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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일서(1 John)2:12-29(예수 안에 거하라!)

by 미류맘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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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독자들의 영적 성숙도에 따라 형제들을 격려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경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들은 것에 거하고,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요한일서 2:12. 죄를 용서받은 자녀들에게

12. I write to you, little children, because your sins are forgiven you for His name’s sake.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개인번역) 12. 자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2절): 요한은 정신적 성숙도에 따라 독자들에게 연설합니다. 제일 먼저 육체적, 정신적 나이가 가장 어린 어린이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어린이들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그들의 죄가 '그(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용서하심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인간이 이룬 것이 아니다. 용서의 이유는 우리 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발견된다.


요한일서 2:13. 아비들, 젊은이들, 자녀들이여!

13. I write to you, fathers, because you have known Him who is from the beginning. I write to you, young men, because you have overcome the wicked one. I write to you, little children, because you have known the Father.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개인번역) 13. 아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3a절): 자녀들에게 연설을 시작으로 요한의 대상은 그들의 아비들에게 향합니다. 아비들(fathers)은 자녀를 둔 부모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어린이들과는 달리 정신적(영적) 성숙도가 높은 사람들로 학자는 나무로 비유하면 그들은 큰 떡갈나무와 같아, 세월이 흐르면서 크고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3b절): 자녀들과 아비들의 중간점에 있는 가장 활동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의 연설이 향합니다. 그들은 마치 전쟁에 참여한 것 같이 악한 자를 이겼다고 요한은 격려합니다. 전쟁에는 어린이도 노인도 참가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참가합니다. 영적 전쟁이라면 사탄과의 싸움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3c절): 어린아이가 부모를 알듯, 자녀들이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아이에게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요한일서 2:14. 아비들과 젊은이들에게

14. I have written to you, fathers, because you have known Him who is from the beginning. I have written to you, young men, because you are strong, and the word of God abides in you, and you have overcome the wicked one.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개인번역) 14. 아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이유는 여러분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이유는 여러분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어서,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아비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이유는 (14a절): 14절은 13절의 생각을 반복합니다. 다른 점 하나는 '(편지를) 쓰다' 가 '썼다'로 현재에서 현재완료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요한이 같은 생각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비들에게 똑같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편지를 쓴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알게 된다" (3절) 말했습니다. 그것이 다일까요? 그는 그것이 다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이유는 (14b절):  여러분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있어서가 추가되어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이라는 13절의 생각이 강조됩니다. 우리의 영적 성숙도는 어디에 해당될까요 - 이이들, 젊은이들, 아니면 아비들? 


요한일서 2:15-17.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15. Do not love the world or the things in the world. If anyone loves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16.
For all that is in the world—the lust of the flesh,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is not of the Father but is of the world.
17. And the world is passing away, and the lust of it; but he who does the will of God abides forever.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개인번역)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습니다. 16.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삶의 자랑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17. 이 세상도, 세상의 욕정도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요일 2:15, 이미지 소스: https://www.bible.com/)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15절): 요한이 말하는 '이 세상'은 무엇일까요? 그는 앞에서 죄악의 어둠 가운데서 걸으면서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일 1:6). 그 생각의 연속선에서 요한은 죄악으로 가득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이 세상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습니다 (15b절): 세상을 향한 사랑과 아버지를 향한 사랑은 공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사랑하면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1장 6절의 생각의 흐름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면 이 세상을 수도원으로 만들라는 말일까요? 아니면 세상을 떠나서 수도원으로 가라는 말일까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삶의 자랑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요일 2:16, 이미지 소스: https://www.fullofeyes.com/project/3900/)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16a절): 이 세상은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삶의 자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우리의 육은 죄악과 세상적인 것에 늘 유혹을 받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게 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우리는 위선과 거짓말의 노예가 되곤 합니다. 요한이 말하는 욕망의 세계는 오늘날 광고라는 매체가 호소하는 분야 - 숨어 있는 우리의 본성을 건드리는 것이 상업적인 광고가 추구하는 분야입니다. 그 세상적인 욕망은 에덴동산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학자는 논평합니다: 

  • 이브는 선악과가 먹음직스러운 것을 보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것이 먹기에 얼마나 좋을지,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킬지 생각했다. 그녀는 육체의 욕망을 추구했다.  
  • 이브는 선악과가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것이 보기에 얼마나 아름다울지 지신이 얼마나 원할지 생각했다. 그녀는 눈의 욕망을 추구했다.
  • 이브는 선악과가 사람을 지혜롭게 해 줄 것을 믿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고 한다. 그 과일이 그녀를 얼마나 지혜롭게 해 줄까!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얼마나 존경할까! 그녀는 삶의 자랑을 추구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는 '먹지고 만지지도 말라' 명령하셨지만, 이브는 뱀의 유혹에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그것은) 먹음직스러웠고,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사람을 지혜롭게 해 줄 것처럼 보였다" (창 3:6) 창세기는 기록합니다. 이 구절과 요한이 말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삶의 자랑'이 위의 학자가 설명한 대로 정확하게 일치합니다그러나, 그것들은 -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16b절): 그러한 세상에 속한 것들은 육체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두시고, 세상적인 선악과를 만드시고, 유혹하는 뱀도 만드시고 - 그리고 우리를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잔인하신 것 아닌가?"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학자는 성경을 인용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롬 12:2)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태어난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마음의 새롭게 하라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쉽지 않지만 늘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고 의무이고 운명입니다.

