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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잠언(Proverbs)28:1-18(의인과 악인의 길과 종말)

by 미류맘 202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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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신에 대한 솔로몬의 잠언'이 이어집니다. 이 본문에서는 의인과 악인, 율법과 통치자들, 부의 유무와 지혜, 그리고 죄악과 정죄에 대하여 말합니다.


1.  The wicked flee when no one pursues; but the righteous are as bold as a lion.
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1.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치나,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다."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친다.' "죄의식이나 심판의 두려움으로 인해 악인은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의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Ross) 악인은 경건함과 지혜가 아닌 혼란과 공포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그들은 본능적으로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밤에도 편하게 두 다리 펴고 잘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불안감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낮에서 뒤에서 좇는 자가 없어도 도망합니다. 그의 행동은 자만과 교만에서 나오기 때문에 늘 양심의 불안과 가책,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무의식 중에 늘 도망칩니다. 자신의 현실에서, 미래에서 도망칩니다. 레위기는 기록합니다: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레 26:17)

그러나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다.' 의인은 그 행동의 근원이 겸손과 복종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의 양심은 늘 평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고 구원을 믿기 때문에, 그들은 그 누구 앞에서도 사자처럼 담대합니다. 사자처럼 담대한 사람은 불안으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의인이 따르는 것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God's goodness and mercy: 시 23:6)'입니다. 

 악인은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치나,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하다 (잠 28:1, 이미지 소스: https://www.christianforums.com/)

성경학자 Bridges는 말합니다. "아담은 죄인이 되기 전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죄책감이 공포를 가져온다면, 죄책감을 없애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의 설명처럼 우리는 죄인의 후손이기 때문에 두려움과 죄책감과 공포를 늘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감을 되찾으려면 죄책감을 없애야 하는데 어떻게 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구하고 그 안에서 답을 찾으면 우리의 자신감은 회복될 것입니다. 자신감은 교만과는 그 뿌리부터가 다릅니다. 요점은 하나님은 의인의 안전은 보장하시고 악인은 심판과 재앙에 굴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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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n rebellion, a land has many rulers, but order is maintained by a man of understanding and knowledge.
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2. 반란 중에 나라는 지도자가 많으나, 명철과 지식이 있는 지도자는 나라의 질서를 유지한다."

ESV: "When a land transgresses, it has many rulers, but with a man of understanding and knowledge, its stability will long continue." (나라가 범죄하면 지도자들이 많아지나, 명철과 지식 있는 지도자는 나라의 안정을 오래 지속시킨다.)
NLT: "When there is moral rot within a nation, its government topples easily. But wise and knowledgeable leaders bring stability." (한 나라에 도덕적 부패가 있으면 그 정부는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명철과 지식 있는 지도자는 안정을 가져온다.)

영어 버전별도 번역이 다양합니다. 한 나라가 범죄하면 자연스럽게 대장 노릇을 하려는 지도자들이 많아집니다. 죄악은 교만을 낳고, 나라에 무질서와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로움을 가진 명철과 지식(지혜) 있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그 나라의 질서는 유지되고 안정은 오래 지속됩니다. 

여러 영어 번역을 참조하고 문맥을 보니 앞 부분은 한 나라에 '죄악'이 자리를 잡을 경우, 뒤 부분은 '의로움'이 자리를 잡을 경우입니다. 우리도 역사적으로 보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공존할 때 무질서가 팽배했고 남북으로 별도의 지도자들이 있었고 많은 당파들도 존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역사에서 우리는 공부합니다. '죄악'은 불복종과 교만과 무질서와 분쟁과 분열과 시기를 낳고, '의로움'은 경건과 겸손과 질서와 온유와 인내와 사랑을 낳습니다.

