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분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고, '남의 눈의 티는 보고 네 눈의 들보는 생각하지 않냐?' 질책하십니다. 그리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베푸시는 사랑을 강조하십니다.
마태복음 7:1-2. 타인을 비판할 때는?
1. “Judge not, that you be not judged.
2. For with what judgment you judge, you will be judged; and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back to you.”
비판하지 말라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개인번역) 1.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마라. 2. 너희가 비판한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한 판단으로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산상설교가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영적 삶에서 비판과 분별력으로 주제를 옮기십니다. "비판하지는 말되, 잘 분별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생각의 흐름을 학자는 정리합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마라 (1절): 여기서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신다. 그는 주로 내면의 영적 삶과 관련된 주제들(선행, 기도, 금식, 물질주의, 그리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불안에 대한 태도)을 다루었다. 이제 그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대하는 방식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를 언급한다.
이 주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식으로 생각되어서 그런지 성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판단, 심판) 하지 마라. 그 비판을 너희가 받을 것이다!"
또한 학자는 이 말씀과 뒤에서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면서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마 7:16)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연결합니다. 비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 여자가 비싼 향유 한 병을 예수의 머리에 부었던 사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 26:6-13). 제자들은 그 여인이 무언가를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은 그녀가 영원히 기억될 좋은 일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비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비판하지 마라'는 명령을 어길까요? 학자는 말합니다:
-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할 때
- 다른 사람들의 결점만 말할 때
- 인생 전체를 최악의 순간으로만 판단할 때
- 다른 사람들의 숨겨진 동기를 비판할 때
- 같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할 때
- 우리 자신이 비판받을 것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절대로 비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된 판단의 기준에 따라 타인을 비판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역으로 그들의 잘못된 기준으로 우리를 비판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 훨씬 더 관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 너그러운 관대함을 남에게 적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학자는 또 말합니다:
예수 시대의 일부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정의(justice)의 기준이였고 다른 하나는 자비(mercy)의 기준이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이 어떤 기준이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기준을 사용해야 한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쉽습니다. 왜냐하면 내 눈 속의 티가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들어가면 들보가 되기 때문입니다. 남의 잘못은 더 크고 더 잘 보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비판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여야 우리도 같은 기준으로 비판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3-5. 남의 눈의 티 vs. 내 눈의 들보?
3. “And why do you look at the speck in your brother’s eye, but do not consider the plank in your own eye?
4. Or how can you say to your brother, ‘Let me remove the speck from your eye’; and look, a plank is in your own eye?
5. Hypocrite! First remove the plank from your own eye, and then you will see clearly to remove the speck from your brother’s eye.”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개인번역) 3. "어찌하여 너는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에 있는 들보는 생각하지 않느냐? 4. 어찌하여 네 형제에게 '네 눈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보라, 네 눈에 들보가 있지 않느냐? 5. 위선자여! 먼저 너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분명히 보고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어낼 수 있을 것이다."
네 형제 눈 속의 티 vs. 네 눈의 들보 (3절):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보다 자신의 죄에는 훨씬 더 관대합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매우 적절합니다. 그 이미지는 상상만 해도 유머러스한 그림이지만 (아래) 예수님은 경고성의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그 예는 남의 눈에서 티끌을 찾는 종교 지도자들이 간통에 걸린 여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요 8:7).
예수님은 그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시고 "먼저 너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 명령하십니다. 그래야 그의 눈이 보이게 되어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6. 사랑과 분별력의 균형
6. “Do not give what is holy to the dogs; nor cast your pearls before swine, lest they trample them under their feet, and turn and tear you in pieces.”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개인번역)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마라. 그들이 그것들을 발 밑을 짓밟고, 뒤돌아 서서, 너희를 갈기갈기 찢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앞에서 비판적인 태도(1-2절)와 자기 맹목적인 분별력(3-5절)을 경고하셨습니다. 여기에서는 거룩한 것, 소중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위선자들 - 개와 돼지로 비유)에게 주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개 앞의 거룩한 것'과 '돼지 앞에 진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비판하지 말되, 모든 분별력도 버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기를 단념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분별해서 전파하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어도, 진주를 돼지 앞에 던져도, 그들은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빛이 아무리 밝아도 흑암에서 움직일 준비가 되지 않는 존재에게 빛은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혜가 필요한 일이고 우리는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합니다.
마태복음 7:7-8.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7.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8.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and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it will be opened.”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개인번역)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문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릴 것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7절): 다시 기도의 주제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이 구하라는 강도가 점진적으로 세어집니다. 기도의 문이 열릴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말씀하십니다. '두드리라'는 개념에 대해 학자들은 말합니다:
- "자신감을 갖고 겸손하게 구하십시오. 주의하고 간구하여 찾으십시오. 성실하고 끈기 있게 두드리십시오." (Clarke)
- 두드림(knocking)는 개념은 또한 우리가 저항을 감지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문이 이미 열려 있다면 두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를 격려하신다. "네가 문이 닫혔음을 깨닫고 두드려야 할 때, 계속 두드리면 너는 대답을 받을 것이다."
- "그러나 노크의 이미지는 또한 열 수 있는 문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문은 열리게 되어 있다. 그 문들은 들어갈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된 복음은 여러분이 생명과 화평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벽을 두드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문은 열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현명하게 노크할 수 있다." (Spurgeon)
그 문의 손잡이는 우리가 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두드려야 할 문'은 그 문이 원래 닫혀있다는 의미와 우리의 노력에 따라 열 수 있다는 의미가 중복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열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적 필요에 기반한 우리 자신의 끈질긴 '열정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두드리는 강도에 따라 저항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문은 누구나 두드릴 수 있습니다. 신분의 높고 낮음, 나이, 장애의 여부, 지식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 문은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은 왜 열리지 않을까?
"그 문이 앞에 있는데도 바라만 보고 두리릴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적은 믿음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9-11.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9. “Or what man is there among you who, if his son asks for bread, will give him a stone?
10. Or if he asks for a fish, will he give him a serpent?
11. If you then, being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give good things to those who ask Him!”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개인번역) 9.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0.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빵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돌을 줄 부모가 없듯이, 인간이 아무리 악해도 자신의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줍니다. 그런데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예수님은 반문하십니다.
마태복음 7:12. 가르침의 요약: 황금률(黃金律)
12. “Therefore, whatever you want men to do to you, do al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개인번역) 12.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이요 예언서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대로, 우리도 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황금률(黃金律)"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예수님이 만드신 법은 아니라고 합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원칙으로 들립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들이 말하는 것을 요약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원칙이 법으로 실천된다면 세상에는 정의와 사랑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닐까요?
아래의 일러스트가 재미있습니다. "비판하지 마라! -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지 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명령은 황금률(黃金律)에 기반합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matthew-7/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한.영 성경의 여러 버전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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