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예수께 와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혼란에 빠집니다.
1. Now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s named Nicodemus, a ruler of the Jews.
2. The same came to him by night, and said to him, “Rabbi, we know that you are a teacher come from God, for no one can do these signs that you do, unless God is with him.”
3. Jesus answered him, “Most certainly, I tell you, unless one is born anew, he can’t see God’s Kingdom.”
4. Nicodemus said to him,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Can he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and be born?”
예수와 니고데모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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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였다. 2.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에게서 오신 선생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이 표적을 행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해셨다. “내가 너에게 진실을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극도로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유대인들로,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 '외식하는 자' 등으로 불리면서 큰 꾸짖음을 받은 것을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예수의 표적을 보고 감명을 받아 밤에 예수께 와서 질문하는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통치자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심이 깊었고 교육을 받았고(니고데모는 그리스식 이름), 영향력 있는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믿고 있음을 밝히고, 그 자신도 랍비로 불렸을 것인데 예수님을 랍비(선생님)로 호칭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임을 고백하고 그 증거로 예수가 보였던 표적들을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탄생을 육체적(물리적)인 탄생으로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4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어머니의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인지?' 그는 질문합니다. 거듭남에 대한 많은 교육을 듣고 받은 우리는 그의 질문이 우문으로 들리는데, 당황한 그는 예수님께 그 생각을 더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의 설명을 아래 인용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진부한 표현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은 중요한 비유이다. 부모가 고통을 감내해 아이가 변화하고 속성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견뎌내신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탄생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3절에 따르면, '다시 태어나는 것'은 구원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요건이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긴 하지만, 오직 특정 집단에만 한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받는데, 이것은 요한복음이 여러 번(요 3:5; 요한 3:18; 요한 3:36; 요한 14:6) 반복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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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Jesus answered, “Most certainly I tell you, unless one is born of water and spirit, he can’t enter into God’s Kingdom.
6.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7. Don’t marvel that I said to you, ‘You must be born anew.’
8. The wind blows where it wants to, and you hear its sound, but don’t know where it comes from and where it is going. So is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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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7. 내가 너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에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제가 원하는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그 바람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나는 모든 사람도 이와 같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답하십니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에게 '변화(reformation)'가 아닌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born anew)'이 필요하다 강조하십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see)'없다 말씀하시고 여기에서는 '들어갈 수(enter into)' 없다 말씀하십니다. Spurgeon은 말합니다.
"사람은 많은 악을 버리고 그가 탐닉한 많은 욕망을 버리고, 악한 습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사람도 스스로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게 할 수는 없다. 비록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능력 밖의 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태어날 수 있더라도,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그가 위반한 조건에서 한가지 조항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학자는 설명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욕망과 죄악에서(부단한 개인적인 노력으로) 벋어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인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물=세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로 태어난다'는 말은 단순한 물리적인 세례(=물리적인 거듭남)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육체적인 거듭남은 6절의 '육에서 난 것은 육'임과 유사합니다.
물로 태어난다는 것을 (말씀의 물로 씻기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6절) 문장은 너무나도 간단한데 학자는 설명합니다(아래).
성경은 종종 "육(flesh)"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우리의 인간 본성을 묘사한다. 그리스어로 sarx(flesh)는 인간의 죄에 취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이것은 우리의 나약함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적개심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온 성령(Spirit)과는 정반대이다. 이것이 바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진부한 말이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의 의미가 없다. 그러나 육체와 성령의 차이가 재탄생이 필요한 이유이다. '육체'의 일부인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순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죄 많은 인간의 본성이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사실 '거듭남, 다시 태어남'이란 용어는 정말 우리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진부한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핵심이 짧은 6절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본성이 죄악에 취약한 우리의 육으로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7절 "내가 너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에 놀라지 마라"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는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이미 새 언약에서 약속받은 내면의 변화를 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놀랍니다. 니고데모는 신임받는 종교지도자, 바리새인, 교육받은 사람, 그리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이미 하나님의 성령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음을 아셨습니다.
8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으로 거듭남'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는지의 이유는 너희는 알 수 없다. 이는 마치 너희가 육(肉)으로 바람의 형체를 볼 수 없고,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예측할 수 없는 것과도 같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일하심은 너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절의 말씀은 마치 시의 한 구절 같지만 '영(靈)'의 실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는 설명합니다(아래):
'육(肉)'과 '영(靈)'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새로운 본성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한 이유는 언제나 우리에게 수수께끼일 것이다. 우리는 바람을 실제로 볼 수도 없고, 그것에 대한 어떠한 것을 예측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일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학자는 7-8절이 영어로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아래):
"7절과 8절은 그리스 단어 pneuma를 사용하며,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번역될 수 있다. 문맥에 따라 'spirit(소문자)', 또는 'Spirit(대문자)', 또는 '바람(wind)'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니고데모가 인식하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바람 또는 숨결은 종종 성령의 상징이다. 이 용어는 니고데모에게 에스겔 37:1–14를 떠올리게 했다. 선지자 에스겔은 증언하였다. (겔 37:5)"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Come from the four winds, O breath, and breathe into these slain,
that they may live.'