그리고 '죄악'은 하나님의 저주로, '의로움'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상됩니다. 아랍어로 저주의 말이 ‘May God make your sheiks many!’라고 합니다. 그 뜻을 풀어보면 '신께서 많은 통치자들을 만드시길...'이라는 뜻인데, Sheik는 이슬람교의 교주를 의미합니다. 결국, 한 나라의 지도자가 많다는 것은 분열과 저주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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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 needy man who oppresses the poor is like a driving rain which leaves no crops.
3.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3.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가난한 사람은 곡식을 남김없이 쓸어 가는 폭우와도 같다."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가난한 사람'을 통한 가르침입니다. 상식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않을까요? 사자성어 중에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이 있습니다. 「손이 들이굽지 내굽나.」라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普通)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채무자의 비유인 <용서할 줄 모르는 종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십니다(마 18:21-35). 가난한 한 종이 다른 가난한 종을 억압하였습니다. 주인이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탕감해 준 한 종이 자비를 베풀지 않고 자기에게 빚진 동료(다른 종)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결국 주인은 모든 빚을 탕감해 준 종에게 모든 빚을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들의 파괴적인 잔인함을 '곡식을 남김없이 쓸어 가는 폭우'와도 같다고 솔로몬은 비유합니다. 사람을 굶주리게 하고 희망을 빼앗아가는 파괴적인 비처럼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가난한 사람의 영향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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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se who forsake the law praise the wicked; but those who keep the law contend with them.
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4. 율법을 버리는 사람은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악인들과 싸운다."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이든 사회에서 말하는 정의의 근본원리가 저버리면, 의인에게는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악인에게 유익이 되고 악인을 칭찬하게 됩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It is fearful to sin; more fearful to delight in sin; yet more to defend it(죄를 짓 것은 두렵다, 그리고 죄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더 두렵다. 그러나 죄를 방어하는 것은 더욱 더 두려운 일이다).” (Bishop Hall, cited in Bridges)

야고보서는 기록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죄를 키우고 결국 사망으로 이릅니다. 왜 욕심이 잉태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따르려면 인간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악한 것들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복종, 자만, 교만, 욕심, 죄악, 사망... 욕심을 버리면 겸손해집니다. 겸손한 미덕은 하나님의 보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욕심이 잉태하고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망에 이릅니다.

이 잠언은 단 두 가지 길만을 제시합니다: '율법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율법을 지킬 것인가?' 성경학자 Waltke는 말합니다:

인류를 나누는 선은 인종적, 정치적, 심지어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그 선은 모든 인간의 심장을 관통합니다(The line dividing humanity is not racial, political or even religious, but spiritual. That line runs through every human heart)."

그 지켜야 하는 선이 하나님의 율법이든 인간이 만든 법이든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위의 학자가 말했듯이, 우리 인간의 심장을 관통하는 영적인 선이 존재하고, 우리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선을 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부인하면 우리 인간은 영적 오만의 길로 추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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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vil men don’t understand justice; but those who seek Yahweh understand it fully.
5.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5. 악한 사람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사람은 모든 것을 깨닫는다."

ESV: "Evil men do not understand justice, but those who seek the LORD understand it completely." (악인은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주님을 찾는 사람은 정의를 완전히 이해한다.)
KJV: "... understand all things." (...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

일부 영어 버전에서는 뒷절의 'it'를 '모든 것'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이 정의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는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를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6.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6.  My teaching is not my own. It comes from him who sent me.
17.  If anyone chooses to do God's will, he will find out whether my teaching comes from God or whether I speak on my own.  (요 7:17)

정의, 의로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내 교훈(my teaching)'이 예수님의 것이 아닌 '나를 보내신 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따르는 '내 교훈'이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교훈인지 자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구하는 '내 정의'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세상적인 정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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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Better is the poor who walks in his integrity, than he who is perverse in his ways, and he is rich.
6.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6. 성실하게 걷는 가난한 사람이 부유하면서 굽은 길을 가는 사람보다 낫다."

성실하게 걷는 가난한 사람이 부유하면서 굽은 길을 가는 사람보다 낫다 (잠 28:6, 이미지 소스:https://www.thywilltv.com/)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중에 선택하도록 한다면 누구나 부유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성실성(흠 없음)'이라는 척도에서 볼 때 가난하고 성실한 자와 부유하고 비뚤어진 사람을 대비할 때 솔로몬은 가난하더라도 성실한 사람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성실하게 사는 부자도 있고 비뚤어진 길을 가는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잠언은 기록합니다: "가난해도 성실하게(흠 없이) 걷는 사람이 입술이 비뚤어지고 어리석은 사람보다 낫다 (Better is the poor who walks in his integrity than he who is perverse in his lips and is a fool)." (19:1) 앞에서는 가난과 어리석음과 말을, 이 구절에서는 가난과 성실만을 엮어서 비교합니다. 비슷한 내용의 잠언도 있었습니다: "공의롭고 살며 적은 소득이 불의하게 살며 많은 소득보다 낫다." (16:8)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눅 16:19-31)를 통해서 값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던 부자는 죽어서 괴로움을 받고,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위로를 받은 교훈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부자들을 자주 발견합니다. 미덕을 가장하고 악을 행하거나, 좋은 것처럼 간교한 계획을 숨기면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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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Whoever keeps the law is a wise son; but he who is a companion of gluttons shames his father.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7.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지혜로운 아들이나, 음식을 탐하는 사람들과 벗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를 욕되게 한다."

