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은 갈릴리로 돌아가서 물고기를 잡으러 하지만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다음 날이 밝자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제자들은 많은 고기를 낚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아침식사가 준비됩니다.
1. After these things, Jesus revealed himself again to the disciples at the sea of Tiberias. He revealed himself this way.
2. Simon Peter, Thomas called Didymus, Nathanael of Cana in Galilee, and the sons of Zebedee, and two others of his disciples were together.
3. Simon Peter said to them, “I’m going fishing.” They told him, “We are also coming with you.” They immediately went out, and entered into the boat. That night, they caught nothing.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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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일이 있은 후,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그 일은 이렇다. 2. 시몬 베드로, 디두모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데의 아들들과 또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 하자, 그들이 말했다. "우리도 같이 가겠다." 그들은 곧 밖으로 나가서 배에 올랐다. 그날 밤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20장은 부활과 예수님이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작가가 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목적을 밝혔고(요 20:30-31), 21장은 에필로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있는 날 일곱 제자들이 있었고 각각 제자에 대한 학자의 설명이 아래에 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1a절): 예수님은 부활 후(20:1-10), 막달라 마리아(20:11-18)와 제자들(10:19-23), 그리고 제자들과 도마(20:24-31)에게 나타나신다.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1b절):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다른 이름이다. 예수님은 7장 10절부터 예루살렘 부근에 계셨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로의 전환은 갑작스러운 것이다.
"시몬 베드로, 디두모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데의 아들들과, 또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2절): 왜 일곱 제자들만 있었는지 설명이 없고 일곱 제자들이 언급된다.
- 시몬 베드로는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요 6:69)라고 고백했지만, 예수를 부정한 것으로 유명하다(18:15-18, 25-27). 그의 흠은 깊었으나, 부활 후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제자들의 우두머리이다.
- 도마는 부활을 의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요 20:25)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실 때 "나의 주님, 하나님이시여!"(요 20:28)라고 고백했다.
- 나다니엘은 이 복음서에서만 언급되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요 1:46) 의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요 1:46).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니엘은 "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49)라고 고백했다.
- 세베대의 아들들은 요한복음에서 자주 언급되고, 그들의 이름은 야고보와 요한이다.
- 그리고 "다른 두 명"(2절). 그 중 하나가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요 7장, 요13:23, 19:26, 20:2, 21:7, 20 참조)이다. 이 복음서는 결코 이 제자를 호명하지 않으며, 많은 학자들은 그가 이 복음서의 저자라고 믿는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를 잡으로 가겠다' 하자, 그들이 말했다. '우리도 같이 가겠다.'"(3a절):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러서 자신을 따르게 하고, 그들을 "인간의 어부"로 만들 것을 약속한다(마 4:19, 막 1:17). 어떤 학자들은 그들의 어선으로 돌아가면서, 이 제자들이 halieis anthropon(인간의 어부)이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책임을 등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먹어야 하고, 어부들은 바다에서 먹을 것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도 위험이 있다. 익숙한 것에 몰입한 채,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다. 이 제자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들은 사역에 복귀할 것인가? 여기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그들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개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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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ut when day had already come, Jesus stood on the beach, yet the disciples didn’t know that it was Jesus.
5. Jesus therefore said to them, “Children, have you anything to eat?” They answered him, “No.”
6. He said to them, “Cast the net on the right side of the boat, and you will find some.” They cast it therefore, and now they weren’t able to draw it in for the multitude of fish.
7. That disciple therefore whom Jesus loved said to Peter, “It’s the Lord!” So when Simon Peter heard that it was the Lord, he wrapped his coat around him (for he was naked), and threw himself into the sea.
8. But the other disciples came in the little boat (for they were not far from the land, but about two hundred cubits away), dragging the net full of fish.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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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날이 밝았을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아, 무엇을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했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의 오른쪽으로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 그들은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안으로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주님이시다!" 시몬 베드로가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가 자기 겉옷을 두르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타고, 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당겼다 (그들은 육지에서 멀지 않은 곳, 약 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았을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다"(4절):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아침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지만(20:1), 처음에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20:15). 이제는 제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왜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아마도 거리나 약한 빛으로 예수님을 명확하게 보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부활 후 예수님의 모습이 다를지도 모른다. 또는 그들의 눈이 어두워서 그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안식일에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엠마오 길에서는 제자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가,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라"(눅 24:16, 31)라고 저자는 기록한다.
