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신에 대한 잠언이 계속됩니다. 특히 오늘의 본문은 의인과 악인,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시각에서 본 재물과 가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지 말고 지혜 안에서 걸어야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19. One who works his land will have an abundance of food; but one who chases fantasies will have his fill of poverty.
19.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19.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양식이 넉넉하겠지만, 환상을 쫓은 자는 가난함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이 구절에서 솔로몬은 부지런함과 게으름, 그리고 재물을 연관시킵니다. 앞과 뒤의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기 땅을 일구는 사람은 '넉넉한 양식(abundant food, plenty of food)'을 가지겠지만, 헛된 것을 따르는 사람(fantasies, worthless pursuits, vain, empty pursuits)은 '충분한 가난(fill of poverty, plenty of poverty, poverty enough)'을 가질 것이다. 앞과 뒤의 동사는 둘 다 have지만 목적어는 enough food와 enough poverty입니다. NLT는 '(결국) 가난으로 끝난다(end up in poverty)'로 번역합니다.
'환상'은 헛된 것, 허무한 것, 방탕한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의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재산을 (당당하게) 요구한 둘째 아들이 받은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한"(눅 15:13)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결국 그는 흉년이 오자 궁핍하게 되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울 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 초라한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돌아갑니다.
앞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먹을 양식이 많겠지만, 헛된 것을 좇는 사람은 지각이 없는 자이다"(12:11)
성경은 기록합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고후 9:6) 자기의 땅을 일구어 수고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겠지만, 헛된 것을 쫓은 자는 가난할 것이다. 적게 뿌리면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둔다. 뿌린 대로 거둔다. 경제의 기본원칙입니다. 우리 속담으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사자성어도 정리합니다. 성경 잠언으로 우리 속담, 사자성어, 영어속담을 비교.분석하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공부도 많이 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회자되는 말들은 다 같은 것 같습니다.
- 인과응보(因果應報): 「원인(原因)과 결과(結果)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으로,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結果)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結果)가 따름
- 종두득두(種豆得豆): 「콩을 심어 콩을 얻는다.」는 뜻으로, 원인(原因)에 따라 결과(結果)가 생긴다는 말
- 자승자박(自繩自縛):「자기(自己)의 줄로 자기(自己)를 묶다.」는 말로, 자기(自己)가 자기(自己)를 망치게 한다는 뜻
- 자업자득(自業自得)/자업자박(自業自縛): 불교(佛敎)에서, 제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를 제 스스로 받음을 이르는 말
- 사필귀정(事必歸正): 처음에는 시비(是非) 곡직(曲直)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結局)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감, 아래는 약간 다른 컨셉 같네요...
- 권선징악(勸善懲惡): 착한 행실(行實)을 권장(勸奬)하고 악(惡)한 행실(行實)을 징계(懲戒)함.
요컨대, 수고의 보상은 수확입니다. 일구는 것이 밭이든 공장이든 회사이든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수고해서 수확하는 만큼 즐길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이 경제의 기본원칙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의무(義務, duty)를 수행해야 누릴 수 있는 권리(權利, right)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자신이 일구는 것(목적어)이 '환상, 헛된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가난(빈곤)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고한 만큼 가득 채워주십니다. 그 수고가 무엇이냐에 따라 채워주시는 결과물 또한 충분합니다. 충분한 양식(빵, 떡)이나 충분한 빈곤이냐? 대비와 반복이 주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쫓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내가 구하는 것이 일과 연관된 구체적인 것인지 아니면 허공에 있는 추상적인 것인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저도 일이 찾아지지 않고 잡히는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목표가 내가 추구하는 대상이라면 다시 시작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 다시 출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도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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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 faithful man is rich with blessings; but one who is eager to be rich will not go unpunished.
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20. 신실한 사람은 많은 복을 받지만, 빨리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구절도 앞과 마찬가지로 대비와 반복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과 빨리 부자가 되려는 사람 모두 하나님께서 '충분히(rich)' 주십니다. 전자는 충분한 '축복(blessing)'을 후자는 충분한 '심판(벌; punishment)'을 주십니다. 앞과 같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부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빨리(quick, 짧은 시간 내에 속히) 그리고 쉽게(easy)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을 꿈꾸고 헛된 부귀영화를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부정당하고, 남을 속이고, 타협과 협상의 꾀하고, 불의한 방법을 동원하게 됩니다. 모든 범죄의 시작이 돈이 아닐까요?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당하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당당하게, 적절한 절차에 따라 수입을 구해야 합니다.
신실한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세상의 원칙으로도 종교적으로도 팩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 충실하고 복종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부인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와 심판을 받습니다. 이 구절에서 솔로몬은 그 뜻을 더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중부정을 사용합니다.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이 생에서든 다음 생에서든 벌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앞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공의롭고 살며 적은 소득이 불의하게 살며 많은 소득보다 낫다" (잠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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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To show partiality is not good; yet a man will do wrong for a piece of bread.
21.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21. 편애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사람은 빵 한 조각 때문에 죄를 범할 수도 있다."
