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문을 닫고 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평강과 성령을 주시면서 그들을 파송하십니다. 의심하던 도마가 예수께 신앙을 고백하자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말씀하십니다.
19. When therefore it was evening, on that day, the first day of the week, and when the doors were locked where the disciples were assembled, for fear of the Jews, Jesus came and stood in the middle, and said to them, “Peace be to you.”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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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날, 곧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제자들이 함께 모여 문들을 닫았다.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날 저녁에"(19a절): 이 날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본 날과 같은 부활절 저녁이다. 이는 예수님이 '한 주의 첫째 날'(눅 24:1)인 엠마오 길에서 두 제자를 마주친 누가의 기록과 일치한다. 제자들이 눈이 밝아져 예수를 알아보니 "예수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눅 24:31) 기록한다. "그들은 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눅 24:33)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눅 24:36).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제자들이 함께 모여 문들을 닫았다"(19b절): 잠긴 문들은 제자들의 두려움을 반영하지만, 바위 무덤도 잠긴 문으로도 가둘 수 없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빈 무덤(6-8절)을 보았고 이미 '다른 제자'가 보고 믿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14-18절). 그러나 "다른 제자"가 보고 믿은 후에도, "아직까지 그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알지 못했다"(9절). 게다가,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있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했다.
그들의 두려움은 우리를 실망시킨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지도자가 죽은 제자들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은 변형되고 대담해질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19c절): 이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평안을 주신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이 그들을 미워하는 세상의 핍박(15:18-25)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 것이다. 아이린(eirene, 평화)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갈 5:2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과의 평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롬 5:1-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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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When he had said this, he showed them his hands and his side. The disciples therefore were glad when they saw the Lord.
21. Jesus therefore said to them again, “Peace be to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even so I send you.”
22. When he had said this,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to them, “Receive the Holy Spirit!
23. If you forgive anyone’s sins, they have been forgiven them. If you retain anyone’s sins, they have been retained.”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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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기뻐했다. 21. 예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 죄는 사함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누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 (20a절). 한편으로 예수님은 닫힌 문을 통해 들어오시며, 그의 몸이 다른 성질을 띠었음을 암시한다. 반면에 그의 상처는 그의 육체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고, 그의 몸은 제자들이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누가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신 것을 이야기한다(누 24:43). 여기에는 수수께끼가 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육체는, 우리 몸과 같기도 하고, 우리 몸과 같지 않기도 하다. 바울은 부활의 육체를 불멸하고 영광스럽고 강력하며 영적인 존재라고 말한다(고전 15:42-44). 그러나 예수님의 몸도 분명히 육체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강조해서는 안 된다. 이 연습의 요점은 그들 앞에 살아서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최근에 십자가에 못 박힌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학자의 설명이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한, 우리는 너무나 영적인 해석에 집중하여 예수님의 육적인 팩트를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로마 군인이 예수님이 십자형 후에 돌아가셨는지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강조해서 이해하는 것보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우리와 같은 육신의) 당연한 피와 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기뻐했다"(20b절):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울며 애통하고 고통을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지만, "너희의 슬픔은 기쁨이 될 것이다"(16:20)고 약속하셨는데, 이는 여자가 "사람 하나가 세상으로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요 16:21) 진통의 괴로움을 잊는 것처럼, 그들이 이전의 고통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큰 기쁨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의 방문은 그 약속의 이행(또는 적어도 이행의 시작)이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울고 슬퍼하며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고통은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다시 보는 기쁨으로 바뀌었다.
이 또한 제자들에게 전환점이 된다.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불신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평안을 주시고 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라고 말씀하신다. 앞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17:18)라고 기도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 기도에서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하신다.
그것은 보냄을 받은 자의 권위가 그를 보낸 자의 권위와 같다는 원리, 즉 왕의 사신이 왕의 권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의 일 안에 계시며, 예수님은 제자들의 일 안에 계신다. 그것은 바통을 넘겨주는 것, 즉 후계자의 지명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고 말씀하셨다"(22a절): 그러나 이 제자들만을 세상에 보내는 것은 헛된 일이므로, 예수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어 그들을 준비시킨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으신 것처럼(창 2:7-LXX),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명의 성령을 불어넣으신다. 이 성령의 선물은 죽은 자의 뼈에 하나님의 숨결이 새 생명을 주듯 이 제자들의 삶을 새롭게 한다(겔 37:9). 그들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닫힌 방에 숨어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이제 그들은 일어서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선언을 시작할 힘을 찾는다.
"성령을 받으라!"(22b절): 이 복음서의 첫 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했고(요 1:33)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요 3:8).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 죄는 사함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누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래도 있을 것이다" (23절),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말씀하시는 마태복음 16장 19절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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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But Thomas, one of the twelve, called Didymus, wasn’t with them when Jesus came.
25. The other disciples therefore said to him, “We have seen the Lord!” But he said to them, “Unless I see in his hands the print of the nails, put my finger into the print of the nails, and put my hand into his side, I will not believe.”
