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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6:1-15(오병이어의 이적)

by 미류맘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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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이 가까울 때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이십니다. 큰 무리가 그의 표적을 보고  예수를 왕으로 세우려 함을 아시고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피하십니다. 

 

1. After these things, Jesus went away to the other side of the sea of Galilee, which is also called the Sea of Tiberias.
2. A great multitude followed him, because they saw his signs which he did on those who were sick.
3. Jesus went up into the mountain, and he sat there with his disciples. 
4. Now the Passover, the feast of the Jews, was at hand. 

오천 명을 먹이시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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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일들이 있은 후,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라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 2. 큰 무리가 예수를 뒤따랐다.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행하신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산으로 오르셔서 제자들과 거기 앉으셨다. 4. 때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다.

성경은 (특히 복음서의 경우) 사건과 사건 사이의 단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5장과 6장 사이에 분명한 단절 (베데스다 연못에서의 이적 후 최소 5-6달이 경과되었다는)이 있다고 성경학자는 설명합니다. 따라서 1절 '이후'는 상당한 시간의 경과했음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를 위해 '표적(signs)'이라 불리는 일곱 가지 '기적(miracles)'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예수를 따르는 큰 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마치 극장에서 마술사가 멋진 연기를 하는 것을 보듯 그들은 예수가 행하는 놀라운 관경에 흥미로와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큰 무리가 예수를 따릅니다.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불행하게도 이 장의 사건들이 설명하듯이, 예수의 기적에 대한 군중의 관심은 잘못되었다. 이 사람들은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흥분(excitement)과 유인물(handouts)만을 찾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기적의 의미와 그분의 사역의 중요성을 설명하실 때 이 같은 백성은 대부분 돌아서서 걸어나갈 것이다(요 6:66). 

베데스다 연못에서 치유의 이적 후 몇 달이 지난 지금, 예수님의 다른 기적적인 치유법들은 "많은 군중들"을 끌어 모았다. 요한복음의 이 부분은 예수의 대중적 인기의 절정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가 행한 기적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로 의도된 것인데, 이러한 광경의 목적 중 하나는 그의 사역에 대한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

요한은 이러한 예수의 기적을 '징표(signs)'로 묘사한다. '징표'는 특정한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특정한 결론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다음 기적은 그의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잘 받아들여질 것이다 - 즉, 그 유명한 오병이어(五餠二魚) 이적이다. 하지만 이 기적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징표 뒤에 있는 메시지를 놓칠 것이다. 예수님이 나중에 설명하시겠지만 그의 사역의 목적은 빵이나 구경거리가 아니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도 5천 명을 먹인 이 기적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보러 예수를 따라다니다가 놀라운 이적을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군중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준비하신 그 징표 너머에 있는 메시지를 놓치고 있지 않을까요? 이 도전적인 진리의 결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많은 무리가 해산된 것처럼 말이지요 (요 6:66).

오병이어의 이적이 있었던 지역은 디베랴 호수라는 갈릴리 연안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오르셨다고 기록된 '산'은 가파른 언덕이라고 합니다. 4절 유월절이 언급됩니다.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유대인들을 위한 유월절 기념행사의 핵심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구출된 유대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월절 의식에서는 음식, 특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에 많은 중점을 둔다. 이 장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개입과 억압으로부터 구원의 주제에 특히 민감했을 사람들을 위해 기적적으로 빵 한 끼를 제공할 것이다. 동시에, 예수님이 생명의 빵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나중에 설명하신 것은 유월절에 대한 유대인의 해석과 정면으로 대치되었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모욕하여 대부분 주님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요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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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Jesus therefore lifting up his eyes, and seeing that a great multitude was coming to him, said to Philip, “Where are we to buy bread, that these may eat?”
6. This he said to test him, for he himself knew what he would do.
7. Philip answered him, “Two hundred denarii worth of bread is not sufficient for them, that everyone of them may receive a little.”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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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그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다“이 사람들이 먹을 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6.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빌립이 어떻게 할 지 이미 아셨기 때문에 그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7. 빌립이 예수께 대답했다. "각 사람이 조금씩 받게 해도 이백 데나리온 상당의 빵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은 무리가 많음을 아시고 제자 빌립에게 '어떻게 배고픈 군중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응답을 알고 계셨지만 교훈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을 시험하십니다. 제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 다르지만 그들 각각은 인간의 노력에 초점을 두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겸손하게 호소하면서 출발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문제를 만나면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노력으로 (최대한 상식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생각할 것입니다. 

