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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일서(1 John)3:13-24(새 생명의 증거, 사랑)

by 미류맘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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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새 생명의 증거로 사랑을 제시하고, 사랑이 무엇이고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랑이 주는 확신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기반하여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담대하게 구하면 응답받을 것을 확언합니다.

 

요한일서 3:13-15. 사랑: 새 생명의 증거

13. Do not marvel, my brethren, if the world hates you.
14. We know that we have passed from death to life, because we love the brethren. He who does not love his brother abides in death.
15. Whoever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abiding in him.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개인번역) 13. 형제 여러분, 이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놀라지 마십시오. 14.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갔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서 거하는 사람입니다. 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살인자입니다. 여러분도 알듯이, 살인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않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13절): 앞에서 요한은 의로움, 사랑과 증오로 하나님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해도 놀라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갔음을 알고 있습니다 (14절): 요한은 우리가 형제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갔음을 확언합니다.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구원은 동화와 같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학자는 그러한 믿음과 지식에 대해 말합니다:

"나는 철학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종교에서 우리가 믿어야 하지만, 알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들이 지식과 믿음 사이에 어떤 차이를 두는지 잘 알지 못하며, 나는 묻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나는 종교와 관련된 문제에서 나는 확신하고 있고,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우리는 믿고 있고 동시에 알고도 있다." (Spurgeon)

이 세상에서는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죽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것이 가능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증명은 '사랑'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죽음 속에 어두움 속에 있는 것이고, 그는 살인자입니다. 가인처럼 실제로 형제를 죽이지 않아도 미워하고 증오만 해도 그는 이미 살인을 한 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학자는 기독교인을 측정하는 세 가지 시험을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나는 기독교인이다"라는 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실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이들 중 하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요한의 대답은 일관성 있고 간단했다. 진정한 기독교인의 증명을 측정하는 세 가지 시험이 있다: 진리 시험, 사랑 시험, 도덕 시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진리로 믿고,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우리의 행실이 바뀌어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다면, 기독교인이라는 우리의 주장이 사실로 증명될 수 있다.

위의 학자가 제안하는 대로, 우리는 자신을 대상으로 진리, 사랑, 그리고 도덕 시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 나는 성경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가?
  • 나는 형제들에게 예수님을 닮은 사랑을 베푸는가?
  • 나의 도덕적 행실이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요한일서 3:16-18. 행동하는 사랑을 실천하라!

16. By this we know love, because He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also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the brethren.
17.
But whoever has this world’s goods, and sees his brother in need, and shuts up his heart from him, how does the love of God abide in him?
18. My little children, let us not love in word or in tongue, but in deed and in truth.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개인번역) 16.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형제를 보고 그에게서 마음을 닫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겠습니까? 18.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이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16절): 요한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그 정의를 아는가? 학자는 사랑의 종류를 설명합니다: 

  • 에로스(Eros)는 에로틱한, 성적인 사랑이다.
  • 스토르게(Storge)는 가족의 사랑, 즉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또는 일반적으로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이다. 
  • 필리아(Philia)는 형제의 우정과 애정을 말한다. 그것은 깊은 우정과 동반자의 사랑이다. 필리아 사랑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으로 묘사될 수 있다.
  • 아가페(Agape)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다시 받기를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고 주는 자기주도적인 사랑이다. 이것은 위대한 사랑으로 사랑스럽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다. 거절당해도 사랑하는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은 원하기 때문에 주고 사랑한다.  그것은 주어진 사랑으로부터 보답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요한이 알게 되었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하기 때문에 주는 일방적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요한은 역설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스럽지 않은 형제를 위해 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보상도 요구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궁핍한 형제에게 베풀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말이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18절)

 

말이나 혀로는 누구나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행동과 진실함을 따르는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그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알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3:19-20. 사랑이 가져오는 확신

19. And by this we know that we are of the truth, and shall assure our hearts before Him.
20. For if our heart condemns us,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 and knows all things.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개인번역) 19.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 속한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굳세게 할 것입니다. 20.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더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굳세게 할 것입니다 (19절): 행동하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는 진리에 속한 것과 하나님 안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도 확신이 생깁니다. 그 확인에 대한 보증은 두 가지라고 학자는 말합니다:

  • 첫째,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우리를 원하신다.
  • 둘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인지 알고 계신다. 만약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실제의 자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창조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더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0절): 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어제 읽다가 뜻이 파악되지 않아 그만 두었는데... 자고 맑은 머리로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도 우리의 마음(자아)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비난한다면? 요한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보다 더 위대하다고 확인하며,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감정에 전적으로 기반을 둘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음에도 우리의 양심이 "너는 아직 잘못이 많아!" 계속 자신을 질책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난은 우리 영혼의 적의 소행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활동적인 양심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것이 학자의 설명입니다. 그럴 때는 그 양심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21-24.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담대하게 구하라!

21. Beloved, if our heart does not condemn us, we have confidence toward God.
22. And whatever we ask we receive from Him, because we keep His commandments and do those things that are pleasing in His sight.
23.
And this is His commandment: that we should believe o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love one another, as He gave us commandment.
24. Now he who keeps His commandments abides in Him, and He in him. And by this we know that He abides in us, by the Spirit whom He has given us.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개인번역) 21.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22.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이 보시기에 기쁜 일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곧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24. 주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은 그 안에 거하십니다. 이로써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그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는다면 (21절): 앞에서 과도한 우리의 양심의 질책에 대해 요한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지 않는다면'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나친 양심의 소리(그것은 일종의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에 기만당하지 말고 하나님과 교제하면, 다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 이 '담대함'에 대한 학자는 설명합니다.

"담대함(confidence; 자신감)'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 국가 시민의 가장 중요한 권리, 즉 두려움이나 수치심에 구애받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말할 권리'를 의미했다." (Baker, Odd의 말을 인용)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22절):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구하면, 주시고 받을 것을 요한은 말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이 보시기에 기쁜 일들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이기적인 마음으로 일방적으로 구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가 응답받을까요? 구하기 전에 스스로 점검해 볼 점검표를 적어 봅니다: 

  • 시작: 나는 스스로 내 마음의 책망을 받지 않는가? (주님 앞에서 담대함이 있는가?)
  • 관계: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그와 친밀한 교제의 관계가 있는가?
  • 계명: 나는 살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가? 주님 보시기에 기쁜 일을 하는가? (서로 사랑하라!)
  • 기쁨의 대상: 나는 살면서 주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가? (나 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대상이 아닌가?)
  • 신실함: 신실하게 구하는가?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가?
  • 기도의 목적: 기도하면서 이기적인 나의 뜻이 아닌 공의로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가?

저 스스로 적고 점검해 보니 저는 다 기준 미달입니다. 구하기 전에 '시작' 단계의 준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준비가 안 되었다면 내 마음의 책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위에 제가 적은 점검표에서 "(만일) 담대하게 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이 보시기게 기쁜 일들을 하고, 서로 사랑하고,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한다면", 그는 확언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이미지 소스: https://focusmagazine.org/

오늘 글의 중요한 주제가 '사랑'인데 내용이 방대하여 어떻게 정할까 생각하다가 <새 생명의 증거, 사랑>으로 정하고 이미지를 검색하는데 거의 같은 주제로 올라와 있는 이미지를 찾았습니다. <영생의 증거는 사랑이다> 오늘 말씀을 잘 요약한 것 같습니다.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주제가 '사랑' 아닐까요? 사랑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일까요?

받기를 또는 보상을 바라는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1-john-3/
https://www.bibleref.com/1-John/3/1-John-chapter-3.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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