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자신의 소개와 인사로 디모데전서를 시작하며,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며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도록 명령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 명령의 목적을 설명하고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율법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님을 확실히 합니다.
디모데전서 1:1-2. 소개 및 인사
1. 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commandment of God our Savior and the Lord Jesus Christ, our hope.
2. To Timothy, a true son in the faith: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Jesus Christ our Lord.
인사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개인번역)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사도가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인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우리 구주 (1a절): 이 표현을 강조한 이유를 학자는 설명합니다: "당시 ‘구주’라는 칭호는 로마 황제를 존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그리고 강제로, 네로 황제를 "구주"라고 불러야 했다. 바울은 참된 구주가 누구인지, 즉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임을 분명히 한다."
바울은 (1b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로 디모데전서를 시작합니다.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마케도니아에서 디모데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에베소를 비운 사이에 교회 안에서 거짓 교훈이 활발해졌습니다. 슬프게도 이것은 그가 에베소 장로들에게 예언했던 슬픈 예언의 성취였습니다(행전 20:29-30).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디모데에 에베소 교회를 맡긴 디모데를 격려하는 서신을 쓰게 됩니다.
디모데에게 (2절): 이 편지의 발신자는 바울이고, 수신자는 디모데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로 소개하면서 디모데전서를 시작합니다.
디모데전서 1:3-4. 에베소에 머물며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도록 명령하라!
3. As I urged you when I went into Macedonia—remain in Ephesus that you may charge some that they teach no other doctrine,
4. nor give heed to fables and endless genealogies, which cause disputes rather than godly edification which is in faith.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개인번역) 3. 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 너에게 권한 것처럼, 에베소에 머물라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집착하지 말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세우심을 이루기보다는 논쟁을 일으킬 뿐입니다.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 (3a절):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떠나면서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무르도록 명령했습니다. 디모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에베소에 남기 싫어했을 것입니다. 아마 외적인 압력과 내적인 압력이 모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에베소에 남아서 사역을 완수하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며 (3b절): 바울이 에베소에 남아서 디모데에게 맡긴 중요한 사명은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 (4절): 에베소를 위험하게 했던 잘못된 교리들이 있었습니다. 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 바울은 사람들이 진리 교리 대신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권위를 부여할 때 일어나는 부패를 막고자 했다. 어리석은 분산 요소들은 신앙 안에서의 경건한 세움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위험했다.
- 끝없는 족보는 아마도 신적인 ‘발현’을 가정하는 영지주의적 이론이나, 조상의 덕으로 의를 이루려는 유대교적 율법주의와 관련이 있었을 수 있다. 혹은 구약의 족보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에 기반한 교리 체계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신앙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고 복잡한 족보를 파고들면 영적 신비주의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믿음이 아닌 이론으로 치우친다는 설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럴 경우에 단기적으로는 흥미로울 수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탈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장황한 설교가 들을 가치가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듣고 나면 잊어버리는...
디모데전서 1:5-7. 이 명령의 목적은?
5. Now the purpose of the commandment is love from a pure heart, from a good conscience, and from sincere faith,
6. from which some, having strayed, have turned aside to idle talk,
7. desiring to be teachers of the law, understanding neither what they say nor the things which they affirm.
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개인번역) 5. 이 명령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6.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이로부터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들이 말하거나 확신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의 목적은 (5절): 바울은 내적인 변화 없는 단순한 외적인 순종은 겉모습만 중시하는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강조합니다. 당시 에베소는 유대적인 율법주의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 없는 계명과 율법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헛된 말 (6절): 그러한 율법주의적인 해석을 바울은 '헛된 말'이라고 말합니다. 즉 의미 없는 잡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에베소에서 소위 율법주의 선생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것의 의미조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8-11.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나의 비판은 율법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8. But we know that the law is good if one uses it lawfully,
9. knowing this: that the law is not made for a righteous person, but for the lawless and insubordinate, for the ungodly and for sinners, for the unholy and profane, for murderers of fathers and murderers of mothers,
10. for manslayers, for fornicators, for sodomites, for kidnappers, for liars, for perjurers, and if there is any other thing that is contrary to sound doctrine,
11. according to the glorious gospel of the blessed God which was committed to my trust.
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개인번역) 8. 그러나 우리는 율법이 좋은 것임을 알며, 율법을 바르게 사용하는 자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압니다. 9. 알 것이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않는 자, 경건하지 않고 죄를 짓는 자, 거룩하지 않고 불경건한 자,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 살인자, 10. 음행하는 자, 동성애자, 인신 매매 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그리고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해서 세워졌습니다.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입니다.
율법을 바르게 사용하는 자에게 유익하다는 것 (8절):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는 이 구절의 의미를 학자는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 율법의 목적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다 (갈 3:24-25 참조). 의로운 사람(갈 3:11에 따라 믿음으로 걷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불법적이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을 율법주의자라 비난한다. 하지만 높은 기준을 갖고 그것을 지킨다고 해서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율법주의는 우리가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9절): 9-10절에 나열된 사람들은 건전한 교리에 어긋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죄로 가득하다고 암시합니다. 바울은 율법이 바르게 사용할 때 유익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건전한 교리에서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결론 내립니다 - "율법은 의로움을 가져올 수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달해야 하는 것은 전자보다는 후자라는 결론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을 내용도 어렵고 헛갈립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은 이전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잠입할 수 있는 잘못된 '다른 교훈'을 조심하고 피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의 적은 교회 안에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1-timothy-1/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 및 추가로 인용된 성경번역은 NKJV 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한. 영 성경의 여러 버전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청색 텍스트의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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