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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누가복음(Luke)17:1-10(종과 주인의 관계)

by 미류맘 2021.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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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그 죄를 무엇보다도 중하게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일곱 번 잘못하고 용서를 구하면 그 이상 용서하고, 스스로를 무익한 종으로 인정하고 주인의 명령을 믿고 순종하라 말씀하십니다.

 

1.  He said to the disciples, “It is impossible that no occasions of stumbling should come, but woe to him through whom they come!
2.  It would be better for him if a millstone were hung around his neck, and he were thrown into the sea, rather than that he should cause one of these little ones to stumble.
3.  Be careful. If your brother sins against you, rebuke him. If he repents, forgive him.
4.  If he sins against you seven times in the day, and seven times returns, saying, ‘I repent,’ you shall forgive him.”

용서, 믿음, 종이 할 일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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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걸려 넘어지는 일들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런 일들이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2. 이런 작은 사람들 중 하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큰 맷돌을 매달고 바다로 던져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3. 너희는 조심하여라. 만일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4. 만일 그가 하루에 일곱 번 너에게 죄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너는 그를 용서하여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실족 당하는 것과 실족하게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영어 버전의 시제가 눈에 들어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stumbling)'의 대상은 실족하게 하는 자들에 의해 실족당하는 자들, 즉 '작은 자 중의 하나(One of these little ones)입니다. 그러므로 영어로 어거지로(?) 재해석하면 '실족당하는 자들(those who are stumbled)'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자들을 비난하십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실족하게 하는 자' 또는 '실족당하는 자' 두 가지의 입장에 동시에 서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도 모르게 전자의 입장에 선 적은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2절 작은 사람들 중 하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람이 실족하도록 동기를 제공한 사람(실족하도록 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목에 맷돌을 매고 바다에 전져지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고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이유를 알던 모르든 간에) 사람에게 무서운 죄의 결과를 선고하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하루에 일곱 번 잘못하고 돌아와서 회개하면 계속해서 용서하라' 말씀하십니다. 2-3회가 아니라 7번, 즉 사족을 달지 말고 계속해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아니어서는, 소위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니어서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생각해 봅니다. 남을 용서하기 전에 나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그리고 남을 용서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떨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하기 전에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대상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부터, 가족, 이웃, 나라, 그리고 어떠한 내외의 상황들... 우리는 이러한 용서가 필요한 상황에 던져진 운명적인 상황관계적인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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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e apostles said to the Lord, “Increase our faith.”
6.  The Lord said, “If you had faith like a grain of mustard seed, you would tell this sycamore tree, ‘Be uprooted, and be planted in the sea,’ and it would obey you.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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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절 "5. 사도들이 주님께 말하였다.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6. 주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톨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에게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면, 그것이 네 말에 순종할 것이다. "

사도들이 예수께 '큰 믿음'을 달라는 요구에 예수님은 오히려 겨자씨 한 톨만한 '작은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큰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자가 되어야 천국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과 같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나무에게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명할 수 있다 하십니다. 비유로 나무를 들으셨지만 나무가 '종(servant)'이었다면 그 종은 주인의 명령을 듣고 순종할 것이라 하십니다. 매일성경의 설명처럼 순종은 믿음의 '크기'가 아닌 믿음의 '여부'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가?' 논쟁을 부렸듯이, '믿음이 얼마나 큰가?'가 아닌 '믿음이라는 작은 씨 한 알이 내 안에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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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But who is there among you, having a servant plowing or keeping sheep, that will say, when he comes in from the field, ‘Come immediately and sit down at the table,’
8.  and will not rather tell him, ‘Prepare my supper, clothe yourself properly, and serve me, while I eat and drink. Afterward you shall eat and drink’?
9.  Does he thank that servant because he did the things that were commanded? I think not.
10.  Even so you also, when you have done all the things that are commanded you, say, ‘We are unworthy servants. We have done our duty.’”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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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절 "7. 너희 중에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 하나가 있는데, 그 종이 밭에서 돌아올 때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 하고 말할 사람이 있겠느냐? 8. 오히려 그 종에게 '내 저녁을 준비하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네가 명한 모든 것을 그 종이 하였다고 해서 그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모든 것을 다 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예수님은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 밭을 갈고 양을 치는 의무가 있는 종의 태도에 대하여 설명하십니다. 밭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온 종에서 '수고하였으니 어서 와서 밥을 먹어라!' 말할 주인은 없습니다. 오히려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지 말고 내 저녁을 준비하고 서빙을 한 후에 먹어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종 된 입장에서 종은 '나는 무익한 종이고,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말할 뿐입니다. 

이 관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나의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 보상받으려는 태도가 아니라,예수님은 우리에게 종과 같은 일방적인 순종의 태도를 요구하십니다. 이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동등한 '갑을'의 관계가 아닌 상하적인 '갑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모든 것을 '을'에게 주신 '갑'인 하나님은 우리 종된 '을'에게 명령의 권리가 있고, '을'은 순종의 의무가 있는 상하적인 관계입니다. 

세상적인 관계에서 동등하거나 상하적인 '갑을'의 관계는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는 오직 상하의 관계만이 존재합니다. 오히려 '종'의 입장에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우리의 역할이 훨씬 쉽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순종이 답'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따지지 말고 순종하자!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 마감하려 보니 생각이 하나 떠오릅니다. 인터넷 사업으로 작년부터 중국공장에서 사입을 시작한 한 백팩 제조업체 친구가 매우 똘똘합니다. 요구할 때, 고맙다고 할 때를 잘 아는 친구 같은데...  샘플 구입하고 물건 도착할 때가 되면 알아서 온라인몰에 올릴 제품사양, 사진 등을 보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물건을 올리면서 요청할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엄청 번거로운 일들이죠. 많은 제품 모델 번호들, 많은 사양, 동영상, 제품에 대한 Q&A, 자료들... 요구할 때마다 딱딱 알아서 보내주고 자신도 없을 경우 여기저기 물어서 보내주는데 그 때는 '갑'의 입장에서 제 권리이기도 하지만 '을'의 입장에서 그 많은 요구들에 다 대처하는 것을 보고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언제는 그 친구에게 'You are my teacher!'라고 고백하곤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 17:10)

그 때마다 그 친구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Welcome. It is my duty!' 해외공장에서 물건을 사입할 경우에 저 같은 경우 작은 셀러이기 때문에 '갑을'의 관계에서 실제로 저의 입장은 '을'입니다. 좋은 공장의 경우 요구한다고 자신의 브랜드 물건을 모든 셀러에게 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와의 대화에서 늘 느끼는 점은 이 친구가 언제 '갑'이 되고 언제 '을'이 되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을'이 되었다가 물건 올린지 꽤 되었는데 피드백이 없으면 한참을 기다렸다가 또 위쳇으로 연락이 옵니다(중국 친구들과 실무를 자주 위쳇으로 합니다. 우리 카톡 같은 것). 위쳇으로 '딩동!' 소리가 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그 친구의 짧은 질문 '물건 팔리냐?' 그러면 갑자기 저는 '을'이 되어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면서 늦어지는 점, 검색에 애로가 있는 점 등등... 을 말하면서 '갑'에서 충성하고 순종하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사담이 길어졌는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는 언제 이 친구처럼 꽁지를 내리고. 'Welcome, It is my duty. Thanks!'라고 말하는 '용기, 순종, 감사'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이전에 오늘 말씀의 소제목처럼 종의 의무로서 '믿음, 용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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