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최고의 영광으로 선언하시고, 제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곧 떠나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예수를 따르겠다고 주장하는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를 부인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31. When he had gone out, Jesus said, “Now the Son of Man has been glorified, and God has been glorified in him.
32. If God has been glorified in him, God will also glorify him in himself, and he will glorify him immediately.
새 계명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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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인해 영광을 받으셨다. 32. 만일 하나님께서 인자로 인해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인자로 인해 그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곧 영광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시간표에 따라 일하십니다.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난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죄인들을 위한 그의 희생적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은 인류 역사의 획을 긋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수치수럽고, 폭력적이고, 모멸적이고, 부당한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잡혀고 살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이것은 영광의 순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예언대로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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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Little children, I will be with you a little while longer. You will seek me, and as I said to the Jews, ‘Where I am going, you can’t come,’ so now I tell you.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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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자녀들아, 내가 잠시동안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내가 유대인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말한 것같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마치 어린 아이를 부르듯 '작은 아이들아'하며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아래):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그의 '새' 계명을 세우는 과정에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곧 일어날 일로부터 받으실 영광을 여러 번 언급했다(요 13:31-32).
33절에서 예수님은 그리스어로 teknia라는 칭호(문자 그대로 '어린 아이들'을 의미)로 부르신다. 이 용어는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이 그의 편지에서 자주 반복할 용어이다. (요 2:1, 3:7, 4:4, 5:21).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가올 일을 견딜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내실 시간의 끝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밤이 끝나기 전에 제자들은 엄청난 두려움과 의심과 불확실성에 직면할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적대적인 세상으로 내보내져 복음을 선포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앞에서 예수님은 예수를 체포하려고 기회를 찾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실 분에게 갈 것이다.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찾지 못할 것이고, 내가 있는 곳에 너희는 올 수도 없다". (요 7:34; 8:21) 예수님은 임박한 (잠시 동안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고 예수가 다른 곳으로 가거나 자살할 것을 추측했습니다. 예수님은 몇 시간 후에 죽임을 당하시고, 며칠 안에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고 아버지께 올라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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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Just as I have loved you, you also love one another.
35. By this everyone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have love for one another.”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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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3.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이다."
예수님은 앞에서 사역 중에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신 '새 계명'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에 내려집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이 겸손한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라!", 즉 "서로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고,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36. Simon Peter said to him, “Lord, where are you going?” Jesus answered, “Where I am going, you can’t follow now, but you will follow afterwards.”
37. Peter said to him, “Lord, why can’t I follow you now? I will lay down my life for you.”
38. Jesus answered him, “Will you lay down your life for me? Most certainly I tell you, the rooster won’t crow until you have denied me three times.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이르시다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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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을 너는 지금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것이다."
앞에서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지만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요한 베드로는 어디로 가시냐고 묻습니다. 직설적으로 예수님은 곧 체포되어 처형당하고, 부활하고, 하늘을 승천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포함하여 그를 따랐던 제자들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 따라올 것'을 설명하십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부분 믿음으로 인해 순교함으로 '따라가는 것(follow)'을 실천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 뒤에 일어나서 예수의 '뒤를 따라가게(follow afterward)' 됩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예수와 같은 방식으로 죽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서 자신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여 예수님의 예언을 성취한 그를 보면 섬찟할 정도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37.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지금은 왜 따라갈 수 없습니까? 저는 주님을 위해 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는 허풍쟁이였을까요? 앞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발을 씻길 때 물리적으로 그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는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고집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허세와 감정에 압도되어, 평생 후회할 말을 합니다.
그는 그런 발언을 할 때 멋있어 보이려는 시도나 두려움을 감추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주 알아듯지 못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자신의 진실에 기반합니다. 이 날 저녁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될 때 용감한 전사처럼 스스로 전투에 나설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는 두려움에 굴복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예수님과 함께 기꺼이 죽는 것(38절)은 고사하고 자신이 예수를 알고 있다는 것조차 부정할 것입니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나를 위해 네 목숨을 내놓겠느냐?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유다는 이미 배신하기 위해 떠났고, 그가 배신자임을 모르는 제자들은 그들 중 하나가 거짓말쟁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놓겠다'는 그의 도발적인 선언은 자랑을 뿐 아니라 자신이 배신자가 아니라는 선언으로까지 들립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하실 때, 제자들 중 일부는 확실히 베드로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진술은 충격적입니다.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발언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성경학자는 말합니다(아래):
'아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려는 것이 절대적이고, 개인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은 '베드로의 허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요 18:27)이 몇 시간 안 남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베드로의 자신감은 무너질 것이지만(마 26:71-75), 결국 그는 회복될 것이다(막 16:7).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베드로통곡교회'에 예전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간 적이 있습니다. 아래는 그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교회 첨탑에 수탉의 형상에 눈에 띄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놓겠다'는 발언은 다른 제자들(아마 베드로 자신도)에게 그가 바로 배신자라는 의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가 아니고 유다가 배신자임이 곧 발견될 것이지만, 그 당시 베드로의 공포가 어떠했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하는 선택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였습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말한다.
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요 13:38)
BIBLIOGRAPHY:
https://www.bibleref.com/John/13/John-chapter-13.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검정색)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옅은 청색 텍스트)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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