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19:31-42(예수의 참제자들)

by 미류맘 2022. 4. 17.
728x90

예수님이 돌아가신 직후에 군인들이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요셉이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예수의 시신을 모셔오고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신료를 발라 예수님을 빈 무덤에 모시니 그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었습니다. 

 

31. Therefore the Jews, because it was the Preparation Day, so that the bodies wouldn’t remain on the cross on the Sabbath (for that Sabbath was a special one), asked of Pilate that their legs might be broken, and that they might be taken away.
32. Therefore the soldiers came, and broke the legs of the first, and of the other who was crucified with him;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다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

31. 그 날은 준비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안식일은 특별한 날이었다)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시신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워달라고 요청하였다.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못 박힌 첫 번째 사람의 다리와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 날은 준비일이었기 때문에"(31a절): 유대 율법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을 죄를 지었으면 그 사람을 죽여서 시체를 나무 위에 매달라. 그러나 그 시체를 밤새도록 나무 위에 매달아 두지 말고, 같은 날 그를 묻어야 한다(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지 말라" (신 21:22-23). 이 법에 따라, 유대 지도자들은 금요일 해질녘에 안식일이 시작될 때까지 십자가형을 끝내고 시신을 묻기를 원했다. 이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유월절이 다가오는 안식일과 우연히 일치한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다. 

로마의 관습은 로마법을 어기는 결과에 대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경고하기 위해, 그들이 도움 없이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남겨두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사형수가 죽는 데는 며칠이 걸린다. 그 사람이 죽은 후, 로마인들은 종종 시체가 썩도록 매달린 채 계속되는 경고의 이야기로 남겨진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예수와 그의 두 동료는 안식일과 유월절 내내 여러 날 동안 십자가에 매달릴 수 있었다.

"빌라도에게 시신의 다리를 부러뜨리고..."(31b절):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다리를 부러뜨려 죽음을 재촉하도록 병사들에게 지시하여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시체가 묻힐 수 있도록 하였다. 채찍질이나 십자가에 매달린 몇 시간 때문에 쇠약해진 남자들에게, 로마 망치가 그들의 다리를 부수는 트라우마는 그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꽤 짧은 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또한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질식을 통해 죽음을 재촉할 것이다. 

빌라도는 분명히 유대 지도자들의 요청을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예수 십자가에 적힌 명패 문구를 바꾸라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지만(19:22) 여기서 그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준다. 본문에는 그가 다리를 부러뜨리도록 명령했다는 것이 나와 있지 않지만, 그것은 군인들이 그렇게 한다는 사실에 의해 암시된다.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못 박힌 첫 번째 사람의 다리와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32절): 예수의 십자가는 두명의 사형수(도둑이나 반란자)의 십자가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병사들은 분명히 가운데를 향해 일하면서 어느 한쪽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두 사형수의 다리를 부러뜨린다.

--------------

33. but when they came to Jesus, and saw that he was already dead, they didn’t break his legs.
34. However one of the soldiers pierced his side with a spear, and immediately blood and water came out.
35. He who has seen has testified, and his testimony is true. He knows that he tells the truth, that you may believe. 36. For these things happened, that the Scripture might be fulfilled, “A bone of him will not be broken.”
37. Again another Scripture says, “They will look on him whom they pierced.”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

33. 그러나 그들이 예수께 갔을 때, 예수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꺽지 않았다. 34.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왔다. 35. 이것을 본 사람이 증언한 것이니 그의 증언이 참되다. 그는 자기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여러분이 믿게 하려고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37. 또 다른 성경에는 "그들이 자신이 찌른 사람을 볼 것이다"라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께 갔을 때, 예수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꺽지 않았다"(33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지 불과 몇 시간 안 돼 죽음이 빠르게 다가왔다. 심한 매질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은 특별히 드문 일은 아니다. 예수는 두 번의 매질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분명히 그의 죽음을 재촉할 것이다.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찌르니"(34a절): 심한 외상을 겪는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혼수상태의 사람이 죽었는지 여부는 맥박이나 심장 모니터를 확인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병사는 예수의 맥박을 재려고 애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의 부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시험은 훨씬 더 잔인하다. 그것은 예수의 몸에 창을 찌르는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응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의 무의식적인 반응은 병사들에게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고할 것이고, 창 그 자체가 예수의 죽음을 재촉할 것이다.

"곧 피와 물이 나왔다"(34b절): 두 가지 사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둘째로, 만약 있다면, 피와 물이 의도하는 상징성은 무엇인가?

