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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성경묵상

요한복음(John)6:16-29(영생으로 이르는 음식)

by 미류맘 202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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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기적 후 예수님은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바람과 파도 속에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을 보고 제자들이 두려워합니다. 가버나움에서 무리와 만난 예수는 '영생으로 이르는 음식'을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6. When evening came, his disciples went down to the sea,
17. and they entered into the boat, and were going over the sea to Capernaum. It was now dark, and Jesus had not come to them. 
18. The sea was tossed by a great wind blowing.
19. When therefore they had rowed about twenty-five or thirty stadia,  they saw Jesus walking on the sea, and drawing near to the boat; and they were afraid.
20. But he said to them, “It is I. Don’t be afraid.”
21. They were willing therefore to receive him into the boat. Immediately the boat was at the land where they were going.

바다 위로 걸어오시다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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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바다로 내려갔다. 17. 그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었다.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그들에게 오지 않았다. 18. 그 때 강한 바람이 불어 호수에 파도가 일었다. 19. 제자들이 4-5킬로미터 정도를 노를 저어 갔다. 그 때 예수가 바다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두려웠다. 20. 그런데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제자들은 예수를 배 안으로 모시려 하였다. 곧 배는 그들이 가고 있던 땅에 이르렀다. 

성경학자는 예수님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자들을 무리에서 떨어지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 무리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예수의 이적을 보고 예수를 강제로 왕으로 세우기 위해, 요 6:15). 둘, 제자들을 정치적 불안전에 끌여들여 로마 제국의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예수가 이적을 행하는 것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함, 요 11:48). 셋, 설상가상으로 예수의 엄청난 인기는 제자들의 자만심을 부풀릴 수 있음(예,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는 중에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 다툼, 누 22:24)

위의 어떤 경우도 예수님은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기가 정점을 치고 있을 때 제자들을 무리에게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은 4복음서에서 모두 기록된 유일한 기적입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지시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노를 저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불복종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배에 타서 물을 건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이것은 시련과 고난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교훈입니다. 모든 고통이 불복종의 결과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종이 항상 위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때로는 복종이 우리를 폭풍 속으로 정면으로 인도합니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그들의 역경 중에 그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마 6:45-48). 요한은 독자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복음서 전체를 씁니다. 다음 구절(요 6:17)이 예수님이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않았다'라고 간단히 진술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그들의 처지로 고뇌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예수님이 지켜보시는 눈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해석하는 학자의 설명을 읽으니 예수님의 뜻이 이해됩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이 그저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이 불복종해서 그들 홀로 호수 가운데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들을 역경 가운데로 밀어 넣으시고 그들의 두려움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당시 제자들의 처지를 '우리'로 바꾸어봅니다.

때로는 복종이 우리를 폭풍 속으로 정면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예수님이 지켜보시는 눈 아래에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어떤 번역본은 '바다'로 번역)는 비교적 작은 편으로 길이가 11km에 불과하고, 지리상으로 갑작스런 폭풍과 강풍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해가 뜨기 훨씬 전에 거칠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호수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를 타라'고 명령하신 예수께 순종하였기 때문에 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교훈의 목적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현재의 역경은 반드시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불편함이나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

 

한 성경학자의 설명입니다(아래):

요한복음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포함된 많은 세부 사항들을 독자가 접근할 수 있다고 가정하여 생략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자주 놓치는 요점은 마가(막 6:49-50)와 마태(마 14:26)뿐만 아니라 요한에 의해 매우 분명하게 제시된다. 즉, 제자들은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한다. 파도 위를 걸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첫 번째 가정은 그것이 유령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구체적인 요점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개입이 때로는 우리가 처음에 예상치 못한, 심지어 두려운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 무심히 넘겼던 장면이었는데, 성경학자의 설명을 읽으니 이해가 됩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풍이 아니였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아마 인간과 하나님으로의 예수님 둘 다). 이것은 요한의 일곱 가지 표징 중 다섯 번째 표징이고, 이 복음서에서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라는 예수님의 지시를 따랐고, 그 순종이 거친 바람이 부는 호수 한가운데로 그들을 이끕니다. 그들은 파도 위를 걷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떱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막 6:45-52; 마 14:22-30)에서 이 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물 위를 걸어 나가려다가 (예수님에 의해 구조되기 전) 잠시 성공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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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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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 날, 호수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그 곳에 배 한 척밖에 없는데, 예수가 그 배에 타지 않으셨고 그의 제자들만 떠난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님이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빵을 먹었던 그 곳 근처로 왔다)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제자들도 없는 것을 보고, 배를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다.

