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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잠언(Proverbs)27:1-13(처신에 대한 가르침 I)

by 미류맘 202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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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5-29장은 후대 편집된 솔로몬의 잠언으로, 25-26장은 인간관계에 대한 잠언이었습니다. 27장-29장은 '처신에 대한 잠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미래에 대한 계획, 영예를 얻는 것, 특히 친구의 유익에 대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1.  Don’t boast about tomorrow; for you don’t know what a day may bring.
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1.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만과 오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일을 모르는 오늘은 사는 우리는 미래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는 기록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솔직히 느끼는 것이 하루가 아닌 한 시간 뒤를 모르는 것이 우리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한 시간 뒤를 모르는데, 내일 일을 어떻게 자랑할 수 있으며,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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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Let another man praise you, and not your own mouth; a stranger, and not your own lips.
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2. 남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마라. 칭찬은 남이 하는 것이지 너의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칭찬하도록 격려하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형태로 자기 홍보를 하도록 부추김을 받기도 합니다. SNS 소통 시대의 많은 현대 기술은 우리 자신을 홍보하고 칭찬할 수 있는 더 많은 방법과 기회를 우리에게 주지만, 우리는 그러한 자화자찬은 피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칭찬은 남이 하는 것이지 너의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합니다. 칭찬(영예)은 자기 칭찬과 자기 홍보의 산물이 아닌 외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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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 stone is heavy, and sand is a burden; but a fool’s provocation is heavier than both.
3.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3. 돌은 무겁고 모래도 짐이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예상 밖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겁다."

 돌은 무겁고 모래도 짐이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예상 밖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겁다. (잠 27:3), 이미지 소스:https://www.pinterest.co.kr/)

돌은 무겁고 돌보다 가벼운 모래도 짐이 됩니다. 자연에서 오는 팩트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분노는 돌과 모래보다도 무겁습니다. 뒷절의 '분노'를 영어번역은 다양합니다: provocation, wrath, resentment, aggravation. 즉, 한글로는 '근거 없는 성냄, 분노, 억울함의 표출, 짜증' 등의 다양하게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는 누군가가 분노와 짜증을 내면 그 결과는 예상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그 분노는 돌보다 무겁고 모래보다도 무겁다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우리는 어리석음과 게으름도 죄악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의 분노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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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Wrath is cruel, and anger is overwhelming; but who is able to stand before jealousy?
4.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4. 분노는 잔인하고 화는 급류와도 같지만, 질투 앞에 설 사람이 누구인가?"

KJV: "Wrath is cruel, and anger is outrageous; but who is able to stand before envy?" (분노는 잔인하고 화는 충격적이지만, 누가 질투 앞에 설 것인가?)
NLT: "Anger is cruel, and wrath is like a flood, but jealousy is even more dangerous." (분노는 잔인하고 진노는 급류와 같지만, 질투는 훨씬 더 위험하다.)

분노, 화, 진노와 같은 감정은 홍수와 급류와도 같이 우리 안에 쌓인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 파괴적이고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정신적 힘을 솔로몬은 홍수와도 급류와도 같다고 비유합니다. 그러나 그는 묻습니다. '과연 질투 앞에 설 사람은 누구인가?' 질투는 분노와 진노보다 더욱 큰 힘과 파괴력이 있는 '악의 물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빌라도 앞에서 서셨을 때, 바라바라는 죄수와 예수 중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냐? 는 질문에 사람들은 예수를 '시기(envy, jealousy)'로 죽음으로 넘겼습니다. (마 27:18) 이 하나의 예에서 우리는 질투가 분노보다 더욱 더 큰 죄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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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Better is open rebuke than hidden love.
5.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5. 공개적인 책망이 숨겨진 사랑보다 낫다." 

우리는 남을, 특히 지인들을 공개적으로 책망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러나 공개적인 책망이 숨겨진 사랑보다 낫다고 솔로몬은 가르칩니다. 우리는 경우(시간과 장소)에 따라 공개적인 책망이 더 좋고 대안보다 효과적임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숨겨진 사랑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감추어진 사랑보다 질책을 통한 솔직한 사랑이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어떤 상황에서 하는가는 하나님의 지혜에 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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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Faithful are the wounds of a friend; although the kisses of an enemy are profuse.
6.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6. 친구의 아픈 책망은 진실하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이다."