이 세상도, 세상의 욕정도 사라지고 (17a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욕정도 사라지고 있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덧없는 세상에서 순간의 삶을 사는 우리의 운명이 보입니다. 세상이 지나가고 있음을 학자는 구약의 바벨탑의 몰락, 롯의 삶(룻기 13, 14, 19장), 그리고 고대 파라오들을 그 예로 듭니다:

고대 파라오들은 온갖 종류의 재산과 함께 피라미드 안에 묻혔는데, 그것들이 미래에 그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국, 그것들은 무덤 강도들에게만 쓸모가 있었다. 파라오들은 그들의 세속적인 것들을 저 너머의 세계로 가져갈 수 없었다. 아무도 이 세상의 물건들로 가득 찬 움직이는 밴을 몰고 천국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팩트는 이것이다: 이 세상이 사라진다. 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17b절): 이 세상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길을 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생을 누린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 일,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우리의 삶을 투자하라고 요한은 강력히 말합니다.


요한일서 2:18-19.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고

18. Little children, it is the last hour; and as you have heard that the Antichrist is coming, even now many antichrists have come, by which we know that it is the last hour.
19. They went out from us, but they were not of us; for if they had been of us, they would have continued with us; but they went out that they might be made manifest, that none of them were of us.

적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녀

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개인번역) 18. 자녀들이여,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는 말을 여러분이 들었듯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을 압니다.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간 것은 그들 중 누구도 우리에게 속한 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내려 한 것입니다. 

자녀들이여,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18절): 요한은 자신의 시간을 마지막 때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이 마지막 때일까요?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올 것을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접두사 anti-는 예수에 대항하는, 반대하는 존재, 스스로 예수라고 말하는 자입니다. 학자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 그의 모습이 멋지고, 매력적이고, 성공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마의 탈을 쓴 천사의 모습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개인일 수도 있고 정부와 연관된 단체 - 즉. 복수의 의미로 대문자 "A" 대신 소문자 "a"로 구성된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나 단체가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존재는 오히려 기독교 단체에서 보이는 것은 슬픈 현실입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요한의 편지에서만 나타나며 네 구절(요일 2:18, 22, 4:3, 요이 1:7)에서 5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단어는 많지 않지만 적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은 빈번하고 중요한 것이다." (Boice)

  • 이 적그리스도는 많은 칭호를 가지고 있다. 그는:
    • 다니엘서 7장 8절의 작은 뿔이다.
    • 다니엘서 8장 23절의 사나운 얼굴의 왕이다.
    • 다니엘서 9장 26절의 앞으로 올 왕자이다.
    • 다니엘서 11장 36절에서 45절의 스스로를 높이는 왕이다.
    • 요한복음 5장 43절의 자기 이름으로 오는 자이다.
    • 데살로니가 2장 3절과 2장 8절의 파멸의 아들, 죄의 사람, 그리고 무법자이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으로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정치적 독재자, 개인 우상, 아니면 심지어 교회 공동체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는 옮길 수 있으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옮길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요한일서 2:20-23. 적그리스도의 실체는? 

20. But you have an anointing from the Holy One, and you know all things.
21. I have not written to you because you do not know the truth, but because you know it, and that no lie is of the truth.
22. Who is a liar but he who denies that Jesus is the Christ? He is antichrist who denies the Father and the Son. Whoever denies the Son does not have the Father either; he who acknowledges the Son has the Father also.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개인번역) 20. 그러나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여러분이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부인하는 자가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입니다. 23.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가 없으며, 아들을 인정하는 자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20절): 앞 구절의 적그리스도 이야기 이후에 '그러나'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부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말합니다.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부인하는 자가 아닙니까? (22절):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인정하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그 관계를 부정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학자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그리스도를 정의하는 것처럼, 예수가 그리스도는 메시아, 즉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며, 우리에게 아버지를 완벽하게 드러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가 없으며 (23절): 요한은 여기서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가 자주 표현한 생각을 반복했다: "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 (요 12:44-45)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 (요 13:20)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도 부인하는 것이고, 역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예수님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24-25. 처음부터 들은 것에 거하라!

24. Therefore let that abide in you which you heard from the beginning. If what you heard from the beginning abides in you, you also will abide in the Son and in the Father.
25. And this is the promise that He has promised us—eternal life.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개인번역) 24. 그러므로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머물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이 여러분 안에 있으면, 여러분도 아들과 아버지 안에 머무를 것입니다. 25. 그리고 이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것,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요한은 적그리스도의 실체와 위험을 경고하고 초심을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우리가 들은 원래의 핵심적인 기독교 메시지 안에서 살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들의 말에 미혹당하지 말고 단순한 생명의 말씀의 힘 안에서 걸으라, 그러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사상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 그런 생각이 있었나? 참신한데!" 이러한 위험에 대해서 학자는 경고합니다:

  • 인간은 천성적으로 새로운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의 항상 어떤 것에 끌린다. 우리는 거의 항상 새로운 것을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실에 관한 한, 새로운 것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이 더 좋은 것이다.

