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소위 <재물 해바라기> 비즈입니다. 작업은 4일 소요됬습니다. 해바라기는 이것까지 5개 작업했는데 저희 언니네 도우미 하시는 아줌마 선물로 작업했습니다. 아래는 작업 중에 적은 병원일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2021년 11월 4일(목): 이불빨래 혼자 하는 고1
날씨는 흐림 후 약한 비. 새 환자가 점등 전에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5시반에 기상. 6시 책 <프로이드> 읽으면서 사이클 1시간 운동. 7시 옥상에서 스트레칭 후 5바퀴 뜀. 저녁 식사 전에 1시간, 저녁 후에 1시간 책 보면서 사이클 운동. 이날 미류가 역사적인 이불빨래를 했다. 침대 매트레스, 이불 등 다 빼고, 세탁기에 넣고 세제넣고 돌리고, 탈수해서 빼서, 베란다에 널고 하는데 페이스톡으로 영상 보면서 진행했는데 늦게나마 혼자 큰 빨래를 하겠다고 시도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아이에게는 큰 프로젝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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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5일(금): 병원도 집도, 울고 웃고,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또 새벽에 간식으로 빵 먹고 5시 문 옆 침대로 들어온 새 환자 친구 부스럭 소리에 5시에 기상. 7시에 옥상 올라가서 스트레칭. 해바라기 작업 중에 시간만 나면 사이클을 타면서 책을 읽었다. 남은 시간은 비즈에 전념했다. 새로 온 말 많은 새 환자 두 명에 대한 긴 메모가 이 날 있다.
"새 환자가 두 명 들어왔다. 말 많은 한 친구도 페인팅 한다고 해서 아무래도 우리 방은 자타가 공인하는 '공방'임이 증명되었다. 은근히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했는데... 페인팅 재료 두 개 - 마릴리 먼로 그림으로 주문하고, 하나는 먼로를 페인팅 했는데 다른 재료와 물감을 거꾸로 사용해서 (매우?) 이상한 먼로가 되었다. 다른 하나도 그리다고 이상하다고 지우고 안 보고 쉽게 그릴 수 있다고 다시 자작품 '인어공주'를 만들었는데... (어떤 작품이 나올까 내심 궁금했음) 만든 것을 보니 정신분열(?) 증상이 보임. 웃기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불안하기도 하다. 먼로가 1급 장애인이 되었다는 방 친구들의 평이 우습다. 인어공주는 정신분열 공주였다.
이 친구 혼자 생각하고 혼잣말 하는 것부터 모든 행동이 말로 연결된다. 스피커 폰으로 시끄럽게 전화하고, 뽕짝 노래 듯고, 노래하고, 왔다갔다 하고, 종일 시끄럽다. 그래서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개인 사생활이 전부 공개된다. 정신이 아픈 것 같다. 방에서 혼자 종일 떠드니 나도 다른 친구들도 말이 없어졌다. 나보다 먼저 퇴원했는데 잘 쾌유되기를 기원한다.
또 다른 친구는 내 자리 맞은편인데, 입원 후 일주일 동안 못하게 하는 러닝머신 계속하다가 (뛰면 안되는데 머신 위에서 뛴다) 간호사에게 적발되어 계속 끌려 내려온다. 내가 운동하고 있을 때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을 보니 너무 불안해서 '위험하니 뛰지 말라~' 말도 했었다. 그리고 핸드폰 촬영을 병동에서 못 하는 규율이 있는데, 하와이 친구와 러닝머신에서 뛰는 친구가 방에서 사진 찍고 뒤에 촬영금지 스티커를 몰래 붙였는데 깐깐한 간호사에게 발각되어 벌칙으로 핸드폰을 하루 뺐겼다. 방이 마치 코미디 같다."
이 날 메모가 많다. 미류와 페이톡을 하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한다.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적었다.
"우리 집 아래 집주인에서 물이 샌다고 우리 집으로 올라와서 미류에게 소리를 질러서 애가 무서워서 울고 엄마에게 통화했다. 그리고 아이가 아래집 주인에게 길고 논리정연한 문자를 보냈다. 나는 부동산과 우리 옆에 사는 주인(남자분 - 여자분은 대책이 없다. 무조건 소리부터 지른다)에게 전화해서 이사날 이전까지 이런 문제 없도록 당부하고 잔금날짜 확약까지 받았다."
