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성경묵상

에베소서(Ephesians)3:14-21(뿌리가 내리고 터를 잡아서)

by 미류맘 2022. 9. 7.
728x90

앞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 말하고,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그들이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의 찬가로 감사기도를 마칩니다.

14. For this reason I bow my knees to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15. from whom the whole family in heaven and earth is named,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기를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에베소서 3:14-15.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바울

14. 이러한 이유로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은 어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14절): 바울이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 목적에 대한 지식(하나님의 뜻을 바울이 알도록 해 주신 주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목적과 뜻을 알았기 때문에(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그 계획에서 자신의 위치) 그는 확신감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투옥 중에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손을 들고 하는 기도 자세가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 기도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자신의 겸손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 성경의 사례들을 학자는 소개합니다:

솔로몬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왕상 8:54). 에스라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스 9:5). 시편 작가는 우리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요청했다(시95:6). 다니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단 6:10).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예수께로 왔다(마 17:14, 20:20, 막 1:40). 스테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행 7:60).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행 9:40).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행 20:36), 그리고 다른 초기 기독교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행 21:5).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눅 22:41)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1, 44)

성경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릎을 꿇고 기도한 많은 큰 사람들의 선한 선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담 클라크는 성전 봉헌 때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드린 기도와 여기에서 바울의 기도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기도의 많은 부분은 성전을 봉헌할 때 솔로몬이 바친 것과 매우 흡사하다. 사도는 기독교 교회를 봉헌하고 있었다." (Adam Clarke)

솔로몬이 유형의 교회를 봉헌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면, 바울은 무형의 교회를 봉헌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영원한 계획의 '기획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시는'일꾼' 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환'으로 임명해 주신 그 큰 은혜에 옥중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은 어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았습니다 (15절): 바울은 모든 하나님의 가족이 그의 이름을 따라 불려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당시 바울을 우리와 같이 땅에 있는 가족이었지만 지금은 하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땅에 사는 우리도 하늘의 가족이 되기를 소망하며 땅에서의 오늘 하루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16. That He would grant you, according to the riches of His glory, to be strengthened with might through His Spirit in the inner man,
17.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 that you, being rooted and grounded in love,
18. may be able to comprehend with all the saints what is the width and length and depth and height;
19. to know the love of Christ which passes knowledge; that you may be filled with all the fullness of God.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3:16-19.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16. 아버지께서 그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그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시고, 17.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살아 계시게 하여 주시고, 여러분이 사랑 안에서 뿌리가 내리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그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시고 (16절): 앞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의 실체, 계시, 계획, 목적의 정말로 신비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 바울의 기도는 다시 에베소 교인들에게 향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2. 성령을 통하여, 3. 능력(권능)으로, 4. 마지막으로 에베소 교인들의 내면(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속 사람: 우리에게는 육체적 몸의 사람과 내면의 사람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몸의 힘은 육체에서 나오지만 정신적인 힘은 우리의 내면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근육질의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힘이 엄청 세다!"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의 힘을 알지 못합니다. 그 힘을 바울은 '아버지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달라고 구합니다. 이는 잘 생각해야 하는 구절인데, 세상에서의 지위에 관계 없이 영광을 주실 사람을 보시고 하나님이 그 풍성함의 정도(measure)를 결정하시는 것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풍성함에 따라 우리를 강건하게 하십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거하시게 하여 주시고 (17a절): 바울은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이 이 신도들 속에 거하실 것을 요청하였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우리의 거처를 만들 것이다." (요 14;23)

'거하시게'로 번역한 영문은 'to live in, 또는 to dwell in'인데, 전자는 그냥 산다는 의미로, 후자는 정착해서 산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학자의 흥미로운 설명입니다: 

  • 고대 그리스어의 이 두 개의 단어는 "(안에서) 산다"라는 생각을 전달한다. 하나는 이방인으로서 어떤 곳에서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그곳을 영원한 집으로 만들기 위해 그곳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드웰은 영원한 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한다. 예수님은 이방인(손님)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 정착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우리 내면의 마음 속에 거하게 하려면, 우리는 믿음으로 그 영광을 잡아야 한다고 한 학자는 말합니다:

"당신에게는 성경이 있고, 당신에게는 무릎이 있다. 그것들을 사용해라." (C. G. Moule의 대부 Carr John Glynn)

주님은 밤에 도둑처럼 우리 내면에 들어오셔서 우리 몰래 거처를 만들지는 않으십니다. 그 영광을 잡으려면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영적인 힘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의 학자는 성경의 말씀과 겸손과 기도의 무릎을 사용하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살아 계시게 하여 주시고, 여러분이 사랑 안에서 뿌리가 내리고 터를 잡아서 (엡 3:17, 이미지 소스: https://www.worldchallenge.org/)

여러분이 사랑 안에서 뿌리가 내리고 터를 잡아서 (17b절): 주님이 우리 내면에 거하게 하시려면 신도 각자가 사랑에 기초를 두고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 표현에 대해 스퍼전을 말합니다:

  • "두 가지 표현이 사용된다. '뿌리를 내리고'라는 표현은 토양을 붙잡고 바위를 휘감고 위로 올라갈 수 없는 표현이다. 그리고 '터를 잡아서'라는 표현은 전체적으로 자리를 잡은 건물처럼, 그 기초의 문제로 인해 미래에 어떠한 균열이나 결함도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Spurgeon)