전날 예수님은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신 후, 무리는 예수가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호수를 건너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궁금했을 것입니다. '배는 한 척뿐인데 예수는 그 배를 타지 않으셨고 제자들만 떠났는데 어떻게 예수가 호수를 건너셨을까?' 그들은 예수가 밤에 물 위를 걷는 것은 볼 수 없었고, 예수를 찾아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까지 노를 저어서 갑니다. 그의 기적을 보고 실로 많은 무리가 예수를 찾고(따르고, following)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수님이 그의 사역이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시는 순간 이 사람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버리기로 선택할 것입니다(요 6:66). 그들의 진정한 관심은 영적 진리가 아닌 놀라운 볼거리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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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When they found him on the other side of the sea, they asked him, “Rabbi, when did you come here?”
26. Jesus answered them, “Most certainly I tell you, you seek me, not because you saw signs, but because you ate of the loaves, and were filled.
27. Don’t work for the food which perishes, but for the food which remains to eternal life, which the Son of Man will give to you. For God the Father has sealed him.”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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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를 보고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고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썩을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으로 남는 음식을 위해 일하라. 그 음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그런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25절 예수를 따르던 무리는 호수 건너편에 있는 예수를 보고 문자 그대로 '언제 오셨는지?'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 뒤에는 '예수님이 '왜 떠났는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시고 그들의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증명할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 뒤에 숨은 구경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예수를 향한 세상적인 인기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최고점을 찍고 있습니다. 26절은 그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줍니다. 한 줄의 말씀으로 그 치솟는 인기를 바로 멈추십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진리가 아닌 공짜 음식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행한 기적은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군중은 흥미를 잃습니다. 그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공짜 음식(썩을 음식)에 관심이 있지 영적 음식(영생으로 이르는 음식)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적을 눈으로 보고 있지만 그 의미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한 줄의 메시지로 예수께 분노하고 그 결과 거의 모두가 예수께 등을 돌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베데스다 연못과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은 '많은 군중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이러한 이적은 부분적으로 의도되었는데 그의 사역에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현대 교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일부 교회들은 사람들을 오락과 무료 음식을 제공하여 고객 또는 잠재고객을 '유지'(또는 확장)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앞의 두 이적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 모았듯이 교회도 소위 오락과 무료 음식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습니다(실제로 그들은 그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셨듯, 그 이후에는 참진리인 복음을 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은 뒤 그들에게 '(물질적인) 썩을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으로 남는 음식을 위해 일하라' 외치셨습니다. 그 뒤의 방법도 예수님이 알려주십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불멸의 음식은 예수님이 주시니 주님만 의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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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They said therefore to him, “What must we do, that we may work the works of God?”

29. Jesus answered them, “This is the work of God, that you believe in him whom he has sent.”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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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그러자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무슨 일을 우리가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29. 예수게서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앞에서 '썩지 않을 음식을 위해 일하라!'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의식, 일과 전통에 대한 그들의 집착을 반영하는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그들의 주제는 '일(works)에 근거한 구원'입니다. 사람들은 그 영원한 빵을 얻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 물었을 뿐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의식과 선행이 필요하다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9), 이미지 소스: https://i.pinimg.com/)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 6:29)

BIBLIOGRAPHY: 
https://enduringword.com/bible-commentary/john-6/
https://www.bibleref.com/John/6/John-chapter-6.html
개역개정 아래의 볼드체 성경구절은 WEB영어성경에 기반한 저의 개인 번역입니다 (따라서 오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절 위 코멘트 중 존칭어의 텍스트는 저의 개인 멘트이고, 반어체는 인용, 번역 및 수정문구입니다.
인용 중 재인용은 이텔릭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예: 성경, 외국 학자설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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