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왜 나는 종일 고통을 당하고 벌을 받고 있는가?" 

한 성경학자의 설명이 가슴에 닿습니다: "돈이 갖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우리를 갖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 아니라, 여러가지 악의 근원이 되는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6:10). 재물을 위해 재물을 쫓은 것은 스스로를 완전한 재앙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재물을 하나님의 은사로 보고 합당한 방식으로 돈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계속해서 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인이 되려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래서 우리에게 번영과 같은 것들을 '증여'하시는 거래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건강과 물질로 가득 찬 쉬운 삶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는 십자가와 고난을 약속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7).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그것이 고난이라도 은혜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아삽은 기독교인으로서 따라야 하는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은혜로 고난을 바라보아야 하는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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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If I had said, “I will speak thus”; behold, I would have betrayed the generation of your children.
16. When I tried to understand this, it was too painful for me;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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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만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다면, 나는 당신 자녀들의 세대를 배반하였을 것입니다. 16. 이런 일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그것은 나에게 너무도 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15절 '그렇게 말하리라'의 뜻이 위의 11절 "하나님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나 할까?"인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첫 편지에서, "누구든지 네가 젊다고 하여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결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보기가 되어라"(딤전 4:12)거 지시했습니다. 목회자이던 일반 신도이건, 악인들이 세상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아삽은 그러한 냉소적인 태도는 옳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이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생에서 모든 질문이 온전히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사야 55:8-9)이 온다. 왜 일부 사악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이 형통하고, 선한 사람은 고통받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시 73:2-3)이 그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답변 중 일부는 우리가 악의 최종 결과를 이해할 때 나온다(시 73:17).

위의 설명이 명확한지 모르겠지만, 혼동이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들려주신 누가복음의 '부자와 거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교훈은 신앙심의 유무에 관계없이,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한 만큼 보상을 받게 됩니다. 잘한 사람은 상으로 못한 사람은 벌로 말이지요. 

그래도 혼동이 와서 학자가 인용한 성경을 검색해 봅니다. 야고보는 '믿음과 지혜'에 대해 설명합니다: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너희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 인내를 만들기 때문이다.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야 1:2-5).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받는 것으로 인한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이미지 소스: https://thewordfortheday.tumblr.com/)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Psalms/73/Psalms-chapter-73.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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