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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3:22-36(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by 미류맘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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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대 땅에서 세례를 배푸십니다. 그 일을 알게 된 요한은 걱정하는 제자들을 향해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대답합니다. 그리고 인자를 믿은 자에게는 영생이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진노가 있을 것임을 선언합니다.

 

22. After these things, Jesus came with his disciples into the land of Judea. He stayed there with them, and baptized.
23. John also was baptizing in Enon near Salim, because there was much water there. They came, and were baptized.
24. For John was not yet thrown into prison.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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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 일들이 있은 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그 곳에서 머무르시면서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 그 곳에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았다. 24. 이것은 요한이 아직 감옥에 갇히기 전의 일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대 지방에서 세례를 주셨습니다. 4장 2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직접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세례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종의 세례 감독을 하셨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요한도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세례자 요한의 일과 비슷한 사역을 하였습니다. 둘 다 비슷한 상황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풉니다. 예수님이 전도를 시작하실 때 요한과 같은 회개의 말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3:2, 4:17)

요한은 곧 체포되어 처형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요한이 체포되기 전의 일입니다. 예수와 요한은 예루살렘 주변 지역에서 설교를 했고, 이것이 지역 종교 지도자들이 우려했던 이유를 설명한다고 합니다. 그들 둘은 예루살렘의 확립된 종교 질서에 합법적인 (영적) 위협이었습니다. 요한은 물이 많은 곳에서 세례를 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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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There arose therefore a questioning on the part of John’s disciples with some Jews about purification.
26. They came to John, and said to him, “Rabbi, he who was with you beyond the Jordan, to whom you have testified, behold, the same baptizes, and everyone is coming to him.”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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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대인 사이에 정결예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26. 그들은 요한에게 와서 "선생님, 요단 강 건너편에 선생님과 함께 있던, 선생님이 증언하셨던 그분이 세례를 주고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분에게 가고 있습니다."

성경 학자는 요한이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를 말할 때 '유대인들(The Jews)' 복수를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중 어떤 유대인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는데 그 특정 유대인(단수)은 3장 1절에 나오는 니고데모로 추정합니다. 그 때 논쟁은 새로 태어나는 것과 구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주제는 세례와 관련된 정결예식에 대한 것입니다.

25절의 단수 '어떤 유대인'이 26절에서 복수 '그들(they)'로 바뀝니다. 성경학자는 그들이 지역 종교 지도자들을 총칭하는 '유대인'으로 추측하고 그들이 온 이유는 예수와 세례 요한의 제자들 사이에 경쟁을 부추기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는 요한이 체포되고 처형되기 전입니다. 흥미로은 주석입니다(아래). 

그 기간 동안 예루살렘 주변 지역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설교로 가득 찼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상당한 반응이 있었다. 이 발언은 두 사람 사이의 경쟁을 고무시키기 위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지역 종교 지도자들이고, 그들의 추측이 맞았다면) 세례 요한이 예수를 질투해서 요한과 예수가 서로 싸우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악마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전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한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이미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에 만족하고 있다. 사실, 그는 다음 몇 구절에 따르면 예수님에게 추종자들이 많은 것에 매우 기쁘한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실 26절을 보면 누군가가 요한에게 와서 다른 랍비로 보이는 사람이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세례를 주고 있다고 걱정하여 (고자질하는)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추측이 사실이라 해도 요한은 악마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예수님 이전에 보냄을 받은 사람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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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John answered, “A man can receive nothing, unless it has been given him from heaven.
28. You yourselves testify that I said, ‘I am not the Christ,’ but, ‘I have been sent before him.’
29. He who has the bride is the bridegroom; but the friend of the bridegroom, who stands and hears him, rejoices greatly because of the bridegroom’s voice. This, my joy, therefore is made full.
30.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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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요한이 대답했다 "사람은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내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 분 앞에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을 너희는 증언할 자들이다. 29.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그러나 서 있다가 신랑의 소리를 듣는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로 인해 매우 기뻐한다. 그런즉 나의 기쁨이 이제 가득 차 있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27절 요한은 말합니다. "사람은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성공을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성공한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분노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28절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임을 다시 분명히 합니다. 

29절 요한은 자신을 결혼식의 들러리로 예수를 주인공인 신랑으로 비유합니다. 신랑의 행복과 그가 받는 관심을 보는 것으로도 들러리는 질투심이 아니라 황홀감을 느낍니다.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관심을 받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성경학자의 주석입니다(아래):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이스라엘 또는 그의 백성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신랑으로 그려진다(사 54:4, 렘 2:2, 호 2:19).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는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련된 모든 남자들 중에서 신랑이 모든 박수를 받아야 한다. 신랑 들러리의 역할은 신랑을 돕고, 신랑의 옹호자가 되고,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신랑에게 신부가 있을 때 신랑 들러리는 즐겁다. 질투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것이 처음부터 신랑 들러리가 원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위한 조연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이제 주연이신 신랑 예수님이 오셨으니 조연은 무대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30절은 그 인수인계의 최종 결과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0절) 요한의 사명이 성공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잃어야 하고, 대신 예수님이 더 큰 인기와 명성을 얻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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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He who comes from above is above all. He who is from the earth belongs to the earth, and speaks of the earth. He who comes from heaven is above all.
32. What he has seen and heard, of that he testifies; and no one receives his witness.
33. He who has received his witness has set his seal to this, that God is true.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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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의에 계신다. 땅에서 온 사람은 땅에 속하여, 땅에 대해 말한다. 하늘에서 오신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그분은 증언한다. 그러나 그의 증언을 받는 사람이 없다. 33. 그의 증언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확증했다. 