하나님의 율법(계명)을 지키는 것은 순종의 증거입니다. 잠언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개의 단어군들을 발견합니다. 계명, 겸손, 순종, 지혜, 판단력, 명철, 흠 없음 vs. 오만, 불순종, 어리석음, 미련함, 구부러짐. 이 구절에서는 또 하나 '식탐'이 추가됩니다. 식탐이 있는 사람들과 사귀면 아버지를 욕되게 한다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여기에서 식탐이란 음식 뿐아니라 소비, 낭비, 사치, 방탕도 포함됩니다. '탐식자(gluttons)?' 우리는 무엇에 마음을 빼앗길까요, 무엇을 탐할까요? 명예, 출세, 재물, 돈... 쇼핑도 탐식 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우리는 필요 이상의 것들을 사곤 합니다. 사고, 버리고, 또 사고... 여행 간 적이 엄청 오래되었지만, 여행 중에 늘 느꼈던 것은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것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버리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합니다. 물건도 소유욕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솔로몬은 탐식자와 벗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대신 우리는 지혜로운 자와 같이 걸어야 합니다. 앞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걸으면 지혜가 자라지만, 어리석은 자와 친구가 되면 해를 입는다." (13:20) 탐식자와 벗하게 되면 그의 나쁜 영향을 받아 자신도 해를 입을 것입니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우리도 같은 탐식자가 되고 낭비하게 되고 사치하고 방탕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부모에게 수치와 고통을 드려 부모를 욕되게 하는 자녀로 전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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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He who increases his wealth by excessive interest gathers it for one who has pity on the poor.
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8. 과도한 이자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사람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위해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KJV: "He that by usury and unjust gain increaseth his substance, he shall gather it for him that will pity the poor." (고리대금과 부당한 이득으로 재산을 늘리는 사람은 가난한 자를 불쌍이 여기는 사람을 위해 재산을 모으는 것이다."
NLT: "Income from charging high interest rates will end up in the pocket of someone who is kind to the poor." (높은 이자율을 청구하여 얻는 수입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누군가의 주머니로 언제인가 들어갈 것이다.)

높고 불공평한 이자(고리대금; usury)을 청구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훔치기 위해(착취; extortion)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자에 대한 규정을 합니다: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신 23:19)

성경에 '고리대금(usury)'란 단어가 열 번 나온다고 합니다. 이자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구약시대의 이자율은 30%에 달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고리대금으로 얻은 수익은 결국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라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즉, 고리대금업자의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고 그 이자는 타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의인의 통장 계좌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불법적인 돈을 빼앗아 의인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욥기는 기록합니다(욥 27:16-17):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앞에서도 잠언을 기록합니다. "선한 사람은 그 유산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나,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해 쌓인다."(13:22) 아래는 이 구절을 공부하면서 제가 적은 내용입니다:

"세상의 삶에서 물질적인 재산은 도덕적이고 경건한 사람들에게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진술은 정의와 악이 어떻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정직하게 부를 얻은 사람은 죄악으로 사는 사람보다 부를 간직하고 물려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미라는 한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 

의인은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이 아닌 정직하고 경건한 원칙에 따라 돈과 재묽을 관리하기 때문에 돈과 재물을 현명하게 다룹니다. 그런 이유로 의인의 재산은 대대로 물려줄 확률이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죄인의 재물은 낭비되고 소진되어 그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요즘 말로 '돈 넣고 돈 먹기'란 말이 있습니다. 돈이 돈을 낳고,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면 땀 흘려 수고를 하지 않아도 수입이 생깁니다. 소위 '재테크'의 한 방법인데, 그런 투기성 투자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노동이 없는 그런 돈은 의인을 위해 쌓여야 하는데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부동산 전수조사 문제로 논란이 되는 상황을 보면서 그런 수고하지 않고 모은 돈은 다시 회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씁쓸한 생각이 드네요. 

