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는 조롱거리가 된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일을 멈추기로 결심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시 극도의 고통에 빠진 선지자는 자신의 탄생을 저주하면서 그런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예레미야 20:7-8. 자신의 충실함을 아뢰는 예레미야
7-8. O LORD, You induced me, and I was persuaded;
You are stronger than I, and have prevailed.
I am in derision daily;
Everyone mocks me.
For when I spoke, I cried out;
I shouted, “Violence and plunder!”
Because the word of the LORD was made to me
A reproach and a derision daily.
예레미야가 여호와께 사정을 아뢰다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개인번역) 7. 주님, 주님께서 저를 유혹하셔서 제가 설득되었습니다. 주께서 저보다 강하셔서 저를 이기셨습니다. 사람마다 저를 조롱하니 저는 매일 조롱거리가 됩니다. 8. 제가 말할 때, 저는 '폭력이다, 약탈이다!'를 외치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님의 말씀 때문에, 저는 매일 비난과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유혹하셔서 제가 설득되었습니다 (7절):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서 있던 일을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말씀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유혹(권유 - induce, seduce )"하셔서 자신이 설득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한글성경은 '속여서'로 번역합니다. 마치 성적 유혹으로 넘어간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결혼으로 생각하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유혹에 넘어가 속았다고 주장합니다.
폭력이다, 약탈이다!... 저는 매일...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8절): 하나님의 충실한 대변자로서의 그의 삶은 그로 하여금 늘 유다를 향해 '폭력과 약탈'을 부르짖게 하였고, 그에 대한 순종으로 그는 늘 비난과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주님께 항변합니다. 앞에서는 거짓 선지자의 누명을 쓰고 성전에 감금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끝없는 고난의 삶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학자는 말합니다.
- "예레미야의 말이 너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미래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를 조롱했다." (Harrison)
예레미야 20:9-10.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9-10. Then I said, “I will not make mention of Him,
Nor speak anymore in His name.”
But His word was in my heart like a burning fire
Shut up in my bones;
I was weary of holding it back,
And I could not.
For I heard many mocking:
“Fear on every side!”
“Report,” they say, “and we will report it!”
All my acquaintances watched for my stumbling, saying,
“Perhaps he can be induced;
Then we will prevail against him,
And we will take our revenge on him.”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개인번역) 9.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주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타는 불과도 같아서 내 뼛속까지 태우니, 저는 그것을 참는 것에 지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10. 저는 많은 사람의 조롱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방이 두려움뿐이다!" 그들은 말합니다. "고발하라. 우리도 그것을 고발할 것이다!" 나의 모든 친구들도 제가 넘어지기를 가다리며 말합니다. "아마도 그가 설득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덮쳐서 그에게 우리의 원수를 갚자."
내가 다시는 주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 (9a절): 8절 선지자의 고통과 9절은 "그래서"로 연결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백성들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대변자였으나, 하나님과 1:1로 만나면서 그의 긴장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내 뼛속까지 태우니 (9b절): 예레미야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서 불처럼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참는 것에 지쳐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극심한 고통의 나날을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을 학자는 말합니다:
- "이것은 여호와 말씀의 부담이다. 아마도 그것을 경험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그 말씀을 선언하는 것은 고통을 가져오지만, 자제하는 것은 훨씬 더 끔찍한 고통을 가져온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전 9:16)라고 말하면서 이 점을 깨달았다.'" (Morgan)
저는 많은 사람의 조롱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방이 두려움뿐이다!" (10절): 그들은 선지자의 두려움과 다가오는 재앙에 대한 예언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넘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의 소리에 대해 학자는 설명합니다.
- "그들은 예레미야 마고-미사빕(Magor-Missabib) 즉, '사방이 두려움뿐'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에 대한 바스홀의 질책을 받아들여 그에게 그 말을 사용했다." (Ryken)
한글성경은 다르게 번역하는데('예레미야가 느낀 두려움'으로), 문맥상으로 이 말은 예레미야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로 이해됩니다. 늘 '폭력, 약탈(8절)'을 선언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사방에 두려움뿐(Magor-Missabib)'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면서 비꼰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꼬면서 그를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
예레미야 20:11-13.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11-13. But the LORD is with me as a mighty, awesome One.