  •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6-9절에서 같은 생각을 전달했는데, 거기서 그는 새로운 복음을 추구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바울이 가르친 원래 복음을 계속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우리는 사람의 속임수와 유혹하는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도록 (엡 4:14) 유혹을 받기 때문에, 이 점이 어렵다. 우리는 처음부터 들었던 것에서 벗어나서 종종 "새로운" 것과 "흥미로운" 것을 갈망한다.

그러면 요한이 말하는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것은 어떤 말씀일까요? 요한의 시대에는 그와 같은 사도들의 가르침이었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성경 말씀에 의지하고 이리저리 떠밀리는 배처럼 동요하면 한 됩니다. 

그 말씀 안에 거하면,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머무를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이해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살라고 요한은 조언합니다. 단순한 것이 진리이고 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단순함 속에서 거하면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머무를 것입니다. 학자는 중요한 말을 합니다:

요한은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최소한의 지적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 안에 살아있다면, 하나님은 당신 안에 살아계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있고, 성장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안에 머물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은 쌍방의 관계이다.

이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것, 영원한 생명입니다 (25절): 의 진리(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것)가 우리 안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실 때, 우리에게 약속이 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다. 영생은 단순한 불멸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모든 인간은 우리의 영혼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원히 살 것이라는 의미에서 불멸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삶은 단지 영원히 지속되는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하신 분이신 하나님이 자기 안에 가지고 계신 삶의 종류를 묘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야 우리는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위의 학자의 설명대로 영생은 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있기 때문에 이는 더 공포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2:26-27. 미혹당하지 말라!

26. These things I have written to you concerning those who try to deceive you.
27. But the anointing which you have received from Him abides in you, and you do not need that anyone teach you; but as the same anointing teaches you concerning all things, and is true, and is not a lie, and just as it has taught you, you will abide in Him.

26.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개인번역) 26. 나는 여러분을 미혹하려는 자들에 관하여 이것을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로부터 받은 기름 부음이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고, 아무도 여러분은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기름 부음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진실하고,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가르친 그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이것을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26절): 적그리스도의 위협은 요한 시대에나 현대에나 진행 중인 위험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난무하고 이단과 사이비 교주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마지막 때'가 오늘이라고 생각하고 진리의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2:28-29. 예수 안에서 거한다는 것은? 

28. And now, little children, abide in Him, that when He appears, we may have confidence and not be ashamed before Him at His coming.
29. If you know that He is righteous, you know that everyone who practices righteousness is born of Him.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개인번역) 28. 그러니 이제 자녀들이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이는 그분이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가 오실 때 그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29. 만일 여러분이 그가 의로우신 것을 알면, 의를 행하는 사람은 모두 그분에게서 난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자녀들이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28절): 요한은 "예수 안에 거하라!" 말하면서 그렇게 하면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임을 확언합니다. 우리에게는 스승도 필요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의 도전적인 제안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예수 안에 거하라! 담대하라!  

 

요한은 앞에서 편지의 대상이 '여러분'이었으나 이 구절에서는 '우리'로 바뀝니다. 같은 배를 탄 동료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분이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가 오실 때, 그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학자는 성경을 인용하면서 성경에서 예수님 안에서 산다는 생각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 사람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할 것이다" (요 14:23)

바울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살아 계시기를" (엡 3:17) 기도하면서 이 생각을 표현했다. "살아간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두 가지 그리스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낯선 사람으로서 어떤 장소에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어떤 장소에 정착해서 그곳을 자신의 영구적인 집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베소서 3장 17절은 고대 그리스어로 영원한 집을 뜻하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수님이 낯선 사람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 정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모두 그분에게서 난 것을 알 것입니다 (29절): 예수를 닮는다는 것을 요한의 말로 도식화 해봅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 ⇄ 의(義)를 실천하는 것 ⇄ 그분에게서 난 것
예수의 의로우심 ⇄ 하나님 자녀의 의로움

나는 예수 안에서 태어났다! ≠ 의(義)를 행하지 않음

위는 성립되고, 아래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정리해 봅니다. 

나는 그의 계명을 지킨다(요일 2:3) 나는 그를 안다(요일 2:4) 나는 그 안에 거한다(요일 2:6)
⇄ 
나는 빛 가운데에 있다(요일 2:9) 나는 형제자매를 사랑한다(요일 2:10)

전도서를 공부하면서 "참 어렵다!" 생각했는데, 요한일서도 마찬가지도 "전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 거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빛 가운데 걷고 있을까요? 예수를 닮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오늘의 말씀은 학자들의 설명도 길고 같은 그 말이 그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무서운 것은 영생은 천국뿐 아니라 지옥에서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1-john-2/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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