“아이들아, 무엇을 좀 잡았느냐?"(5a절): '어린이(children)'라는 단어는 친숙한 관계를 암시한다. 적대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는 어부들을 보통 아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물을 배의 오른쪽으로 던져라. 그러면 잡을 것이다" (6a절): 일부 학자들은 그리스인들이 오른쪽을 행운의 방향으로 여긴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요점은 행운이 아니라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안으로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6b절).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도 예수를 순종한다. 구경꾼들이 낚시에 성공적이지 않은 어부에게 다른 '낚시 구멍'을 제안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때때로 지역 사람들은 지역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안을 따르는 것에 너무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복종한 결과는 그들이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양의 어획량이었다.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주님이시다!" (7a절): 부활절 아침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제자가 가장 먼저 보고 믿고, 베드로가 가장 먼저 행동한다(20:6-8 참조). 눈에 띄는 점은 사랑하는 제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발휘하는 반면, 베드로는 대담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Kostenberger, 591).
그들은 처음에 복종했고 그 후에야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믿음이 희미할 때 믿음 안에서 행동하는 것이 믿음을 고취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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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So when they got out on the land, they saw a fire of coals there, and fish laid on it, and bread.
10. Jesus said to them, “Bring some of the fish which you have just caught.”
11. Simon Peter went up, and drew the net to land, full of great fish, one hundred fifty-three; and even though there were so many, the net wasn’t torn.
12. Jesus said to them, “Come and eat breakfast.” None of the disciples dared inquire of him, “Who are you?” knowing that it was the Lord.
13. Then Jesus came and took the bread, gave it to them, and the fish likewise.
14. This is now the third time that Jesus was revealed to his disciples, after he had risen from the dead.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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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방금 잡은 생선을 몇 마리 가지고 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리니, 그물은 큰 물고기로 가득했다. 153마리나 되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들어라." 제자들 중에 아무도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셔서 빵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주셨다. 14.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 것이었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9절):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이 '숯불(anthrakian: fire of coals)'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베드로가 예수를 배신하면서 숯불에 몸을 녹였을 때이다: "그들은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18:18, 25-27). 이제 예수님은 그에게 다른 숯불 옆에서 베드로를 속죄할 기회를 주실 것이다.
"너희가 방금 잡은 생선을 몇 마리 가지고 오너라" (10절). 예수님은 이미 생선과 빵을 준비하셨다. 아마도, 그는 이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더 많은 물고기가 필요할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리니" (11a절): 나머지 제자들이 할 수 없었던 것(6절)을 베드로가 성공한다(11절). 이는 베드로의 체력에 대한 찬사일 뿐 아니라 제자들 사이에서 베드로의 지도적 역할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그물은 큰 물고기로 가득했다. 153마리나 되었다" (11b절): 어거스틴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숫자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153은 1에서 17까지의 숫자의 합이고(1+2+3…+17=153), 17은 7과 10의 합이고(7+10=17), 7은 3 더하기 4의 합이다(3+4=7).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이 다양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다: 즉, 10은 율법(십계명)을 나타내고, 7은 은혜 또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나타내고, 3은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4는 사각형으로 세워질 새 예루살렘을 나타낸다.
앞의 것은 의미를 전달하는 이유를 알겠는데 '새 예루살렘'의 숫자 사(4)는 새 예루살렘이 사각형이라고 합니다. 자료를 찾으니 신천지가 나옵니다 ㅠㅠ 히브리 알파벳의 문자에 숫자 값을 할당하고 글자가 특정 값에 합해지는 단어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복잡한 상징성을 배제하고 한 제자가 이 기적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기 위해 단순히 물고기를 세어보고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요? "와 153마리나 되네, 무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어획량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물고기 수를 알아야 한다고 제안하지만, 기적의 크기는 여기서 그 의의가 있다.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에서 풍요의 기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2:1-11). 이제 그는 또 다른 풍요의 기적으로 그의 사역을 마무리한다.
"고기가 그렇게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1c절): 대부분의 학자들은 많은 어획량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남아 있는 복음 그물(교회)에 걸린 기독교인들을 말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 복음서가 쓰일 무렵 교회는 빠르게 성장하고 다양해지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도였다.
"예수께서 가셔서 빵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주셨다" (13절): 이 문구는 성만찬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축복이나 빵을 쪼개는 대한 언급은 없으며, 둘 다 일반적인 성만찬 절차의 일부이다. 이것은 또한 같은 바다의 해안에서 5,000명을 먹였던 이전의 기적을 연상시킨다(6:1-15). 예수님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필요 모두에 민감하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입히고, 주거를 제공하고, 교육함으로써 예수님의 본을 따른다.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에 대한 우리의 고려는 인간의 고통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정신적 증인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 것이었다" (14절). 실제로 네 번째 나타나신 것이다. 첫째는 막달라 마리아에게(20:11-17), 둘째는 도마가 빠진 제자들에게, 셋째는 도마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20:20:26-29). 아마도 저자는 마리아가 열두 명 중 한 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등장을 세지 않았을 것이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john-211-19/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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