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아직 남아있는 하나님의 안식을 놓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안식은 일을 계속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 같이 백성을 향해 '믿음'을 통해 안식에 들어가라고 초대합니다.
히브리서 저자에 대한 학설이 많은데, 바울이 히브리어로 쓴 것을 누가가 그리스어로 번역했다는 설, 필체가 바울이 아니라는 설, 다른 사람이 썼다는 설 등 다양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였든 간에, 이 책이 쓰인 시기가 신약시대의 이른 시기에 (AD 67-69, 예루살렘과 두 번째 신전이 파괴된 AD70년 이전) 쓰였을 것으로 작가들은 예상합니다.
sermonwriter의 설명으로 4장을 시작합니다.
저자는 앞에서 "형제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떠나려는 불신의 악한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12)라고 간청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들의 "불신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된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음을 상기시켰다(3:19). 이어 "그러므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에서 너희 중에 누구라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우려했다(4:1). 그리고 그는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누구든지 순종하지 않는 같은 사례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4:11)
1. Let’s fear therefore, lest perhaps anyone of you should seem to have come short of a promise of entering into his rest.
2. For indeed we have had good news preached to us, even as they also did, but the word they heard didn’t profit them, because it wasn’t mixed with faith by those who heard.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4:1-2 경고: 하나님의 안식을 놓치지 말라
1. 그러므로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에서 너희 중에 누구라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2. 우리도 그들과 같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들은 사람들의 믿음과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1절). 작가는 4장도 '그러므로'로 시작하면서 불신으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3장의 생각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은 여전히 남아 있고, 우리는 믿음으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을 작가는 경고합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2절). 작가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복음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유익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들어 기회를 받았지만, 그 기회는 믿음과 연결되어야(mixed with faith)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번역에서 복음은 '믿음과 섞여야(mixed with faith)' 효과가 있다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23) 말씀하신 대목이 생각납니다. 들어도 믿음으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면 소위 '말짱 도루목'이 되는 것입니다.
3. For we who have believed do enter into that rest, even as he has said, “As I swore in my wrath, they will not enter into my rest;” although the works were finished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4. For he has said this somewhere about the seventh day, “God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s;”
5. and in this place again, “They will not enter into my rest.”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4:3-5 하나님의 안식과 같은 하나님 백성의 안식
3. 그러나 믿는 우리는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분노하여 맹세한 대로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이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4. 일곱째 날에 대해서 어딘가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그의 모든 일에서 쉬셨다" 5.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받고도 믿지 않는 자는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에 이어, 3-5절은 '그러나'로 연결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 안식" (3절). 이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들어오기 훨씬 전, 아주 오래 전에 창조의 일을 끝내셨습니다. 여기에서 '내 안식'은 창세기에서 인용된 것으로,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고 안식하는 형태를 본뜬 것이라는 학자의 설명입니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 2:2)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5절). 이 구절은 시편 95장 11절의 인용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하나님이 행한 일을 보고도 하나님을 시험한 죄악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하셨습니다.
6. Seeing therefore it remains that some should enter into it, and they to whom the good news was preached before failed to enter in because of disobedience,
7. he again defines a certain day, “today”, saying through David so long a time afterward (just as has been said),
“Today if you will hear his voice, don’t harden your hearts.”
8. For if Joshua had given them rest, he would not have spoken afterward of another day.
9. There remains therefore a Sabbath rest for the people of God.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브리서 4:6-9 하나님 백성을 위한 안식
6.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갈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먼저 전해 들은 사람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7. 오랜 후에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들으면, 너희 마음을 굳게 하지 말라" 말씀하시면서 특정한 날인 "오늘"을 다시 정하셨습니다.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아직도 안식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6절, 이스라엘이 불손종해서 들어가지 못한 안식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안식'에 대한 학자의 설명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들으면" (7절). 다윗은 하나님 백성을 위한 안식이 남아 있음을 증명한다(시 95:7-8). 여호수아가 안식의 약속을 완전히 이행했다면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오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여호수아에 대한 언급은 우리에게 "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 여호수아는 첫 번째 여호수아가 미완성으로 남긴 것을 끝낼 것이다. 예수님은 모세와 첫 여호수아보다 더 위대하시다.
이 안식은 교리와 이념보다는 인성 -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힘들어하고 우는 아이를 만나 이념과 논리로 위로하고 쉼(안식)을 주려 한다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왔을 때 아이는 다시 행복해한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위안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수고하신 후에 안식에 들어가신 것처럼, 우리도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의지하면 우리에게 안식이 남아 있다고 저자는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를 닮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 안에서 쉼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는 참 안식임에 틀림없습니다.
10. For he who has entered into his rest has himself also rested from his works, as God did from his.
11. Let’s therefore give diligence to enter into that rest, lest anyone fall after the same example of disobedience.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4:10-11 마
10.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그의 일에서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누구든지 순종하지 않는 같은 사례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그의 일에서 쉬는 것입니다" (10절). 이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셨듯이,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수백 년 후에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안식의 완성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은 아직 있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듣고도 믿음과 결부되지 않으면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도 그 끝나지 않은 안식의 여정 위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순종하지 않는 같은 사례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11절). 우리가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쓰지 않으면 재앙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순종하지 않은 사례로 빠져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2.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an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of soul and spirit, of both joints and marrow, and is able to discern the thoughts and intentions of the heart.
