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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히브리서(Hebrews)2:10-3:6(우리의 형제,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

by 미류맘 2022.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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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의 형제라고 부르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죽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가진 사탄을 멸망시키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보다 뛰어나십니다. 모세는 충실한 종이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0. For it became him, for whom are all things and through whom are all things, in bringing many children to glory, to make the author of their salvation perfect through sufferings.
11. For both he who sanctifies and those who are sanctified are all from one, for which cause he is not ashamed to call them brothers,
12. saying, “I will declare your name to my brothers. Among the congregation I will sing your praise.” 
13. Again, “I will put my trust in him.” Again, “Behold, here I am with the children whom God has given me.”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히브리서 2:10-13 우리의 형제이신 예수님

10. 모든 것이 그를 위하고, 그리고 모든 것이 그를 통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르게 하도록,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하여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함을 받은 자들이 모두 한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1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양하겠습니다." 13.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분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과 함께 내가 여기에 있다."

"... 그를... 당연했습니다" (10b절). 여기에서 '그'는 아들이라기보다는 성부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영문으로 'For it became'(그리스어 prepo)는 "그것은 적절하다" 또는 "당연하다"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아가 고통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적절하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예수님께 일어난 일 (고통받고 죽으신 일)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일치했고 당연한 일임을 재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하고, 그리고 모든 것이 그를 통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0a절). 여기에서도 '그'는 아들이 아닌 아버지를 가리킨다. 바울은 이 구절을 로마서 11장 36절에서 사용하는데, 이 구절은 하나님에게 분명히 적용된다. 요점은 아버지가 배우이고, 아들을 완벽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는 것이다(아래 10d절).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르게 하도록" (10c절). 영광은 하나님의 특징이며, 하나님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위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을 예수님과 함께 나누셨다. 예수님의 영광은 변화(눅 9:28-36)와 그의 죽음과 부활(눅 24:26)에서 드러났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구원하신) 많은 자녀들과 영광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하여 완전하게 하신다" (10d절). 우리 구원의 창시자는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그를 완전하게 하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함을 받은 자들이 모두 한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11절). 저자는 '거룩하게 하시는 이 (하나님께서 아들)'과 '거룩함을 받은 자들(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자녀들)'이 한 근원에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학자는 이것이 예수님의 요한복음의 대제사장 기도를 떠오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고,
아버지가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인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습니다" (요 17:6, 9-10)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양하겠습니다" (12절). 이 구절은 시편 22장 22절에서 인용된다. '다윗의 시'인 그 시편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막 15:34)으로 시작한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

"내가 그분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과 함께 내가 여기에 있다." (13절). 앞 구절은 이사야 8장 17절을 수정한 것으로 보이며 ("여호와를 나는 기다릴 것이다"), 뒷 구절은 이사야 8장 18절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사야 8장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14. Since then the children have shared in flesh and blood, he also himself in the same way partook of the same, that through death he might bring to nothing him who had the power of death, that is, the devil,
15. and might deliver all of them who through fear of death were all their lifetime subject to bondage.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우리와 같은 살과 피를 가지신 예수

14. 이 자녀들은 같은 살과 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도 또한 같은 모습으로 같은 살과 피를 가지셨습니다. 그는 죽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멸망시키시고 15. 죽음을 무서워하여 평생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자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 자녀들은 같은 살과 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도 또한 같은 모습으로 같은 살과 피를 가지셨습니다" (14a절). 우리 인간이 혈육(血肉, 살과 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살과 피를 가지셨습니다. 그 뜻은 우리와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을 공유한다는 말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말구유를 요람으로 삼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인간적 조건을 함께 하셨다. 현대 의학이 등장하기 전에 태어난 그는 숙련된 산부인과 의사나 시설이 잘 갖춰진 병원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의 부모는 살인자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치기 위해 한밤중에 그를 싸매야 했다. 그의 사역 기간 동안 그는 먼지투성이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끔찍했다. 최악의 죽음이었다. 죽음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수는 최악의  잔인한 죽임을 당했다.