사람의 낯을 보아준다는 것은 사람의 얼굴을 보아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partiality'로 번역된 것은 우리말로 '편애, 편파적'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잠언에서 편파적인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경고성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판에서나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거래에서 편파성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은 일반 상식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옳은 것(의; 義)은 옳다, 틀린 것(악; 惡)은 틀리다'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재판에서 바른 입으로 바른 말을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잠언은 기록합니다.
"악인을 의롭다고 하고 의인을 악하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여호와가 미워하시는 것이다." (잠 17:15)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죄 없는 사람에게서 공정을 박탈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잠 18:5)
"재판할 때 편드는 것은 옳지 않다." (잠 24:23)
"율법을 버리는 사람은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악인들과 싸운다." (잠 28:4)
우리는 사회에서 인종, 계급, 국적, 또는 영향령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우대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자주 접합니다. 그리고 빵 한 조각에 정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쉽게 매수될 수 있기 때문에 뇌물을 받고 편파적으로 타인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쉽게 뇌물로 매수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에스겔서는 '(작은 뇌물을 받고) 거짓말로 예언하는 여자들'을 향해 경고합니다: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겔 13:19) 잠언은 또한 기록합니다: "공의롭고 살며 적은 소득이 불의하게 살며 많은 소득보다 낫다." (잠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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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A stingy man hurries after riches, and doesn’t know that poverty waits for him.
22.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22. 악한 눈을 가진 자는 재물을 좇기에 바빠서, 궁핍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악한 눈을 가진 자(구두쇠, 인색한 사람, 재물을 좇는 자, 욕심 많은 사람)는 재물을 좇기에 너무나 바빠서, 가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색하고 너그럽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머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느 날 도둑처럼 가난이 그에게 임할 것입니다. 인색하고 욕심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인입니다. 게다가 재물 쫓기가 바쁜 악인은 더욱 미워하십니다.
우리말에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눈에도 그 선함이 그려집니다. 그 이유는 선함으로 자신의 먹거리를 가난한 사람과 나누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은 온종일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베풀고 아끼지 않는다." (잠 21:26)
"인자한 눈을 가진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니, 그가 자신의 먹거리를 가난한 사람과 나누기 때문이다." (잠 22:9)
악한 눈을 가진 사람은 결국 남을 속여서 재물과 먹거리를 얻고 그것을 달게 먹지만, 결국 그를 기다리는 것은 고난과 환란입니다. 속이지 않고 공짜로 먹는 밥도 입에 달달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는 단 음식 대신에 자갈(모래)로 가득할 것이라고 솔로몬은 경고합니다: "속여서 얻은 음식은 사람에게 달지만, 나중에는 그의 입에 자갈이 가득할 것이다" (잠 20:17).
이 세상에서 속여서 얻은 음식을 달게 먹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들은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직 양심적이고 인정 많은 사람들만이 하늘나라에서 진정한 부와 축복을 차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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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One who rebukes a man will afterward find more favor than one who flatters with the tongue.
23.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23. 사람을 책망하는 사람이 혀로 아첨하는 사람보다 나중에 더 존귀를 받을 것이다."
책망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사실에 근거한 현명한 책망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에 기반한 책망은 듣는 사람에게 유익이 됩니다. 당장에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책망을 감사히 받고 자신에게 적용하여 결과적으로 앞으로의 삶에 유익이 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책망하는 것도 사랑에 기반한 교정의 필요가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에 책망 듣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아래 잠언들을 보면 책망의 유익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개적인 책망이 숨겨진 사랑보다 낫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진실하나, 적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이다." (잠언 27:5-6)
"나의 책망에 뒤를 돌아보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가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잠언 1:23)
"명령은 등불이고, 법은 빛이고,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다." (잠언 6:23)
"도가니로 은을, 화덕으로 금을 연단하듯, 사람은 칭찬으로 연단을 받는다." (잠언 27:21)
혀로 아첨하는 사람의 말을 당장 듣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우리를 자만과 교만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단기간으로 보면 꾸짖는 사람이 아첨하는 사람보다 환영받지 못할 수 있으니 결국에는 늘 칭찬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은혜를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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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Whoever robs his father or his mother, and says, “It’s not wrong.” He is a partner with a destroyer.
24.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24. 부모의 것을 도둑질하고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자는 파괴자의 동지이다."
부모의 소유를 도둑질하고 '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의 재산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부모의 소유는 자녀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본문은 그 자녀를 정죄합니다. 부모의 것을 훔치는 행위는 도둑질이고 무엇보다도 큰 죄악입니다. 그런 사람을 솔로몬은 '멸망케 하는 자(파괴자; destroyer)의 동지라고 말합니다. 그런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파괴하고 부모와 자식 간의 도덕적 질서를 파괴하는 죄인입니다 (NLT 버전은 '살인자나 다름없다(no better than a murderer)'라고 번역합니다. 모세의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고 불효는 인류의 큰 죄악입니다.
