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네 가지 비유로 회중을 가르치시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고, 행하지 않는 자는 '흙'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전자는 홍수가 와도 흔들리지 않지만, 후자는 크게 파괴된다고 경고하십니다.
39. He spoke a parable to them. “Can the blind guide the blind? Won’t they both fall into a pit?
40. A disciple is not above his teacher, but everyone when he is fully trained will be like his teacher.
네 눈 속에 있는 들보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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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0절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로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가 자신의 선생보다 위에 있지 않지만, 누구든지 충분히 배우면 자신의 선생과 같아질 것이다."
앞에서 '받고 싶은 만큼 베풀어라'는 말씀을 하신 후에 다른 비유를 들어 가르침을 계속하십니다.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인도자'에 대해 꾸짖으십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자신을 죽어라고 따라다니며 꼬투리를 찾느라도 혈안이 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만과 교만에 근거한 잘못된 판단을 주변의 사람들까지 강요하며 그들을 죄인으로 모는 위선자였습니다. 오늘날도 정치, 사회 모든 곳에서 우리는 그러한 위선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도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눈먼 인도자'라고 부르고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교만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 결정을 우리 가족, 이웃, 동료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예수님이 경고하는 '눈 먼 인도자'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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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Why do you see the speck of chaff that is in your brother’s eye, but don’t consider the beam that is in your own eye?
42. Or how can you tell your brother, ‘Brother, let me remove the speck of chaff that is in your eye,’ when you yourself don’t see the beam that is in your own eye? You hypocrite! First remove the beam from your own eye, and then you can see clearly to remove the speck of chaff that is in your brother’s eye.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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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2절 "41.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여, 네 눈에 있는 티를 내가 빼게 해 달라'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분명히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눈 속의 티와 들보' 비유를 읽으니 속된 말로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불륜)' 비교가 되는지 모르겠지만요. 마찬가지도 예수님은 당시 위선자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직접적으로 대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알지도 못하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끈질기게 찾고 정죄하고 사회에서 격리시켰던 그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눈의 티를 빼 주려면, 우선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고 자신의 더 큰 잘못(들보와 같은)을 제거한 뒤에야 남의 티눈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전 매일 컴퓨터 일을 해서 그런지 잠도 못 자고 눈 속의 티가 들보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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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For there is no good tree that produces rotten fruit; nor again a rotten tree that produces good fruit.
44. For each tree is known by its own fruit. For people don’t gather figs from thorns, nor do they gather grapes from a bramble bush.
45. The good man out of the good treasure of his heart brings out that which is good, and the evil man out of the evil treasure of his heart brings out that which is evil, for out of the abundance of the heart, his mouth speaks.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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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5절 "43. 나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가 없다.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거두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그 마음 속의 선한 곡간에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마음 속의 악한 곡간에서 악을 낸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오늘 사용할 이미지를 찾았는데 이 파일을 여는데 눈이 엄청 부셨습니다. 반짝이는 태양을 보는 것처럼. 각 열매가 바닥을 비추는데 마치 '내 눈이 내 마음의 창'이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마치 한 줄로 서서 학교에 가는 사과 친구들 같습니다. 좋은 친구, 나쁜 친구 다 학교로 가는. 어떤 칭찬과 꾸짖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오늘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반대로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의 비유는 늘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찾게 됩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심은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제일 후자는 As one sows, so shall he reap(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자업자득 등등... 의미는 각각 다르지만요...
예수님은 '나무는 각각 그 열매를 보면 안다' 하십니다. 이는 거룩한 척하며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남들이 보는 곳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던 위선자들을 향한 꾸지람이십니다. 선과 악도 각자의 마음 속의 곡간(treasure)에서 나온다고 하십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은 우리가 내뱉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 마음 속에 좋은 곡간이 있으면, 그것이 입으로 밖으로 나타나고, 악한 곡간이 있으면 때가 되면 그 또한 나타납니다. 즉, 우리의 말은 마음을 드러냅니다.
생각하니 '눈의 마음의 창'이란 말도 있네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인간의 모든 구멍은 우리 내부에 쌓은 것들의 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같은 양으로 하나님은 누리에게 넣어 주시지만, 각자의 그릇에 따라 출력(output)이 상이합니다.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는지? 말씀을 들으니 그 사람 마음 속에 실한 열매가 있는지 썩은 열매가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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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Why do you call me, ‘Lord, Lord,’ and don’t do the things which I say?
47. Everyone who comes to me, and hears my words, and does them, I will show you who he is like.
48. He is like a man building a house, who dug and went deep, and laid a foundation on the rock. When a flood arose, the stream broke against that house, and could not shake it, because it was founded on the rock.
49. But he who hears, and doesn’t do, is like a man who built a house on the earth without a foundation, against which the stream broke, and immediately it fell, and the ruin of that house was great.”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아니하는 자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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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9절 "46. 왜 너희는 나에게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냐? 47.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과도 같은지 내가 보여주겠다. 48. 그는 파되 깊이 파고, 집을 짓고, 바위 위에 기초를 세우는 사람과도 같다. 홍수가 나서 물살이 그 집에 들이치나, 그 집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위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49. 그러나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흙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도 같다. 물살이 그 집에 들이치자 그 집이 곧 무너졌고, 그 집의 파괴가 엄청났다."
앞에서 예수님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남들이 보는 곳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위선자들을 비난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회중을 향해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말로만 '주여, 주여'를 외치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 아니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또는 나) 마음 곡간은 '흙 위에 지은 집'입니다. 반면 듣고 행하는 사람의 마음 곡간은 '바위 위에 지은 집'입니다. 전자는 큰 홍수가 오면 무너지고, 후자는 홍수가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행동이 없는 고백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행동을 다시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 고백이 진정으로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고백인지, 아니면 남들이 들으라고 우리 입에서 나오는 거짓된 고백인지? '진정'과 '거짓' 사이에서 우리의 허망한 지식이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닌지?
매일성경에서 오늘 예수님의 비유가 네 가지라고 합니다. 세어봅니다 1. 눈 먼 인도자(39-40절), 2. 눈 속의 티와 들보(41-42절), 3. 열매와 나무(43-45절), 4. 반석과 맨 흙에 집을 짓는 사람(46-49절). 예수님의 비유는 언제 읽어도 가슴이 와 닿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찔립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메시지가 다르네요. 매우 긴 누가복음 6장을 오늘 마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선한 곡간에 담고 선한 말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기 전에 내 눈에 있는 들보부터 들어내는 용기가 필요한 오늘입니다. 거만하지 않게 겸손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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