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는 '지혜와 명철'이 있는 신도들에게 지혜 안에서 살아있는 믿음을 보이라고 주문하고, 지혜는 두 가지가 있다고 교훈합니다. 즉, 위에서 내려온 지혜와 땅에 속한 지혜가 그것입니다. 앞의 것은 '천상' 뒤의 것은 '지상'에 속한 것인데 두 지혜는 공존할 수 없는 극과 극입니다.
13. Who is wise and understanding among you? Let him show by his good conduct that his deeds are done in gentleness of wisdom.
14. But if you have bitter jealousy and selfish ambition in your heart, don’t boast and don’t lie against the truth.
15. This wisdom is not that which comes down from above, but is earthly, sensual, and demonic.
16. For where jealousy and selfish ambition are, there is confusion and every evil deed.
17. But the wisdom that is from above is first pure, then peaceful, gentle, reasonable, full of mercy and good fruits, without partiality, and without hypocrisy.
18. Now the fruit of righteousness is sown in peace by those who make peace.
위로부터 난 지혜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3. 여러분 중에 지혜 있고 총명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는 올바른 행동을 하여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14. 만일 여러분이 마음 속에 지독한 질투심과 이기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15.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고, 땅에 속한 것이고,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입니다. 16. 질투심과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이성적이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평화로 뿌린 열매입니다."
야고보는 '지혜와 명철'에 대하여 말합니다. 오늘 QT분이 구절을 보면 쉽기도 또한 어렵기도 합니다. 어제 공부하다가 이해가 어려워 손을 놓았는데, 새벽에 행간을 자세히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다시 정리하면서 위의 제 번역의 단어들을 수정했습니다. 이해를 위해 해외 성경해설 사이트를 같이 읽으면서 정리하려 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아래에서 묘사한 '강하고도 온유하신' 동전의 양면과 같은 예수님의 성격과도 같아 이해가 쉽지가 않습니다. '지혜와 명철' 그리고 '질투심과 이기심'을 비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시 좀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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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래(인용 및 편집: sermonwriter 그리고 개인 멘트 포함) -
“여러분 중에 지혜 있고 명철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13a절). 야고보는 스스로 지혜 있고 명철하다고 생각되면 손을 들라고 제안합니다. 우리는 그의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지혜 있고 명철하다면, 우리가 당신의 주장을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지혜 있고 명철하지 않다면, 여러분은 우리의 질문으로 그 사실이 드러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올바른 행동을 하여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13b절). 이것은 야고보가 믿음으로 선한 행함을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둔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그는 우리의 지혜와 명철이 지혜의 온유함으로 선한 행함을 보여줄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말로 '온유함(개역개정: gentleness)'으로 번역된 단어는 원어로 'prautes(명사, praus는 형용사)'인데 praus는 보통 '점잖은, 온유한'으로 번역됩니다. 그 말들은 약함이나 소심함을 나타내는데 성경에서 마태는 예수님을 묘사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gentle and humble in heart)" (마 11:29).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시면서 나귀새끼에 오르면서 '그는 겸손하여'(마 21:5)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약하거나 소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부르며 질책하시고, 질병과 악마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셨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권위 있게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온유하다고 일컫는데 그는 실제 온유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외국의 성경학자는 설명합니다.
"야고보가 지혜와 명철이 온유함으로 이루어진 행함을 보인다고 우리에게 말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는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몸을 구부리는 강한 남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실 때, 우리는 또한 그런 온유한 힘으로 축복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경학자가 말하는 이 모습에서 예수님의 온유하고 또한 강한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마치 동전의 앞뒤와도 같습니다. 다음은 '그러나' 접속사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마음 속에 지독한 질투심과 이기심이 있으면" (14a절). 13절에서, 야고보는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함을 보이라' 요구했습니다. 이제 그는 동전의 다른 면인 "씁쓸한 질투와 이기적인 야망(시기심과 이기심)"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그리스어로 'zelos(질투심, zeal, fervor, jealousy)'란 단어는 좋거나 나쁠 수 있다. 예수님이 성전을 청소하실 때,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 대한 열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zelos는 종종 나쁜 의미로 쓰이는데, 이는 대제사장과 그의 동료들이 질투심으로 가득 차서 사도들을 체포했을 때이다 (행 5:17-18).
그리스어로 'Eritheian(이기심, selfish ambition)'은 국가의 복리보다는 자신의 직분에 더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일종의 이기적인 야망을 가리킨다. 그런 이기적인 야망은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계층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마십시오"(14b절) 질투하거나 야망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지혜와 명철을 자랑할 권리가 없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거짓, 즉 진실에 반하는 말이다.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고, 땅에 속한 것이고,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입니다" (15절) "씁쓸한 질투와 이기적인 야망"으로 특징되는 이런 종류의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선물)가 아니라, 세속적이고,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이다.
"질투심과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16장) 13절에서, 야고보는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들이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들의 선행을 보여주도록 격려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선한 은사(선물)를 받아들여 선한 결실을 만들라는 요구였다.
이제 그는 위에서 내려우지 않는 지혜 - 세속적이고,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인 - 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을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그런 종류의 지혜는 혼란(불안정)과 악행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이성적이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7절) 위에서 오는 지혜는 선한 결과를 낳는다:
- 순수한 (hagnos, pure)––순결하고, 죄가 없고,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부패하지 않다.
- 평화로운 (eirenikos, peaceful)––평화를 유지하는데 전념한다.
- 온유한 (epiekes, gentle)––적절하고, 관대하고, 참을성 있다.
- 이성적인 (eureithes, reasonable)––같이 지내기 쉽다.
- 자비로운 (mestos eleos, full of mercy)––은혜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 - 주고, 용서하고.
- 좋은 결과를 낳고 (agathos karpos, good fruits)––갈라디아서 5:22-23 참조.
- 편견이 없고 (adiakritos, without partiality)––그룹 간의 편파적인 차별이 없다.
- 위선이 없고 (anypokritos, without hypocrisy)––거짓 가면을 쓰지 않는다.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평화로 뿌린 열매입니다” (18절). 유대인들은 의로움을 토라 법에 따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평화롭게 의로움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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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해가 안되어 손을 놓은 뒤, 오늘 다시 읽고 번역하고 정리하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예가 가장 좋은 예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또한 '강한' 행함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고 '열정'이 있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야고보가 말하는 '질투심과 이기심'은 동정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인 질투심과 이기심은 "씁쓸한 질투와 이기적인 야망"으로 특징되며 이런 종류의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선물)가 아니라, 세속적이고,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이신 '열정'은 위에서 오는 지혜입니다. 그것은 순결하고, 평화스럽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앞의 지혜는 땅에 속한 것이고 악한 것입니다. 뒤의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 앞의 지혜는 교만과 오만에 기반한 것이고, 뒤의 지혜는 겸손과 순종에 기반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이 이해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과 위선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교하니 나름대로 이해가 된 것 같습니다. 어제 풀리지 않은 퍼즐조각이 풀린 것 같습니다.
땅에 속한 우리는 늘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세속적인 질투심과 이기심'을 이지지 못합니다. 스스로 지혜롭고 명철하다고 자랑하는 우리는 이제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밭에 '열정과 온유'가 있는지, 아니면 '질투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한지. 질투와 이기는 오만과 교만을 낳고 결국 사망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의 말씀과 행함을 기억하고, 늘 온유한 마음으로 그분의 겸손과 사랑과 자비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루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BIBLIOGRAPHY:
https://sermonwriter.com/biblical-commentary-old/james-313-43-7-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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