불효에 대해 검색해 보니 조선시대에 불효는 십악(十惡) 중의 하나로 규정되었습니다. "십악(十惡): 몸, 입, 뜻의 세 가지에서 나는 열 가지의 악업(惡業). 곧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따위의 신업(身業)과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따위의 구업(口業)과 탐욕(貪慾), 진에(嗔喪), 우치(愚癡)」 따위" (자료: 네이버사전)
조선시대에 규정한 십악(十惡)이 몸, 입, 뜻에서 나는 세 가지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잠언 6:16-19절이 떠오릅니다. 성경에서 정죄하는 이 죄목들도 우리의 신체 내에서 또는 신체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이 점이 흥미롭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팩트에는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가 있다. 교만한 눈, 거짓된 혀, 죄없는 사람을 피 흘리는 손, 악한 계획을 꾀하는 마음, 범죄하러 급히 달려가는 발, 거짓말을 하는 거짓 증인, 형제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다." (잠 6:16-19)
누가복음 15:11-32의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도 생각나게 합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한 작은 아들이 '내 몫'을 요구하여 먼 지방으로 가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치기가 되었지요. 그 아들의 비극도 부모의 재산을 요구하고(부모의 소유가 결국 자신의 소유라는) '그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자기 합리화 선언을 합니다. 가족 간이라도 공통 소유는 없습니다. 각자마다 수고한 만큼만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잃은 아들의 비유도 이 본문의 자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일례입니다. 누가복음의 불효자의 결론은 해피 엔딩이었지만 그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아래 올린 글 링크합니다.
바울도 우리 몸의 일부(지체; members)를 '죄'가 아닌 '의'의 일을 위하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롬 6:13). 부모의 것을 훔치는 행위는 조선시대의 정죄 조건을 보면 우리의 몸(지체)과 뜻(마음)에서 나오는 악업(惡業)에 해당합니다. 그의 정죄는 부정직, 약탈, 배은망덕, 잔인함에 불복종을 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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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One who is greedy stirs up strife; but one who trusts in Yahweh will prosper.
25.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25. 욕심이 많은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형통할 것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The greedy)'에 대한 말입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탐하는 자(greedy: NIV/ESV/CSB/WEB)', '자랑하는 자(proud heart: KJV)', '교만한 자(arrogant: NASB)'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거만, 교만, 오만, 자랑, 욕심, 자존심, 높은 눈'은 뉘앙스가 약간씩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자존심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어느 정도의 고집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언 21:4는 교만을 정죄합니다: "거만한 눈(high look)과 교만한 마음(proud heart), 악인의 등불은 죄이다" (잠 21:4). 또한 잠언 13:10은 "교만은 다툼만을 초래하나, 충고를 잘 듣는 사람들은 지혜가 있다"라고 기록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탐심, 교만, 욕심이 있으면 다툼과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뜻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견해를 타인에서 주장하는 과정에서 싸움과 분쟁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지혜롭게 각자의 이해와 관심의 차이가 있는 토론은 협상, 화합(일치, 단결)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불협화음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주장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다린다면 타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툼의 이유는 '나의 나라와 나의 의(意)'를 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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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One who trusts in himself is a fool; but one who walks in wisdom is kept safe.
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6. 자기를 믿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나, 지혜 안에서 걷는 자는 안전할 것이다."
영어성경을 보면 '구원을 얻는다'를 'be delivered: ESV/KJV/WEB)', '안전하다(safe: NIV/NASB/NLT/CSB)'로 번역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도덕, 지혜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구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서 구하라!'는 유혹에 늘 시달립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육신과 마귀가 그러한 유혹의 눈짓을 늘 우리에게 던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믿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반면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안전이 보장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 7:24-27의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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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One who gives to the poor has no lack; but one who closes his eyes will have many curses.
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27.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겠지만, 그를 못 본 체하는 사람은 많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잠언 11:25에서도 말했습니다: "관대한 사람은 풍족해질 것이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해질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너그러운 마음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가난한 사람을 못 본 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부를 얻는 길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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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When the wicked rise, men hide themselves; but when they perish, the righteous thrive.
28.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28.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숨지만, 악인이 망하면 의인이 번창한다."
잠언 28:12에서 "의인이 승리하면 큰 영광이 있으나,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숨는다"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잠언 11:10에서도 "의인이 잘되면 마을이 기뻐하고, 악인이 멸망하면 마을이 즐거워 소리친다" 말합니다.
악인이 일어나면(세력을 잡으면) 사람들이 숨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이유로 모세가 바로왕에게서, 다윗이 사울에게서, 엘리야가 아합에게서, 예레미아가 여호야김에게서, 요셉과 아기 예수가 헤롯에게서 몸을 숨겼습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기회주의자들과 비슷한 악인들이 일어나지만, 진정으로 진실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멸망하면 숨었던 의인이 다시 일어나서 번창합니다. 위의 성경의 예에서도 보듯이 악인이 멸망한 뒤 다윗, 엘리야, 예레미아, 예수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각 지파에서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역상 12:22).
잠언 공부가 날이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잠언에 대한 다른 말씀 인용은 http://www.oldfaith.net/의 김효성 목사님의 '잠언 강해'를 참고했고 번역은 여러 영문번역을 비교해서 한 저의 번역본입니다. 김목사님의 잠언 강해 내용이 매우 좋습니다. 목사님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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