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왔지만 도시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베푸신 용서와 거두신 진노를 감사하며, 자비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시편 85편을 시작하기 전에 외국 해설가의 설명을 번역.인용합니다:
이 시편은 시편가가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주신 축복(1-3절)과 구원을 빌며(4-7절)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하는 공동체 탄식이다(8-13절).
우리는 이 시편이 언제 쓰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도 바빌로니아에서 망명자들이 돌아온 후였을 것이다. 그 유배는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바벨론 왕이 바뀐 후, 고레스(Cyrus)는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을 BC 538년에 허락했다. 망명자들의 귀환은 1-3절의 축복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망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그 도시와 신전이 폐허가 된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이웃들은 적대적이어서, 그들의 첫 번째 일은 방어를 위한 성벽을 쌓는 것이어야 했다. 그것은 그들이 바라던 성대한 귀향과는 전혀 달랐고, 그들은 매우 낙담했다. 그것은 4-7절에서 자비를 구하는 탄원을 설명할 것이다.
그들의 비참한 현실로 인해 그들의 믿음은 심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다. 그것은 8-13절의 믿음의 표현을 설명할 것이다.
시편 95편의 제목은 "수석 음악가를 위해. 고라 자손의 시 (For the Chief Musician. A Psalm by the sons of Korah)입니다. 이 용어에 대한 학자의 설명입니다:
"수석 음악가를 위해" (히브리어: menasseah––지도자)". 메나세아(menasseah)의 동사 형태인 나사(nasah)는 '이끌다'라는 뜻으로,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에게 사용된다. 연대기 15장 21절에서, 이 단어는 가수와 음악가들의 규모 있는 모임을 이끌기 위해 리라(lyre, 하프와 같은 현악기)를 사용하는 음악가들을 위해 사용된다 (대하 15:21). 하박국 3장 19절에서는 현악기의 지도자들을 위해 사용된다 (합 3:19). 시편에서 메나세아는 종종 음악 지도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다"(민 26:11). 일부는 전사가 되었다(대상 12:6). 다른 아들들은 문지기가 되었다(대상 26: 1, 19). 일부는 서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대하 20:19).
"고라 자손의 시” 고라는 레위 사람인데 신학적 논쟁으로 모세에 대항하여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민 16:3). 모세는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이 이 분쟁을 해결하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 목적으로 그들은 회막 앞에 모였다. 하나님은 땅을 열고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을 삼키게 함으로써 이 문제를 결정하셨다. 여호와로부터 불이 나와 분향하는 이백오십 명을 더 태웠다 (민 16:31-35).
모세의 사촌 고라는 성막을 쓸고 손보는 일을 맡았는데, 같은 레위지파인데 아론의 자손들만 세습되는 데 시기하고 모세에게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 권위를 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고라를 포함한 3명은 땅이 갈라져 죽임을 당하고 250명은 하나님의 불에 태워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반역에 참가하지 않은 고라의 세 아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성전 문지기, 찬송하는 자, 빵을 굽는 요리사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자료: 라이프성경사전)
시편 85:1-3. 백성의 죄를 사하신 여호와
WEB 번역 | 개인 번역 |
1 Yahweh, you have been favorable to your land. You have restored the fortunes of Jacob. 2 You have forgiven the iniquity of your people. You have covered all their sin. Selah. 3 You have taken away all your wrath. You have turned from the fierceness of your anger. |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호의를 베푸셔서, 야곱의 운명을 회복시키셨습니다.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습니다. 셀라 3 주는 모든 분노를 거두시고, 주의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셨습니다. |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호의를 베푸셔서" (1a절).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땅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여호와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나라와 네 친척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2). 그리고 약속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창 12:1-3, 7).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약속의 땅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과 그 땅의 관계는 여호와의 관계와 결부되어 있었다. 그 둘은 헤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함에 따라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과 그들의 번영이 점점 쇠퇴해 갔습니다. 시인은 주께서 주의 땅에 호의를 베푸시고, 야곱의 운명을 회복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이 아브람의 후손인 야곱에게 인계되어 하나님은 '아브람과 이삭에게 준 땅을 야곱과 그의 자손에게 줄 것'을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야곱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 이삭'의 자손으로 이스라엘과 그 백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죄악의 부끄러움을 덮으셨다고 시인은 찬송합니다. 그뿐 아니라 분노와 진노도 돌이키셨습니다. 2절에 죄악과 죄가 두 번 나열되는데 앞의 죄악(inquity)이 뒤의 죄(sin) 보다 더 강한 의미라고 합니다.
1-3절은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였으나 죄를 용서하시고 분노와 진노를 돌이키신 여호와를 시인은 찬양합니다.