"그는 죽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를 멸망시키시고" (14b절).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가진 마귀(악마)'를 멸망시키셨습니다. 한 학자는 예수께서 악마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악마를 파괴하기(destroy) 위해 오셨다고 설명합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여 평생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자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15절). 예수님은 죽음의 공포와 그 두려움의 속박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갖게 된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기도문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라고 말씀하셨다. 


16. For most certainly, he doesn’t give help to angels, but he gives help to the offspring of Abraham.
17. Therefore he was obligated in all things to be made like his brothers, that he might become a merciful and faithful high priest in things pertaining to God, to make atonement for the sins of the people.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16-17 예수님이 우리 형제로서 하신 일

16. 확실히 예수께서는 천사들을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우려 하였습니다. 17.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점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시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예수께서는 천사들을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16a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자는 1-2장에서 계속 아들이 천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구절에서 성자이신 아들이 천사를 돕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우려 하였습니다" (16b절). 이사야 41장 8-1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내 친구 아브라함"을 말씀하시며 약속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내가 너를 택한 것이지 너를 버린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저자가 유대교 기독교인들에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과 동일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들뿐 아니라, 피로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 바울은 말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 3:7).

  • 예수님의 계보에는 두 이방인인 룻과 라합이 포함된다 (마 1:1-17).
  • 그는 이방인들에게 사역했다 (마 4:25절; 8:28절; 15:28)을 섬겼다.
  • 그는 천국이 "마치 바다에 던져져 모든 종류의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은밀히 이방인들을 언급한다(마 13:47).
  • 마태는 로마의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말했다고 기록한다 (마 27:54).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는 말로 사역을 마무리하셨다 (마 28:19).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점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시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17a절). 위의 14절 설명을 참조.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습니다" (17b절). 유대법은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정교한 희생 제도를 세웠다. 대제사장은 제사 집행에 책임이 있었다. 대제사장만이 속죄의 날에 성소(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리스도는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맡았다.

우리는 속죄(atonement)를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에 죄가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과 좋았던 관계가 깨졌고, 다시금 그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의지적으로 불복종한 죄입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그러나 하나님과 깨진 그 관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제물로 죽으심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18. For in that he himself has suffered being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tempted.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2:18 시험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는 우리를 도울 수 있다

18. 그분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시험받는 자들을 도울 수 있으십니다. 

"그분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18a절). 우리는 세 개의 공관복음서(마 4:1-11; 막 1:12-13; 누 4:1-13)에서 세례 후 예수의 시험 이야기를 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그의 초기 시험에 대한 설명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가 우리처럼 시험을 받았다면, 사탄은 정기적으로 그를 시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눅 4:13) 말하면서 이를 확인하는 듯하다.

그분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시험 받는 자들을 도울 수 있으십니다 (히 2:18)

예수님은 우리가 사탄의 유혹(시험)을 받는 것처럼 유혹을 받으셨지만, 우리처럼 쉽게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심중을 이해하시고 동정심을 가지시고, 우리의 넘어짐을 용서하시고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 Therefore, holy brothers, partakers of a heavenly calling, consider the Apostle and High Priest of our confession: Jesus,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3:1 예수님을 생각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 

1.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동반자인 거룩한 형제 여러분, 우리 고백의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1a절). 저자는 표류하지 말라'로 시작한 2장과 마찬가지로 3장도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우리와 같은 '혈육(血肉)'을 가지신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고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기반으로, '예수가 누구인지, 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아는 것은 건강한 기독교인의 삶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동반자인 거룩한 형제 여러분" (1b절). 앞에서 저자는 말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2:11). 이 칭호는 우리가 이미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부름을 받고 주님과 같이 '거룩하라' 명령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동반자'이자 '형제'로 부르십니다. 예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르게 하도록' 헌신하셨기 때문에(2:10), 우리는 예수의 동반자이자 형제입니다. 