Therefore my persecutors will stumble, and will not prevail.
They will be greatly ashamed, for they will not prosper.
Their everlasting confusion will never be forgotten.
But, O LORD of hosts,
You who test the righteous,
And see the mind and heart,
Let me see Your vengeance on them;
For I have pleaded my cause before You.
Sing to the LORD! Praise the LORD!
For He has delivered the life of the poor
From the hand of evildoers.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개인번역) 11. 그러나 주님은 힘세고 멋진 용서처럼 저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크게 치욕을 당하고 형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영원한 혼란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12. 만군의 주님, 주님은 의로운 사람을 시험하여 마음과 심장을 보십니다. 내 사정을 주 앞에 말씀드렸으니,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제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3. 주님께 노래하여라!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주님께서 가난한 자의 생명을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주님은 힘세고 멋진 용서처럼 (11절): 그러나 예레미야는 주변의 많은 적들의 조롱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고백합니다. 그분의 힘에 그를 박해하는 자들이 이기지 못할 것을 그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은 예레미야가 아닌 그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13절): 선지자는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 노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승리와 구원의 확신 속
예레미야 20:14-18. 선지자를 덮치는 슬픔과 고통
Cursed be the day in which I was born!
Let the day not be blessed in which my mother bore me!
Let the man be cursed
Who brought news to my father, saying,
“A male child has been born to you!”
Making him very glad.
And let that man be like the cities
Which the LORD overthrew, and did not relent;
Let him hear the cry in the morning
And the shouting at noon,
Because he did not kill me from the womb,
That my mother might have been my grave,
And her womb always enlarged with me.
Why did I come forth from the womb to see labor and sorrow,
That my days should be consumed with shame?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개인번역) 14.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받기를!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이 복이 없기를! 15. 내 아버지가 "당신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라는 소식을 전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한 사람에게 저주가 있기를! 16. 그 사람이 주님께서 무너뜨리고 후회하지 않은 성읍들처럼 되어야 할 터인데. 아침에는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낮에는 함성을 들었어야 하는데. 17. 이는 그가 나를 모태에서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내 어머니가 나의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어머지의 모태가 나와 함께 계속해서 커지지 않으셨다. 18.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서 이처럼 고난과 슬픔을 보는가? 내 날들이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가?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받기를! (14절): 앞에서 하나님께 찬양한 선지자는 갑자기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다면!"이라고 비통해하며 다시 극도의 슬픔에 빠집니다.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의 생각에 솔직한 것일까요? 학자는 이 구절에 대해 말합니다.
- 마지막 장에 있는 시 전체가 이상하게도 그의 신성한 부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이 그렇게 솔직하게 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의 고통의 외침과 가슴 아픈 질문에 여호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대답을 하실 수 있을까?" (Thompson)
아버지를 기쁘게 한 사람에게 저주가 있기를! (15절): 심지어 아들 탄생의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저주를 원합니다. 이보다 더 큰 절망의 한탄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 선지자는 거룩한 상태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게도 아들의 탄생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도, 어머니, 심지어 모태까지도 온갖 저주를 퍼붇습니다. 그에게 임박한 싸움은 여전했기 때문입니다.
고통에 빠져있는 선지자는 심지어 어머니의 자궁까지 그의 문제를 추적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탄생은 하나님이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러 나라의 선지자도 세웠다."" (렘 1:4-5)
그에게 하나님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결정된, 어떤 의미에서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러한 고통의 함성을 '부끄러움'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자신의 탄생에 대해 크게 불평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그의 고뇌의 함성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 이전에
한 인간 '예레미야'를 들여다 봅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eremiah-20/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한. 영 성경의 여러 버전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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