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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5:16-29(예수와 하나님의 관계)

by 미류맘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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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병을 고친 일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피박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의 당위성을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는 일, 사랑, 심판, 존경에서 자신은 하나님과 동등함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을 확신합니다.

 

16. For this cause the Jews persecuted Jesus, and sought to kill him, because he did these things on the Sabbath.
17. But Jesus answered them, “My Father is still working, so I am working, too.”
18. For this cause therefore the Jews sought all the more to kill him, because he not only broke the Sabbath, but also called God his own Father, making himself equal with God.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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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고 그를 죽일 방법을 찾았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더욱 더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그는 안식일을 위반하였을 뿐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부르며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삼았기 때문이다. 

내용이 기독교 교리와도 연결되는 것이어서 매우 어렵습니다. 외국 성경학자의 설명을 공부하고 인용.번역.편집해서 올립니다.

앞에서 40년 가까이 불구로 살아온 한 남자를 예수님이 고치시고 그에게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라가' 하십니다. 모세의 율법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이것은 안식일을 위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셨고 유대인들은 병고침을 받은 남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는 자신을 치유한 예수가 시키는대로 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예수가 행한 놀라운 이적이 아닌 그들의 전통에 예수가 내밀은 정면 도전장으로 중심이 옮겨집니다.

16절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 고침과 가르침 등을 하셨고(유대인들은 이런 행동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이라 주장), 예수님은 그 행동을 우연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이행하였습니다. 그런 예수의 행동은 소위 종교 지도자라는 가면을 쓰고 위선을 휘두르는 유대인들(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정면으로 대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설명하고, 소위 믿음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진실을 밝히실 것입니다. 이 구절은 그 문제를 직시합니다. 하나, 예수는 안식일에 치유한다 - 둘, 예수는 그들의 전통을 깨뜨린다 - , 유대인들은 예수를 박해한다.

17절 예수님은 아버지께 호소하며 자신의 사역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는 자신을 분명히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매우 구체적인 발언입니다. 예수는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발언을 들은 유대인들은 그가 암시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합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신성모독이며 예수를 죽여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됩니다.

18절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의 죄목을 '하나, 안식일의 위반한 죄, 둘, 하나님을 자신과 동등하게 삼은 죄'로 밝히고 그를 더욱 더 죽이려 합니다. 그들은 예수가 행한 치유의 선행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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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Jesus therefore answered them, “Most certainly, I tell you,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but what he sees the Father doing. For whatever things he does, these the Son also does likewise.
20. For the Father has affection for the Son, and shows him all things that he himself does. He will show him greater works than these, that you may marvel.

아들의 권한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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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할 뿐이다.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셔서 그분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아버지께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아들에게 보여주어 너희가 놀라게 하실 것이다.

19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진술을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아야 아들은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하라는 대로 아들은 행할 뿐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죄가 아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시는 일에서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십니다. 지역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전통을 어긴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요 5:16).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라는 대로만 하시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죄가 아님을 증명하십니다.

20절 성경학자의 설명 인용합니다(아래):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자 예수와 성부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완벽한 조화 중 하나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영적 맹목(마 23:17)이었고, 이로 인해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분리의 벽을 만들었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온전한 사랑과 교감 상태에 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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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For as the Father raises the dead and gives them life, even so the Son also gives life to whom he desires.
22. For the Father judges no one, but he has given all judgment to the Son,
23. that all may honor the Son, even as they honor the Father. He who doesn’t honor the Son doesn’t honor the Father who sent him.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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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다시 생명을 주시는 것 같이 아들도 자신이 원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줄 것이다.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 아들을 존경하게 하기 위해서다.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구약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은 하나님에게만 있다(열하 5:7) 인정합니다. 21절 아버지께서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 같이 예수님도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시면서 자신의 신성을 말씀하십니다. 21절 후반부에 '아들인 예수도 자신이 원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많은 장애인 중 치유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38년 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을 선택하여 치유하셨습니다.

22절 지역 종교 지도자들은 두 가지 주요한 이유로 예수님에게 격분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전통적인 견해를 위반하는 점(요 5:16). 둘째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점(요 5:18).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자질을 자신이 소유하는지 설명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심판을 자신에게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23절 예수님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구원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전 구절에서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어떻게 동등하신지 지적했습니다. 여기에는 하는 일(요 5:19), 사랑(요 5:20), 심판(요 5:22)이 포함됩니다. 예수는 또한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위를 주장했습니다 (요 5:21)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이 다른 점들을 하나로 묶으십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듯 아들을 존경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능력, 사랑, 심판과 권능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명예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실제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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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Most certainly I tell you, he who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doesn’t come into judgment, but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25. Most certainly, I tell you, the hour comes, and now is, when the dead will hear the Son of God’s voice; and those who hear will live.
26. For as the Father has life in himself, even so he gave to the Son also to have life in himself.
27. He also gave him authority to execute judgment, because he is a son of man.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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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25.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죽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인데, 그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살 것이다. 26. 아버지 안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안에 있게 하셨다. 27. 아버지께서는 또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으니, 그는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원리에 대한 말씀이라 (너무 어렵기도 하고 혼동이 되어) 공부를 위해 성경학자의 설명을 번역.편집.정리합니다(아래):

