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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히브리서(Hebrews)2:1-9(표류하지 마라)

by 미류맘 202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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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러므로 잘 듣고 표류하지 말라' 경고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한다면 징벌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간성으로 인해 죽음의 고난을 통해 예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죽은 것임을 증언합니다.

 

1. Therefore we ought to pay greater attention to the things that were heard, lest perhaps we drift away. 

큰 구원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브리서 2:1 잘 듣고 표류하지 말라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 유념하여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앞장에서 작가는 성경적 사실에 기반하여 그리스도가 천사도다 뛰어난 존재임을 증명하고 2장의 시작을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표류(떠내려가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권고하면서 시작합니다. 작가가 생각한 보트의 표류는 단단한 것에 닻을 내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표류하다(drift away)'는 '미끌어지다(to slip)"는 의미라고 학자 도즈는 말합니다. 위대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세상과 육체와 악마의 물살을 타고 표류하는 일이 없습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화살통에서 미끄러지는 화살, 풍경에서 미끄러지는 눈, 또는 기관지로 미끄러지는 음식 등에 사용되었다. 그것은 쉽게 일어난다. 표류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신앙에서 이탈하는 것은 보통 갑작스러운 이탈이 아니라 느린 표류에서 온다.

바울이 투옥되었을 때 간수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What must I do to be saved)?" (막 16:30) – 바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길을 잃으려면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What must I do to be lost)?"라는 질문에도 답이 있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세상과 육체와 악마의 조류에 이끌려 떠내려가기에 충분하다.

"표류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한때 생명의 닻이자 방향타(키)로 삼는 것이다. 닻은 우리가 진리를 붙들게 하고, 방향타는 진리에 따라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Griffith Thomas)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 유념하여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히 2:1)

학자의 비유처럼 구원을 받지 않는 것은 길을 가다가 길을 잃는 것(배가 물에서 표류하는 것)과 같습니다. 길을 잃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nothing)도 없습니다. 그냥 조류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는 세상과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nothing)이 아닌 무엇을(something) 하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위의 학자는 예수님을 닻과 방향타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닻이자 방향타로 삼아야 우리는 표류하는 일이 없습니다.

2. For if the word spoken through angels proved steadfast, and every transgression and disobedience received a just penalty,
3. how will we escape if we neglect so great a salvation—which at the first having been spoken through the Lord, was confirmed to us by those who heard,
4. God also testifying with them, both by signs and wonders, by various works of power, and by gifts of the Holy Spirit, according to his own will?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히브리서 2:2-4. 말씀이 주는 경고: 이렇게 큰 구원을 소흘히 한다면?

2. 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입증되어, 모든 범죄와 불복종이 마땅한 벌을 받았습니다. 3. 만일 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징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확증한 것입니다. 4. 하나님도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의 뜻에 따라 주신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습니다. 

"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 (2절). 이것은 천사의 지시로 받은 모세의 율법을 묘사한다: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막 7:53). 율법이 천사들의 손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모세에게 전해졌다는 생각이다. 천사가 율법을 모세에게 전했다는 생각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신 33:2, 행 7:53, 갈 3:19).

모세의 율법은 확실하게 입증되었습니다 (모든 범죄와 불복종이 마땅한 벌을 받았습니다). 저자는 그 사실에 주목하기를 요구합니다. 천사를 통해 받은 말씀인 하나님의 율법도 지키지 않았는데 더 뛰어난 분인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소흘히 한다면 어떠한 징벌도 면하지 못한다"라고 작가는 경고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전달되는데 (기회는 주어지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무시(경시)하느냐 한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무시한다는 표현은 거부한다는 표현과는 다릅니다. 비신자뿐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구원을 소홀히 하는 이유는 구원이 단순히 무엇인가를 받는 것이지 무엇인가로부터 구원 받는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적어를 구원으로 볼 때 동사의 강도를 생각해 봅니다: 받아들이다 > 무시하다 > 경시하다 > 거부하다. 학자의 설명입니다:

이 말은 신앙인에게 한 말이지 신앙 밖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니다. 설명된 위험은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원칙이 거기에도 확실히 적용되지만), 그 위험은 구원을 무시하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복음 전도로 쓰인 것이 아니라 낙담한 기독교인들에게 격려와 경고로 쓰였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예수님과 지속적인 동행을 소홀히 한 사람들에게 쓴 글이다.

"이렇게 큰 구원"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so)'라는 단어는 익숙한 구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 3:16)의 예와 비슷하며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표현한다." (Griffith Thomas)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확증한 것입니다" (3절). 이 구원을 말씀하신 주체는 주님이시고, 대상은 우리입니다. 그 사이에 목격자인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증인이십니다. 그 증언은 표적들놀라운 일들과 행하신 이적들과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선물들로 확인되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확증한 것'이란 구절에서 저자는 예수 사역의 사도들과 목격자들을 통해 그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저자가 1세대 기독교인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또한 저자는 히브리어에 능통하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쓰지 않았다고 믿는 사도 바울이 저자가 아님을 학자들은 뒷받침합니다.