이미지 소스: https://present5.com/

산책을 하다가 산의 나무들을 보면 신비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조용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고 있을까? 어제 산에서 내려오는데 뿌리가 뽑힌 나무 밑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의 그림을 뒤집은 것 같은 모습입니다. 매일 지나가면서 보이는 녀석인데, 쳐다보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건... 어느 부자집 거실에 있을 법한 모습은 나무 밑둥인데... 왜 저렇게 되었을까?"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8a절): 위의 뿌리와 터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개인으로부터 성도들 공동체로 이동합니다. 주님을 향한 일방적 사랑뿐 아니라 신도들 간의 사랑을 통해서 말로만이 아닌 경험을 통해 그들이 깨닫기를 바울은 기도합니다.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18b절): 예수님의 사랑에는 수학처럼 측정할 수 있는 수치가 있다는 바울의 설명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삼차원 - 아니 사차원의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냥 측량할 수 없는,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이 아닌 측정이 가능한 실체적인 사랑입니다. 학자의 설명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정말 깨달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의 차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십자가는 네 가지 방향으로, 본질적으로 모든 방향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포함할 만큼 넓다
    •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을 통과할 만큼 충분히 길다.
    • 하나님의 사랑은 최악의 죄인에게 닿을 만큼 깊다.
    •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갈 만큼 높다.

'어머님 은혜'라는 동요가 생각납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넓고 넓은 바다라고... 어머님 은혜'를 어릴 때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하나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는 측정이 가능하다 (=측정할 수 없음)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19a절): 바울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썼다. 이것은 어림짐작, 추측, 감정 또는 느낌이 아니다. 이것은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랑도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을 바울은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지식에 넘치는'이라고 번역합니다. 종교는 지식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믿음의 문제일까요? 또는 머리로 믿는 것인지 가슴으로 믿는 것인지? 굳이 말하자민 지식(머리)에 기반한 믿음(가슴)으로 믿는 것이 아닐지...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영어성경을 공부하면서 생각합니다. '야, 너는 하나님을 머리로 믿고 있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여러분이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19b절): 바울은 하나님께 에베소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과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경험하고, 그 충만함으로 그들의 삶이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구절을 클라크는 설명합니다. 

"이 기도에 있는 모든 위대한 말씀 중에서 이것이 가장 위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으로 가득 찬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가득 찬다는 것은 더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가득 찬다는 것은 완전히 감각과 이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Clarke)

성경을 번역하다 보면 문법적으로 또는 맥락상으로 맞지 않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충만함으로 가득 찬다'는 표현도 '역전(驛前) 앞'과 같은 영어로 표현하면 redandancy(불필요한 중복)입니다.

오래전 기업체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 글을 쓰는 요령을 강의할 때, 늘 하던 말 중의 하나가 영어는 표현이 직접적이기 때문에 돌려서 쓴다든가 불필요한 중복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다 말이 됩니다. 돌려서 하는 말, 중복, 심지어는 부정에 부정 등등... 

충만함이 이미 찼다는 의미인데 충만함으로 가득 찬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런데 성경에서는 redandancy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부정의 부정도 많이 나옵니다. 그냥 긍정으로 쓰면 되는데 왜 부정의 부정을 표현을 쓸까? 예로 들자니 생각이 안 나는데, 성경에서는 그냥 말이 됩니다.


 

20. Now to Him who is able to do exceedingly abundantly above all that we ask or think, according to the power that works in us, to Him be glory in the church by Christ Jesus to all generations, forever and ever. Amen.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3:20-21. 영광의 찬가

20.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능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에게 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능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에게: 바울이 이 큰 높이(하나님의 충만함보다 더 높은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에 이르렀을 때, 이것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묻는 것이 논리적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이것이 가능하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너는 스스로가 하기를 원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니?"  질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 우리가 경험해 보았던 모든 좋은 것을 우리는 요구할 수 있고, 경험을 뛰어넘는 것은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 있고, 뭐라고 할 수 없는 좋은 것은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이상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은 그 이상을 하실 수 있고, 그 이상을 채우실 수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능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에게 (엡 3:20, 이미지 소스: https://bibleversestogo.com/)

더 넘치도록(exceedingly abundantly): 영어로 부사가 부사를 꾸밉니다. 영문법에서 부사가 부사를 수식할 수 있는데(예로, very well) 이 표현은 영문법으로 생각하면 듣기가 불편합니다. 이미 abundantly가 '풍부하게'이고 exceedingly가 '극도로'인데, 직역하면 "극도로 풍부하게"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바울은 그 표현을 말이 되게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로, 우리는 '매우 잘 산다'라는 표현을 '풍요로운 것 이상으로 풍요롭게 잘 살아!'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그 의미 파악이 안 됩니다. 클라크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가장 충만한 것 이상으로 매우 충만하게 할 수 있다."
"Therefore he is able to do all things, and able to do superabundantly above the greatest abundance." 
(Clarke)

여러분이 사랑 안에서 뿌리가 내리고 터를 잡아서. 이미지 소스: https://dailyverses.net/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에게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은 영광을 드리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 안에서 (구원 받은 자들과 함께), 모든 세대를 통해 대대로, 하나님을 향한 영광이 영원하기를 기도하면서 기도를 마칩니다. 아멘!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ephesians-3/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ES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