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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이스라엘(Day4)

16.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그리고 사해

by 미류맘 2017.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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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을 잇는 잃어버린 페이지, 사해사본이 발견된 동화같은 이야기"


2017년 2월 12일(일) 42000년 동안 잠자고 있었던 판도라의 항아리, 쿰란



이번 여정은 사해사본이 우연히 발견된 동굴인 쿰란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일정이다. 일행은 마사다에서 출발해서 사해를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사해 서쪽 둑에 있는 건조한 평원 쿰란으로 이동한다. 일정표에 다윗의 은신처 엔게디(En Gedi)가 있었는데 들리지는 않고 조망만 했지 싶다. 뜻이 '새끼 염소의 우물'이라고 하는 엔게디에는 다윗 폭포로 불리는 폭포가 있다. 


키르벳 쿰란 또는 간단히 쿰란(Qumran, Hebrew: חירבת קומראן, Khirbet Qumran)은 이스라엘 성지순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경에 대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들어가면서 바로 전시실로 연결된다. 이 곳은 구약과 신약을 잇는 잃어버린 페이지(Missing Link) [사해사본: Dead sea scrolls]가 발견된 장소이다.



이런 항아리가 왜 전시실에 있는지 궁금했는데 30분 달리기를 한 이후 자료를 찾아보니 한 편의 감동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너무 이야기가 재미있어 그대로 올립니다.



운명의 돌 하나: 1947년 봄.

그날 베두인의 목동 무하마드 아즈 지브는 양과 산양을 몰고 있었다. 장소는 요르단 강과 예루살렘 사이에 낀 쿰란의 구릉지대. 사해의 북서해안에 해당하는 황폐한 바위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이어지는 협곡이다.

열다섯 살의 무하마드는 문득 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뒤쳐진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찾아 헤맸지만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다가 그는 머리 위 절벽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동굴 입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 양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소년은 양을 놀래켜서 나오게 하려고 주먹만한 돌을 던져넣었다. 하지만 안에서 들려온 것은 무하마드의 기대대로 양이 놀라서 내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도자기가 깨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예루살렘 근방은 고대 때부터 온갖 사람들이 흥망과 생활을 반복해왔던 유적의 보고였다. 당연히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이…… 간혹 옛날 사람들이 숨겨놓았던 귀금속·보석류가 발견될 때가 있었다. 소년은 기대로 가슴이 벅찼지만 그날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 사촌과 함께 동굴 탐험에 나섰다.

오랜 시간 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던 동굴의 좁은 입구를 통해 겨우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목동은 그곳에서 깨져 있는 한 개의 항아리와 그대로 남아 있는 여덟 개의 항아리를 보았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남은 항아리도 깨부수었다. 하지만 항아리 중 일곱 개는 텅 비어 있었고, 남은 하나에는 기대했던 보석이나 귀금속이 아니라, 낡아빠진 양피지의 두루마리가 열한 뭉치나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크게 실망했지만, 어쨌든 이것이라도 얼마간의 돈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두루마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의 생각대로 두루마리는 몇 푼 안 되는 푼돈에 팔렸다. 두루마리를 사들인 중고품 중개인은 그중 다섯 개를 히브리대학에, 나머지 여섯 개를 그리스 정교회 성 마르코 수도원의 대주교에게 팔았다. 처음에 이들 두루마리는 거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 오리엔트 연구소의 전문가가 성 마르코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두루마리 중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서인 「이사야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고풍스러운 문체로 보아 씌어진 때가 그리스도 탄생 이전, 즉 기원전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던 「이사야서」가 현대 구약성서의 해당부분과 거의 완벽한 일치를 보인 것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성서의 지식이 과연 얼마나 정확성을 기해서 전승되어왔는지를 증명해주었다."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쿰란 종단


게다가 교단의 법률 등을 표기한 기록은 예수 출현 직전 유대교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져다주었다.

사해 사본을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은 최초의 사본은 동굴 근처에 있는 키르베트 쿰란(쿰란의 유적)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쿰란 종단이라 부른다. 유적으로 판명된 그들의 활동 기간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직후까지 약 2백 년 동안으로, 이는 사해 사본의 연대와 거의 일치한다. 이 공동체는 68년 로마군 침공에 의해 괴멸되었다.

주류가 된 견해에 따르면, 이 쿰란 종단은 유대교 3대 종파 중 하나인 엣세네파로 불렸다. 엣세네파는 절제, 율법의 엄수를 근본 취지로 삼았던 금욕적인 종파였지만, 지금까지 그 실태는 베일에 싸여 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알려져 있는 그들의 계율과, 사해 사본에 의해 명확하게 드러난 쿰란 종단의 계율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쿰란 종단=엣세네파라는 가설에는 여전히 강한 반대 의견을 지닌 연구자들도 적지 않다).