세상은 세상의 이치대로 돌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정당하게 땀흘려 일하고 재산을 모으고 가난한 자를 생각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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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He who turns away his ear from hearing the law, even his prayer is an abomination.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9. 귀를 돌리고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의 기도도 가증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이 주는 진리에 굶주려야 우리는 영적으로 건강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드리기 전에 겸허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그의 말씀을 드려야 함을 솔로몬은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대신에 우리의 사사로운 욕심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겸손과 순종으로 출발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오만한 마음으로 시작한 기도는 세상적인 것을 위한 기도일 수 있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중심으로 기도할까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뜻을 따라 기도하지는 않는지? 앞에서 잠언은 기록합니다(1:24-28):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는 거부하였고, 내가 손을 펼쳤으나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5. 오히려 너희는 나의 모든 충고를 무시하고 나의 책망을 원치 않았다.
26. 너희의 재앙에 내가 웃을 것이고, 재앙이 너희에게 덮칠 때에 내가 비웃을 것이다.
27. 재앙이 폭풍처럼 너희를 덮치고, 너희의 재앙이 태풍처럼 내리고, 슬픔과 고통이 너희에게 임할 때에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겠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나를 급히 찾아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귀를 돌리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입으로만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그 부름에 대답도 하지 않으실 것이고, 우리에게 재앙이 닥쳐도 비웃을 것이고,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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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Whoever causes the upright to go astray in an evil way, he will fall into his own trap; but the blameless will inherit good.
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사람은 자신이 판 함정에 빠지지만, 흠 없는 사람은 복을 상속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악한 길로 인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인을 악한 길로 유인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느낍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판 함정이 스스로 빠질 것입니다. 잠시 실수로 악한 길로 유인되었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다시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그들의 자리(구덩이, 자신이 판 함정)에 빠지게 하시고 의인은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악한 길로 인도된 의인들 또한 악인의 구덩이에 빠질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그 대상을 솔로몬은 '흠 없는 사람(the blameless)'라 말합니다. 즉, 온전한 자, 성실한 자, 완전한 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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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e rich man is wise in his own eyes; but the poor who has understanding sees through him.
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11. 부자는 자기 눈에 지혜롭게 여기지만, 가난하나 명철이 있는 사람은 그를 꿰뚫어 본다."

NIV: "The rich are wise in their own eyes; one who is poor and discerning sees how deluded they are."(부자는 자기 눈에 지혜롭게 여기지만, 가난하나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그들이 얼마나 현혹되어 있는지 안다."

부자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랑스럽고 현명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을 수 있습니다. '지혜가 종종 부를 가져온다(Wisdom oftern leads to wealth)'란 속담도 있지만, 모든 부자가 지혜를 통해 부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는 실제 어리석지만 종종 자신이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자신의 성공의 이유가 자신의 지혜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부자보다 한 단계 위에 있습니다. 그는 어리석은 부자를 꿰뚫어 보기 때문입니다.

가난함, 궁핍이 줄 주 있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부자가 되더라도 그 교훈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가난하나 지혜로운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역을 스스로 맡아서 수행하셨습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그분의 성령으로 걷는 것은 바로 지혜요, 영광이요, 행복으로 통하는 길이 아닐까요?

뒷 절의 '가난하나 명철한 사람은 그를 꿰똟어 본다'에서 '그'가 부자인지 가난한 사람인지 한글번역본을 보니 혼동이 되었는데 자료를 찾으니 여기에서 '그'는 부자를 의미합니다. 영어버전에는 '그들이 얼마나 현혹되었는 안다(see how deluded they are), 탐색한다(searche him out), 꿰뚫어 본다(see through him)'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글에서 '지혜와 재물(wisdom & wealth)'에 대한 인용구를 검색해 보았는데 <Inspirational Words of Wisdom>이란 페이지에서 "Wealth is the slave of a wise man(재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노예이다)"란 속담이 보입니다 (자료:  https://www.wow4u.com/wealth/). 뒷 구절을 부연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명철, 분별력, 지혜는 어디에서 올까요? 성경은 명철과 재물을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재물, 어리석음, 교만 vs. 가난, 지혜, 겸손으로 단어들이 대비됩니다. 앞에서 잠언은 기록합니다 (잠 23:4-5)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지혜 안에서 자제력을 보여라.
어찌하여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네 눈을 고정해야 할까?
분명히 재물은 독수리처럼 날개가 나서 하늘로 날아갈 것이니.