24절 그리스어로 'amēn(아멘)'이란 단어는 영어와 한국어 번역에서 '진실로'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문장 끝에 사용해서 진실 또는 희망을 강조하는데, 우리가 '아멘'으로 기도를 끝내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처럼 문장 시작에 사용하는 것('Amēn, amēn, legō hymin…'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은 '절대적이고 직접적인 개인적 지식을 주장하는 것, 즉 배우거나 학습된 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사실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구절은 23절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여기에서 '예수=하나님' 동격). 도식으로 만들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영접, 존경, 인정)=영생을 받아들임. 반대로 예수를 거부 =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이미 받음), 영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예수의 능력은 부분적으로 육체적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능력(요 20:30-31)에 의해 증명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이미지 소스: https://www.bible.com/)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을 지금 이 순간, 즉 현재에 둔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지금 영생을 얻었다. 따라서 그들이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일(24절)은 이미 일어났다. 이 표현은 신약에서 세례 요한에 의해 오직 두 곳에서만 사용된다. 하나는 이 구절이고, 하나는 요한일서 3장 14절이다:"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 3:14)

요한복음 5장 16절-29절 내용 요약(성경학자의 요약본):

예수는 지역 종교 지도자들에게 대답을 시작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한 사람을 치유한 후, 모세 율법과 관련된 전통을 어기고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는다. 이 구절에서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많은 속성을 주장한다. 이 중에는 하나님의 권능과 심판과 사랑과 존경이 있다.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만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음 구절에서, 예수님은 다양한 형태의 증거들을 언급함으로써 이러한 주장들을 뒷받침할 것인데, 그 증거들은 모두 그의 사역이 사실임을 증명한다.

앞에서 성경학자는 우리에게 영생은 현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에게는 영생인 현재가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이 심판이미 받은 것처럼, 우리는 영생인 현재이미 받았습니다.

앞 구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요 5:19), 사랑(요 5:20), 생명과 죽음의 능력(요 5:21), 심판(요 5:22), 존경(요 5:23)를 소유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요 5:24)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25절 예수님은 생명과 죽음을 지배하는 권능과 하나님의 심판의 권능을 가지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영생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 구절은 구원에 대한 언급이다. 우리 구원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측면은 영적인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인 영적인 죽음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이 구절에서, 예수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그의 권능의 여러 측면을 암시한다. 38년 동안 불구가 된 사람의 치유는 생명과 육체에 대한 그의 권능을 상징했다(요 5:1-15). 이 복음서의 후반부에서 그는 나사로(요한복음 11장)를 일어나게 하여 죽음을 극복하는 그의 능력을 증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직접 무덤에서 일어나 이 능력이 얼마나 완전한지 보여줄 것이다(마 28:5~6). 그리고 훗날 어느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심판을 위해 모든 죽은 자들을 무덤에서 불러내실 것이다(요 5:28-29)

26절은 예수님이 앞에서 말한 내용을 요약한다. 즉 하시는 일, 사랑, 생명과 죽음, 심판, 존경에서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하다. 이는 예수만이 하나님에게 오는 유일한 길임을 의미한다(요 3:36; 14:6).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영생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따르면 예수는 생명과 빛의 구현체이다. 빛은 히브리어의 진실, 선함, 지식의 상징이다. 이 경우 생명은 존재의 지속, 에너지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본성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부이시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생명과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27절 인간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유대인의 세계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니엘서 7장 13절-14절은 약속된 자에 대한 비전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내지만 하나님의 모든 권능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 인물은 "인간의 아들 같은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며, 이 문구는 흔히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아들'이라는 말은 단순히 권력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예언과 신성에 대한 것이다. 요한은 이 복음서에서 이 말을 십여 번 쓰는데, 네 복음서를 합치면 80여 번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 구절에서 예수님은 정확히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는 요한복음 5:19-23과 삶과 죽음을 지배하는 능력(요 5:26)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예언의 성취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바리새파 사람들을 꾸짖는 한 가지 이유이다. 예수님에 따르면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해야 할 증거는 이미 성경(요 5:39)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들는 하나님 아버지(요 3:18, 36)를 배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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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Don’t marvel at this, for the hour comes, in which all that are in the tombs will hear his voice,
29. and will come out; those who have done good, to the resurrection of life; and those who have done evil, to the resurrection of judgment.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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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가 아들의 음성을 듣고, 29. 밖으로 나올 때가 올 것이다.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생명과 죽음에 대한 그의 권능을 언급하셨다(요 5:21). 이 권능의 일부는 육체적 죽음(요 5:25)뿐만 아니라 영적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요 5:24). 그것은 또한 예수님이 궁극적인 종말의 부활에서 모든 인류를 심판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8절과 29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목적은 흔히 받아들여지는 이런 믿음을 그 자신의 사역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부활과 심판을 위해 주어진 권능과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스스로 자주 주장하는 칭호인 '인자 같은 이'(다니엘 7:13–14)의 역할이다.

로마서 14장 10-12절, 고린도전서 5장 10절은 영원한 보상에 대한 심판을 포함한 부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때때로 '하나님의 심판대(God's judgment seat)'라고 불린다.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영원한 보상에 영향을 미친다다. 부활한 이들이 이 첫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에 따르면 하나님을 배척한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자들이 죽음에서 살아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한다. 이 심판은 불의 호수(lake of fire)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될 것이다. 

예수는 28절과 29절에서 이 궁극적인 부활의 묘사를 통해 유대인의 신앙과 자신의 사역을 연결한다. 이 시기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부활을 믿었다. 앞 구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권능과 속성(요 5:19–23)을 주장하셨다. 이는 심판, 그리고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위도 포함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듣는 사람에게 그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마라!' 말씀하신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우리는 두 번 죽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축복을 받지만, 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은 둘째 사망이 그들을 기다립니다. 둘째 사망을 위해 부활된 자들은 하나님이 '크고 흰 보좌(great white throne)'에 앉아서 심판을 내리십니다. 내용이 쉽지 않습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는 영생인 현재가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 말씀은 현재를 영생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우리는 암울한 현재를 덮고 현재보다 밝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이 밝지 않으면 내일도 밝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현재를 영원처럼 살라 말씀하십니다.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5/
https://www.bibleref.com/John/5/John-chapter-5.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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