병원에 앉아서 참 여러가지 일들이 생기고 해결하고... 이날 읽은 <프로이드의 의자>에서 좋은 내용이 있어서 미류에게 전달했다. 이 책은 정신분석가 정도언이 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아닐까?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테리, 오늘은 신의 선물이다. 그래서 현재를 present(선물)이라고 한다."
- Joan Rivers -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로운 출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나'이다.
다른 사람의 허락은 필요없다."
- 정신분석가 정도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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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6일(금): 책도 읽고, 시끄러운 집과 병동
날씨는 흐림. 밤 12시와 새벽에 두 번 깼다가 키 크고 당뇨에 다리 다친 착한 친구가 새벽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친절하게 도우면서 눕혔는데, 그 친구 몽유병인지 새벽에 돌아다닌 기억을 못한다. 복도도 돌아다니고 다른 방에도 들어간다고. 5시40분에 기상했는데 전날 일이 많아서 그런지 피곤이 조금 풀렸다. 전날 새로 온 말 많은 친구 점등 전에 새벽에 방 쓰레기통들(자기 것 외에 다른 것들도) 치운다고 부스럭대어 깨서 5시부터 몰래 운동실로 들어가 사이클 탔는데, 오늘 당번 간호사는 깐깐한 친구다. 걸리면 혼날 것 같아 불안해서 이 날은 안 탐.
대신 7시에 산책하고, 운동은 시간 나는 대로 <프로이드> 책 읽으면서 사이클을 탔다. 나머지 시간은 <해바라기> 비즈에 전념했다. 이 날 병동이 매우 시끄러웠는데 아래는 그날의 메모이다.
"(1) 우리 방에서 잠시 있다가 여기저기서 싸우고 다른 방으로 옮긴 친구가 새로 온 말 많은 친구와 인터넷 구입 건으로 욕하면서 대판 싸움. (2) 그리고 다른 방에 있는 뚱뚱하고 혼잣말 하는 친구가 간호사하고 싸우고 자기 방에서 혼잣말로 계속 욕한다. 고로 - 빨리 퇴원해야겠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가 우연히 기독교 방송에 <날마다 새롭게> 유튜브 채널에서 명강사 김창옥 교수의 신앙고백을 보았는데, 감명깊게 시청했다. 신선하고 거부감이 전혀 없는 고백이었는데, '소통' 전문가로 활동하는 이 강사는 '김창옥TV'에서 명강연을 하는데 입원 중 몇 개 시청하기도 했다.
미류는 AI 공부관련 동영상 제작 알바를 시작하고 공부도 되고 돈도 번다고 좋아라 한다. 언니에게는 전화해서 퇴원계획을 상의했다. 퇴원 날짜가 다가오면서 일지도 길고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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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비즈 작업하면서 일지를 보면서 정리하니 여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도 사회입니다. 사회의 축소판이지요. 병원이라는 공간이 있고, 다양한 사연을 가진 환자들이 있고, 그들을 치료하는 치료진이 있습니다. 사회 안에서는 관계가 이루어지고, 소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소통과 동시에 거리두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월요일 하는 '자기성장' 수업 때 일주일 스케줄 정리하고 실천한 내용을 발표하는데, 마지막 날 '가까이 하기'와 '거리두기'가 힘들다고 하니, 왜 그것에 신경쓰냐? 자신에게만 집중하라!'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해바라기> 비즈는 이모가 집으로 와서 도와주는 것을 거부하는 우리 미류를 제가 없을 때 와서 많이 도와주신 아줌마에게 선물로 드렸습니다. 앞에는 큰 해바라기가 있고 뒤에는 작은 해바라기들이 많은 그림이 돈과 행운을 가지고 온다 하네요. 모여있는 해바라기들처럼 우리도 소통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퇴원하고 산책 나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흘 산책을 못하고 있는데 날이 많이 쌀쌀해 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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