허망하게 하늘로 날아갈 물질적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지혜 안에서 자제력을 보일 것은 솔로몬은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여기에서 지혜는 영혼의 재물입니다. 우리는 물질적 부유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독수리처럼 멀리 날아서 재물이 또 다른 재물을 물고 오는 현실을 우리는 슬프게도 이 세상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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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When the righteous triumph, there is great glory; but when the wicked rise, men hide themselves.
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2. 의인이 승리하면 큰 영광이 있으나,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숨는다."

지혜와 의로움으로 사는 의인이 승리하면 큰 영광이 있습니다. 그리고 악인이 일어나면(세력을 잡으면) 사람들이 숨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이유로 모세가 바로왕에게서, 다윗이 사울에게서, 엘리야가 아합에게서, 예레미아가 여호야김에게서, 요셉과 아기 예수가 헤롯에게서 몸을 숨겼습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기회주의자들과 비슷한 악인들이 일어나지만, 진정으로 진실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습니다.

앞에서 잠언은 기록합니다: "의인이 잘되면 마을이 기뻐하고, 악인이 멸망하면 마을이 즐거워 소리친다" (잠 11:10) 그리고 비슷한 구절이 뒤에도 반복됩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숨어 버리지만, 그가 망하면 의인이 많이 나타난다" (잠 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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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e who conceals his sins doesn’t prosper, but whoever confesses and renounces them finds mercy.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죄는 '원죄'로 아담과 이브가 범한 죄로 시작합니다. 아담과 이브 이후 인간의 본능은 우리의 죄를 덮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죄를 부끄럽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심지어 우리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를 덮으려는 이 자연스러운 본능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성의 상태에 대해 고백하는 것을 막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는 긍휼을 얻을 것입니다.

한 성경학자의 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각각 죄를 감춘다. 하나님은 무한한 은혜로, 사람은 수치심과 위선으로(God and man each conceal sin—God in free unbounded grace, man in shame and hypocrisy).” (Bridges) 하나님의 죄의 숨김은 은혜로 인하고, 사람의 죄의 숨김은 위선으로 인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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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Blessed is the man who always fears; but one who hardens his heart falls into trouble.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14. 항상 두려워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사람은 재앙에 빠진다."

앞의 절과 뒤의 절은 대조가 되는 내용입니다. '복'의 반대는 '재앙'입니다. 그러면 앞의 '두려움(경외함)'과 '완악함(마음의 굳힘)'도 상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행복은 연관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까다롭고 재미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는 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단 마음을 굳히면, 그의 정신은 더 이상 느낄 수 없고 새로운 방향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굽어져(비뚤어져) 있습니다. 그 예를 우리는 출애굽기의 바로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는 스스로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하나님도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굳은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은 이집트에 10대 재앙을 내리십니다. 계속된 재앙에도 바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마지막 재앙 '모든 장자들의 죽음' 앞에서 이집트의 온 땅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고 바로는 여호와를 인정하고 이스라엘을 출애굽 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는 여호와를 경외해야 함을 인정했으나 이미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또는 재앙을 받는 기준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바로왕의 예에서 보듯 그 기준은 하나님을 경외함,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함입니다. 인정하고 복종하고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인정하고 순종하고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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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As a roaring lion or a charging bear, so is a wicked ruler over helpless people.
16.  A tyrannical ruler lacks judgment. One who hates ill-gotten gain will have long days.

15.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15. 힘 없는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통치자는 울부짖는 사자요 굶주린 곰과 같다. 16. 지혜 없는 통치자는 압제만을 일삼지만, 부정한 소득을 미워하는 통치자는 장수할 것이다."

CSB: "A leader who lacks understanding is very oppressive, but one who hates dishonest profit prolongs his life." (명철이 부족한 통치자는 매우 압제적이나, 부정한 소득을 미워하는 통치자는 장수할 것이다.)