KJV: "Faithful are the wounds of a friend; but the kisses of an enemy are deceitful." (친구의 아픈 책망은 진실하나, 적의 입맞춤은 거짓이다.)
NLT: "Wounds from a sincere friend are better than many kisses from an enemy." (진실한 친구의 아픈 책망은 원수은 잦은 입맞춤보다 낫다."

진정한 친구의 책망을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 교정으로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상처로 친구의 사랑과 믿음의 표현이 됩니다. 친구가 주는 '상처(wounds)'는 무엇일까요? 성경해설가는 설명합니다. "'상처'는 사랑하는 사람을 치유하거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진정한 사랑으로 말해야 하는 고통스럽고 평범한 말을 비유한 것이다." (Waltke) 그러나 원수의 입맞춤은 잦더라도 거짓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은화 30전에 팔아넘긴 유다의 거짓 키스를 기억합니다. 진실된 상처와 잦은 거짓된 입맞춤 중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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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A full soul loathes a honeycomb; but to a hungry soul, every bitter thing is sweet.
7.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7. 배부른 사람은 꿀도 싫어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온갖 쓴 것도 달다."

우리의 삶이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충족될 때, 입에 단 꿀 조차도 싫어지지만, 배고픈 영혼에게는 쓴 것조차도 달다고 생각됩니다. 이 영혼의 배고픔은 물질적인 굶주림과 영적인 굶주림 모두입니다. 우리의 배고픈 영혼은 늘 영적 먹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것이 달던 쓰던 말이지요. 정말로 영적으로 배고플 때, 우리는 어떤 것을 먹어도 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말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사자성어로는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사리(事理)에 옳고 그름을 돌보지 않고, 자기(自己) 비위(脾胃)에 맞으면 취(取)하고 싫으면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쓴 것도 먹으면 약이 된다.' 또는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양약고구(良藥苦口)란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좋은 약(藥)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 이 예도 맞는지 모르겠는데... 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苦生)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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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As a bird that wanders from her nest, so is a man who wanders from his home.
8.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8. 자기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사람은 둥지를 떠나 방황하는 새와도 같다."

한번 들으면 이해되는 말인데 기독교인으로서 교회를 방황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번 주는 이 교회를 다음 주는 저 교회를 떠돌이처럼 철새처럼 돌아다니는 나그네들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집시 기독교인들'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들은 정해진 주거지가 없는 사람들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둥지는 어디일까요? 가정의 둥지, 공동체의 둥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주신 장소가 있고 그 곳을 떠나 방황하면 둥지를 잃은 새와도 같이 됩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는 우리의 문화와 공동체가 우리에게 부여한 자리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자리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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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Perfume and incense bring joy to the heart; so does earnest counsel from a man’s friend.
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9. 향유와 향이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듯, 친구의 충심 어린 조언도 그와 같다."

향유와 향이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듯, 친구의 충심어린 조언도 그와 같다. (잠 27:9)

향유와 향은 그 기분 좋은 냄새로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친구의 충심 어린 조언도 달콤하고 즐거움을 줍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내 인생에서 충실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충실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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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Don’t forsake your friend and your father’s friend. Don’t go to your brother’s house in the day of your disaster:
better is a neighbor who is near than a distant brother.
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10. 너의 친구나 너의 아버지 친구를 버리지 마라. 네가 어려울 때 네 형제의 집에 가지 마라.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낫다."

