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는 침몰하는 영혼 속에서도 소망인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발견합니다. 주님을 구하는 자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근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이해하고, 자신의 죄로 처벌받는 것을 인정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19-23. 침몰하는 영혼 vs.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
19-23. Remember my affliction and roaming,
The wormwood and the gall.
My soul still remembers
And sinks within me.
This I recall to my mind,
Therefore I have hope.
Through the LORD’s mercies we are not consumed,
Because His compassions fail not.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개인번역) 19. 나의 고난과 방황,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영혼은 여전히 기억하고 내 안에서 낙심이 됩니다. 21. 그러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떠올리면 저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22. 주님의 자비로 우리가 멸하지 않습니다. 이는 주님의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23.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신실하심이 크십니다.
나의 고난과 방황을... 기억하소서 (19절): 앞에서 주님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자신을 들여다본 예레미야는 여기에서 깊은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봅니다. 그러한 큰 고난 안에서 그는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비로 우리가 멸하지 않습니다 (22절): 이스라엘은 짓밟히고 패배했지만 완전히 멸하지 않았음을 돌아봅니다. 아직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징벌의 하나님은 자비와 신실하심의 하나님이시기도 함을 그는 고백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24-29. 주님을 구하는 자에게 선하신 하나님
“24-29. The LORD is my portion,” says my soul,
“Therefore I hope in Him!”
The LORD is good to those who wait for Him,
To the soul who seeks Him.
It is good that one should hope and wait quietly
For the salvation of the LORD.
It is good for a man to bear
The yoke in his youth.
Let him sit alone and keep silent,
Because God has laid it on him;
Let him put his mouth in the dust—
There may yet be hope.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개인번역) 24. 내 심령에게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내가 그분을 소망하리라." 25.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자와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 27.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기 때문이다. 29. 그대의 입을 티끌에 댈지니, 혹시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24절): 예레미야는 소망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합니다. 그가 받을 몫이나 유산(즉, 기업)은 모두 여호와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 (26절): 주님은 자신을 기다리는 자에게는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빠른 구원을 기다리지 말고 기다리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학자는 말합니다.
- "서두르지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할 때 우선 고난에서 구원받기를 기대하지 말라.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자와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선하시도다'" (Spurgeon)
-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고, 기다리는 것은 좋다. 하나님은 기다릴 가치가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Ryken)
시인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으나, 그는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의 한 줄기 빛을 붙잡습니다. 우리도 고난 중이 있을까요? 그러면 시인처럼 서두르지 말고 선하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너무 많이 요구하지도 말고 기다리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멍에를 메는 것 (27절): 그리고 멍에를 메는 것은 젊었을 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에 빨리 훈련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내하는 가운데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말하는 법보다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침묵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달게 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레미야애가 3:30-36. 우리를 근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은?
30-36. Let him give his cheek to the one who strikes him,
And be full of reproach.
For the Lord will not cast off forever.
Though He causes grief,
Yet He will show compassion
According to the multitude of His mercies.
For He does not afflict willingly,
Nor grieve the children of men.
To crush under one’s feet
All the prisoners of the earth,
To turn aside the justice due a man
Before the face of the Most High,
Or subvert a man in his cause—
The Lord does not approve.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4.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개인번역) 30. 때리려는 사람에게 빰을 대 주고, 치욕으로 배부르게 하여라. 31. 이는 주께서 영원히 내버리시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32.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시더라도, 그분의 인자하심으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33. 주님은 본심으로 사람의 자녀들을 괴롭게 하시거나 고통을 주시지 아니하신다. 34. 이 땅의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짓밟는 것과 35. 가장 높으신 주님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재판을 받는 사람이 억울한 판결을 받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때리려는 사람에게 빰을 대 주고 (30절): 이 속담은 우리말에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때리려는 사람'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포로 됨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때리는 자에게 빰을 내주셨듯(마 26:67-68, 누 22:64), 자신의 빰을 내주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셨지만, 이는 그 고통을 통해서 더 강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은 결국 자비를 베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를 학자는 설명합니다 :
-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께는 기쁨이 아니다. 그는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랑이 많고 지혜로운 부모처럼 채찍을 사용하신다. 이는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과 구원을 주기 위해서이다." Clarke)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심판을 받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정의 가운데에서 행하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연단을 통해 우리를 더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37-39. 원망할 수 없는 하나님
37-39. Who is he who speaks and it comes to pass,
When the Lord has not commanded it?
Is it not from the mouth of the Most High
That woe and well-being proceed?
Why should a living man complain,
A man for the punishment of his sins?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개인번역) 37. 주께서 명령하지 않으셨는데, 누가 능히 말하여 그것이 이루어지겠느냐? 38. 화와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어찌하여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죄로 인해 징벌받는 것을 불평할 수 있겠느냐?
화와 복이 (38절): 우리가 화를 받더라도 복을 받더라도, 그 모든 것은 주님의 명령으로 인한 것임을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주신 분에게 우리의 죄로 인해 처벌받는 것에 불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요즘 회사일도 힘들도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입니다. 하루 살고 눈을 뜨고 나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숨 쉬고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레미야의 글을 읽으니 불평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도 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은 주님의 자비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lamentations-3/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한. 영 성경의 여러 버전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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