15절 솔로몬은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폭군 통치자를 울부짖는 사자와 굶주린 곰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먹이를 찾아 덮치려고 배회하는 사자와 곰은 생각만 해도 공포스러운 존재입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이 왜 가난한 자와 부자를 만드셨고 의인과 악인을 만드셨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서로 배려하고 배우라고 만드셨을까요? 잠언은 기록합니다(잠 14:31):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나,
궁핍한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은 주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모두 지으신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사람은 심판과 응징으로, 사랑과 긍휼로 대하는 사람은 보상으로 응대하십니다.

16절 앞 절을 개역개정은 '무지한 처리자'로 번역되었는데 다른 영어번역을 참조하여 '지혜 없는 통치자는 압제만을 일삼지만'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뒷 절은 '부정한 소득을 미워하는 통치자'에서 '부정한 소득(dishonest profit)'은 '탐욕.탐심(covetousness)'으로도 번역됩니다. 

지혜, 선함, 긍휼, 인정이 없고 교만, 자만, 권위로 가득한 통치자는 압제만을 일삼지만, 부정한 이익, 탐욕을 미워하는 통치자는 그의 남은 달들이 많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장수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하나입니다. 부정과 탐욕을 미워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어 영육의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됨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상식입니다. 잠언은 또 기록합니다: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If a king judges the poor with fairness, his throne will always be secure)" (잠 29:14) 

실제의 예를 보면, 유다 왕들 중에서도 악한 왕이었던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22세에 왕위에 올라 매우 짧은 2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통치하면서 많은 개혁과 순종을 길을 걸었던 요시야는 39세에 므깃도 전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13대 유다 왕이었던 히스기야는 초기 무능력한 부친 아하스와 함께 통치하다가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고 신실한 통치를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죽을 병에 걸렸는데 하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분열 왕국 시대의 남왕국 유다 왕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 또는 불순종은 그들의 통치기간과 장수와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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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A man who is tormented by life blood will be a fugitive until death; no one will support him.
17.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17. 살인죄로 괴로워하는 자는 죽을 때까지 도망자가 될 것이니, 누구도 그를 막지 말지어다."

NIV: "Anyone tormented by the guilt of murder will seek refuge in the grave; let no one hold them back." (살인죄로 괴로워하는 자는 무덤으로 피신할 것이니, 누구도 그들을 붙잡지 마라.)
NASB: "A person who is burdened with the guilt of human blood Will be a fugitive until death; no one is to support him!" (사람의 피로 인한 죄로 괴로워하는 자는 죽을 때까지 도망자가 될 것이니, 누구도 그를 막지 말지어다.)

이 구절은 '사람의 피를 흘린 자'의 정죄에 대한 글입니다. '살인죄로 괴로워하는 자는 죽을 때까지 도망자가 될 것(무덤으로 피신할 것)이니, 누구도 그를 막지 말라' 말합니다. 그는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죄의 결과를 겪도록 해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죄악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시기, 질투, 미움, 험담, 중상모략, 비방 등등... 가장 용서받지 못할 죄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죄악은 살인까지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인간 최대의 죄악은 살인이고 그 삯은 사망입니다. 창세기는 기록합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6)

인간이 만든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많습니다. 사형은 필요할까요? 잠언은 '살인자는 무덤으로 피할 것이니, 누구도 그를 막지 말라' 말합니다. 인간의 판단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징벌을 반드시 임할 것이며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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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Whoever walks blamelessly is kept safe; but one with perverse ways will fall suddenly.
18.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18. 흠 없이 걷는 자는 안전할 것이나, 굽은 길로 가는 자는 곧 넘어질 것이다."

뒷 절은 영어로 '굽은 길로 가는 자'는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NIV)', '갑자기 넘어질 것이다(ESV)', '갑자기 멸망할 것이다(NLT)'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흠 없이, 온전하게, 정직하게 걷는 자는 안전할(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뚤어진 길을 가는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이고 굽은 생각을 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구덩이에 빠질 것이고 넘어지고 멸망할 것입니다. 

앞의 6절과 연관있는 내용입니다: "성실하게 걷는 가난한 사람이 부유하면서 굽은 길을 가는 사람보다 낫다" (잠 28:6) 상대는 흠 없이 걷는 자와 굽은 길로 걷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6절은 재산의 유무가 더해집니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우리는 성실하게 흠 없이 걸으면서 부유한 길로 걷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불행히도 재산의 유무는 우리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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