13. There is no creature that is hidden from his sight, but all things are naked and laid open before the eyes of him with whom we have to do.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2-13 마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고, 양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영과 혼,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찌르고 심지어 분리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까지 알아내십니다. 13. 어떠한 피조물도 하나님 앞에서 숨겨진 것이 없습니다. 즉,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그분의 눈 앞에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고" (12a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 율법과 선지자들.
-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1).
- 구약과 신약의 성경.
- 우리 안 살아 계신 성령의 일.
- 복음 전파와 성경의 가르침.
그러나 '살아 있고 힘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적인 말씀으로만 올 수 있다고 가정함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말씀과 담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범생이처럼 말씀과 성경이 아닌... 자연과 교감하면서, 친구와의 세상 이야기를 통해서, 육아를 통해, 또는 음악이나 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살아 있고 힘이 있는 말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고, 양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히 4:12)
말씀은 도처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말씀이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열린 귀와 눈은 사탄의 유혹에도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에 대처하여 학자는 조언합니다.:
-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
- 분별하기를 원하는 상대방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하라. 우리는 들은 것과 성경에서 찾은 것을 비교함으로써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다. 성경에 반하는 것은 거짓이다.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말씀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양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12b절).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비유합니다. 당시 칼은 군인의 주요 무기였고,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칼을 갈았다(섬뜻~)고 합니다. 특히 양날이 선 칼은 특히 치명적이었는데 이쪽저쪽으로 휘둘려도 모든 것이 잘려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과 혼,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파고들고 심지어 분리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까지 알아내십니다" (12c절). 양날이 선 칼이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 존재의 핵심까지 파고든다.
번역하면서 '영(靈, the soul, 그리스어 psyche)'과 혼(魂, the spirit, 그리스어 pneumatos)'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한 학자의 설명입니다:
- 그리스어 psychy(soul)은 호흡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으며 사람의 신체적 생명력이다.
- 그리스어 penmatos(spirit)도 호흡과 관련이 있지만 그 사람의 영적인 생명력이다.
그리고 '영과 혼을 분리하며'에서 '분리하다'로 번역한 'dividing'은 그리스어로 diikneomai인데, '분리하다'보다 더 나은 번역은 '침투하다(penetrate)' 또는 '뚫다(pierce)'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존재의 핵심, 즉 우리의 육신과 영혼까지 파고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지어 "마음의 생각과 의도까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칼' (엡 6:17)이라고 하면서 검의 은유를 사용하였다. 요한은 환영을 보았다: "인자 같은 이가... 그의 입에서 양날이 선 칼이 나오고" (엡 1:13, 16). 일반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양날의 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피조물도 하나님 앞에서 숨겨진 것이 없습니다" (13a절). 저자는 위의 12c절에서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소개하고, 여기서 그 생각을 이어간다. 시편에서 다윗은 이 주제를 다루면서 말한다:
WEB 번역 | 개인 번역 |
“Where could I go from your Spirit? Or where could I flee from your presence? If I ascend up into heaven, you are there. If I make my bed in Sheol, behold, you are there! If I take the wings of the dawn, and settle in the uttermost parts of the sea; Even there your hand will lead me, and your right hand will hold me. If I say, ‘Surely the darkness will overwhelm me; the light around me will be night;’ even the darkness doesn’t hide from you, but the night shines as the day. The darkness is like light to you” (Psalm 139:7-12). |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주의 앞에서 어디로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주는 거기에 계십니다. 내가 스올에 내 자리를 펴도, 주는 거기에 계십니다! 9 내가 새벽의 날개를 잡고 바다의 저 끝에 자리를 잡아도, 10 거기에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굳게 잡으실 것입니다. 11 만일 내가 '어두움이 나를 덮치고 내 주변의 빛이 밤이 될 것이다'라고 말해도, 12 어둠도 주님에게서 숨지 못하고, 주에게는 어둠이 빛과 같습니다" |
이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우리들에게 안심이 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숨긴다면 이것은 두려울 수 있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그분의 눈앞에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13b절).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그분"라는 구절은 예수님이나 하나님에 대한 은밀한 언급이다.
우리의 마음과 참된 동기를 아시는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반복적으로 이겼다(마 9:10-13; 12:1-14, 22-32; 15:1-9; 23:13, 23-36).
'우리가 함께 해야 할 그분(him with whom we have to do)'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마태복음 25장 31절 46절에서 볼 수 있는 민족들의 심판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올 때, 그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즉,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모든 민족을 구분할 것이다. 그들이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보고, 옥에 갇혔을 때 가서 보았는지가 민족의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된 이 구절의 요점은 인자이신 주님은 각 사람을 자세히 조사할 필요 없이 빠르고 쉽게 그러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눈앞에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 학자가 인용한 마태복음 25장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민족을 심판하는 기준을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안식에 들어가느냐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에서 보듯이, 우리가 주님에게서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에게는 어둠이 빛과 같습니다 (시 139:12)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hebrews-3/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hebrews-412-16/
볼드체의 영문 번역은 ES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 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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