쿰란 종단은 키르베트 쿰란에서 엄격한 규율에 따라 금욕적인 공동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지도자는 '의로운 선생님'이라는, 유대교 내부의 종교 대립으로 인해 황야로 나와 율법에 충실한 쿰란 공동체를 구축한 인물이었다. 이 인물이 죽은 이후, 쿰란 종단은 종말이 올 때 의로운 선생님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부활사상, 종말사상, 그리고 단편적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의로운 선생님의 생애는, 초기 기독교나 예수 그리스도와 공통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쿰란 종단은 신도들에게 세속적인 부를 버릴 것을 요구하며 정결함을 의미하는 목욕을 행했다. 또한 그들은 회개로 인해 영혼이 깨끗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의로운 선생님이란 실은 예수이며, 쿰란 종단은 초기 기독교도의 공동체였다는 일설이나, 세례자 요한이 젊은 시절 쿰란 종단에 속해 있었다는 일설이 나온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거의 부정되고 있지만, 앞에 소개한 이외에도 초기 기독교와 쿰란 종단 사이에 기묘한 공통점-사상적으로도 의례적으로도-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유사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연구자들 역시 의견이 분분해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초기 기독교와 쿰란 종단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렇듯 로맨틱한 이야기들을 파생시킨 사해 사본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를 연결하는 잃어버린 연결고리로서 많은 연구 자료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해명된 수수께끼보다 오히려 더욱 깊어진 비밀이 많다. 사본의 단편 해독이 아직 완전하지 않고, 해석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부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해 사본이 모든 수수께끼를 드러내는 때는 훨씬 먼 훗날이 될 것이다.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47년 양치기 소년이 부근에 있는 사막의 동굴에서 사해문서(성서의 필사본)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기원전 8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2세기에는 유대교의 한 파인 에세네파(Essenes)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사해문서를 남겼다. 당시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사해 사본' 또는 '사해 문서'로 불리는 이 양피지나 파피루스로 된 두루마리 성경은 조사 결과 기원전 100년 전후에 만들어졌다 한다. 쿰란에는 한글로 된 설명서가 있어 어디를 다녔는지 확인차 스캔을 했습니다.

 




쿰란 입구입니다. 입구에는 늘 만나는 화장실 ㅋㅋ



쿰란의 동화와 같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읽고 쿰란의 산을 확대해 보니 

사방에 동굴로 보이는 구멍들이 숭숭 뚤려있네요. 



기원전 1-2세기 그 동굴에 유대교 3대 종파 중 하나인 쿰란 종단 (에세네파: Essenes)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파피루스에 성경을 기록하면서 작업장에서 그들이 구운 항아리에 보관을 하였습니다.



세속적인 부를 버리고 정결함(purity)를 상징하는 에세네파에게 목욕은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 보다 종교의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한 장소에 모이기 전 찬물로 목욕을 하고 장소에 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의식(ritual purity)인 목욕에 대한 규정을 엄격하게 지켰고 이러한 행위는 7번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여기는 물 저장소인듯...



여기가 목욕했던 장소입니다.



안내문에 물저장소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곳도 물저장소인듯... 




지도상에 둥근 부분이 가마로 되어 있는 걸로 보아 위의 사진이 가마(kiln) 같습니다.



가마 옆에는 가마 공장이 있었습니다.




위의 안내문을 확대해 보니 이 장소는 항아리 보관창고였습니다.



이제 구멍이 숭숭 뚫린 쿰란의 암벽이 이제는 이해가 되네요.



이곳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작업을 했던 작업장입니다. 설명에 이 곳에서 대추야자(date honey)를 제조하는 기구들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대추야자는 야자수에서 수확하는 열매인 것 같네요 (아래처럼 생겼습니다.)


 

Date honey, date syrup, date molasses or rub (Arabic: رُب‎‎, pronounced [rubb]) is a thick dark brown, very sweet fruit syrup extracted from dates. It is widely used in North African and Middle Eastern cooking. 


위키피아를 찾아보니 대추꿀, 대추시럽, 대추밀은 대추야자에서 추출하는 진한 갈색의 매우 단 과일시럽입니다. 북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요리할 때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어떤 맛인지 상상이 되네요. 전 못 먹을 듯~~ 



The Potteries Workshop이라고 써 있네요.

이 곳에서 매일 사용되는 항아리들이 제조되었고 1세기 초기 로마시대의 항아리들이 쿰란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쿰란의 엣세네파 공동체가 대추야자로 시럽을 만들었던 증거가 지금도 있습니다. 

지역의 많은 야자수는 그들의 수입원이 되지 않았을지요? 



구약과 신약을 잇는 잃어버린 페이지(Missing Link)의 재미있는 이야기 쿰란여행을 마칩니다. 베두인 목동 무하메드와 떠난 양과 떠난 여행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일행은 사해 (Dead Sea 또는 Salt Sea 염해)로 향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딸랑 1시간, 옷을 갈아입고 물로 들어갑니다. 영상 10도를 웃도는 날씨였던 것 같은데 물에 들어가니 춥지 않습니다. 물에 가서 여정이라 카메라를 두고 가서 사진이 없네요. 물에 동동 뜨는데 무서워서 중심을 잡으려다가 뒤집어지곤 합니다. 눈에 소금물이 들어가 혼나고 수건을 딱고 진흙을 온 몸에 발랐습니다.


씯을 시간도 없어서 야외에 있는 강력 샤워로 몸을 대충 싣고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버스로 갔습니다.


샤워를 하지도 않았는데 진흙을 바른 몸과 얼굴이 하나도 땡기지않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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