솔로몬은 친구나 아버지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우정의 끈을 소중하고 의무적으로 대대로 지킬 것을 당부합니다. 실제로 솔로몬 자신은 아버지의 친구 히람과 친분을 쌓음으로써 자신의 통치의 모범을 보였으나,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왕국을 잃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혜로운 솔로몬의 아들 어리석은 르호보암은 역사적으로 ‘지혜가 없고 미련하여 백성을 반역으로 몰아넣은 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본문과는 거꾸로 어려움에 처할 때 긴밀한 의논이 필요할 때, 우리는 가까이 있는 이웃보다 멀리 있더라도 혈육을 찾게 됩니다. 솔로몬은 가까이 있는 이웃이 멀리에 있는 형제(가까운 친척)보다 더 소중한 자원임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가족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이스라엘은 친척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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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Be wise, my son, and bring joy to my heart, then I can answer my tormentor.
11.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으리라

"11.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러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솔로몬은 아버지로서 이들에게 지혜를 얻고 자신에게 기쁨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역으로 지혜롭지 못한 자녀를 둔 부모는 부모를 슬프게 하고, 부모의 원수들 앞에 당당히 서지 못하게 합니다. 어리석은 자녀는 부모에게 모욕과 책망을 유발합니다. 지혜를 거부하는 자녀는 부모의 평가를 저해합니다. 역으로 지혜를 감사히 받는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이 되고 타인들 앞에서 당당히 서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지혜는 부모는 기쁨이고 당당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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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A prudent man sees danger and takes refuge; but the simple pass on, and suffer for it.
12.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12. 슬기로운 사람은 위험을 보면 숨지만, 미련한 자는 지나다가 재앙으로 화를 입는다." 

지혜는 우리가 위험을 예상하고 다가오는 재앙에서 숨도록 돕습니다. 이것은 22:3에서 전달된 내용의 반복입니다. 지혜의 이점을 설명하면서 솔로몬은 다시 지혜를 얻을 것을 권면합니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위험요소들을 만납니다. 그것에 강력하게 대처할 것인가 피할 것인가 고민하게 될 경우도 많습니다.

한 외국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재앙은 눈을 가리고 지옥에 떨어진다. 소떼는 파멸로 몰려야 하지만 죄인은 소 떼를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소 떼는 결국 파멸로 빠진다." (Bridges). 이 글이 예수님의 한 일화를 떠오르게 합니다. 소 떼는 아니고 돼지 떼인데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들이 돼지 떼로 들어가서 광인은 치유되고 돼지 떼는 파멸로 빠지는 (눅 8:26-39). 그 때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바탈로 내리 달리는 돼지 떼를 구하러 따라갔다면 그들 역시 재앙으로 화를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망가는 재물을 좇아 내달리다가 그 재물로 인해 화를 입을 수 있는 어리석은 자, 즉 '죄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아래에 링크합니다.

 

누가복음(Luke)8:26-39(귀신들린 사람을 회복하신 예수)

예수님은 거라사로 가셔서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이 광인처럼 무덤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회복하십니다. 온전히 회복된 그 사람은 온 마을을 다니며 예수님의 하신 엄청난 일을 증언

4miryu.tistory.com

13.  Take his garment when he puts up collateral for a stranger. Hold it for a wayward woman!
13.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3. 남의 보증을 선 사람은 자기의 옷을 잡혀야 하고 모르는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섰다면 그의 몸을 볼모로 잡아야 한다."

뒷 구절의 '모르는 사람'은 영어로 'warward/foreign/strange woman, outsider, adulteress, foreigners'로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ESV: "Take a man’s garment when he has put up security for a stranger, and hold it in pledge when he puts up security for an adulteress." (낯선 사람의 보증을 선 사람은 그의 옷을 잡혀야 하고, 창녀의 보증을 선 사람은 그의 몸을 볼모로 잡아야 한다.)

20:16에서 언급한 내용의 반복입니다. '누구의 옷을 잡혀야 하고 누구의 몸을 잡아야 하는가?' 혼동이 되었는데, 행간을 읽으니 빚을 진 사람의 옷과 몸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의 시시비비에 '감나라 배나라' 하며 말려들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솔로몬은 앞 5장과 7장에서 유혹과 아첨으로 남자들을 유혹하여 자신에게 빚을 지게 한 한 창녀(음녀)의 이야기와 보증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녀의 유혹에 빠진 어리석은 자와 남의 보증을 서는 어리석은 자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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