시편 85:4-7.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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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urn us, God of our salvation, and cause your indignation toward us to cease. 5 Will you be angry with us forever? Will you draw out your anger to all generations? 6 Won’t you revive us again, that your people may rejoice in you? 7 Show us your loving kindness, Yahweh. Grant us your salvation. |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분노를 멈추소서. 5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실 것입니까? 당신의 진노를 대대로 거두지 않으시겠습니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어, 주의 백성이 주 안에서 기뻐하도록 하지 않으시겠습나까 ?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우리에게 주의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 |
위의 1-3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진노를 돌이키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4-7절에서 시인은 다시 분노를 거두시라고 다시 호소합니다. 평론가는 1-3절의 배경은 과거 하나님이 베푸신 용서 (바벨론 유배에서 남은 자들을 향한)이었고, 그들이 여전히 용서와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4절의 '돌이키시다(turn)'의 뜻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변화시키실 것, 또는 이스라엘을 이전 상태로 되돌리실 것을 시인은 호소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이전과 같이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이키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책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절, 하나님의 분노가 대대로 이어질 것 같아 시인은 불안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민 14:18)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부모의 죄 때문에(마약 중독, 중죄인, 학대자) 고통받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러한 자녀들은 정서적, 신체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곤 합니다.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loving kindness)를 구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인자하심을 보이신다면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85:8-13. 좋은 것을 주시는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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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I will hear what God, Yahweh, will speak, for he will speak peace to his people, his saints; but let them not turn again to folly. 9 Surely his salvation is near those who fear him, that glory may dwell in our land. 10 Mercy and truth meet together. Righteousness and peace have kissed each other. 11 Truth springs out of the earth. Righteousness has looked down from heaven. 12 Yes, Yahweh will give that which is good. Our land will yield its increase. 13 Righteousness goes before him, And prepares the way for his steps. |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을 것이니, 주님께서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평화를 말씀하실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어리석은 길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소서.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이다. 10 자비와 진리가 서로 만나고, 의로움과 평화가 서로 입을 맞추었다.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로움이 하늘에서 굽어본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열매를 낼 것이다. 13 의로움이 주의 앞에서 가며, 주께서 가시는 길을 준비한다 |
8절에서 시인은 '살롬(평화를 말씀하신다)'을 전합니다. 살롬은 안부(삿 19:20), 축복(삼상 1:17),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의 산물(사 66;12), 하나님이 주신 언약(겔 34:25), 전쟁의 부재(삿 4:17)를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메시아는 평화의 왕(살롬)이시다(사 9:6).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도해 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그의 성도들이 다시 미끄러져서 어리석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잡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가까우니" (9절). 모세가 불타는 덤불에서(출 3: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시나이 산에서(신 5;5) 그랬듯이,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는 것은 무서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건한 힘 앞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이 두려워할 것을 알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창 15:1; 26:24)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마 14:27; 17:7)과 천사들(마 28:10; 누 1:13)도 같은 말씀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경외심이나 존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명기 6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라"라고 명령하였다(신 6:2). 그리고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라는 명령을 추가하였다(신 6:5). 우리는 경외심과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을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공포와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리고 '여호와를 사랑하라' 명령합니다. 위 학자의 설명대로 하나님을 대상으로 '두려움=경외=존경'은 같은 의미입니다. 경외하면서 사랑할 수 있지만 공포스러워하면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공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세상이나 사람에게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가깝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의 땅에 깃들 것이라고 시인은 확신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다면, 이스라엘은 그들의 땅에 영광을 되찾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10절, '자비와 진리, 의로움과 평화'라는 구약성경의 네 가지의 미덕을 마치 네 사람처럼 묘사합니다 - 함께 만나서 한 마음으로 서로 포응하는. 이 네 단어의 뜻을 정의하는 것은 벅찬 일 같습니다. 의로움과 평화가 서로 입을 맞추었다.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로움이 하늘에서 굽어본다" (11절). 하나님은 진실과 의로움(시민과 종교적 조화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위한 관대한 준비를 하신다.
- '진리는 땅에서 솟아난다'는 구절은 "땅에서 안개가 올라와 온 땅의 표면을 적신"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한다(창 2:6).
- '의로움은 하늘에서 온다'는 구절은 의로움은 진리와는 다른 방향에서 온다. 우리가 위나 아래, 어디를 보든지 하나님이 상 주시는 미덕의 증거를 발견한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12a절).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천지창조에서였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만약 우리가 이 설명에서 "좋은 것"이 즐겁고, 적절하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충분한 빛과 충분한 비가 있었다. 낮에는 빛이, 밤에는 어둠이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창 1:26-27)이 우월한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인간과 동물이 조화롭게 함께 살았다. 어떤 죄도 없었다.
시인이 위의 학자가 말한 그림을 생각했다면, 그는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신) 조화롭고 풍요로웠던 에덴동산을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과 동물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함께 살았고, 어떠한 죄도 악도 없었던 시대.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고, 땅은 하나님의 선물은 풍성한 열매를 내는 천국의 그림입니다.
"의로움이 주의 앞에서 가며, 주께서 가시는 길을 준비한다" (13절). 의로움이 사람처럼 하나님 앞으로 걸어가고 주님의 길을 준비합니다. 이 구절은 세례 요한의 부르짖음을 연상시킵니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 3:2) 예언자 이사야가 세례 요한에 대해 말했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한 사람의 소리가 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 (마 3:3)
우리는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수 있도록 대통령보다 먼저 사람들을 보낸다. 운동장 관리인들은 선수들이 구덩이에 발을 들어가서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도록 운동장을 준비한다. 신부 들러리들은 신부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신부보다 앞서 간다.
세상에서 그 위치가 크거나 작거나 사람들을 위한 길을 우리는 준비합니다. 시인은 의로운 하나님을 위한 길을 의인화된 의로움이 주님 앞에 가며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주님의 길을 곧게 한다고 말합니다. 시편 85편에서 시인은 감사, 자비, 구원, 그리고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의인화된 의로움을 한 편의 시와 같이 적어 내려갑니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psalm-85-commentary/
시편 영문 번역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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