'마른 뼈들이 살아나다'는 제목의 에스겔의 이 말씀은 작년에 공부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당시 글을 적은 상황을 보니 오늘과 많은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생기 없고 약속 없는 나날들. 그날 기도하듯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작년에 올린 글입니다(아래).
무력한 하루 하루가 지나고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또 살았구나 하고 안도하고 감사드리고 뼈도 있고 힘줄도 있고 살도 있고 살갗도 있고 움직이기는 하는데 생명이 없는 것 같은 나날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마른 뼈들처럼 나의 뼈에 생기가 들어와 덜거덕 거리면서 뼈들이 맞추어지고 모아지고 발로 서서 생기를 찾기를 기도합니다.
9. Nicodemus answered him, “How can these things be?”
10. Jesus answered him, “Are you the teacher of Israel, and don’t understand these things?
11. Most certainly I tell you, we speak that which we know, and testify of that which we have seen, and you don’t receive our witness.
12. If I told you earthly things and you don’t believe, how will you believe if I tell you heavenly things?
13. No one has ascended into heaven, but he who descended out of heaven, the Son of Man, who is in heaven.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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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니고데모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19, 예수께서 대답하였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인데 이러한 일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런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너희에게 세상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를 않는데, 내가 너희에게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어떻게 너희가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자가 아무도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니고데모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는 새로운 탄생이 자신과 모든 신실한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다는 생각이 너무 확고해서 생각을 달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를 꾸짖으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인데 이러한 일들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새 탄생의 필요성과 약속을 알지 못하는 것을 꾸짖으셨는데, 이는 구약성경에 명백히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그 구절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탄생과 관련하여 그것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달성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더 잘 알았어야 했습니다.
13절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다시 요한복음 서문으로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요 1:1)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바로 참 빛이시고, 우리 안에서 육신이 되어 거하셨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1:9)
The true light that enlightens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 The Word became flesh, and lived among us(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저도 적으면서 이해를 잘 하고 있는지 혼동스럽습니다. 말씀으로 보면, 하늘로 올라간 이는 인자이신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와 하늘의 연결고리는 그리스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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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15.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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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심이다.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번역.편집해서 올립니다(아래).
"높이 들었다(lifted up)"는 것은 십자가형을 가리키는 공손한 방법이었다. 그 문화에서, 이 집행 방법은 매우 혐오스러워서 종종 다른 표현를 사용하여 언급되었다. "인자(the Son of Man)"는 예수가 자신에게 자주 적용하는 호칭이다. 이 이름은 구약성경의 메시아 예언에서 따온 것이다. 이 두 가지, 그리고 뱀에 대한 언급을 니고데모는 쉽게 알았을 것이다.
구약성경 민수기에는 예수가 언급하고 있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민 21:4-9). 이 사건은 구원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전해질지 생생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불순종한 결과 독사의 공격을 받는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고 모세는 하나님과 상의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뱀의 형상을 만들어 장대 위에 세우라고 지시하셨고, 그것이 들어올려졌을 때, 그것을 믿음으로 보는 사람은 모두 치료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로 '높이 들렸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는 구원이 완전히 우리 자신의 능력 밖에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믿음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장대 위에 높이 있진 뱀의 형상을 본 사람은 모두 치유되었고, 보기를 거부한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게 되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메시아의 역할이 놋뱀으로 상징된다고 니고데모에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십자가에 높이 들려지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고,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위는 사용할 이미지를 찾다가 발견한 그림입니다. 니고데모의 우문에 답하신 예수님의 설명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왼쪽의 형상이 '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한 뱀이 장대에 높이 들려있습니다. 뱀은 죄악의 씨앗입니다. 우리 죄로 인해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모욕적으로 높이 들려 올렸고,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령은 마치 바람과 같아서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지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높이 들린 놋뱀을 보듯
높이 들린 그리스도의 형상을 믿음으로 보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니고데모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를 꾸짖으십니다.
'너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이러한 일들을 알지 못하느냐?'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3/
https://www.bibleref.com/John/3/John-chapter-3.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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