물의 성질에 대해 수많은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대부분은 혈청(적혈구가 없는 피의 액체 부분)으로 추측된다. 1847년 의사 J.C. 스트라우드는 예수의 심장이 파열되어 피가 응고된 심막낭에 피가 새어 나와 혈청을 적혈구에서 분리시켰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최근의 의학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채찍질 때문에 예수의 흉강 출혈이 발생해 피가 새어 나와 혈액과 혈청으로 분리됐을 가능성이 있다(브라운, 946~947). 피와 물의 분출은 확실히 물리적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지만, 우리는 물의 진정한 본질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상징성과 관련해선 피와 물이 주님의 만찬과 세례를 상징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는 전혀 확실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피가 생명을 상징하고 물이 깨끔함을 상징한다고 제안했지만, 다시 한번 이것은 추측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오는 피와 물을 기록한 유일한 복음이며, 위의 두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것을 본 사람이 증언한 것이니 그의 증언이 참되다"(35절): 요한복음의 저자는 피와 물을 보고한 목격자임을 우리가 이해하기를 원한다. 이 언어는 이 복음서 마지막 절로 생각되는 구절과 매우 유사하다: "이것을 기록한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요 20:31) - 이는 목격자가 이 복음의 저자임을 암시한다 (요 21:24 참조).

군인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상징성과 관련 없이 과학적인 근거를 보면 (위의 학자의 설명에 의한), 예수님은 완벽한 인간의 몸을 가지고 계셨음이 입증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예수님 가까이에서 모든 것은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모든 것은 옆에서 목격한 요한은 각 상황이 모든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임을 목격하였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36절): 다시 한번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임을 언급했다. 여기에 구약성서의 두 구절이 있다. 하나는 출애굽기 12장 46절인데, 이는 유월절 어린 양을 준비하기 위한 지시의 일부이다: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또 하나는 시편 34장 20절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의인에게 하나님의 약속 - 두 구절이 모두 적절하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고전 5:7, 베 1:19)이시고, 또한 의로우시다(딤후 4:8).

"또 다른 성경에는 "그들이 자신이 찌른 사람을 볼 것이다"라는 기록도 있다"(37절):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스가랴 12장 10절이다: "내가 다웃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혜와 간구의 성령을 부어 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찌른 나를 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할 것이니. 이는 독생자를 잃은 사람처럼 애통할 것이고 맏아들을 잃은 사람처럼 통곡할 것이다" (계 1:7 참조).

--------------


38. After these things, Joseph of Arimathaea, being a disciple of Jesus, but secretly for fear of the Jews, asked of Pilate that he might take away Jesus’ body. Pilate gave him permission. He came therefore and took away his body. 39. Nicodemus, who at first came to Jesus by night, also came bringing a mixture of myrrh and aloes, about a hundred Roman pounds.
40. So they took Jesus’ body, and bound it in linen cloths with the spices, as the custom of the Jews is to bury.

새 무덤에 예수를 두다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

38. 이 일이 일어난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겠다고 요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는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갔다. 39. 이전에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를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정도 가지고 왔다. 40.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서 유대인의 장례 풍습대로 향료와 함께 고운 베로 감았다. 

"이 일이 일어난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겠다고 요청하였다"(38a): 네 복음서 모두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부자였고 공회의원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막 15:43; 루 23:50).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의로운 신앙인이었고(막 15:43), 예수님의 은밀한 제자였다(요 19:38). 그는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막 15:43). 그가 예수의 시신을 묻은 무덤이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눅 23:53)이었다. "바위 속에 판 자신의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마 27:60) 무덤 문을 봉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해 4복음서는 차분한 톤으로 그의 배경과 선행을 소개합니다. 그는 지상에서 살면서 매우 슬기로운 삶을 산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당시에는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위에 학자가 설명한 내용은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을 기준으로 정리했는데, 그 기록에서 그의 의로움과 지혜가 돋보입니다. 그는 산헤드린의 일원이었고 그로 인해 빌라도에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의로웠고 실로 담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을 모시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적절한 매장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하며, 사람들은 보통 부패한 후에 재사용될 수 있는 가족 무덤에 묻힌다. 유대 율법은 범죄자로 처형된 자를 장사할 것을 정하였다: "어떤 사람이 죽을 죄를 지었으면 그 사람을 죽여서 시체를 나무 위에 매달라. 그러나 그 시체를 밤새도록 나무 위에 매달아 두지 말고, 같은 날 그를 묻어야 한다(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지 말라" (신명 21:22-23). 사형수의 가족은 그러한 사람으로 가족의 무덤을 더럽히지 않았고, 범죄자들을 위해 지정된 도시 외곽에 있는 특별한 장소에 그를 묻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는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갔다" (19:38b). 로마인들이 처형된 범죄자의 시신을 그의 죽음 이후 그의 가족에게 넘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 사람이 선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는 그렇지 않다. 선동가들은 그들의 몸이 썩거나 독수리에 의해 분리될 때까지 십자가에 남겨진다. 빌라도가 요셉에게 예수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허락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요셉에 대한 그의 존경과 예수가 죄가 없다는 그의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고, 그것은 그에게 유대 지도자들을 조롱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준다.