한 학자는 말합니다: "기적과 성령의 선물을 부정하는 것과 그것들을 위조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지 말하기 어렵다. 두 가지 오류 모두 위험하다." 주님의 기적과 성령의 선물에 우리는 목말라 합니다. 그런데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기적을 위조하여 우리의 목마름을 유혹하는 일이 있습니다. 학자는 이 둘 다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5. For he didn’t subject the world to come, of which we speak, to angels.
6. But one has somewhere testified, saying, “What is man, that you think of him? Or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7. You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You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구원의 창시자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히브리서 2:5-7. 그리스도의 인간성

5.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하는 앞으로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6. 그러나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증언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길래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는가?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길래 주께서 그를 돌보시는가? 7. 하나님께서 그를 잠시 천사보다 낮추셨으나 영광과 존귀의 관을 그에게 씌우셨습니다.

5절 저자는 성경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천사가 아닌 사람에게 복종하게 하셨고, 땅을 다스릴 사람의 지배권을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천사는 다가올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창 1:26-30, 시 8:4-6). 

6절 저자의 시선은 천사에서 사람과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사람을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인자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하십니다. 1장에서 저자는 예수의 신성과 천사들에 대한 탁월함을 성경을 인용하면서 증명하였습니다. 2장에서는 사람과 인자(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반은 하나님이고 반은 인간인가? 겉으로는 사람이고 속으로는 하나님인가? 이 이중적인 본성에 대해 학자는 설명합니다: 

예수를 단지 하나님이나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를 반은 하나님이고 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를 "겉으로는 사람"이고 "속으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며, 인간의 본성이 그의 신성한 본성에 추가되었고, 두 본성이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다 가르친다.

초대교회 시절 예수님에 대한 최초의 거짓 가르침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정말 인간이었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 이단은 고대 그리스어 "인 것 같다(to seem)"에서 유래한 도체티즘[Docetism, 가현설(假現說), Illusionismus]이라고 불리며, 이단자인 케린투스(세상은 하나님이 아닌 중간신이나 천사들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가 가르쳤다.


8. You have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feet.”
For in that he subjected all things to him, he left nothing that is not subject to him. But now we don’t yet see all things subjected to him.
9. But we see him who has been made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Jesus, because of the suffering of death crowned with glory and honor, that by the grace of God he should taste of death for everyone.


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8-9.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 그리스도 예수

8.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셔,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9.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봅니다. 그는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셨지만, 죽음의 고난으로 인해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키셨습니다" (8a절). 저자는 하나님이 모든 것(어떤 것이 아니라)을 인간에게 복종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 지배권을 주셨고 예수님이 이 권위를 행사하셨기 때문에, 이는 예수님은 사람임이 틀림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8b절). 앞에서는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켰다고 저자는 말했지만, 여기에서는 '만물이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8절 저자는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켰다'라고 말하고 이어 '그러나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라고 상반되는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9절은 '그러나'로 시작하면서 계속합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도 같이 제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봅니다" (9a절). 우리가 예수를 보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 많다. 인생의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은 "왜?"라고 묻는 것에서 찾을 수 없다. 가장 위대한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어떤 이들은 믿음의 눈이 아닌 그들의 실제 눈으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보는 것(sight)은 성경에서 신앙이 무엇인지를 나타내기 위한 비유, 일례, 상징으로 매우 자주 사용된다. 믿음은 영혼의 눈이다. 그것은 예수를 보는 행위이다." (Spurgeon)

예수님을 실제 눈으로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예수님께 저항하고 조롱하고 거부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실제 눈보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9절의 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봅니다(We see Jusus)". 그는 우리는 예수를 '볼 수 있다, 보았다, 볼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 사실일 수 있지만 절대적인 사실인 현재형을 사용합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도 "본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실제의 눈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온전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그를 죄인을 사랑하고 죄인을 위해 죽은 자로 보아라. 당신의 구원자, 주인, 친구, 선구자, 치료자로 보아라.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디를 가든지 그를 만나라."

"그는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셨지만" (9b절). 이 지배의 약속은 오직 예수의 겸손과 고통,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이 세상에 가져온 악, 즉 사망을 물리치셨다 (롬 5;12).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에 대한 지배권을 주셨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 그 지배권을 얻을 수 있는 힘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겸손과 고난을 통해 죽음의 권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죄 사함의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고난으로 인해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9c절).성자이신 예수님이 신성에 인간성을 더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도, 돌아가심으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것도 다 우리 모두를 위함이었음을 저자는 증언합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hebrews-2/
볼드체의 영문 번역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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