7절 예수의 질문에 빌립은 재정적인 해결책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려면 200 데나리온 - 당시 보통 사람의 월급이 1 데나리온 정도였으니 200일 동안의 월급 - 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고 인간의 노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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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One of his disciple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said to him,
9. “There is a boy here who has five barley loaves and two fish, but what are these among so many?”
10. Jesus said, “Have the people sit down.” Now there was much grass in that place. So the men sat down, in number about five thousand.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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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자 중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말했다. 9. "여기 한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10. 예수께서 “사람들을 앉게 하라" 말씀하셨다. 그 곳은 풀이 많았고, 거기에 앉는 사람은 약 오천 명이었다.

위에서 빌립은 응답이 다소 냉소적인 반면에 안드레는 최소한 낙관적으로 그 상황에 접근합니다. 그는 1장에서 형제 시몬 베드로를 포함해서 사람들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어린 남자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작습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냐?'는 그의 질문은 무척이나 애처롭습니다. 그도 인간의 노력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빌립과는 달리 그는 군중에서 모을 수 있는 음식을 기부받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5천명이었고, 여성과 어린이들도 포함하면 15,000-20,000명에 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인간의 노력에 의존하는 공통의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 아래로 인도된 후에야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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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Jesus took the loaves; and having given thanks, he distributed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to those who were sitting down; likewise also of the fish as much as they desired. 
12. When they were filled, he said to his disciples, “Gather up the broken pieces which are left over, that nothing be lost.”
13. So they gathered them up, and filled twelve baskets with broken pieces from the five barley loaves, which were left over by those who had eaten.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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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께서 빵을 가지고 감사 기도를 드리고 제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제자들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렇게 물고기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사람들이 배불리 먹은 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조각들을 거두고 하나도 버리지 마라." 13. 그래서 제자들이 보리빵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들을 모으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예수님은 우선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이것은 7개의 징표 중 네 번째입니다. 제자들이 만난 문제는 해결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수천 명의 무리에게 음식이 필요했고 돈도 없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으로 12 바구니가 가득 찼습니다. 

제자들은 인간의 노력에 의존했고, 돈을 걱정하고 한정된 자원에 절망하는 천국이 아닌 세상의 생각에 집착했습니다. 그들은 문제점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그것이 충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손에 결과를 맡기는 접근법을 택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고 스스로 보여주셨습니다. 있는 아주 작은 자원으로 감사 기도를 드리고, 나누어 주시고, 원하는 대로 주시고, 사람들은 배불리 먹으니, 남은 것이 처음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제자들의 세상적인 방식의 접근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 그 가치를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드리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것, 즉 우리의 기술이든, 재능이든, 우리의 자원이든, 그것을 전적으로 예수님께 드릴 때 '충분히'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도 '적다' 생각할 때, 그 때가 바로 '충분히'가 될 수 있는 때입니다.
물론 최선을 다한 '적음'을 드릴 때입니다. 

 

14. When therefore the people saw the sign which Jesus did, they said, “This is truly the prophet who comes into the world.”
15. Jesus therefore, perceiving that they were about to come and take him by force, to make him king, withdrew again to the mountain by himself.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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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래서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사람들이 보고 말했다. "이분은 진정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이시다." 15.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신을 강제로 데려다가 왕으로 세우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피하셨다.

예수님 시절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 것을 믿었습니다(신 18:15). 예수님은 기적적인 치유로 많은 무리를 모았고, 그 결과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들이 기다리던 선지자, 곧 모세가 약속한 세상에 오실 지도자로 생각합니다. 성경학자의 말을 인용합니다(아래):

다음 날, 예수님은 이 같은 사람들에게 그의 사역의 목적을 설명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빵과 기적이 하나님 사명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무리가 예수를 떠날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매력은 영적 진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아니라 구경거리와 이기심에 근거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이적이 예수님의 세상적 인기의 정점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하려는 군중의 욕망을 거절해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굳게 지키고 있으며, 아직 공개적으로 자신을 왕으로 선포할 순간이 오지 않았다. 갈릴리 바다에서의 하룻밤의 기적은 이 사람들이 다음날 가버나움에서 주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메시지를 밝히시면서 대중의 열의가 수축될 것이다.

James J. Tissot, 'Miracle of the Loaves and Fishes' (1886-94), gouache on gray wove paper, 7-3/8x11-9/16", Brooklyn Museum, New York.

예수를 따르는 거대한 무리(요 6:2)는 예수가 보인 이적을 보고 (그의 예언적 성취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를 왕으로 세우려 합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피하십니다. 지금 세상적 인기의 정점을 찍고 있는 예수님의 인기는 그가 보여준 이적들을 올바른 시선으로 넣을 때 대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은 왕으로 선포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때는 약 1년 후 십자가형을 당하시기 직전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입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6)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6/
https://www.bibleref.com/John/6/John-chapter-6.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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