도마가 의심하다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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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열두 제자 중에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 그러자 도마는 그들에게 "내가 그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 도마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4절): 디두모(Didymos)는 그리스어로 쌍둥이를 뜻한다. 도마가 왜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앞에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베다니로 가는 것이 예수님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25a절): 제자들이 가장 먼저 증언하는 사람은 그들 중 한 명인 도마로, 예수가 처음 그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들이 도마에게 한 말("우리가 주님을 보았다")은 마리아와 예수의 만남을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그녀가 주님을 보았다")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내가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25b절): 도마는 제자들을 믿지 않지만, 제자들 역시 마리아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 낙담하고 패배한 사람들이었다.
도마는 예수님 손 위의 못의 자국을 보고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지 않고는 믿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행동은 문제가 있다. 앞서 예수님은 믿기 전에 표적과 기적을 요구하는 자들을 정죄하셨다(요 4:48). 도마는 더 나아가 자신의 불신과 자신이 믿기 전에 충족시켜야 할 조건들을 진술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면, 도마가 꺼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1:16)라고 했다. 도마는 예수를 위해 열정적이었지만, 그의 최악의 두려움이 실현되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 번 혼나면 두 번째는 조심하게 된다!(Once burned, twice shy)"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도마는 믿었지만 그의 믿음은 배신당했다. 우리는 그가 왜 다시 믿는데 느린지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예수님이 아래 구절들에서 도마에게 손을 뻗치는 큰 연민과 감정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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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After eight days again his disciples were inside, and Thomas was with them. Jesus came, the doors being locked, and stood in the middle, and said, “Peace be to you.”
27. Then he said to Thomas, “Reach here your finger, and see my hands. Reach here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Don’t be unbelieving, but believing.”
28. Thomas answered him, “My Lord and my God!”
29. Jesus said to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have believed.”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이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돼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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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팔 일 후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었고, 도마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예수께서 오셨는데 문들이 잠겨 있었다. 예수께서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7.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28. 도마가 예수께 대답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29.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팔 일 후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었고" (26a절): 팔 일은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포함하면 다시 한 주의 첫날이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나타나신다.
"예수께서 오셨는데 문들이 잠겨 있었다. 예수께서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다" (26b절): 다시 한 번 문이 닫혔지만 더 이상 두려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공포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지난 일요일과 같다. 일주일 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두려움이 믿음으로 바뀌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6c절): 다시 한번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안을 주신다. 그 장면은 일주일 전과 매우 유사하다.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27a절): 예수님은 도마가 믿지 못한 것을 비난하지 않고, 그가 믿을 수 있게 해 주신다(27절).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만질 것을 요청했고, 예수님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 도마가 예수의 상처를 실제로 만졌다는 설명은 없다. 상처받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지 소스: https://focusmagazine.org/)
그리고 믿지 않는(apistos) 자가 되지 말고 믿는 (pistos) 자가 되어라" (27절): 우리는 이것을 의심하는 도마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apistos는 말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의심은 믿지 않는 것만큼 강한 단어는 아니다.
믿지 않는(apistos) 자가 되지 말고, 믿는 (pistos) 자가 되어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28절): 이에 대해 도마는 이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는데, 이는 이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어떠한 고백을 훨씬 뛰어넘는다. 가장 큰 의심자가 가장 큰 신자가 되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29절): 예수님은 도마를 축복하신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그의 가장 깊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은 더욱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암시하신다. 그러한 축복들은 많은 형태, 즉 물질적인 부, 자녀들, 건강, 구원, 용서 등을 취할 수 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이 그리스어 마카리오스(markarios, 축복받은)는 예수님이 팔복(마 5:3-12)에서 사용하신 것과 같은 단어이다. 그가 그곳에서 선포한 축복은 천국(3절), 위안(4절), 유산(5절), 충만(6절), 자비(7절), 하나님을 보는 것(8절),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것(9절), 그리고 하늘의 보상(10-12절)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팔복 또는 축복이다. 보지 않고 믿은 자 중에 있는 우리를 격려해 주신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몇몇의 일세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많은 후대 기독교인들보다 유리하지 않다. 예수님은 이 후기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제자들보다 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말씀하신다.
30. Therefore Jesus did many other signs in the presence of his disciples, which are not written in this book;
31. 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이 책을 기록한 목적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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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예수께서 제자들이 있는 곳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들도 많이 행하셨습니다. 31. 그러나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고,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9절에서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복을 내리셨다. 저자는 이제 "그러나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고... "(31절) 말한다. 이 복음의 목적은 이 복음의 독자인 우리가 약속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기적을 표징이라고 한다. 이 표징들은 사람들에게 믿을 만한 이유를 주지만, 그것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 6:36)
선택은 우리의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0b절): 구원은 행위보다는 믿음이 결정한다(롬 1:6;4:1-3;9:31-32;10:9;1 고전 1:21; 갈 3:1-12; 에 2:8).
요한복음의 저자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그의 글의 목적을 말하고 있다. 그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은 이 복음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단단히 할 수 있었고, 다른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증인에 인해 믿음으로 인도되었다.
오늘 소중한 말씀은 SERMONWRITER의 본문을 자동 번역 후 편집 및 수정해서 올립니다. 4복음서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적은 학자의 내용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john-2019-31/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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