31절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인자(그리스도)가 위(하늘)에서 오신 유일한 분임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13) 예수님만이 위에 속한 분이시고, 땅(세상)에 속한 우리를 가엾이 여기셔서 위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서 땅에 속한 존재이고, (니고데모를 포함한 모든 당대의 교사들도 그랬듯이) 우리도 세상의 상식과 지식에 기반하여 세상의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오직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대부분 매우 간단하고 평범하고 일반적인 상식으로 들립니다. 그 행간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지상의 상식에 기반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32절 요한은 '보고', '듣고', '증언'이란 용어를 매주 자주 사용하는데 이 복음서에서만 30번 이상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예수님의 행적과 메시지를 증언하기 위한 증인으로 그분 이전에 이 세상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개인적인 지식에 대한 주장할 때 종종 아래의 표현을 사용합니다(영어 번역): 

  • 'Very truly I tell you (NIV)
  • Truly, truly, I say to you (ESV)
  •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KJV)
  • I tell you the truth (NLT)
  • Most certainly I tell you (WEB)

한글성경은 '진실로 진실로 네가 이르노니' 등으로 번역되는 이 표현은 '아멘, 아멘'이라는 문구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매우 자주 보는 진술이어서 우리는 그냥 중요한 구절을 강조하실 때 사용하시는 표현으로 이해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32절) 예수님의 진실된 메시지를 (과장법을 사용하여)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라고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예로 백 명 중 한 명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요즘 말로 우리는 '뻥친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33절 구절의 맥락에서 우리는 요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앞에서 증언했습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췄다.(3:9)
그분이 세상에 있었고, 세상이 그를 통해 지음을 받았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다.(3.10)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3:19)

즉, 극소수의 사람만이 참빛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빛은 강력해서 어둠(죄악)에 맞서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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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For he whom God has sent speaks the words of God; for God gives the Spirit without measure.
35.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has given all things into his hand.
36. One who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but one who disobeys  the Son won’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remains on him.”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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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주셨다. 36.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생이 있지만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

34절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주장한다. 이 진술은 이 복음서에서만 40번 정도 나오는데, 이것이 이 책이 쓰인 이유(요 20:30-31)이며, 예수님의 표적들은 그에 대한 일차 증거(요 5:36)이다. 니고데모는 예수의 놀라운 능력을 하나님이 보내신 증거(요 3:2)로 인정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유효한 지식의 원천이시기 때문에(요 3:12–13),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요일 5:10).

예수님은 자주 아버지의 지식, 능력,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단지 하나님과 닮은 것이 아니라, 그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삼위일체(Trinity)'에 대한 또 다른 유용한 증거인데, 하나님은 한 존재에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진다는 개념이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니 사람이 하나님을 배척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배척할 수 없는 것이다(요일 5:10).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요 3:18).

위의 개념은 매우 중요해서 성경학자의 설명을 인용합니다. 결론은 너무나도 명쾌하고 굵습니다 - 즉, 그리스도만이 아버지에게 가는 유일한 길이다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은 전체 복음의 한 문장 요약본으로 자주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대신 보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생각이 기독교의 중심 주제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 18절과 요한복음 3장 36절과 같은 구절들은 비판적인 내용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이 '영원한 삶'을 갖게 되며,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재앙으로부터의 구조이다. 

두 가지의 선택뿐입니다. 즉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두 개 중에서 양자택일입니다. 이 조건에서 아무도 중립적이지 않고, 누구도 면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옵션(option)이 아닌 필수(must) 선택사항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참빛을 찾는 것은 내 삶의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라는 요한의 설명입니다. 즉, 영생(eternal life)이나 하나님의 진노(wrath)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30, 이미지 소스:https://sermons.faithlife.com/)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와 심판(진노)하심.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에게 선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 매우 큰 희생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참 빛으로 인정하는 내 자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용이 종교 원리적인 내용이 많아 공부하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https://www.bibleref.com/의 내용을 인용.번역 및 수정하고 개인 생각을 적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피상적으로 이해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인수인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상작업에서서 화면전환을 하듯 조연이었던 요한은 무대 뒤로 물러나고 주연이신 예수님이 무대로 올라오시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3/
https://www.bibleref.com/John/3/John-chapter-3.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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