"이전에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왔다" (19:39a). 다른 복음서에서는 니고데모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특히 그가 밤에 예수께 오는 3장에서 두드러진다(3:1-21절). 그는 바리새인 (3:1; 7:47-50)이며, 아마도 산헤드린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앞서 그는 다른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를 변호하려고 했다(7:7:5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는 예수님의 몸에 바를 값비싼 연고를 대량으로 가지고 온다(19:39).

"몰약과 알로에를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정도 가지고 왔다"(19:39b): 니코데모가 가져온 향신료의 총중량은 약 34kg이다. 그런 무거운 짐을 예수님의 매장지까지 운반하려면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일반인에게 이렇게 많은 양의 매장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향신료는 꽤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이나 다른 부자들의 몸에 기름을 칠하기 위해 매우 많은 양의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예수의 장례는 왕을 위한 것으로, 예수의 왕권이 중심 주제인 이 복음서에 적합하다.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서 유대인의 장례 풍습대로 향료와 함께 고운 베로 감았다"(19:40절):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방부제 관습을 따르지 않았는데, 이것은 몸의 내부를 빼고 그 빈 부분에 향신료를 넣는 것을 포함한다. 유대인들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패한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향신료를 사용한다. 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인 유대교 관습은 몰약과 알로에를 뿌린 긴 천으로 몸을 감싸는 것이다.

--------------

41. Now in the place where he was crucified there was a garden. In the garden was a new tomb in which no man had ever yet been laid.
42. Then because of the Jews’ Preparation Day (for the tomb was near at hand) they laid Jesus there.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

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었다. 그 동산에는 아직 한 사람도 장사를 지내지 않은 새 무덤이 있었다. 42. 그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었고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 예수님을 모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었다" (19:41a): 마리아는 나중에 예수가 동산지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원이 컸다(20:15).

"그 동산에는... 새 무덤이 있었다" (19:41b):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요셉이 "바위 속에 판 자신의 새 무덤"이다(마 27:60). 이런 종류의 무덤은 요셉과 같은 부유한 사람에게 맞기 때문에 비쌀 것이다. 요셉이 예수의 장례를 위해 자신의 개인 무덤을 사용하는 것은 니고데모가 134kg의 매장 향료를 제공하는 것과 같으며, 마리아가 300그램의 값비싼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12:3절).

"아직 한 사람도 장사를 지내지 않은" (19:41c): 이것은 중요한 사항이다. 부활절 아침, 제자들은 텅 빈 무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수가 다른 시신들이 누워 있는 무덤에 예수가 묻혔다면 부활절 아침에는 무덤이 비어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복잡했졌을 것이다. '아직 한 사람도 장사를 지내지 않은' 무덤에 매장된 것은 왕에 걸맞은 매장임을 암시한다. 대부분의 무덤은  재사용되지만, 왕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새 무덤에 안치될 것이고, 자신의 가족 구성원 외에는 결코 재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었고, 그들은 그곳에 예수님을 모셨다" (19:42):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는데, 유월절과 겹치는 특별한 안식일이다. 안식일이 시작되면 모든 일이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과 니고데모는 해가 지기 전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 요셉의 무덤이 근처에 있어 매장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미지 소스: https://www.crosswalk.com/

오늘 소중한 말씀은 SERMONWRITER의 본문을 자동 번역 후 편집 및 수정해서 올립니다. 내용이 중요하기도 하고 너무 좋아서 공부하면서 번역 위주로 작업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특히 아리마데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의 역할을 눈여겨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몸소 실천한 예수님의 참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야기는 신화도 가상의 이야기도 아닌 실제로 존재하셨던 분이고, 지금도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우리의 주님임을 우리는 요한복음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john-181-1942/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19/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