"우리 고백의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1c절). 저자는 예수님을 '사도이자 대제사장'으로 비유합니다. 여기에서 사도(Apostle)는 대문자로 쓰였으며 그리스어로 대사(ambassador)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도 중요한 사랑의 메시지를 궁극적인 대사이신 아들을 통해 보내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보내신 '대사들'에 대한 학자의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교회를 위해 그의 독창적이고 권위적인 "대사들"을 선택하셨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열두 사도들이다. 하나님은 덜 권위적인(예수님보다) 의미에서 대사들을 선택하셨고, 그 맥락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위한 대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확실히, 예수는 아버지의 궁극적인 대사였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리고 '고려하라(consider)' 말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너무 사랑하셔서 궁극적인 전령이시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그리스도 예수이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도이자 대제사장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이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죄 많은 사람 사이의 중재자이십니다.

"우리 고백의 사도이며 대제사장" 예수님을 칭하는 명칭(the Apostle and High Priest of our confession)을 번역하는데 처음에 '믿음(confession)'으로 번역했다가 아래 학자의 설명을 읽고 '고백'으로 수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백의 대사이시고 중재자이시다. 기독교는 입과 생명으로 이루어진 고백이다(마 10:32, 롬 10:9). "고백"이라는 단어는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죄에 대해 "같은 말"을 해야 하고, 구원과 관련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구원의 필요성과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준비에 대해 "같은 말"을 해야 한다.


2. who was faithful to him who appointed him, as also Moses was in all his house.
3. For he has been counted worthy of more glory than Moses, because he who built the house has more honor than the house.
4. For every house is built by someone; but he who built all things is God.
5. Moses indeed was faithful in all his house as a servant, for a testimony of those things which were afterward to be spoken,
6. but Christ is faithful as a Son over his house. We are his house, if we hold fast our confidence and the glorying of our hope firm to the end.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히브리서 3:2-6 충실한 종 모세, 아들이신 예수

2.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서 한 것과 같이, 그분은 당신을 세우신 분에게 충성하였습니다. 3. 그는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집보다 집을 지은 사람이 더 많은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4. 집마다 집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5. 모세는 앞으로 말씀하실 것들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안일에서 종으로서 충성하였습니다. 6.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충실하십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 소망의 확신과 영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입니다.

"충성하였습니다" (2절).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충실함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한 모세와 비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우신 분(하나님)께 충성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충실하실 것입니다. 

"모세":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영광을 받았다.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출 34:29-35), 미리암과 아론 앞에서의 변호(민 12:6-8), 고라의 아들들 앞(민수기 16장)에서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3a절). 그러나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그의 세례(마 3:16-17), 변화(막 9:7), 그리고 부활(행 2:26-27; 2:31-33)에서 훨씬 더 큰 영광을 받았다. 

"집보다 집을 지은 사람이 더 많은 영광을 받기 때문입니다" (3b절). 모세는 하나님의 집안의 일원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집을 지으신 분으로, 더 큰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모리스에 따르면, 고대 랍비들은 모세를 천사들보다 더 위대한 사람으로 여겼다. 히브리서 작가는 모세를 비판하지 않지만 예수와의 적절한 관계에서 모세를 바라본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안일에서 종으로서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충실하십니다" (5-6절). 저자는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도에서 모세는 빈틈이 없었지만 충실한 이었고, 예수님은 아들로서 충실하시기 때문에 모세보다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만일...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입니다" (6절). 히브리인들에게 글을 쓰는 저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속하는 이점을 설명함으로써, 뒤로 물러나고 싶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예수를 끝까지 굳게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저자의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 소망의 확신과 영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가 바로 주님의 집입니다. 베드로는 전합니다: "사람들에게 버려졌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귀중한 살아있는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살아있는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벧전 2:4-5) 우리가 집을 짓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통해 집을 지으십니다.

우리의 소망의 확신과 영광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우리는 주님의 집입니다.

히브리서 묵상이 쉽지 않습니다. sermonwriter와 enduringword의 학자들의 설명에 기반하여 번역, 편집해서 올립니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hebrews-210-18/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hebrews-3/
볼드체의 영문 번역은 WEB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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