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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생각

조정민 목사님의 잠언록 '길을 찾는 사람' (2018.09.26)

by 미류맘 2018.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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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연휴 마지막 날 새벽에 잠이 안와서 일어나 어제 올린 글을 첨삭했습니다.

지난번 동네 도서관에 갔을 때 종교책 코너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었습니다. 조정민 목사님의 트윗 잠언록 (두란노 출판)이었습니다.

커버에 적힌 글입니다. '마음이 삶을 결정한다'

"옳은 일을 할 때 느끼는 기쁨과
바른 길을 갈 때 느끼는 평안...
그 기쁨과 평안이 인생의 가장 큰 보상입니다.
그 기쁨과 평안 속으로 걸어가면
인생의 모든 순간은 영원의 시간입니다."

어쩌면 제가 길을 잃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눈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글밥도 많지 않고 전철에서 읽기 편해 보여 손에 넣었는데 추덕영님의 삽화도 재미있습니다.

몇 개 글을 인용합니다.

(나의 길)

_4
길은 찾는 사람이 찾고, 사랑은 구하는 사람이 얻고,
기회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가만있으면 꽝입니다.

성경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 문은 밖에서 여는 문이 아니라 안에서 열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 주님이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안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열어준다는

_8
나보다 큰 꿈을 꾸면 꿈 때문에 내가 중요하지 않고, 나보다 작은 꿈을 꾸면 나 때문에 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_9
자신의 꿈을 애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 꿈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모두가 꿈을 꾸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고난을 겪을 수는 있어도 우울증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인생에 꿈이 너무나 크거나 너무 작아서 이루어지지 않게 계속 우울해지고 절망에 빠지고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입니다.

_11 상처는 과거를 말하고, 꿈은 미래를 말합니다.

가장 흔한 착각은 내가 무엇이나 된 줄 아는 것이고, 가장 귀한 깨달음은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_18
내 밖에 있는 문보다 내 안에 있는 문들이 더 많습니다.
밖에 있는 문들은 저절로도 열리고 누가 대신 열어도 주지만
내 안에 있는 문들은 내가 열지 않으면 누구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아까 적은 안에서 여는 나의 문에 대한 같은 설명입니다. 내가 스스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으면 안에서는 절대로 열지 못하는 문, 그래서 그 벽이 두꺼울수록 담이 높을수록 창이 작을수록 불안감에 빠집니다. 그 벽을 헐어야 평안해집니다 (_19).

_43
실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실수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실수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어리석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현재(present)는 선물이고, 과거에서 잘못을 배우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의 길)

_90
살아갈수록 부지런한 것보다
게으른 것이 더 힘들고,
정직한 것보다
거짓된 것이 더 고통입니다.

_91
시험은 통과해야 하고, 시련은 이겨내야 하고, 유혹은 거절해야 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구절이 마음에 닿아서 올립니다.

_200
웃는 얼굴은 어려운 일도 쉽게 만들고,
화난 얼굴은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듭니다
.
웃는 얼굴은 바라지 않는 것도 얻게 되고,
화난 얼굴은 달라고 청해도 얻기 힘듭니다.

이 글을 곱씹으니 우리 아이가 저에게 매일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엄마 화 내지 마. 엄마는 너무 회의적이야. 그래서 병이 났어.’ 맞습니다. 지금 상황이 화를 내는 상황이 되어도 화를 낸다고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지요.

개인적으로 급한 비워두고 온 전원주택 문제로 불안하고 두렵고 심지어는 그런 일을 저지른 저에게 화를 내기도 하는데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빨리 해결될 리는 없습니다.

_214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은 되돌려 받지 못한 돈이 아니라
그냥 흘려보낸 시간입니다.
허비한 시간은 배우고 깨닫지 못한 시간이고,
나를 고치지 못하고 남을 고치려 한 시간입니다.

맞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돈도 잃었지만
돈 보다 중요한 손실은 돈 때문에 바둥거리면서 흘려보낸
허비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띁긴 돈처럼 돌려받을 수도 없고
그 시간 때문에 또 다른 시간을 보상받으려고
나의 영혼만 고갈되고 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_218
인생, 깨어 있지 않으면 늘 졸다가 어딘가에 빠지고 맙니다.
분주함에 빠지고 게으름에 빠지고 중독에 빠지는 것은
모두 졸음운전 탓입니다.

_221
부끄러운 일이 없고, 잊고 싶은 과거가 없고,
가리고 싶은 수치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인생은 용서의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책의 차례는 Part 1 나의 길(_1 ~ _81), Part 2 사람의 길(_86 ~ _159), Part 3 세상의 길(_237 ~ _280), Part 4 하늘의 길(_281 ~ _365)로 구성됩니다. 마지막 '하늘의 길'은 예수님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길)

_251
정직한 실패는 성공의 씨앗이고, 부당한 성공은 몰락의 서곡입니다.

_252
아무리 부족한 결정도 결정 안 하는 것보다 낮고,
아무리 낮은 목표도 없는 것보다 낮습니다.
부족한 결정을 자주 하다 성숙하고,
낮은 목표를 계속 이루다 높은 목표에 이릅니다.

_253
목표가 분명하면 어떻게든 고난을 이겨내게 되고,
목표가 흐리면 어떻게든 고난을 피하게 됩니다.
고난보다 늘 목표에 집중하면 어느 날 고난은 선물로 기억됩니다.

(하늘의 길)

_281
종교인들은 예수를 내몰았고, 전문가들은 예수를 조롱했고,
기득권층이 예수를 못 박았습니다.

_282
병들어서 치유할 수 없는 영혼이 있다면
예수는 이 땅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타락해서 받아 줄 수 없는 인간이 있다면
예수는 십자가를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_283
십자가의 기독교는 욕한다고 개독교가 되지 않고,
십자가가 업슨 기독교는 욕하지 않아도 기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내 손에 못 박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 곳이고,
모든 비난에도 침묵한 곳입니다.

_284
십자가는 또 하나의 굴레가 아니라 모든 굴레로부터의 자유입니다.
<
우측 십자가 이미지 출처: http://gnpnews.org/>

이 구절에서 십자가에 우리 자신을 못 박고 나는 죽고 예수님을 내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유기성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지막 장 Chapter 22의 제목은 '내려놓음의 끝에는 행복이 있다.'입니다.

저는 모태신앙 기독교이지만 요즘에는 불교이든 천주교이든 기독교이든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도서실에 가서 종교책을 많이 선택하는 편인데 마음이 무겁고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어디로 갈지 길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조성민 목사님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행복할 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때 더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비움> <채움>은 같은 맥락이라는 말이 아닐지요.

얼마 전에 읽었던 유기성 목사님 책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도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를 비움으로 내 안에 예수님으로 채울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할 때입니다.

저자 조정민 목사님의 twitter 잠언록 시리즈는 1. 사람이 선물이다 2권 인생은 선물이다 그리고 제가 소개하는 책 3권 길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및 참조: 조정민 목사님의 '길을 찾는 사람' 두란노 출판>

지금 읽고 있는 구절이 마음에 닿아서 올립니다.

_214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은
되돌려 받지 못한
돈이 아니라
그냥
흘려보낸 시간입니다.
허비한 시간은
배우고 깨닫지 못한 시간이고,
나를 고치지 못하고
남을 고치려 한
시간입니다.

맞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돈도 잃었지만
돈 보다 중요한 손실은 돈 때문에 바둥거리면서 흘려보낸
허비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띁긴 돈처럼 돌려받을 수도 없고
그 시간 때문에 또 다른 시간을 보상받으려고 
나의 영혼만 고갈되고 또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가장 흔한 착각은
내가 무엇이나 된 줄 아는 것이고,
가장 귀한 깨달음은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차례는 Part 1 나의 길, Part 2 사람의 길, Part 3 세상의 길, Part 4 하늘의 길로 구성됩니다. 마지막 '하늘의 길'은 예수님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_281
종교인들은 예수를 내몰았고, 전문가들은 예수를 조롱했고,
기득권층이 예수를 못 박았습니다.


_282

병들어서 치유할 수 없는 영혼이 있다면
예수는 이 땅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타락해서 받아 줄 수 없는 인간이 있다면
예수는 십자가를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_283
십자가의 기독교는 욕한다고 개독교가 되지 않고,
십자가가 업슨 기독교는 욕하지 않아도 기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내 손에 못 박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 곳이고,
모든 비난에도 침묵한 곳입니다.

_284
십자가는 또 하나의 굴레가 아니라 모든 굴레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우측 십자가 이미지 출처: http://gnpnews.org/>

이 구절에서 십자가에 우리 자신을 못 박고 나는 죽고 예수님을 내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유기성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지막 장 Chapter 22의 제목은 '내려놓음의 끝에는 행복이 있다.'입니다. 

저는 모태신앙 기독교이지만 요즘에는 불교이든 천주교이든 기독교이든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도서실에 가서 종교책을 많이 선택하는 편인데 마음이 늘 무겁고,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어디로 갈지 길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조정민 목사님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행복할 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할 때 더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비움>과 <채움>은 같은 맥락이라는 말이 아닐지요. 

얼마 전에 읽었던 유기성 목사님 책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도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를 비움으로 내 안에 예수님으로 채울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할 때입니다. 아래는 목사님의 twitter 잠언록 다른 버전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목사님의 잠언록을 다시 대하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자료 출처 및 참조: 조정민 목사님의 '길을 찾는 사람' 두란노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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